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왓와이아트 & 재독 무용가 황환희 협업 공연 〈영원한 순간〉
퍼포먼스 콘서트, 익숙함 속에 숨겨진 낯선 감각
장광열_춤비평가

잘 준비된, 뛰어난 아티스트들의 생생한 live 공연을 만나는 즐거움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직업상 자주 공연장을 찾는 평자들의 입장에서는, 여기에 더해 무대 위에 올려 진 작품이 기존의 스타일과 다를 경우 그 기쁨은 배가된다.
 왓와이아트(WHATWHY ART)가 마련한 〈ETERNAL MOMENTS 영원한 순간〉(2월 5-6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평자 5일 관람)에서 음악과 무용의 새로운 협업이 주는 감흥은, 확실히 남달랐다.
 백색의 플로어가 깔려 있고 약간 경사진 객석에서 내려다보는 무대는 블랙 & 화이트의 대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댄서들로 보여 지는 퍼포머들이 악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이나 여덟 명의 출연자들이 무대 앞쪽에 서더니 박수를 치는 것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프로그램은 세 명 작곡가의 작품과 사이사이 즉흥적인 움직임이 함께 편성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왓와이아트 & 황환희 〈영원한 순간〉 ⓒ나승열




 가야금 해금 대금 장구 사이로, 2미터 남짓은 되어 보이는 막대기로 머리를 장식한 가녀린 체구를 가진 댄서(황환희)의 등장 역시 파격적이다. 긴 스틱이 마치 비녀처럼 사용된 것이나 양 손에 든 4개의 막대기가 기묘한 형상으로 다채롭게 변형되면서 관객들의 시선은 어느 새 댄서에 고정된다. 움직임에 따라 스틱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가 되고 여기에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지는 비주얼이 너무 강렬해 음악은 들리지 않고 춤만 보인다.
 머리카락을 고정시킨 스틱을 빼자 댄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동체가 된다. 두 팔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두 다리는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굴신에도 속도가 붙고 몸의 회전도 더욱 커진다.
 스틱은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X ㅗ ㅜ = 八 등 마치 문자 부호처럼 변화한다. 두 손에 든 스틱이 평행해지면 몸은 오선지가 되고, 무릎이 바닥을 터치하고 굴신을 시작하면 댄서의 즉흥적 움직임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가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몸이 천장을 향해 누울 때, 고개를 쳐들 때, 스페이스도 따라 춤추고 어느 사이에 소리가 그의 춤을 파고든다. 움직임에 꽂혀있던 관객들에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오선지 위 악보는 몸과 악기가 함께 부유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퍼포머들의 교감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 된다. 해금 연주자가 댄서가 들었던 스틱을 전해 받고 댄서는 자신의 몸을 연주자의 다리에 의탁하기도 한다.
 첫 작품 〈heven(your dreams of)(작곡 세바스티안 클라렌)은 대금, 해금, 가야금, 장구를 위한 곡으로 모두 7개의 악장 중 1악장부터 5악장까지 연주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창작 주체자의 무의식으로부터 끌어낸 황환희의 즉흥 춤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했다. 그의 움직임은 느린 장단에서 더욱 그 질감이 빛났다.
 가야금(이화영) 해금(강지은) 대금(유홍) 장구(김웅식)가 만들어내는 앙상블과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특히 해금과 장구와의 조합에서는 흐르는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편안했다.








 

왓와이아트 & 황환희 〈영원한 순간〉 ⓒ나승열




 두 번째 작품 〈출입〉(장동인 작곡)은 붉은색 주전자에 든 물을 투명한 용기에 부으면서 시작되었다. 여러 종류의 타악기가 세팅되고 대금 연주자와 가야금 연주자는 선 채로 연주했다. 이 작품은 이전 작품에 비해 현대적인 색채가 물씬 풍겼다. 연주가 끝나고 전환 타임에 한글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여 진 단어와 사진 등이 인쇄된 백색 종이가 세 명의 퍼포머에 의해 관객들에게 노출된다. 한글로 표기된 종이위에는 창공, 약속, 아담과 이브 등의 단어가 보여 졌다.
 세 번째 작품은 첫 작품인 〈heven(your dreams of)〉 중 6, 7악장이 사용되었다. 첫 작품과 달리 이번에는 왼쪽에 가야금과 대금, 오른편에 해금과 장구가 위치한다. 보면대 위에 ‘Ma Vie’ ‘인류의 꿈’ ‘Romance’ 라고 쓰인 종이가 펼쳐지기도 한다. 연주 도중에 등장한 황환희의 즉흥적 움직임은 이전 작품과는 달리 매우 도발적이다.
 4개 악기의 합주 속에서 그는 흰색 페이퍼를 흔들어 소리를 내고, 찢으면서 소리를 내고,
 찢어진 종이를 입으로 물기도 한다. 악기를 활용한 장면에서는 악기 자체가 오브제가 되어 그녀의 춤과 조우한다. 훈을 머리에 올리고, 북을 굴리고, 양손으로 타격하기도 한다. 세팅된 악기 사이사이로 이동하면서 그 악기를 이용한 움직임 구성 등이 다채롭게 시도된다. 황환희가 입에 문종이는 전통적인 싯낌 의식과 연계되면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를 관통한다.
 네 번째 곡 〈무장단〉(정일련 작곡)에는 다른 두 명의 댄서(김도현, 강수민)도 가세한다. 한 명의 무용수가 등장 좌우로 천천히 몸을 흔들고, 세 명의 댄서가 심벌즈를 들고 춤추고, 그 사이를 해금 가락이 파고든다. 남녀 댄서는 두 팔을 몸에 밀착한 채 좌우로, 위 아래로 움직이자 연주자들의 화이트, 댄서들의 블랙 의상의 대비가 더욱 선명해진다. 남녀 무용수가 공간의 앞뒤로 무대 점유를 확장하면서, 보이는 춤과 들리는 음악, 들리는 춤과 보이는 음악과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댄서들은 각 연주곡의 작품 사이사이에 즉흥적인 움직임과 행위를 통해 브릿지 역할을 했다. 규격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공연, 음악과 춤의 넘나듦은 충분히 즐길 만 했다.






왓와이아트 & 황환희 〈영원한 순간〉 ⓒ나승열




 왓와이아트는 전통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며 실험적 융복합 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솔로이스츠 앙상블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은 왓와이아트의 〈INside/BEyond〉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공연의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는 한국적 아름다움. 이를 위해 각 아티스트의 주관적 세계 강화를 위한 방편으로 ‘퍼포먼스 콘서트’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택했다.
 왓와이아트는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한국음악 예술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단체가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이러한 시도를 위해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 중인 안무가 황환희가 힘을 보탰다. 황환희는 2020년부터 왓와이아트와 함께 실험적, 융복합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번에 안무와 무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예술감독으로 공연의 컨셉트 설정과 구성을 맡은 강지은은 “소리가 음악이 되는 순간, 움직임이 무용이 되는 순간,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익숙함 속에 숨겨진 낯선 감각, 혹은 낯선 익숙함을 만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환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LDP무용단에서 활동하다 2009년부터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무용가이다. 2012년부터 독일 현대무용단 Sasha Waltz & Guests의 픽스 멤버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공연과 안무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서울시극단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울산시립예술단 연극뮤지컬 〈태화강 이야기〉를 안무했고, 독일 체류 중 안무한 작품에는 〈Sehnsucht〉〈Still Life〉〈How I Felt〉〈Listen To Me, Please〉 등이 있다. 현재 그는 이탈리아 안무가 Veronica Riz가 이끄는 프로덕션의 아티스틱 어시스던트 및 리허설 디렉터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평자는 황환희가 소속한 독일 샤샤 발츠 무용단이 아비뇽 페스티벌과 독일탄츠플랫폼에서 선보였던 60분이 넘는 즉흥 공연을 보았었다. 이번 공연에서 평자에게 황환희의 즉흥을 이용한 움직임 확장은 컴퍼니에서의 이런 공연 작업과 연계해 보게 만든다. 당시 감상한 컴퍼니 무용수들의 장편 즉흥 공연은 몇몇 장면에서는 아주 빼어난 이미지와 양질의 움직임을 시종 보여준 반면에, 다른 한편의 공연에서는 컨택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이, 이미 익숙하고 유사한 동작으로만 이어져 실망스럽기도 했었다.
 즉흥이 공연으로, 한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시작 전 구성한 컨셉트가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승패가 갈린다. 퍼포머의 당일 컨디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즉흥적인 감각의 살아있음이 중요하다. 특히 라이브 연주일 경우 감각과 호흡, 에너지의 흐름은 더 없이 중요하다.
 황환희의 즉흥 감각은 몸에 체화된 순발력 있는 몸짓만으로도 주목할 만했다. 이번 공연에서 즉흥 작업은 ‘과거와 현재, 소리와 소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 순간의 발현‘을 추구하고 있다. 황환희는 여기에 더해 즉흥을 오브제를 이용한 몸의 확장, 제의적인 의식, 동서양 문화, 그리고 음악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연결시키는 창의력을 보여주었다.
 연주자들의 작업 역시 같은 악기 편성 임에도 작곡가에 따라 차별화 되어 만들어진 원곡을 전통가곡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표현(heaven your dream of), 한국 악기의 소리 여정 탐구(出入), 산조의 음과 장단이 가진 운동성의 극대화(무장단)란 분명한 컨셉트 설정을 통해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번 〈영원한 순간〉 프로젝트는 2019년 베를린에서 가진 왓와이아트와 황환희의 기획 미팅 이후로 쇼케이스, 움직임과 작곡가 워크숍, 작곡가 미팅, 1차와 2차에 걸친 작곡 작업, 음악과 무용의 리허설 과정 등 3년에 걸쳐 준비과정이 탄탄하게 이어졌고 이를 통해 ‘퍼포먼스 콘서트’가 지향했던 과거와 현재, 소리와 소리,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장르 간 공연예술 협업 작업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공공 예술지원제도를 통한 장기 지원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컸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가.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 추진을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 ​​​​
2022. 3.
사진제공_나승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