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천안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용철)의 정기공연 〈음무동락音舞同樂〉(천안시청봉서홀, 11월25~26일). 예술감독 김용철이 천안시립무용단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뒤 첫 공연 무대였다.
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조태민 |
‘흥타령’을 주조로 원(願)타령, 흥(馫)타령, 굿(㖌)타령, 그리고 커튼콜 형식의 ‘그리고 타령’까지 총 4장으로 구성한 작품이었다. ‘두드림과 열림,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과 간절함이 교차되는 곳’으로 천안의 문화를 상정, 전통과 대중음악이 교차하면서, 예술감독의 재치와 해학어린 춤 배치에 근대의 정서까지 얹은 무대는 연신 흥으로 넘실거렸다.
천안과 ‘흥타령’이라. 아마도 김용철이 단체(지역)의 예술감독으로 옮겨 앉을 때 개인이 아니라 공공성을 띠는 삶으로, 일회성이 아니라 지역과의 만남으로, 거기에는 지역역사의 불가결성, 즉 지역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려 한, 예술감독이 온 마음을 다해 건네는 인사일 것이라 짐작된다.
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조태민 |
‘천안삼거리~능수야, 버들아~’, 자연스레 민요가사가 소환되는 ‘흥타령’ 가락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춤 유희의 발산이 뛰어난 남자 듀오들 대 여섯 팀의 군무로 갓, 부채, 족두리, 색동 한삼과 주머니 등 오브제의 활용과 살짝 비튼 무채색의 전통의상의 해석에서 예술감독 특유의 재치와 감각이 돋보였다.
이어 흰색 원피스에 갓을 쓰고, 저고리 동정을 보라색 띠로 길게 뺀 의상에 굿 음악의 사설에 춤을 얹은 군무는 장단과 박자를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교태, 한국 춤의 한계를 훌쩍 벗어난 춤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화하는 중이었다. ‘삼재’ 가 들고나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펼쳐 든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귀신을 희롱하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흥청 낭창, ‘영정거리’ 사설을 춤으로 능청스럽게 녹여내며 흥으로 치닫는다. 암전, 다시 조명이 들어오자 서로 등을 대고 무용수가 벗어 든 갓을 노려보는 춤, 무용수들이 일제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꼼짝 않는, 발칙한 자세와 고개와 함께 뒤로 젖혀진 둥근 갓, 후면에서 비추는 조명을 받은 갓 선이 뿜어내는 미감이 상당했다. 춤은 감독이 원했을 잘 훈련된 춤의 얼굴과 춤추는 삶의 자연스런 얼굴의 일치에 도달해 있는 듯 했다. 마치 그 삶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여기서 춤을 추고 있다고 말하는. 미학적 성취 속에 현실의 악조건을 흔적으로 남겨두는 춤은 드물다. 좋은 장이었다.
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조태민 |
앞 장의 세련된 미감에 비해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 뽑아 낸 정서(레트로)를 전면에 배치한 2장. 〈엄마야누나야〉 음악에 얹은 빨강색과 카키색 목도리에 통치마와 바지를 입은 듀오. 음악과 춤의 과도한 정서로 자칫 신파로 흐를 뻔했으나 하수 후면에 배치한 검정색 우산을 든 남자와 엉덩이 쪽이 부푼, 흰색의상을 입은 세 명이 제자리에서 서성이는 듯한, 이질적인 요소의 춤과 정서로 모순을 상호 화해시키며 간신히 구제된다.
징에 꽹과리 소리가 붙으면서 흔들, 휘적 힘을 빼고 추던 춤이 어느 순간 빠르게 솟아오르면서 굿타령(3장)으로 넘어간다. 전통음악과 합창 오케스트라연주가 교차되며 높은 음역으로 내달리는 음악이 지나치게 비장하고 무겁다. 전자음에 겹쳐지는 ‘닐리리야’ ‘아! 어쩌란 말인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등의 굿타령의 사설과 어긋나는 진지하기만 한 춤, 춤으로의 몰입을 방해한다. 〈부모은중경〉(소리, 김영임)에 남자가 여자를 업고, 붉은 색 긴 막대기를 머리에 얹는다.
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세계무용축제 옥상훈 |
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조태민 |
예술감독 김용철의 춤을 이해하는 데 간간이 방해가 되는 것이 이 쉬운 대중성의 음악이라 하겠다. 춤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예술적이건 대중적이건 일관된 틀 안에서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긴다는 것인데, 일상성(대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그의 음악선택이 습관의 틀에서 읽힌다는 것. (그의) 춤은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이 음악보다 늘 한 걸음을 앞서가고 있는데.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커튼콜 형식의 4장, ‘그리고 타령’은 분석하고 설명하기보다 마음 놓고 보고 즐기면 되는 춤이었다.
천안시립무용단의 〈음무동락音舞同樂〉, ‘삶의 양가성(兩價性)’까지 담아내고자 한 작품은 흑백의, 법식에 없고 인연도 없는 옷으로 갈아입은 전통의상에서 감독의 재치와 세련된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는가 하면, 어디서 저런 색을 가지고 왔을까 싶은 4장(커튼콜)의 오만가지 색은 얼마나 또 강렬하고 파괴적인지. 이 충격적인 색의 대비와 김용철 감독의 남다른 춤 정서와 미감 그의 춤삶의 맥락, 그 진정한 능동성의 춤역사는 노마디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떠돌며(전세계를) 성장한 것이다. 성장했다는 것은 세계를 떠도는 그 기간 내내 노력 또한 그렇게 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춤삶은 언제까지나 그렇게만 영위되는 것이 아니다. 춤창작의 자연스런 발산과 의지는 예술감독이라는 자리의 보장과 공공의 유용성에 대한 요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억압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불구하고 예술감독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는 춤삶의 실제 속에서 포기할 수 없는 춤창작의 발산을 조직해내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끝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실질과 자유의지를 예술작품으로 통합하려는 인위적 조직행위 말이다. 여기에 주지주의적 모더니즘이 더해진다면 작품에 아득한 높이가 생겨날 것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