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제31회 계룡산 국제춤축제
춤과 사람을 잇고, 장면을 엮다
김혜라_춤비평가

단풍철이면 매년 찾는 축제가 있다. 계룡산 국제춤축제다(10.17~18, 계룡산 동학사 숲마당). 공주시에 위치한 동학사에서 가을 정취를 즐기고, 인위적인 색채를 앞세우기보다 자연과 사람, 몸짓으로 축제를 꾸려가는 현장을 만나는 일이 어느새 연중행사가 되었다. 부산의 바다를 배경으로 열리는 부산국제무용축제 역시 꾸준히 찾는 이유가 같다. 축제는 춤을 자연과 분리된 무대 위의 예술로 한정하지 않고, 지역의 고유한 풍경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놓는다. 춤과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축제의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이곳들을 계속 찾게 된다. 이 축제가 예술적으로 대단히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역의 자연과 장소성을 바탕으로 주민들과 소통하며 춤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묵묵하고 겸손하게 이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제31회 계룡산 국제춤축제 현장 ⓒ김혜라



올해 축제에는 아시아 전통에 기반한 무용가와 자연물을 활용한 즉흥, 시민참여를 시도하는 한국무용가들이 함께했다. 참여자는 여섯 팀으로 인도네시아 전통춤의 리안또 렝게르, 부토 일본 무용가 에미코 아가츠마, 한국춤의 민윤경, 복성수, 엄정자, 커뮤니티 댄스의 최보결이다. 매년 열리는 사진과 드로잉 전시도 이 축제의 특장점이다. 전년도 축제의 현장을 기록하며 지나간 순간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제가 쌓아온 시간을 가시화하며 과거의 장면을 현재로 불러온다. 기록과 전시는 다음 축제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이자 자산이 된다.

올해 가장 눈여겨볼 특징은 여섯 무용수의 개별 작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하되, 등퇴장 장면을 겹쳐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연출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조각공원에서 인도네시아 퍼포먼스가 마무리될 즈음 한국 무용수가 바통을 이어받듯 등장해 앞선 공연의 여운을 잇고 다음 장면을 열어간다. 작품 사이의 전환을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여 전체의 리듬과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춤이 교차하는 장면은 개별 작품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돌과 흙, 나무와 바람이 어우러진 자연 공간은 이러한 만남을 감싸 안아 매개한다. 개별 작품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응해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구성(연출 박일규)이다. 이는 탈춤의 각 마당이 독자적인 장면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 틀 안에서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민윤경의 오픈 세레모니 ⓒ정창영



오프닝을 연 민윤경은 붉은 천이 늘어뜨려진 일주문을 통과하며 축제의 문을 연다. 검은 의상과 대비되는 붉은색의 강렬함 속에서 온몸에 기를 모으고,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수렴하듯 단단한 춤을 춘다. 자연의 소리와 기운에 호응하는 몸짓은 하늘과 땅, 사람을 아우르려는 축제의 지향을 함축한다.



리안또 〈영혼의 여정〉 ⓒ정창영



조각공원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영혼의 여정〉이 뒤를 잇는다. 건장한 체구의 인도네시아 무용수 리안또가 쓴 마스크는 여성의 얼굴이다. 그는 손가락의 상징적 움직임에 집중하며 렝게르(Lengger) 전통의 몸짓을 펼쳐 보인다. 카와티의 라이브 보컬은 춤과 어우러져 또 다른 생동감을 더한다. 제례의 합장 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지나, 춤은 여성과 남성의 표상을 차례로 드러낸다. 여성성이 강조된 상체 중심의 움직임은 마스크와 의상을 바꿔 착용한 뒤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하체 중심의 춤으로 전환된다. 서로 다른 성별의 움직임과 표상이 한 몸 안에서 중첩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의상과 장신구를 벗고 머리를 풀며 춤을 마무리한다. 이는 사회와 전통이 부여한 신체의 표상과 역할을 통과해 자신 본연의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다가온다.



복성수 〈살풀이〉 ⓒ정창영



리안또가 퇴장하는 무대에 복성수가 등장하며 두 공연이 오버랩 된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춤과 사람이 교차하는 순간, 앞선 공연과 다르지만 묘한 연결감이 생겨난다. 복성수는 박금술류 맨손 살풀이에서 호흡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뒤, 소고의 경쾌하게 먹히는 소리를 울리며 흥겨운 소고춤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특히 공간을 회전하는 자반뒤집기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엄정자 〈순환Ⅱ〉 ⓒ김혜식



동학사 숲마당에서는 엄정자의 〈순환Ⅱ〉가 이어진다. 마종기의 시 「내가 시인이었을 때」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두텁게 입은 색색의 한복과 비스듬히 쓴 마스크, 이내 벗어놓은 저고리와 패치코트 치마는 몸을 떠난 껍데기처럼 남아 생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연상시킨다. 파가니니의 섬세한 현악기의 음색과 춤은 감정선을 맞추며 갈등과 고독, 고통이 뒤엉킨 삶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내 등을 돌려 두 팔을 벌린 채 걸어 나가는 모습은 지나온 삶의 경로를 포용하듯 다가온다. 생로병사를 겪어온 노년의 춤꾼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춤이다.



에미코 아가츠마의 부토 퍼포먼스 ⓒ정창영



최보결 〈다시 잇다, 거룩한 연결〉 ⓒ정창영



부토 무용가 에미코 아가츠마는 숲마당 한 켠의 돌탑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붉은 천이 매달린 흰 유니타이즈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돌무덤 위에서 평온함과 두려움, 긴장과 장난스러움이 뒤섞인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몸짓을 보인다. 이질적인 외모와 움직임은 인간과 신의 세계 중간즘에 놓인 존재를 연상시킨다. 에미코의 퍼포먼스를 마당 뒤에서 지켜보는 최보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 〈다시 잇다, 거룩한 연결〉로 이어간다.

울퉁불퉁한 나무에 기댄 최보결은 나무와 몸을 일체화 한다. 나무에 기대고 더듬고 안으며, 거꾸로 고꾸라지는 움직임으로 자연에 가까운 몸의 기운에 귀 기울인다. 그간 추구해 온 커뮤니티 댄스는 축제의 취지를 관객의 참여로 확장하는 마지막 퍼포먼스다. 관객들과 마당에 모여 대화와 움직임으로 관계를 만들고, 땅을 밟으며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펼친다. 서로 손잡고 만지며 일렬로 일주문을 통과하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몸과 몸이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체험하게 한다. 관객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연대감이 형성된다.

31년을 이어온 축제는 춤추는 몸과 자연, 그리고 삶 너머의 영역을 함께 사유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역의 젊은 춤꾼들이 축제에 함께하면 좋겠다. 장년층 무용수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춤의 경험과 다음 세대의 몸짓이 더한다면 축제의 폭이 넓어지며 의미도 깊어지지 않을까. AI시대에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잇는 몸의 감각과 관계의 가치를 발견하는 축제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장.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6. 11.
사진제공_김혜라, 정창영, 김혜식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6.85'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