춤, 현장
번 역│ 이선아
서울 송은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전시 〈송은×언박싱 프로젝트 : 생성적 형상들〉은 역대 송은미술대상 수상자와 본선 진출 작가 179명의 작품과 하나의 무용 공연, 즉 〈미노타우로스 - 미노타우로스의 북 (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을 한자리에 모았다. 세 명의 무용수와 두 음악가가 참여한 이 작품이 개관 5주년을 맞은 이 갤러리의 전시에 함께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건축의 보석과도 같은 이 건물의 세 개 층에 걸쳐 펼쳐진 풍성한 전시 안에 이 무용 작품을 어떻게 자리하게 할 것인가? 화가이자 드로잉 작가인 뒤렌마트의 세계와 건축과 음악, 그리고 한 문학 작품과 근원적인 신화에서 출발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나의 안무 작품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청담동에 있는 이 갤러리까지의 여정은 길고도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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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 출연진 ⓒ이규열 |
먼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20세기 독일어권 스위스 문학계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극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희곡과 소설, 에세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존재하는 도덕성의 결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한 풍부한 작품을 남긴 화가이자 드로잉 작가였으며, 그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기괴하며 때로는 폭발적인 양식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각 예술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가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했던 집을 중심으로 세워진 뇌샤텔 뒤렌마트 센터 (Centre Dürrenmatt Neuchâtel, CDN)밖에서 그의 그림과 드로잉이 전시된 적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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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Tambour du Minotaure〉 2025년, 뒤렌마트 센터 ©OPAC |
2025년 6월, 바로 이곳에서 뒤렌마트의 후기 작품인 〈미노타우로스 : 발라드 (Minotaurus : eine Ballade)〉에서 영감을 받은 무용과 음악 공연 〈미노타우로스의 북 (Le Tambour du Minotaure)〉이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레 몽드 트랑스베르소(Les Mondes Transversaux)와 선아당스(SunadanSe)가 공동 제작하고, 각 단체의 안무가인 피에르-이브 디아콩(Pierre-Yves Diacon)과 이선아, 그리고 무용수 알렉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Alessandro Navarro Barbeito)가 출연했다. 이 작업은 예술 감독 없이 공동작업으로 진행되었다. 1985년, 뒤렌마트는 고대 그리스의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짧은 소설을 발표했다. 원래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즉 그녀가 건네준 유명한 붉은 실을 따라 미궁 한가운데로 들어가 크레타 섬의 어린 소녀들과 남자아이들을 끊임없이 삼키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또 다른 시선
뒤렌마트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인간의 몸과 황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수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본다.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는 외부 세계와 인간에게 말을 걸고 소통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도 자신의 본능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뒤렌마트는 이야기를 바꾸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우리와는 이질적인 존재라 여기며 거부하고, ‘짐승’이라고 규정하는 타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단편소설은 발표 당시보다 오늘날 더욱 어두운 현재성을 지닌다. 뇌샤텔에서는 〈미노타우로스의 발라드〉가 〈미노타우로스의 북〉이라는 제목으로, 뒤렌마트의 회화와 드로잉 작품들 사이에서 무용과 음악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넓지만 타원형인 공간 안에서 구현되어야 했다. 그곳은 애초에 무용 공연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한 이 공간은 노출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름 아닌 뒤렌마트의 시각예술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장소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 이 영묘와도 같은 공간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은 결코 미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미로 깊숙한 곳에 감춰진 어떤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뒤렌마트의 비전에 육체를 부여하고, 그의 미노타우로스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듯 그 비전이 세상과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춤이 CDN에 도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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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센터 건축 당시 모습 ©CDN |
문화의 만남
이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뇌샤텔 현대 안무 창작을 이끄는 기관 ADN(Association Danse Neuchâtel)을 이끌었던 필립 올자(Philippe Olza)의 것이다.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의 옛 무용수였던 올자는 뒤렌마트의 미노타우로스를 주제로 한 작업으로 이 프로젝트의 여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를 주제로 했고, 이어 스페인을 다뤘다. 그런데 올자는 한국문화의 열렬한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과의 연결이 만들어졌다. 특히 스위스 음악 앙상블 한울바람(Hanul Baram)을 초청하면서 그 연결은 더욱 분명해졌다. 한울바람은 스위스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사물놀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놀랍게도 구성원 가운데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반면 스페인 무용수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는 서울에 살면서 한국 전통무용을 익히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이선아는 파리에 살고 있다. 그리고 올자와 피에르-이브 디아콩은 이 프로젝트에 스위스의 색채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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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포스터 |
미노타우로스를 주제로 한 회화 작품들을 마주한 가운데, 이선아는 자신의 몸짓을 만드는 데 이 작품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 이야기의 요소들은 여전히 구체적이고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붉은 실, 괴물과 희생자 사이의 싸움, 그리고 뒤렌마트가 이야기에 새롭게 도입한 요소, 즉 거울이다. 거울로 어우러진 미궁 속에서, 조금은 순진한 인간-짐승은 자신에게 가능한 친구들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착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섬뜩한 이 춤은 마지막 사물놀이 의식에 이르기까지 한국 음악으로 감싸였다. 서로 다른 문화가 이토록 강하게 교차하고, 대륙을 넘어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이토록 강한 상황에서 과연 감동적인 예술적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뒤렌마트가 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의미 자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존재와의 교류와 만남, 그리고 관객과 기꺼이 만나는 과정 속에 그 의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로의 증식
다음 단계는 필연적이었다. 이제는 이야기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해진 서사 없이 에너지를 하나로 집중시키고 춤 자체가 공연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세 무용수의 만남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했다. 도시 춤(힙합)에서 출발한 스위스 무용수, 한국 무용계 안에서 활동하는 스페인 무용수,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춤으로 어떤 특정한 계보나 집단에도 속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무용수. 뒤렌마트의 글쓰기 역시 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대륙과 시간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작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원격으로 작업하고, 각자가 진행한 리서치와 의견 그리고 안무 영상 등을 온라인으로 주고받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미로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의 한 부분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춤뿐만 아니라 여러 만남, 대학과 문화기관에서 마련된 강연과 워크숍 등으로 계속 확장되었다. 여기에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에서 선보인 이선아의 솔로를 비롯한 프리뷰 공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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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 팀, 왼쪽부터) 조성주, Philippe Olza, Alessandro Navarro Barbeito, Pierre-Yves Diacon, Fritz Hauser, 김주홍, 이선아, Thomas Hahn ⓒCharles Ian Chun |
마침내 무용수들은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 모였고, 원격으로 작업해온 안무 재료를 하나로 조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품은 오랫동안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된 집단 작업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형태를 갖추었다. 세 명의 출연자는 2025년 뇌샤텔에서 만들어진 몇 가지 안무적·드라마투르기적 요소를 바탕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또한 안무가이자 작가인 조성주와 이 글의 저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외부의 관점도 작품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립 올자의 주도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한국과 스위스의 관계는 아리아드네의 실 역할을 한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2025년 작업이 진행 중이던 2025년 첫 쇼케이스를 열었고, 2026년 송은 아트 스페이스에서의 공연은 뒤렌마트의 단편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출판하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 역시 빠질 수 없다.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은 콘크리트와 원형의 형태를 중심으로 송은 아트 스페이스를 건축했다. 이는 마리오 보타가 뇌샤텔의 뒤렌마트 센터에 적용한 것과 같은 원칙에 응답하는 듯하다. 뇌샤텔에서는 공연이 상설 전시에 통합되었고, 서울에서는 〈송은×언박싱 프로젝트 : 생성적 형상들〉 전시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마사 그레이엄으로의 회귀
송은 아트 스페이스 홀에서 기획자 필립 올자가 몸짓을 사용해 관객을 안내하는 역할로 관객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피에르-이브 디아콩과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사람은 안쪽에, 다른 한 사람은 바깥쪽에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등을 맞대고, 손과 손을 맞대며 서로에게 응답한다. 그 둘 사이에는 거대한 유리벽이 마치 거울처럼 놓여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관객은 바닥에 놓인 작품들 사이를 걸어 다닌다. 각각의 작품은 1미터 × 1미터라는 규격화된 면적 위에 펼쳐져 있었다. 각각의 작품이 표준화된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어야 했고, 전시장에서는 그 상자를 풀어 작품을 설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전시의 제목이 〈Unboxing Project〉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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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Philippe Olza (송은 아트 스페이스 로비) ⓒCharles Ian Ch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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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Alessandro Navarro Barbeito, Pierre-Yves Diacon (송은 아트 스페이스 로비) ⓒCharles Ian Chun |
그러나 이 모든 작품 사이에서 관객은 인간적이고, 변화하며, 섬세하게 관절이 연결된 이상한 형태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각적인 존재감과 신성한 춤 사이에 있는 이선아의 형태였다. 시간을 늘이고 또 지워버리며, 로봇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지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을 그래픽적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위층에서는 프리츠 하우저(Fritz Hauser)가 자신의 북을 울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북으로 노래하기까지 한다. 시작한다. 그와 올자는 거의 마임을 하듯 관객과 무용수들을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한다. 관객과 무용수들은 지하로 내려가 〈Unboxing Project〉의 작품들 사이에 놓인 〈미노타우로스의 북〉을 관람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에서는 무용과 조형예술 전시가 유기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바닥에 펼쳐진 작품들은 관객에게 일종의 미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나 복잡하게 얽힌 길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영어로는 이것을 maze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단어가 1947년에 만들어진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의 작품 제목에도 정확히 등장한다. 건축가 다이달로스(Dédale)가 만든 미로 속의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다시 가져온 작품 〈Errand into the Maz〉다. 이 듀오에서 미노타우로스는 아리아드네와 싸운다. 미로는 바닥에 놓인 물결치는 밧줄로 표현된다(어쩌면 탯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성의 골반뼈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으로 표현된다. 마지막에 미노타우로스는 여신의 시종이 된다. 여기에는 더 이상 남성 영웅이 설 자리가 없다. 테세우스는 아웃이다. 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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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이선아 (송은 아트 스페이스 2층) ⓒThomas Hahn |
카를 구스타프 융과 미노타우로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역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는 원래 테세우스의 이야기다. 처음에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를 해방시키기 위해 죽여야 할 어두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등장은 이러한 관점을 바꾸었다. 오늘날 미노타우로스라는 혼종의 존재는 무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특히 카를 구스타프 융이 인간 정신의 ‘그림자’라고 정의한 개념과 연결된다. 융은 그림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림자는 열등하고, 원시적이며, 부적응적이고, 불행한 어떤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왜냐하면, “그림자 없는 빛은 없으며, 불완전함 없는 정신적 전체성도 없기 때문이다.”
마사 그레이엄에게서 인간의 몸을 가진 황소, 즉 미노타우로스는 아리아네의 그림자가 된다. 그리고 여신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상징적인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레이엄이 미국인이었다면, 그녀는 〈Errand into the Maze〉의 토대를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연구와 이론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오늘날 미노타우로스를 관심의 중심에 놓게 만든 이 혁명이 없었다면 뒤렌마트 역시 자신의 〈미노타우로스 발라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뒤렌마트는 미노타우로스에게 거울로 이루어진 시각적 미궁과 맞서게 된다. 마치 미노타우로스의 인간적인 부분에게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라는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송은 아트 센터에서 만들어진 세 사람의 안무 작품의 중심에 있다. 서로 맞서면서 동시에 융합하는 세 몸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미로는, 죽음을 향해 점점 고조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내면의 투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투쟁은 앎을 향한 길을 열어준다.
전시 속의 소용돌이
〈미노타우로스 – 미노타우로스의 북〉은 두 명의 마법사 같은 음악가의 영향을 받았다. 한 사람은 앙상블 노름마치(Noreum Machi)의 창립자인 한국의 거장 김주홍, 다른 한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소리의 세계에 신비로운 연극성을 더하는 스위스인 프리츠 하우저(Fritz Haus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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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김주홍, Fritz Hauser ⓒ이규열 |
춤의 측면에서 보면,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에게는 본능적인 동물성이, 대지적인 무게감을 지닌 피에르-이브 디아콩에게서는 거울의 힘이 부여되었다. 이선아의 경우에는 섬세하고 세밀하면서도 매우 생생한 춤으로, 정복하는 여성성의 기교적인 섬세함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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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이규열 |
그러나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가진 여러 면처럼, 세 사람은 동물성에 휩싸여 있는 동시에 인간적인 특성인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펼쳐 보인 운동감각적 지성은 관객과 격렬하면서도 친밀한 만남을 만들어냈다. 공연은 모든 관객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뒤렌마트를 중심으로 한 이 안무 프로젝트는 뇌샤텔의 CDN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무용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이 원형 공간을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으며, 정말로 이례적인 장소와 다른 예술 영역과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처럼 보인다. 이제 남는 것은 이러한 공연과 그 형식, 그리고 공연이 들어가 있는 전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 대화는 아마도 필립 올자와 송은 아트 스페이스의 디렉터 로렌시나 파란트(Laurencina Farrant)가 사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깊은 것일 것이다. 거의 180점에 이르는 작품들의 설치는 마사 그레이엄의 Maze가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의 복잡하게 얽힌 길로 만들어낸다. 뿐만아니라 이 풍경은 그만큼이나 많은, 자기 자신과 만나도록 초대하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그만큼이나 많은 거울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예술 작품은 그 안에 자신을 비추어 봄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미노타우로스 – 미노타우로스의 북〉의 춤이 불러일으키는 혼란과 동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짧지만 강력한 작품이다. 프로젝트 전체는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동일한 채광창 아래에서 두 개의 확장된 작품을 탄생시켰다. 하나는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의 솔로 〈A Flor de piel〉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유머와 연극적 놀이를 통해 자신의 스페인인과 한국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탐구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선아의 〈Souffle noir(검은 숨)〉이다. 자신의 손으로 쓴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안무가는 이 작품에서 글쓰기와 움직임을 같은 수준의 숙련도로 융합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하나의 독특한 사건, 즉 프리츠 하우저와 함께한 즉흥 듀오에서 자신의 모든 운동감각적 창작력을 폭발시켰다. 이 최초의 춤의 등장과 미노타우로스의 유령은 앞으로 오랫동안 송은 아트 스페이스의 무대들을 떠돌고, 관객들의 기억 속에도 머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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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아×Fritz Hauser의 즉흥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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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ffle Noir〉 이선아 ⓒ이규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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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ser Dürrenmatt
Par Thomas Hahn, Paris (critique de danse, regard extérieur pour The Minotaur’s Drum)
Au Songeun Art Space de Séoul, l’exposition Unboxing Project : Generative Forms réunit 179 anciens lauréats et finalistes du Songeun Art Award et un spectacle de danse : 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Cette création pour trois danseurs et deux musiciens n’est pas tombée par hasard dans l’exposition cette galerie qui fête le cinquième anniversaire de son ouverture. Alors, comment l’inscrire dans une exposition foisonnante qui se déploie sur trois niveaux d’un joyau de l’architecture contemporaine ? Comment créer un spectacle chorégraphique innervée d’une œuvre littéraire et d’un mythe fondateur, à partir de l’univers d’un peintre et dessinateur, d’architecture et de musique ? Le voyage jusqu’à la galerie de Cheongdam-dong fut long et complexe.
Il faut d’abord parler de 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 l’un des plus grands écrivains et dramaturges suisses de langue allemande au XXe siècle. Dans ses pièces de théâtre, ses romans et ses essais il posait un regard acerbe sur le manque de moralité dans les relations de pouvoir entre les citoyens des sociétés modernes. Mais il était aussi un peintre et dessinateur foisonnant au style satirique, grotesque et parfois explosif. Et ce au point que son œuvre visuel n’a été dévoilée qu’après sa mort. Il n’est même pas certains que ces tableaux et dessins n’aient jamais été exposés hors du Centre Dürrenmatt Neuchâtel (CDN), construit autour de la maison dans laquelle il concevait ses œuvres.
C’est ici qu’a eu lieu, en juin 2025, la création originale Le Tambour du Minotaure, spectacle de danse et de musique inspiré par Minotaurus : eine Ballade, œuvre tardive de l’écrivain. Cette création était portée par les compagnies Les Mondes Transversaux et SunadanSe et interprétée par leur chorégraphes respectifs Pierre-Yves Diacon et Sun-A Lee, ainsi que le danseur Alessandro Navarro Barbeito. C’est en 1985 que Dürrenmatt publia la courte nouvelle qui retourne le mythe antique du Minotaure comme un gant. Dans la version originale, Thésée réussit à tuer, au cœur du Labyrinthe et avec l’aide d’Ariane (lui fournissant le fameux fil rouge), la terrible bête qui ne cesse d’avaler de jeunes filles et garçons de l’île de Crète.
Un autre regard
La lecture de Dürrenmatt est toute autre : il voit dans le monstre au corps humain et à la tête de taureau une créature sensible. Emprisonnée, elle cherche à communiquer avec le monde extérieur et les humains. Mais le Minotaure n’est maître ni de son destin ni de ses instincts. Dürrenmatt ne change pas l’histoire, il met en question notre regard sur l’autre, celui que nous rejetons et désignons comme bête qui nous est prétendument étrangère. En ce sens, sa nouvelle est aujourd‘hui d’une actualité plus sombre encore qu’au moment de sa publication.
A Neuchâtel, cette Ballade du Minotaure fut créée en danse et en musique entre les tableaux et dessins de Dürrenmatt. Il fallait l’inscrire dans un espace étendu mais de forme ovale, nullement pensé pour accueillir un spectacle de danse. Cette salle aux murs de béton brut, conçue par l’architecte suisse Mario Botta, n’est autre que le lieu de l’exposition permanente de l’œuvre visuelle de Dürrenmatt. Et rien n’indique qu’elle soit jamais sortie de ce mausolée qui n’est en rien un labyrinthe mais reproduit néanmoins quelque chose du secret maintenu à l’intérieur d’un dédale. Il fallait que la danse arrive au CDN pour donner corps aux visions de Dürrenmatt et leur permettre d’entrer en relation avec le monde, comme son Minotaure le souhaite si ardemment.
Tissage transculturel
L’idée appartient à Philippe Olza qui dirigeait pendant longtemps l’ADN, l’institution qui chapote la création chorégraphique contemporaine à Neuchâtel. L’ancien interprète de Maurice Béjart a commencé son cycle par des pièces autour du Minotaure de Dürrenmatt orientées vers l’Afrique, puis vers l’Espagne. Mais Olza est un grand ami de la culture coréenne. Impossible de ne pas créer le lien, notamment en invitant l’ensemble musical suisse Hanul Baram, qui joue de la musique traditionnelle coréenne et pratique en Suisse le Samulnori sans qu’aucun de ses membres ne soit coréen ! Par contre, le danseur espagnol Alessandro Navarro Barbeito vit à Séoul et pratique la danse traditionnelle coréenne, alors que Sun-A Lee, seule Coréenne du projet, vit à Paris. Quant à Olza et Pierre-Yves Diacon, ils assurent l’authenticité helvétique.
Face aux œuvres picturales dédiées au Minotaure – Sun-A Lee s’en inspira profondément pour sa gestuelle – les éléments de l’histoire restaient concrètes et identifiables : le fil rouge, la lutte entre la bête et sa victime et cet élément que Dürrenmatt introduisit dans le récit, à savoir le miroir. C’est dans un dédale réfléchissant – qui fait figure de labyrinthe – que la bête humaine, un peu naïve, croit percevoir des amis possibles qui se révèlent être des illusions d’optique. Mais cette danse tantôt joyeuse tantôt macabre fut enveloppée de musique coréenne jusque dans une cérémonie finale de Samulnori. Une telle croisée des cultures chez les uns et les autres, une telle volonté de rencontre au-delà les continents, allait-elle donner un résultat artistique poignant? Absolument ! Le sens même de la vision du mythe par Dürrenmatt est bien là, dans ces échanges et cette rencontre avec l’altérité, qui se reflète dans la proximité avec le public.
La multiplication des labyrinthes
L’étape suivante s’imposait : il fallait passer d’une représentation encore relativement figurative de l’histoire à une concentration d’énergies sans fil narratif, où la danse elle-même devient le moteur du spectacle. Et il fallait continuer à creuser cette rencontre entre un Suisse issu des danses urbaines, un Espagnol intégré dans le tissu chorégraphique coréen et une Coréenne à la danse si personnalisée qu’elle ne semble appartenir à aucune famille, aucun cercle identifiable. Ce qui est vrai aussi pour l’écriture de Dürrenmatt, par ailleurs. Mais la diversité des lieux de vie, des continents et des fuseaux horaires imposa un travail à distance, des échanges en ligne, des envois de vidéos documentant les recherches chorégraphiques de chacun…
Le labyrinthe se déplaça dans l’espace virtuel du world wide web. Et la création du volet séoulite du projet devint lui-même tentaculaire entre la danse, les rencontres, les conférences et workshops organisés dans les institutions universitaires et culturelles, sans parler de spectacles donnés en preview, comme le solo de Sun-A Lee à Paris, au Musée du Quai Branly. A Séoul, en studio de répétitions, les danseurs étaient enfin réunis pour assembler le matériau chorégraphique élaboré en distanciel. Et la pièce prit forme, dans les conditions particulières d’un travail collectif longtemps mené en visioconférence. Les trois interprètes pouvaient cependant s’appuyer sur certains éléments chorégraphiques et dramaturgiques élaborés en 2025 à Neuchâtel et sur le regard extérieur de Seongjoo Joh, artiste chorégraphique et écrivaine, ainsi que de l’auteur de ces lignes.
Il n’empêche que cette étape du projet né sous l’impulsion de Philippe Olza est fortement marquée par les méandres des identités culturellement composites des participants. Dans ce lacis, la relation entre la Corée et la Suisse sert de fil d’Ariane. L’ambassade de Suisse à Séoul avait accueilli le premier showcase du travail en cours et le spectacle au Songeun Art Space a donné lieu à la traduction en coréen et l’édition de la nouvelle de Dürrenmatt. L’architecture n’est pas en reste. Les architectes suisses Herzog & de Meuron ont axé leur construction du Songeun Art Space autour du béton et d’une forme circulaire, comme pour répondre aux mêmes principes appliqués par Mario Botta au Centre Dürrenmatt de Neuchâtel où le spectacle s’intégra à l’exposition permanente, comme il fusionna à Séoul avec l’exposition The Unboxing Project.
Retour sur Martha Graham
Dès l’accueil du public par Philippe Olza en conférencier gestuel dans le hall du Songeun Art Space, Pierre-Yves Diacon et Alessandro Navarro Barbeito jouent de leurs présences. L’un à l’intérieur, l’autre à l’extérieur, ils se répondaient, face à face, dos à dos, main contre main. Entre les deux, l’immense paroi de verre, tel un miroir. A l’étage, le public se baladait entre les œuvres placées au sol, chacune se déployant sur une surface formatée d’un mètre sur un mètre. Il fallait que chaque pièce puisse rentrer dans une boîte standardisée pour être déballée et installée dans l’espace d’exposition. D’où le titre d’Unboxing Project. Mais entre toutes ces œuvres, on pouvait croiser une forme étrange, humaine, évolutive et finement articulée : celle de Sun-A Lee entre présence sculpturale et danse sacrée, étirant et annulant le temps. Non robotique mais en lien graphique entre le tellurique et le cosmique.
Puis, à l’étage supérieur, Fritz Hauser commence à faire sonner et même chanter son tambour. Lui et Olza, quasiment en mime, accompagnent le public (et les danseurs) vers l’ascenseur pour se rendre au sous-sol et assister à The Minotaur’s Drum, également placé entre les œuvres du Unboxing Project. Du début à la fin, danse et exposition d’art plastique tissèreent ici des liens organiques et intimes, et les œuvres déployées au sol formaient pour le public une sorte de labyrinthe ou, plus précisément, un parcours en forme de méandre ou de lacis, ce qui se dit en anglais : maze.
Et ce mot exactement apparait dans le titre de la pièce de Martha Graham (1894-1991) créée en 1947 qui reprend le mythe du Minotaure en son labyrinthe construit par l’architecte nommé Dédale : Errand into the Maze. Dans ce duo, le Minotaure lutte avec Ariane. Le Labyrinthe est représenté par une corde ondulée placée a sol (un cordon ombilical peut-être) et l’entrée en ce monde étrange est représentée par une sculpture inspirée des os pelviens du bassin féminin. A la fin, le Minotaure devient le servant de la déesse. Il n’y a là plus aucune place pour le héros masculin. Thésée est out, pas seulement en danse.
Carl Gustav Jung et le Minotaure
Friedrich Dürrenmatt ne déroge pas à ce principe. Pourtant, le mythe hellénique appartient, a priori, à Thésée. A l’origine, le Minotaure est juste une sombre créature à abattre pour libérer Crète. Mais l’avènement de la psychanalyse a changé le paradigme. La créature hybride du Minotaure est aujourd’hui reconnu comme une représentation de l’inconscient et correspond en particulier à l’images des « ombres » du psychisme humain qu’il définit comme suit : « L’ombre est quelque chose d’inférieur, de primitif, d’inadapté et de malencontreux, mais non d’absolument mauvais », car « il n’y a pas de lumière sans ombre et pas de totalité psychique sans imperfection. » Chez Martha Graham, le taureau humain devient l’ombre d’Ariane et la déesse doit s’en affranchir pour vaincre cette part symbolique de son inconscient.
Si Graham était Américaine, elle doit les bases d’Errand into the Maze aux recherches et théories de Carl Gustav Jung (1875-1961). Et Dürrenmatt n’aurait pas écrit sa Ballade sans cette révolution qui place aujourd’hui le Minotaure au centre de l’intérêt. Mieux, il lui fait affronter un dédale visuel fait de miroirs, comme pour lancer à la part humaine du Minotaure l’injonction à affronter ses propres ombres. Cette dualité est au cœur du trio chorégraphique créé au Songeun Arts Center. Le labyrinthe gestuel des trois corps qui s’affrontent et fusionnent en même temps, dans un tourbillon qui va crescendo jusqu’à la mort, met en jeu cette lutte intérieure qui libère le chemin vers la connaissance.
Un tourbillon dans l’exposition
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était placé sous l’influence de deux musiciens mages : le grand maître coréen Kim Joo-Hong, fondateur de l’ensemble Noreum Machi, et le Suisse Fritz Hauser qui ajoute à son imprévisible arsenal sonore une théâtralité toute en mystère. Côté danse, on peut attribuer à Alessandro Navarro Barbeito l’animalité instinctive et à la pesanteur tellurique de Pierre-Yves Diacon le pouvoir du miroir. Quant à Sun-A Lee, sa danse délicate, détaillée et pourtant si vivace incarna la finesse virtuose d’un féminin conquérant. Mais telles les facettes d’un même être, ils se montrèrent traversés par l’animalité autant que par ce trait humain qu’est la réflexion sur soi. L’ensemble de l’intelligence cinétique déployée créa une rencontre aussi mouvementée qu’intime avec le public, dans une grande proximité avec l’ensemble des spectateurs. Aussi ce projet chorégraphique autour de Dürrenmatt, spécialement conçu pour cet espace circulaire qui, comme le CDN de Neuchâtel, n’est aucunement pensé pour la danse, semble vraiment être fait pour les lieux atypiques et les échanges avec d’autres champs artistiques.
Reste à se poser la question du lien entre un tel spectacle, sa forme et l’exposition dans laquelle il s’inscrit. Ce dialogue est sans doute plus profond que Philippe Olza et Laurencina Farrant, la directrice du Songeun Art Space, n’ont pu l’imaginer en amont. Non seulement l’installation des presque 180 œuvres compose un lacis dans le sens du Maze de Martha Graham. Mais en plus, ce paysage se compose d’autant d’invitations à se rencontrer soi-même et donc d’autant de miroirs. Car chaque œuvre d’art permet de s’y refléter pour apprendre sur soi-même. Ce qui est vrai aussi pour le trouble occasionné par la danse de MINOTAURUS - (The Minotaur's Drum), pièce aussi brève que puissante.
Le projet dans son ensemble a donné naissance, sous le même puits de lumière conçu par Herzog & de Meuron, à deux extensions : le solo A Flor de piel d’ Alessandro Navarro Barbeito (qui explore avec humour et jeu théâtral sa double identité espagnole et coréenne) et Souffle noir de Sun-A Lee sur le poème éponyme de sa propre plume où la chorégraphe fusionne avec la même maîtrise écriture et mouvement. Et puis elle fit exploser toute son invention cinétique dans un événement unique, un duo improvisé avec Fritz Hauser. On peut supposer que cette première irruption de la danse et le fantôme du Minotaure hanteront pour longtemps les plateaux du Songeun Art Space et la mémoire des spectateurs.
토마스 한(Thomas Hahn)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와 파리에서 이탈리아어, 문학, 연극을 전공했다. 1990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20년 넘게 독일의 권위있는 월간 무용전문지 〈탄츠(Tanz)〉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월간 무용전문지 〈Danser〉의 후속 온라인 잡지인 〈Danser Canal Historique〉에서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파리시립극장(Théâtre de la Ville in Paris)과 같은 프랑스 극장의 무용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독일의 세노그라피 관련 잡지 기고, 무용 서적 집필, 무용 페스티벌의 작가·모더레이터·강사로 활동 중이며 파리 공연예술에 관한 프랑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