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춤의 몸을 구성하는 주체를 향한 신선한 도발
김명현_춤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인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열전 2021! 막이 올랐다. 올해 차세대열전에 선정된 무용분야 신진 안무가는 김소월, 김환희, 유지영, 임정하를 포함하는 총 4명이다. 모두 3~4편의 안무 작업을 선보인 경험이 있는 안무가들이지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변화나 발전이 있었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늘 설렘을 안겨준다.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열릴 차세대열전 2021! 공연예술분야의 첫 발표작은 댑댄스 컴퍼니의 멤버로 활동하며 독특한 발상과 상상력을 보여 왔던 임정하의 〈뉴-에튜〉(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11월 16~17일)였다.

춤이 하나의 산물이 아닌 몸체라고 할 때 그것은 어떻게 구성될까? 먼저 춤을 구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움직임을 수행하는 주체는 반드시 인간의 신체여야만 하는가? 기계의 신체나, 빛의 신체나, 소리의 신체가 우리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여 춤을 구성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는가? 만약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들 신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임정하의 〈뉴-에튜〉는 빛과 소리와 기계도 춤의 신체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은 태도를 통해 보여질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LIMVERT




춤을 위한 새로운 태도(New Attitude)를 찾아가는 〈뉴-에튜〉는 먼저 춤을 구성하는 원형적 움직임으로 상승과 하강, 그리고 회전을 찾아낸다. 임정하, 이영례, 허준환 3인의 몸에 새겨진 개인의 춤의 역사를 찾아내어 그것을 분해하고, 해석하고 다시 작업 방식을 처음부터 돌려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찾아낸 결과다. 그런데 움직임의 원형이 있다고 해서 춤이 되지는 않는다. 안무가 임정하는 원형의 움직임을 수행하는 주체로 사람, 기계, 테태(테크닉, 테크놀로지, 태도)를 대입하여 각각의 관계에서 움직임이 여전히 춤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런데 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몸과 움직임의 발생 앞에 있는 움직임을 수행하는 순간의 마음의 상태와, 몸의 상태이다. 움직임은 단순한 신체적 기능이 아니라 정서와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움직임이 발생하는 그 순간의 마음의 상태와 몸의 상태는 움직임의 성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움직임은 마음과 몸의 상태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찾아진다. 이렇게 움직임 이전에 있는 기분과 상태를 찾아내는 것을 임정하는 ‘태도의 수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태도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자세? 조심스러움? 진지함? 실험 속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그들은 원형의 움직임을 수행하는 각각의 주체를 통한 실험에서 찾는다.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LIMVERT




원형의 움직임을 사람에 대입한 원형-사람의 장에서 상승과 하강, 회전의 움직임은 회전, 반복, 리듬, 바운스, 직선, 곡선, 트위스트, 속도, 털기 등의 방식을 통해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태도는 없었다. 사람-신체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로 움직이며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은 내려오고, 회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체 내에서 축이 되는 부분을 만들어 작용과 반작용, 균형과 불균형의 상보관계 속에서 기능적으로 움직임을 발생시킬 뿐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정확하게 상승과 하강, 회전의 움직임을 독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계보다 못한 움직임 주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움직임은 분산된 점과 가느다란 선의 고정된 형태로 스크린에 보여질 수 있는 춤의 정서와 의미의 두께를 갖지 못하는 움직임이다.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LIMVERT




원형-기계의 장에선 풍력발전기를 닮은 철제사물이 상승과 하강, 그리고 회전의 움직임을 발생시킨다. 하나의 움직임만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기계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상승과 하강, 회전의 움직임을 만든다. 그리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작은 로봇들은 공간을 상승과 하강과 회전의 움직임 속에 있게 한다. 기계에 속하는 빛-신체들이 등장하여 기계들 사이에 선을 그리고 공간을 연결하여 움직임에 역동을 더한다. 쿵짝쿵짝 하는 2비트의 리듬만 단순하게 반복하던 소리-신체는 사운드의 레이어를 더하고 박자를 변주해가며 자신의 움직임을 드러낸다(음악: 타무라 료). 스크린에서는 일련의 선들이 수직과 수평(상승과 하강과 회전의 평면적 움직임)으로 교차하며 움직임을 더한다. 그러나 태도를 입지 못한 사람-신체와 마찬가지로 기능적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LIMVERT




원형-테태의 장에서 원형의 움직임에 테크닉, 테크놀로지, 태도가 더해진다. 임정하, 이영례, 허준환의 세 사람-신체가 등장하여 태도를 입음으로써 정서와 질감이 풍성해진 춤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것은 특히 이영례의 몸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 장에서 그녀의 춤은 작품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했다. 사람-신체는 다시 빨강, 노랑, 파랑의 색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하여 색과 면과 두께가 충만한 춤을 춘다. 빛-신체는 극장 공간을 원형 기둥이 내리는 신전으로 만든다. 소리-신체는 다양한 리듬과 다양한 사운드로 흥과 재미를 더한다. 스크린의 선들은 두께를 입고 부피를 입어 깊이와 공간을 가지는 입체가 되었다. 태도를 입은 사람-신체, 빛-신체, 소리-신체, 그리고 다채로운 색-신체가 만들어내는 충만한 움직임들이 극장 공간을 춤으로 가득 메웠다. 사람-신체가 사라진 뒤에도 빛과 소리와 색은 춤추는 몸 그 자체가 되어 한동안 춤의 향연을 피워냈다.




임정하 〈뉴-에튜 New Atude〉 ⓒLIMVERT




춤을 향한 태도가 춤을 만들어낸다는 임정하의 문제제기는 단순한 설정과 접근방법으로 춤의 언어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냈다. 짧지 않은 40분의 공연시간은 설명적이지도 악다구니를 쓰지도 않았다. 관객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태도로 실험의 장을 만들어 같은 퍼포먼스를 반복했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많은 작품들이 잃어버리는 공연예술, 무대예술로서의 쾌를 유지하면서도 꽤 설득적이었다. 그리고 춤의 주체는 사람의 신체만이 아님을, 빛과 사운드와 색도 춤의 주체가 되어 춤추는 몸을 구성할 수 있다는 확장된 사고를 보여주었고, 빛과 사운드와 색이 단순히 공연예술에 동반되는 효과가 아님을, 그들에게도 몸이 있으며 움직임으로 보여질 수 있음을 제시한 참신한 발상의 작업이었다. 이후에 펼쳐질 김소월, 김환희, 유지영 3명 안무가의 작업도 그들이 이미 꽤 괜찮은 작업들을 선보여 온 만큼 기대를 갖도록 하는 산뜻한 스타트다.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1. 12.
사진제공_임정하, LIMVER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