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어려운 한 해였다.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춤 무대다. 춤 무대가 없으면 춤이 일어날 바닥도 없고, 춤을 요구하는 자리도 없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고, 빈 것을 차오르게 하는 춤 무대는, 춤에 내재하는 날카로운 춤의 힘을 믿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열린 ‘세계안무축제’(예술감독 박현옥)도 예외 없이 세 차례나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주최 측에서 일찍 해외 팀 초청을 취소하고, 지역의 안무가와 무용수들을 지원하는 무대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의미 있는 축제가 되었다. 사흘 동안(11월 25일~27일) 젊은 무용가들의 오프닝 무대, 〈청년열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시작으로, 전국공모를 통해 선정된 ‘한국작가전’다섯 작품과 ‘청년작가전’ 여섯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첫날, 26명의 무용수들의 〈청년열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퍼팩토리 소극장) 무대는 청춘들의 여러 삶을 관통하는, 춤을 향한 일관되고 집요한 열정으로 일궈진 다양하고 복합적인 표현들로 절절하였다. 통일된 춤의 정신을 연결고리로 한 즉흥 춤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소통하고, 접촉하였다.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젊은 청춘들이지만 무작정 닫아 걸거나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서툴게, 간혹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도 하는, 가벼운 떨림을 애써 유지하는 춤이었다. 어두운 곳에 스스로를 가두면, 누군가가 팔을 뻗고 어깨를 감싸 안고, 그 낯선 움직임이 동력이 되어 이내 춤의 감각을 되찾는다. 당당하고 매몰찬 춤이 있는가 하면 경쾌한 춤, 여리고 다정한 춤이 있다. ‘팬데믹’을 그려낸 춤은 ‘포스트코리아’로 건너가 어둠위에 춤의 정신을 높이 세워 올리려고 애쓰는 청춘들의 춤의 ‘유토피아’로 오래 이어졌다.
이들은 춤을 마치 어떤 회복할 수 없는 자질인 것처럼 여기며 선택한 청춘들이다. 자신의 춤이 구체적인 삶으로 실천되길 바라며. 춤으로 모든 것을 얻게 되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것이 또 전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춤을 출 수밖에. 춤(어떤)의 열정에 이끌려 헤매는 일이 가능한 청춘들이 아닌가.
춤의 힘을 믿고 있는 듯, 단단한 춤을 추는 최효빈과, 서정빈의 여리고 서정적인 춤, 거침없는 김채희의 탄력과 재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직은 치기 어리지만 분명한 자신의 색깔을 가진 조동혁 등, 이들 젊은 무용수의 성장 무대를 곧 보게 될 것이다.
세계안무축제 오프닝 공연 〈청년열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안무축제(DICFe) |
‘한국작가전’(11월 26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은 정진우무용단의 〈심연〉, FTHT(정다래)의 〈적정거리 유지〉, 아우름 무용단(안경미)의 〈마음의 소리〉 섶무용단(김용철)의 〈부모은중경〉, 대구시티발레단(우혜영)의 〈잠자는 숲속이 미녀 1막 중〉, 무대에 오른 다섯 작품의 수준과 편차가 컸다.
입체적인 흰색 구조물 벽면이 바닥으로 펼쳐지고, 안에 있던 무용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정진우의 〈심연〉. 많은 얼굴을 한 어떤 그리움, 혹은 좌절감이 한꺼번에 엄습하는 것 같은,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이루지 못하는 것의 헛된, 삶에 무한정 투사되는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내면 등을, 감정을 덜어내고 정연하고 단단하게 구성한 군무진의 춤이 돋보였다.
김용철(섶무용단)의 〈부모은중경〉. 붉은 장대를 머리에 인 남자(강정환)와 나비춤 의상을 입은 이들에게 이끌리듯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와, 무심하게 흔들, 마음을 내려놓고 추는 김용철과 김정미의 춤 호흡과, 마지막, 강정환이 다시 흰색 장대를 이고 들어와 김용철과 김정미 곁에 툭, 장대를 떨어트리자 흰색 꽃잎(먼지일 수도)이 바닥에서 훅 일어나는, 독특한 미감과 춤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정진우무용단 〈심연〉 ⓒDICFe |
섶무용단 〈부모은중경〉 ⓒDICFe |
반면 댄스프로젝트 FTHT(정다래)의 〈적정거리 유지〉는 길거리에서 들리는 소음과 기계음에 춤을 우겨(?)넣은 듯, 솔로에 이어 세 명이(정다래, 배진아, 장승연, 조은정) 합류한 춤은 의미가 읽히지 않아 지루했고, 마지막, 각자 허리에 묶은 끈에 의해 강제로 적정거리를 유지당하는(?) 춤은, 상상의 여지를 싹둑 자른 해석이었다.
안경미(아우름 무용단)의 〈마음의 소리〉. 물속으로 무언가 가라앉는 음향, 얼굴에 흰색분장을 한, 치마에 팔이 열 개 달린 여자(안경미)가 내는 기괴한 소리, 넓게 부풀린 치마에서 벗어난 무용수가 다시 둥글게 팔을 모은 채 회전하며 끝나는 춤이었다. 안무자의 춤 인식과 실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안경미는 현대춤을 추는 작가다. 어떤 장르보다 시대의식이 앞서 있어야 한다. 춤(안무자)의 소외를 세상의 소외로 삼는 무한 반복인지, 안무자가 (춤이) 가장 온전했던 날의, 과거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춤) 기억의 반복 같은 작품이었다.
‘한국작가전’ 마지막 무대에 오른 우혜영(대구시티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이 미녀 1막 중〉은 대구지역 발레전공자의 축적과 춤(발레)자산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으나, ‘한국작가전’에는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댄스프로젝트 FTHT 〈적정거리 유지〉 ⓒDICFe |
아우름 무용단 〈마음의 소리〉 ⓒDICFe |
대구시티발레단 〈잠자는 숲속이 미녀〉 1막 중 ⓒDICFe |
마지막 날, 여섯 작품이 무대에 오른 청년작가전(11월 27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은 ‘한국작가전’에 비해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 무대였다.
NN:D(남승진,남희경 안무)의 〈개인의 해석〉, 박소희(아트 프로젝트 큼)의 〈소우주〉, 2 PUELLA(전하연, 백찬양 안무)의 〈SIAMESE〉, 이혜리(옹기종기)의 일로동행(一路同行), 도지원(pydance)의 〈명왕성〉, 장요한(장프로젝트)의 〈공존〉, 여섯 작품이 공모를 통해 무대에 올랐다.
NN:D(남승진,남희경 안무)의 〈개인의 해석〉은 남승진의 손끝에서 시작해서 남희경의 팔 끝으로 파동이 일 듯 전달되는 춤을 기타 선율에 얹고 추는 춤 호흡이 좋았으나, 작품에 깊이를 더하지 못했다. 그리고 박소희(아트 프로젝트 큼)의 〈소우주〉는 쇼핑 카트에 날개를 담고, 날개를 등에 달고 쇼핑카트에 탄 무용수가 “밀물에 쓸려가고 썰물에 밀려온다”는 대사를 반복하자 카트를 밀고 무대를 달린다. 대사에서 위트와 연출 감각이 보였지만, 깊이를 미처 춤으로 드러내지 못한, 습작에 그쳤다.
NN:D 〈개인의 해석〉 ⓒDICFe |
아트 프로젝트 큼 〈소우주〉 ⓒDICFe |
반면, 2 PUELLA(전하연, 백찬양 안무)의 〈샴SIAMESE〉 검정색 원타이즈를 입은 두 명의 무용수(전하연, 백찬양)가 하나의 몸으로 붙어있는 두 자아를 춤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연습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샴이란 존재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자 ‘가운데를 자르리 딱 반으로’라 말한 제우스의 신탁에 어떻게 반응했다는 춤의 의도를 제시하지 못하고 일관되게 같은 움직임으로 마무리한 점, 아쉬웠다. 성장이 기대되는 무용수들이었다.
도지원(pydance)의 〈명왕성〉은 ‘청년작가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무대 바닥에 원으로 떨어진 조명의 가장자리를 따라 서로 끌어당기고 밀려 긴장을 유지하며 중력을 춤으로 보여주는 듀오(도지원,이영기). 마지막, 한 줄기 빛 가운데 서 있는 도지원의 검은 실루엣은 마치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듯, 적막했다. 지난 해 어느 무대에선가 안무가의(도지원) 춤을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 성장이 기대되는 안무가다.
마지막, 한국창작춤 계열인 장요한(장프로젝트)의 〈공존〉. 남자무용수들이 왜 상의를 벗고 춤을 추어야 하는지, 남자와 여자 무용수는 왜 늘 서로 바라보게 배치를 하는지, 그리고 모두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공존’이라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을 수 있을 때, 창작 작업에 있어 이 물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늘 보고 익혀온 춤 형식에 매몰되지 않는 안무태도가 필요하다.
우려되었던 점. 〈공존〉 작품이 시작과 앞 작품 〈명왕성〉의 엔딩 조명이 똑같았다. 오류다. (두)안무자가 서로 조율했어야 했다. 설마 같은 조명 하나를 두 안무자가 동시에 선택함으로써 모든 것을 얻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까만. 오히려 조명 하나로 서로 모든 것을 선택하려 했지만 혼란을 선택한 것이 되었다.
2 PUELLA 〈SIAMESE〉 ⓒDICFe |
pydance 〈명왕성〉 ⓒDICFe |
옹기종기 〈일로동행〉 ⓒDICFe |
장프로젝트 〈공존〉 ⓒDICFe |
내가 원하는 무대와 내가 가지고 있는 춤 능력을 구별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특히 젊은 무용가들에겐. 고통으로 춤 창작 작업을 하고, 춤적 실천을 위해 고통을 직면해야 하는 젊은 무용가편에서 보면 춤 사회에 대한 원망이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 현실이 춤을 선택한 젊은 날의 현주소고 초상이다. 다행은 젊은 안무가들에게 춤 감각과 감정을 벼려낼, 무대가 가까이 있다는 것. 언젠가 ‘세계안무축제’가 전국의 무용인들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로 지위를 획득한다면, 대구 춤의 자산은 더 공고해질 것이다. ‘세계안무축제’가 성장하여야 할 이유이다.
무용인들에게 격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춤을 향유케 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춤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검토는 대구 춤계의 파란이 진정된 이후, 대구 춤계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그 출구를 모색하는 일의 어려움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