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추모_ 무용가 안나 핼프린(1)
헤맨 끝에 만난 춤의 스승, 춤의 집
조희경_순환창작소 대표

미국 무용가 안나 핼프린(1920~2021)이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서거하였다. 핼프린은 안무가이자 포스트모던댄스 개척자였으며 춤치유와 커뮤니티댄스 분야의 현장에서도 혁신적인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조희경님의 글을 2번에 나누어 싣는다. ― 편집자 주 

나는 안나가 이 글의 제목을 ‘안나 핼프린과 나’가 아니라 ‘나와 안나 핼프린’으로 정한 것에 기뻐하실 모습이 상상된다.

안나 핼프린은 우리 무용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춤치료상담계 쪽에서 안나 핼프린을 동작치료자의 거장으로 더 많이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무용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무용가란 것, 그리고 그 업적이 무용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들을 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건축 분야에서 오히려 안나 핼프린을 언급하는 경우가 무용계보다 조금 더 많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무용계에 잘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쉬운 면이지만, 이는 오히려 안나 핼프린이 평생에 걸쳐 춤을 다룬 범위가 매우 광범위했음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

안나 핼프린이 다룬 춤의 정의나 범위, 그 실천이 광범위하고 깊었던 만큼, 그녀가 다루었던 모든 춤에 대한 질문들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무용가들이 가슴속에 가진 질문들과도 상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나가 춤에 대해 스스로의 해결책을 찾고 삶과 춤 안에서 치열하고 진실되게 이를 실천해 온 내용들은 지금의 무용가들에게 매우 큰 정보와 영감,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안나 핼프린의 서거를 맞아 〈춤웹진〉이 특별 섹션을 위한 글을 의뢰 받았을 때, 지금 춤에 대해 절실한 질문으로 무언갈 찾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만난 안나 핼프린과 가진 개인적 경험들을 위주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안나 핼프린(Anna Halprin) ⓒ위키피디아




미국의 무용가인 안나 핼프린(Anna Halprin)은 올해 2021년 5월 말 10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아마 안나 핼프린이 생소한 분들이 더 많을 것이므로, 먼저 아주 간단하게 누구인지 소개를 드리고 나의 개인적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안나 핼프린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던댄스의 선구자, 혁신 무용가, 무용교육가, 움직임 중심 표현예술 개척자 등.
무용가들에게 가장 쉽게 안나를 이해시키려면, 포스트모던댄스 저드슨 처치의 댄서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안나에게 배웠다고 하면 가장 쉬운 이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본 레이너, 시몬 포르티, 메레디스 몽크, 그리고 그 외 많은 당시의 예술가들이 안나의 워크숍에서 공부했다.
또한, 즉흥탐구를 도입한 선구자이며, 그에 더 나아가 즉흥을 스코어링으로 발전시킨 선구자이고, 리츄얼(ritual) 기능을 서양 현대춤에 다시 살린 삶과 예술을 연결시킨 선구적 무용가이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는 안나의 작업에 대한 매우 부분적이고 간단한 소개이다.
이렇게 간략하게 써서는 설명이 부족한 깊은 춤 내용적인 부분들이 안나의 작업에는 많았다.
학술적 차원에서 깊게 다루는 글이 아니라서 여기서 그 내용을 길게 다루기보다 우선 간단히 언급해본다.
사람들은 포스트모던댄스의 선구자라고 이름지어 부르지만, 안나의 작업은 지금 남아 있는 스타일화된 포스트모던댄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또한, 즉흥이나 리츄얼 춤의 선구자로 명명하지만, 안나는 리츄얼로서의 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고대의 춤 역사에 있어서 늘 있어 왔고, 근대에 없어진 것을 현대에 다시 되살린 것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신 점 등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anna in humour




안나는 나의 춤 스승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고, 모든 분들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을 거쳐, 안나 핼프린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내가 안나를 만난 것은 인생의 어마어마한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믿는다.

나는 안나 핼프린을 2008년부터 2015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그리고 간헐적으로 만나, 미국 북캘리포니아 마린카운티와 베이에어리어 지역에서 공부하고 공연작업을 했다.

내가 안나 핼프린을 처음 만난 건 2008년이었고 당시 안나는 87세였다.
87세의 안나는 30대 초반의 나보다도 훨씬 더 열정적이게 보였고, 여전히 엄청나게 왕성하게 춤추고, 안무하고, 교육하고, 세상에 춤을 퍼뜨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안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두 눈으로 본 나는, 무용가가 90세에도 춤을 추고 엄청난 규모의 작품을 연출하고 사람들과 끝없는 사랑과 호기심으로 교류하고 가정을 돌볼 수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안나를 만나게 된 여정은 이러하다.
내가 안나를 만나게 된 여정의 이야기 안에 안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면이 있기에,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20대 중반, 무용 대학원을 다니던 나는 춤 창작과정과 결과물 사이의 간극에 대한 여러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혼자 여러 시도를 해보다가, 포스트모던댄스 무용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직접 만나서 내 눈으로 그들이 이런 질문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러 떠났다.

스코트랜드 프로젝트에서 데보라 헤이를 만나고, 영국 런던에서, 시몬 포르티와 스티브 팩스톤을 만나고, 뉴욕에서 트리샤 브라운을 만나고, 접촉즉흥춤 초기 핵심 맴버중 하나인 다니엘 렙코프를 만나고, 엘라인 서머를 만나고.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유럽과 미국의 현재의 무용가들의 작업을 만나러 다녔다. 그들은 모두 다 서양 무용사 책에 이름이 쓰여질 만큼 실제로 대단하고 사람들이었지만, 무언가 조금씩 내가 찾는 나의 답에는 부족함을 느꼈다.

이런 여러 워크숍들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았다.
그 중 시몬 포르티의 워크숍에서, 그녀가 자기가 쓴 책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책의 한 챕터에 ‘안나 핼프린이 나의 선생님이다’라고 쓰인 부분이 있었다. 당시 시몬 포르티는 70세에 가까운 나이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사람이었고 내가 그녀 춤을 보았을 때 차원이 다르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므로, 나는 시몬 포르티를 높이 평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책에 자신의 스승은 안나 핼프린이다라고 써 놓은 부분이 매우 인상깊게 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많은 현대 예술가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깨부수고 거부하며 자신이 기존 것과 다른 자기 것을 세웠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 비해, 시몬포르티는 매우 현대적인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이 배운 사람에 대해 드러내어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해 보였다.
시몬 포르티 같은 사람이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안나 핼프린’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이때 나는 안나 핼프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리곤, 이 일을 잊어버렸다.




Spirit of Place performance. Stern Grove, 2009. 5. ⓒJohn kokoshuka




그러다 2년 뒤쯤 안나 핼프린 이름을 듣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나는 프랑스에서 마크 톰킨스라는 무용가가 진행하는 자연 즉흥을 듣고 있었다. 이 워크숍은 1주일~10일 정도 자연 안에서 먹고 자며 온종일 진행하는 워크숍이었고, 톰킨스 외에도 다른 게스트 무용가 강사들이 함께 진행했다. 그 게스트 강사 중 알랭 뷔파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방금 한국에서 날아온 이방인이라 낯선 데다, 자연 워크숍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야생적으로 이루어지고, 공동생활을 하며 24시간을 함께 10일을 보내는 것 등의 여러 가지로 인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워크숍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워크숍 내내, 나 하나 돌보기에 급급하여 게스트 강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10일을 거의 다 보내고 있을 무렵, 마지막 날에야 워크숍 초반부터 거실에 참가자들을 위해 놓여 있던 강사진들의 여러 작품 자료들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당시 나는 돈과 시간을 들여서 왔는데 끝나는 날이 다 되니, 뭐라도 더 많이 얻어가야 해 하는 심정으로 그 자료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마치 숙제하듯, 게스트 강사 알랭 뷔파의 작품 영상을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어서 보는데, 그 작품의 깊이와 무게, 파워에 깜짝 놀랐다.
비디오 안의 알랭 뷔파는 에이즈 약통을 굽으로 만든 하이힐 위에 올라가 솔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춤은 매우 진실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알랭 뷔파는 수년 전 에이즈에 걸려 여러 면에서 삶이 피폐해져서 활동하던 무용을 모두 접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안나 핼프린을 만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안나 핼프린의 워크숍을 들으러 갔다 한다. 그리고 안나를 만나고 그는 다시 생을 살기로 하고 이후 엄청나게 왕성하게 무용가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과 직업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스토리를 듣고 나는 2년 전 시몬 포르티의 수업에서 들었던 이름인 안나 핼프린이라는 이름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더 궁금해졌다.
무용가가 사람을 살렸다고? 이 안나 핼프린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야?
사람을 살리는 무용가?

이후, 알랭 뷔파가 만든 〈안나와의 점심식사〉라는 영상무용에서 안나 핼프린이 식탁에 서서 짧은 즉흥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춤은 이제껏 내가 봐 오던 춤과 다른 면들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통합된 춤이었다. 감정과 인간의 모습이 녹아든...
그 즉흥 움직임에서 나는 즉시 알아챘다.
이 사람은 내가 지금 고민하는 춤에 대한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
안나 핼프린, 이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겠다!

조희경
순환창작소 대표. 무용가, 무용교육자로 미술과 춤을 전공하고 2006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에서의 그룹 작품 안무작 <용해되는 물고기> 데뷔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무대춤뿐 아니라 야외춤, 댄스 필름, 퍼포먼스, 커뮤니티댄스 등 다양한 매체, 장소, 사람들과 춤을 작업해오고 있다. 2014년 순환창작소를 세워 모든 이를 위한 춤교육과 창작을 해오고 있으며, 확장된 차원의 춤 및 삶과 연결된 예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2021. 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