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간, 인간에게 공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예술에서 공간이란 무엇인가?
일과를 마치고 바삐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러시아워 때마다 마주하는 귀소본능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의 긴 행렬. 문명이 쌓아 올린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자신의 몸을 누이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콘크리트가 대다수 사람들의 집이다. 한국의 집값은 악명이 높다. 자고 일어나면 억, 억 널뛰기하는 집값에 ‘언젠가 내 집을 가질 꿈은 정말 헛되구나’ 깨달을 것이다. 필자와 같은 현실도피자가 아닌 이상, 그래도 대부분 사람은 이 불안한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 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래서 택한 건 ‘영끌, 빚투족’ ‘막차’이다. 점차 자신만의 안정된 생활공간조차 확보하기도 힘들어지는 요즘, 예술가의 작업공간의 필요성을 거론하기가 시의적절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설득력도 없을 수도 있겠다.
매스컴에 비친 예술가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채광 좋은 넓은 작업실의 화가들, 자신의 거실 한편에 놓인 그랜드피아노를 언제든지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가들, 극단의 홀에서 스태프와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과 총출동하여 호흡을 맞추는 연극인들. 무용가는 어떤가. 착상이 떠오르면 불이 꺼진 연습실에 찾아가 자신만의 멋진 독무를 추거나, 몇십 명의 무용수들이 동시에 공간을 가로지르며 점프해도 끄떡없는 규모의 무용실에서 군무를 펼친다. 필자 또한 그런 이미지들을 보며 컸고, 무릇 예술가들이라면 저 정도는 당연히 갖추어야지 싶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지금의 형편으로 봐선 저 환상 속의 예술가들조차도 점점 자신의 창작공간을 시장에 내주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지인 중 오랫동안 유지했던 작업실을 최근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팔고난 후 많이 안타까워 한다. 그나마 그분은 대한민국 예술가 중 안정된 사회적 기반을 갖춘 분인데도 그런 실정이었다. 그 외 수많은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가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배달이나 물류센터 등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와 예술을 겨우 부여잡고 있는 예술가들이다보니…) 예술가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
어릴 적 처음 접한 학원의 무용실은 생각보다 초라했고 비좁았고 낡아 보이기까지 했다. 수강생들의 수에 비해 좁은 홀과 송진이 엉겨 붙은, 스크래치 가득한 마룻바닥이 어린 필자를 반겼다. 천정이 높고 창이 너른 홀보다는 지하실의 습기 가득한 시멘트 바닥에서 메뚜기처럼 이 홀 저 홀을 빌려 연습하기도 부지기수였다. 발레 강습실에서부터 무용단의 연습실마저도 움직임을 자유롭게 펼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들이었다. 서로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변을 살펴야 했고, 열을 맞춰 가까스로 동작을 수행했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까지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작은 홀에서 탄생한 움츠러든 움직임과 동선은 공연이 임박한 극장 리허설 시간이 돼서야 마침내 큰 극장 규모에 맞도록 수정되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도 나는 연습공간에 대해 불만도 아쉬움도 별로 없었다. 무용학원이든 무용단이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 즉 춤이라는 흐름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것에 그저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 후 학교 강사로 취직하고부터는, 방과 후에 학교 무용실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불안감은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학교를 떠난다면 나의 춤 작업은 유지될 수 있겠냐는 근거 있는 불안감이었다.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지금 춤에 접근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바로 연습공간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
문래동 철공소 건물 연습실에서 〈기괴한도시〉 연습 중(2014) ©김현진 |
단 10분 혹은 단 하루의 공연을 위해서, 춤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 단계를 여기서 더 거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춤은 구성 단계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쳐야 하는데 그 작업은 머릿속 구상으로 방구석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움직이고 부딪쳐보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이 발견되고 더해지기에 다양한 움직임을 실험할 적절한 공간이 무엇보다 춤에서는 필요하다. 인간은 지각하는 존재라고 메를로퐁티는 말했다. 지각하며 살아가고 지각하며 생각하고 지각하며 상상한다. 특정 지각은 특정 지각에 어울리는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고, 공간이 지각을 부르며 공간이 상상력을 기른다! 누군가는 그것이 집에서 가능하지 않냐고 묻는다. 홀에서 가능했던 동작이 거실의 물건을 다 치워도 불가능한 현실이다. 특정 지각은 특정 지각에 어울리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공간은 힘이고 공간은 생존이다. 그러기에 공간을 활용한 사업도 늘고 있다. 그 파생 경제 활동으로 연습공간을 대여해주는 사업자와 이용자 간을 연결해주는 플랫폼도 생겼다. 그 덕에 여러 공연예술가가 숨통을 트고 있지만, 사실은 연습공간이나 창작공간으로 삼기에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원하는 시간대와 충분한 연습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장시간 이루어지는 공연 연습의 특성상 그에 따른 대여비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단기간의 개인 연습이라면, 공간 대여 플랫폼은 얼마든지 개인이 원하는 시간과 공간을 택해 짬짬이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머리카락 가득한 습한 지하 연습실일지라도, 여러 대의 CCTV가 사용자를 감시하는 공간일지라도, 개인 창작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커피값을 아껴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춤 연습과 춤 창작작업은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고정된 시간대에 충분한 연습시간(2~5시간 이상)과 작업의 규모에 맞는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홀을 기적처럼 구하게 된다면, 그다음은 공간 사용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서울의 홀 대여료의 평균 시세는 시간당 최저 1만 원에서 최대 3만 원 사이로 책정되어 있다. 어떤 경우는 홀의 평수에 따라 사용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어, 사용자 수가 늘어날 경우 그에 따른 추가 비용도 발생한다. 이래저래 따지면, 연습실 사용 비용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어떤 안무가가 다섯 달 앞둔 시점에서 창작에 돌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주 4회 하루 5시간씩 시간당 2만 원으로 책정된 연습실을 한 달간 대여한다면, 공간 사용료로만 월 160만 원이 지출되는 셈이다. 이렇게 공연날짜까지 너댓 달을 보내게 된다면, 680~800만 원가량 비용 출혈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통 1000만 원 ~ 2000만 원 사이의 공연창작비를 고려한다면 공간 사용료의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큰 셈이다. 춤 창작에서 필수조건인 공간 사용에 이렇듯 큰 비용이 발생한다면, 다른 중요한 곳에도 필요한 비용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예산이 금세 바닥날지도 모를 노릇이다.
〈몸의기록, 몸의소리〉 개인연습 중(2016) ©김현진 |
필자는, 올 3월 개인 공연에 앞서 대부분 무용가가 겪듯이, 연습공간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대관하는 무용 연습실은 1개로 창작자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서울무용센터의 무용실은 매달 사전 심사를 거친 정기대관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기에 필요한 시점에 접근할 수 없었다. 두 곳 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곳이다. 그러던 차에,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작업으로 인연을 맺었던 한 기관에서 지역의 예술가를 지원하는 취지에서 필자에게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해주었다. 기관과 예술가 간 계약을 맺어 공연 전까지 기관의 스캐줄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홀을 마음껏 사용토록 배려해준 것이다. 주말 동안 문을 닫는 기관의 무용실은 주말 개인 독지가의 배려로 그의 개인 연습실을 무상으로 빌려 공연 연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단 한 달간이라도 다른 제약 없이, 충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는 것이 예술가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예술가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 그 덕에 적은 예산에 짧은 준비 기간이었음에도 효과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곳곳에서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개조해서 작업공간이 아쉬운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제공한다든지, 이미 존재하지만 활용도가 떨어지는 각 공공기관의 공연 연습실을 프리랜서 공연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혹은 무상으로 대여를 해준다든지 등등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밖에 학교와 교회 그리고 지하철 역사 등등의 공간들도 지역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예술가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꿈꿔본다. 덧붙여, 연습 홀을 가진 민간 혹은 개인들이 주변의 예술인에게 공간을 후원하는 예도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공공기관 후원 연습실에서 〈나의 이야기〉 연습 중(2022) ©김현진 |
1960년대 미국 뉴욕에서 포스트모던댄스의 탄생지였던 저드슨 댄스 씨어터는 극장이 아니라 애초에 저드슨메모리얼교회에서 예배당을 젊은 예술인들이 마음껏 활용하도록 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는 아직 너무 경직되어 있고, 내 것 그리고 나의 영토에 집착한다. 아직 발굴되지 않는 보석 같은 예술 인재들이 곳곳에 있음에도 그들을 발견할 노력은 물론 심지어 활용하지도 못하는 듯하다. 예술인들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공감하지 못하면서 K-culture에 흥분하고 쉽게 편승하려 하지 않는가. K팝의 힘을 실감하는 요즘, 유난히 개인의 저력이 뛰어난 한국, 그 속에서 탄생한 한국의 무용가들을 믿고 그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자. 그러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지 않은가. ‘영혼, 빚투, 막차’ 대신 있는 자본을 활용하여 ‘쉽게, 빚내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제대로 K-댄스 아티스트에게도 투자를~!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김현진
'김현진의 춤공방' 대표. 예고와 학부 그리고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무용문화와 실기과정' 석사를 마쳤다. 컨템퍼러리무용단 ‘탐’에서의 무용수 활동 이후, 독립 안무가로 지내며 〈나의 이야기〉(2022), 〈몸으로 자연으로〉(2016), 〈몸의 부호들〉(2015), 〈기괴한 도시〉(2014), 〈Nothing There〉(2004), 〈Discothéque〉(2003), 〈벗겨진...〉(2001) 등을 발표했다. 월간 「춤」, 「댄스포럼」에 춤기행문과 춤에세이를 연재기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