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웹진〉은 다액의 공공지원금으로 열리는 주요 춤제전 행사에 대해 일반 관객의 객관적이며 다양한 시선과 의견을 수렴하여 여론화함으로써 춤제전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공공지원금이 효율성을 진작하도록 자극을 가하는 취지로 관객평가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평가단 공모 공고를 시작하여 4월 평가단 선정 작업을 거쳐 구성된 2022 관객평가단은 올해 연말까지 운영된다. 〈춤웹진〉은 해당 행사에 관한 관객평가단의 소견을 원고로 모아 원고 작성인의 개별 이름은 밝히지 않으며 해당 행사 평가단의 공동 작성 명의로 게재 공개한다. 춤제전들의 진지한 기획과 춤창작자들의 열성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소견 I
6/26(일)
예술의 전당 소공연장 로비에서부터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하루에 두 단체씩 묶어서 공연을 진행하였는데 이렇게 그룹을 지은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한 작품이 끝나고 무대 연출을 위한 짧은 인터미션이 있어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관람객들의 관람 매너가 거슬리는 점 없이 무난하였다. 클라우드 나인의 〈마블링〉 발레 또는 무용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레 축제라는 이름에서 클래식 발레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의 경우 생각하던 발레 이미지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석에서 상여를 들고 무대로 나오는 무용수들이 오늘 공연 첫 작품, 프로젝트클라우드나인 〈마블링〉의 시작을 알렸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더욱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장의 높이가 상하로 길어서 이를 잘 활용하여 무대를 구성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상은 굉장히 단순한 형태였으며 빛을 반사하지 않는 흰색이었다. 작품 중간에 의상을 캔버스처럼 배경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매우 좋았다. 또한 춤이 주가 되는 작품이어서 좋았다. 속된 말로 조명발이 아닌 춤의 구성 자체가 내실이 있었고, 이에 조명이 더해져 멋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발레와는 다른 호흡과 동작을 가지고 있는 한국무용을 발레와 접목시켜 새로운 발레 움직임을 개발하여, 한국적인 음악과 함께 다이나믹한 움직임과 짜임새 있는 군무, 그리고 한국적 정서를 반영시켜 작품을 그려나갔다는 안무자의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움직임을 개발하기 위해 고심한 안무자의 노력이 느껴졌다. 삶에 대해 그렸다고 하는데 처음 시작에 상여가 등장하여 죽음을 상징하고 마지막에 어린아이가 등장하여 새로운 탄생을 의도한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너무 직접적이고 흔한 연출 말고, '안무자가 조금 더 새롭게 창의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음악의 리듬감과 다양한 대형 변화와 다채로운 구성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으며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는 소품 활용도 한국적이었고 작품과 잘 어울렸다.
이어서 공연된 이루다블랙토 〈W〉는 공연 전 유료로 판매하는 프로그램 북 외에 따로 작품 소개를 위한 인쇄물을 무료로 비치하여서 관람객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작품 중간에 남자무용수와 여자 무용수의 2인무는 좋았으나 그 외의 것들은 잘 와닿거나 공감이 되지 않았다. 조명 활용이 매우 다양하고 조명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나 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는 ‘봄의 제전’ 음악을 사용하여 니진스키가 발표한 동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공연을 보면서 작품 전체적으로 은유라기보다는 직유에 가깝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고, 전형적이고 원형적인 상징에 의존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장면들의 나열에 머무르는 듯하여 '그래서 결국 무엇을 말하고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소견 II
1. 6/16(목)
이날 공연을 보고 내가 가지고 있던 발레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뀔 정도로 감동을 다양한 방면에서 많이 받았다. 일반적으로 발레에 대한 생각은 고전적이고 고고하고 콧대 높을 것 같은 인상이 강했다. 또 주제는 주로 동화나 아름다운 것들 남녀의 흔한 사랑 이야기 등을 다루는 전통 발레의 모습을 생각했으나 미디어 북을 보고 당연히 아름다운 동화의 내용 이외에도 사회 문제와 우리나라의 역사 문제를 다룬 작품도 있는 것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서양의 것이라 우리나라 것은 다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의 크나큰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평을 보니 이를 훌륭하게 다루었다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창작 발레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레를 생각하면 보통 발레리나들이 신는 토슈즈가 많이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들에는 토슈즈를 신지 않은 작품들이어서 발레의 큰 규칙에서 벗어나 얽매이지 않은 움직임들을 보게 돼서 창작 발레의 매력에 크게 매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창작 발레에 관심을 갖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디어 북의 경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꼭 필요한 정보만을 담고 있어 부피도 얇고 가격도 저렴하여 다른 축제에 비해서 편한 마음으로 미디어 북을 구매 할 수 있었다. 또 예술의 전당에서도 안내를 친절하게 발권에서 부터 좌석 안내까지 해주셔서 편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김용걸댄스시어터 〈Lawrence〉
이 작품을 보고 안무가님의 아이디어를 극찬 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신부 로렌스의 시점에서 풀어간 것이다. 보통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사랑하고 다른 인물에 대한 사랑은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줄리엣에게 잠이 드는 약을 주는 신부 로렌스는 어떠한 마음으로 주었는지,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안무가의 발상은 정말 독특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출연진의 움직임도 정말 멋있었다. 안무가가 고심해 만든 것이 크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표정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다. 이들의 표정 연기가 더욱 관객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들이 가슴 아파 할 때는 보는 사람도 같이 가슴이 아려오는 느낌이었을 정도로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또 신부 역할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 설정을 해서 섬세하고 다정하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막는 느낌이었다. 과연 남자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안무가가 일부러 꼬아서 남자가 아닌 여자로 설정해서 다른 느낌을 냈다고 하는 비하인드가 있었다.
조명을 매우 효율적으로 잘 이용한 것 같다. 십자가를 조형물이 아닌 조명을 이용해서 표현 하여 불필요한 암전 없이 사건의 장소가 변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상수 하수의 출입로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무대 뒤 중앙의 출입로만을 이용해서 무대가 아닌 가정집이나 성당에 출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익숙한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창작 발레를 처음 보는 입장에서 전통 발레의 감성도 담고 있지만, 창작 발레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자유로운 주제를 다뤄 누구든 부담 없이 발레에 입문할 때 보기에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감동이 보통의 수준은 아니었다. 안무가의 발상과 배우들의 연기력과 기술력은 높은 수준이라 생각되었다.
유장일발레단 〈이해할 수 없는 폭력 #1〉
단번에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 이유에는 1시간 분량의 작품을 30분으로 축약한 이유도 있겠으나 ‘이미지 발레’라는 어려운 장르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이미지 발레라는 것을 인터넷에 쳐봤을 때 이를 설명하는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매우 낯선 방법으로 안무가께서 주제 전달을 하려는 것이구나 싶었다. 스스로 이미지 발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을 때 주제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그 단어들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우 어둡고 깊은 작품이었다.
인터미션 때 무대 위에는 사람의 무서운 모양을 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이를 통해서 작품이 무겁고 무서운 느낌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감이 확 느껴졌다. 그리고 시작부터 배우들의 연기력과 기술이 엄청났다. 노래도 웅장하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남녀가 이별을 한 후 허전함을 느끼는 장면인데 다른 장면에 비해서 이 장면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눈에 잘 띄기도 했고, 또 남녀 배우들이 화려한 기술로 합을 맞추는 것도 매우 멋있었다. 그다음에는 작품에서 제일 어둡고 공포심을 조성하는 장면이었다. 남자 배우가 무대 뒤편에서 붉은 조명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영화 〈데스노트〉의 ‘류크’가 등장한 느낌이었다. 발레로 이렇게 어두운 느낌도 낼 수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었다.
매우 낯선 주제를 선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제목부터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고, 이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관객들은 새로운 관점을 보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 일부인데 그 역할을 크게 한 것 같다.
관객과의 대화
이날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안무가들과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과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를 알 수 있었던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비록 공연이 끝난 후에 많은 분들이 귀가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두 작품의 안무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공통됐다. 너무나도 개인적으로 이기적으로 차갑게 변해버린 현대 사회에 인류애가 크게 상실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왜 이 두 작품이 같은 날로 묶였는지 알 것 같다.
두 안무가 중에서 김용걸 안무가와의 인터뷰가 유난히도 기억이 남는다. 김용걸 안무가는 로미오와 신부 두 역할을 다 맡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로렌스의 발상은 오직 김용걸 안무가님께서만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또 이 작품을 구상하고 머리에서 구상한 대로 그대로 실현했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는 많은 것을 구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용걸 안무가님께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루셨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2. 6/26(일)
지난 16일에 봤던 작품들도 매우 좋은 작품이기에 과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날도 역시나 매우 엄청난 공연들을 보고 기분 좋게 나아왔다. 화려한 기술과 조명과 미디어 그리고 음악까지 모든 박자가 맞아 탄성이 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클라우드나인 〈마블링〉
이번 축제 기간 동안 본 작품 중에 나에게는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발레라고 하는 가장 서구적인 무용이 국악에 맞춰서 춤을 춘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고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고나서는 정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 움직임도 전형적인 발레의 움직임이 아닌 한국 무용의 느낌도 있어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다.
움직임에서 재미있는 것은 무작위인 것 같지만 이것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큰 쾌감이 있었다. 배우분들의 기술은 말할 것도 없다. 대단했다. 특히 화려한 리프트가 엄청나게 보는 재미를 만들었다. 많은 인원들이 군무를 맞추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들이 시너지를 나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들은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출연자들의 의상이 흰색인 것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미디어를 바닥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의상이 흰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보이다 보니 다양한 느낌과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정말 공간의 활용과 움직임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활용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또 미디어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조명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효과는 더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이 공연 팀은 엄청난 박수 세례와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과분하다고 느끼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을 것 같다. 배우들의 노력과 또 안무가의 엄청난 연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기에 그 어떠한 환호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루다블랙토 〈W〉
댄싱 나인 등을 통해서 이루다 안무가님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았었다. 매스컴 속에서 봤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확실히 진중했고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미디어북에 적힌 설명을 보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단번에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다.
치마를 주요 오브제로 사용하여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 신선했다. 치마를 한껏 치켜 올려 상체를 가리기도 하고 흔들었다. 오브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움직임을 만든 것이 느껴졌다. 또 바스락거리는 치마 소리도 매우 좋게 들려졌다. 확실히 극의 흐름을 책임지는 오브제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도 미디어를 사용했다. 무대의 조형물과 같은 느낌을 냈다. 조명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서 전반적으로 무대가 어둡게 느껴지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노래도 분위기도 어두운 데 무대까지 어둡게 느껴지니 졸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야기되었다. 무대가 밝아야 관객들의 집중도가 커지는 느낌은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웠다.
중간 중간 납득이 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샹송이 나오며 무대 2층에서 바람풍선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바람풍선 옷이 등장하고 알 수 없는 춤을 추는 것인지 부가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 움직임이 오브제를 이용해서 이 부분은 좋았으나 동작이 매우 반복이 되고 리듬도 반복이 되어 지루한 감은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배가 불러있는 여자는 임신부를 뜻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모습이 기괴해서 거부감을 일으키기 매우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아쉬운 느낌은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배우들을 일일이 소개를 할 때 미디어를 이용해서 배우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나올 수 있게 한 것은 매우 재치가 있게 미디어를 활용 한 것 같다. 관객들 모두 이 부분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 것 같다.
소견 III
1. 6월 17일
김용걸댄스시어터 〈Lawrence〉
“명확하고 정직한 플롯 안에서 행해지는 움직임 시퀀스”
작품을 감상할 때 안무가가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무용수들이 보이는 작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역할의 결합이 얼마나 조화로운가가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본 작품을 감상만 하는 입장에서 감히 이 작업의 진행을 추측한다면, 안무가를 믿고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조화가 빛나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해당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기승전결 흐름으로 무대에 풀어나간다. 일반적인 서사를 풀어내는 것은 내용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작품 또한 관객에게 재해석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 흐름을 밀도 높은 무용수들의 듀엣, 트리오, 콰르텟 구성으로 모든 우려를 씻어낸다. 과감한 테크닉과 연기력, 그리고 알찬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움직임으로 받을 수 있는 에너지와 감동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실험적이거나 과거의 작품들을 현시점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활발한 현 무용계의 기조에 본 작품은 정공법으로 맞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확실하게 움직임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작품은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해석에 대한 피곤함을 덜어내 주었다. 동시에 움직임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고자 하는 무용수들의 노력은 작품에서 빛을 발했다.
움직임을 제외한 음악, 의상, 무대 소품 또한 다양하고 화려한 연출보다 한 대의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진 연주, 역할을 소개하는 직접적인 단일 의상, 하나의 무대 소품 등 갖가지 구성요소를 드러내고 단출하고 명확하게 필요한 역할만을 하는 연출로써 무대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연출 방법 또한 움직임만을 집중하고자 하는 안무가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었다.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들었던 한 가지 의문점은 작품의 중점이 되는 시각이 ‘로렌스’인가이다. 물론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의문이 감상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나 제일 처음 십자가 조명 아래 걸어 나오는 모습, 제일 마지막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뒤로 처연하게, 마치 성스러운 예수의 형상을 취하는 모습 말고는 ‘로렌스’가 중점이 되는 진행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작품의 전반적인 부분을 철저히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무용수 전체, 또는 줄리엣의 감정과 서사에 몰입하게 하지 로렌스의 입장은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혹 줄리엣의 감정과 서사를 바라보는 로렌스가 관객이 된다는 의도였다면 납득할 수 있는 구성이라 생각된다.
유장일발레단 〈이해할 수 없는 폭력 #1〉
“거대한 메트로놈이 움직이는”
꽤 정교한 주름을 표현하고 있는 커다란 얼굴의 무대 소품은 무대의 상단에 설치되어 아우라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바닥에 비춰진 눈 형태의 조명과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강렬한 음악은 소극장 박스무대를 장악하고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연출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평이하게 유지되는 흐름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시작의 기대를 한 본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안무가의 의도일까,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다소 강한 제목과 ‘폭력’이라는 단어와 주제에 비해 연신 아름답게만 보이는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에 대한 부조화 또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시도토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 관점을 명확하게 못 찾은 본인의 잘못이었나, 그저 바라보고 느껴야 하는 안무가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일까, 여러 아쉬움으로 공연장을 나오게 되었다.
연신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과 연출, 테크닉으로 무장한 무용수들의 움직임, 그리고 다양한 동작의 변주들은 순간순간 시선을 가져가게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였고 본인은 거대한 메트로놈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감정으로 작품을 보았다.
2. 6월 22일
박기현발레단 〈어둠으로부터: 아르케〉
“다채로운 장면의 소화”
작품 시작은 한 명의 남성 무용수가 조명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흰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의 선명한 갈비뼈와 두 팔을 뻗어 걸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신성한 고대 조각상을 보는 듯하다. 무대의 조명이 밝아지고 무용수는 본래의 고정적인 움직임을 벗고 화려한 동작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데 본인은 이러한 작품 진행이 몰입을 다소 깨뜨렸다. 마치 무용 콩쿨을 보는 듯한 솔로의 진행은 맨 처음 신성한 모습의 캐릭터가 지워지고 발레리노의 모습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진행되는 여자 무용수들의 군무는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한 등장에 깨진 몰입을 다시금 작품에 빠져들도록 하였다. 이어진 듀엣과 단체 군무에서 볼 수 있었던 무용수들은 마치 양분 가득한 짙은 흙을 누군가 조심스럽게 휘저을 때처럼 곱게 그리고 섬세하게 움직임의 질감을 맞추었다. 조명과 의상 그리고 움직임 질감 삼박자가 명확하게 맞아 들어가 진행된 씬은 좀 더 보고 싶다는 갈증을 남기고 넘어가게 되었다.
작품의 진행 중간중간 반복적으로 나오는 남녀 듀엣 장면은 갑자기 전개된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처음부터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었다면 두 움직임과 표정 속에 관객도 동화될 수 있었겠지만, 갑자기 두 인물의 관계를 풀어내는 듯한 드라마적 연출, 심지어 그 드라마가 살짝은 슬픈 결말로 이어가는 듯한 무용수들의 표정과 움직임은 본인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무용수의 합과 신체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흥미로움 자체를 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하였다.
이후 다시 진행되는 단체 군무에서는 무용 작품의 클리셰적인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연출되어 아쉬웠다. 무대의 뒤편에 일자로 서서 앞으로 나와 한 명씩 기량을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 이제는 무용 작품 진행 과정 속 이맘때쯤 등장해주는 하나의 공통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조명연출과 무용수들의 신체, 테크닉, 그리고 통일된 질감은 작품에 빠져들어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음악과 작품의 장면들이 다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장면을 다 소화하기 전에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좀 더 충분히 이 장면을 바라보고 싶었던 본인의 마음에 아쉬움을 남겼다. 넓은 식탁에 다채롭게 차려진 음식들을 음미하지 못하고 치워진다 느꼈다. 30분의 다소 짧은 시간이 아닌 좀 더 긴 전막 공연의 작품은 어떠할지 궁금증을 만들었다.
아함아트프로젝트 〈Nothing〉
“나는 이 디스토피아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응원합니다”
아함아트프로젝트의 작품 〈Noting〉은 움직임 위에 연극적 기법을 활용하여 실제 대사 말소리, 효과음, 라이브 연주를 진행하며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대사의 활용은 직접적인 상황 전달 및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추상적 표현이 많은 무용 장르에서 상황 전달에 용이하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반대로 움직임의 필요성을 배제해 작품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본인은 대사의 말소리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을 극대화하여 활용한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의 작품들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완전히 비교하지 않고 보는 것은 힘들었다. 본 작품에서도 대사의 말 소리를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표현하였지만 옴직임과 대사가 일치되지 못한 부분들이 다소 아쉬웠다. 음악뿐 아니라 말소리에도 리듬과 강약, 감정 그리고 말소리를 내는 사람의 호흡과 습관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움직임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 대사의 표면적인 부분만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본 작품이 오로지 대사를 몸으로 풀어내는 것에만 집중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하면서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자유소극장 무대 2층에 위치한 기타리스트들은 작품의 진행에 맞추어 라이브로 연주했다. 라이브 연주에서 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특히나 인상 깊었다. 작품 속의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 않고 작품의 인물을 생존자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상반되는 시원시원한 라이브 연주는 영화 〈매드맥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으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단순히 고통받는 게 아니라 역동적으로 헤쳐나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후자의 인상을 받은 본인은 작품 속의 생존자 그룹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응원하게 되었다.
해당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에 배경이 되는 ‘재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단순히 ‘생존자’를 모으고 이들이 ‘안전지대’로 모이자 일어나는 해프닝과 오해들을 풀어내었다. 안전지대까지 재앙의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작품에서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대해 질문해볼 수 있는 상황들이 여럿 펼쳐지고 관객을 상상 속에 머무르게 하는 요소들도 등장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배경설정이 너무나 두루뭉술하게 설정되어 있어 탄탄한 구성이 보인다거나 관객으로써 깊은 몰입에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이는 관객들이 작품을 다소 멀리서 바라보게 하려는 혹은 상황보다는 단순히 인간의 심리만을 바라보게 하려는 안무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설정은 작품의 디스토피아에 공감하지 못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구체적이지 않은 ‘어떤 재앙’은 배우들의 균열과 선택의 기로에 있었을 때, 관객으로서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하거나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입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 한 작품을 감상할 때 인물과 본인을 동일시해보는 것은 ‘스토리’가 명확하게 들어가 있는 작품의 성격상 관객이 가지는 일반적인 몰입 구조라 생각한다. 단순히 보이는 작품의 표면적 스토리 이전에 이 스토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합당한 배경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이 단단하고 높은 몰입도를 만들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용 작품이 대체로 무겁고 관객이 몰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흔히 말하는 ‘팝콘 무비’의 성격을 띠는 작품은 무용 작품에서 보기가 힘들다. 아함아트프로젝트의 〈Nothung〉은 이러한 관점에서 무용계에 자주 진행되었으면 하는 무용 작품이라 생각한다. 안무가의 연기적 기법이 녹아난 작품의 특성은 팜플렛에 나오는 안무가의 뮤지컬 이력을 보면서 더 이해되었다. 작품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작품의 캐릭터들과 안무가를 응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