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20 라라美 댄스페스티벌〉 포럼
몸소리로 만나는 세상, 장애무용수의 예술 확장 가능성
이단비_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음악의 숲에 춤의 꽃을 피우다. 몸소리, 꽃으로 피어나다. 읽는 순간 꽃향기가 배어나와 온 몸에 묻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이 두 문장은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장애인 특성화 축제 〈2020 라라美 댄스페스티벌〉의 주제이다. 지난 1월, 무용예술로 장애인 복지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장애인무용협회가 주최한 첫 공식적인 축제이기도 하다. 한국장애인무용협회에서 주최하는 축제이지만 무용뿐 아니라 음악 연주, 국악가요 등 음악과 무용이 모두 어우러지는 축제이기도 했다.

이번 첫 축제에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특정 유형의 장애를 축제의 중심으로 삼은 것이다. ‘장애’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기에는 장애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고 각각의 장애마다 그 정도나 특성의 차이가 크다. 예술경험과 교육에 있어서도 유형별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그만큼 깊은 연구도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축제는 ‘발달장애’에 초점을 맞춰 음악과 무용의 통합 축제를 진행하고 발전 방향을 꾀했다. ‘지금 여기! 발달장애 무용예술과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포럼도 그런 일환 중의 하나이다. 포럼은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되, 축제 첫 회인만큼 장애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이뤄졌다.




라라미댄스페스티벌 개막식. 사회를 맡은 김용우 한국장애인무용협회 회장과 고아라 장애무용수 ⓒ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예술이 가져온 변화

먼저, 이번 〈라라美 댄스페스티벌〉에서 많은 장애유형 중 ‘발달장애’에 초점을 맞춘 이유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기조발제를 맡은 한국장애예술협회 방귀희 대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서 장애예술인의 장애 유형에서 절반 가량인 49.0%가 발달장애인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이 〈라라美 댄스페스티벌〉의 첫 중점유형으로 발달장애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는 다소 어려움을 느끼지만 연주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출 때는 장애가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다가 예술활동을 통해 잠재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달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누릴수록 감수성, 행복감,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논거로 제시했다.




라라미댄스페스티벌 포럼 현장 모습 ⓒ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이 부분은 이후 발제를 한 트러스트무용단 김형희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트러스트무용단의 이름으로 1995년부터 공연을 해온 김형희 대표는 지난 2017년 장애인 10명으로 구성된 케인 앤 무브먼트 무용단을 만들고 장애인 무용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이번 발제를 통해 현장에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어떤 변화가 펼치고 있는지 실질적인 사례를 엿볼 수 있었다. 케인 앤 무브먼트가 다양한 장애유형의 무용수들로 구성돼 있는데 발달장애인이 장애예술가의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사례 내용에서도 발달장애 무용수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라라미댄스페스티벌 포럼, 발제 중인 김형희 대표 ⓒ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어떤 장애를 갖고 있든 각각의 장애무용수들이 처음 무용을 시작할 때와 달리 점차적으로 춤의 질감이 달라지고 움직임이 확장되고 있는 사례를 하나씩 꺼내서 들려줄 때 장애예술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연습 때는 드러내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생각지 못한 즉흥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사람, 불평불만을 늘 쏟아내며 당황스럽게 만들더니 막상 연습에 들어가면 집중하며 땀을 쏟아내는 사람. 케인 앤 무브먼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김형희 대표는 강조한다. ‘비장애인보다 미숙한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그들 스스로에게 주어진 몸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그려내는 작업은 도리어 진지하고 솔직하며 진실에 가깝다’라고.






케인 앤 무브먼트 〈바로 또 거꾸로〉, 김형희 안무 ⓒ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이번 포럼에서 사회와 발제를 맡은 홍댄스컴퍼니 홍혜전 대표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혜전 대표의 발제에서는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감각통합무용예술교육 프로그램 ‘춤추는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를 통해 장애무용수들에게 생긴 변화를 짚어보고 향후 장애무용예술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면 좋을지 세밀한 분석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아동들이 다양한 감각 경험을 겪으면서 표현적인 움직임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는데 A. JEAN AYRES의 감각통합 이론과 호세리몽 테크닉을 기반으로 바운스, 드롭, 롤링 동작으로 되어있고, 프로그램 참여자의 운동수행력은 오세레츠키 검사를 통해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참가자들의 변화과정은 수치화, 계량화되어 문서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용수로 무대에 서고 안무가로 작품을 만들고 교육가로 살아온 전문인으로서 장애 아동들의 움직임을 볼 때 말이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성장 가능성, 이후의 변화들을 느꼈을 텐데 이걸 모두 문서화하는 데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홍혜전 대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토론에서도 잠시 언급하기도 했다.




  

발달장애아동 대상 감각통합무용예술교육 프로그램 ‘춤추는 예술가’ ⓒ홍혜전




예술에는 과학처럼 계량할 수 있고 정량화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에 의해 행해지는 예술이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에서 참가자들은 분명히 변화와 성장을 보여줬을 것이다. 과연 예술에서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집약된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테크닉을 해냈을 때 잘한다고 말해야할까.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단순한 무브먼트라도 그 안에 농축된 자기표현을 담고 그것을 무대에서 발산할 경우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전자도 박수 받을 일이지만 예술이 갖는 가치는 거기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장애인이 하는 학예회’라는 시각이 아니라 전문예술인의 시각으로 봐야하는 이유와 가치가 여기에 있다.


장애인 무용예술, 확장은 가능하다

이번 포럼에서도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장애인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5년, 〈소리로 보는 세상(World Seen Through Sounds)〉이라는 제목으로 시각장애인 축구선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집필, 제작하면서부터다. 그때 서울, 인천, 강릉, 그리고 그 선수와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버밍엄에서 촬영을 진행했었는데 이때 영국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와 예술활동 지원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를 가질 경우 집안에 숨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유입시키는 제도에 감탄했고, 우리도 가능할까 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무용과 예술교육에 관심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축구도 하는데 춤은 못 추랴.

이런 생각으로 장애인 무용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보게 된 게 조세 몽탈보(José Montalvo)와 도미니크 에르뷰(Dominique Hervieu)가 안무한 작품 〈오르페우스(Orphée)〉였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가장 눈길이 간 건 이 작품에서 주요 역할로 출연하는 한 무용수 때문이었다. 그 무용수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상태였지만 표현력과 움직임이 상당히 훌륭했다.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장애가 춤을 추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일까. 저렇게 춤이 훌륭한 무용수가 한 쪽 다리가 없다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가. 무대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로만 채워져야 하는 공간인가. 저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다리 한 쪽을 잃었다고 그 재능을 버려야 하는가.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확신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고 재능과 욕구, 관심사를 억제당하거나 그것을 발현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술을 누릴 기회가 장애의 유무로 결정지어져서는 안된다고. 이후에 많은 장애무용 작품들을 보면서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토론문을 준비하고 마침내 포럼 당일에 노원구의 피노파밀리아로 향하면서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2016년 9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던 날 공연을 보러 가던 기억. 이 날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이것이다. 이 무용제가 장애무용예술이 독자적인 예술 영역으로 주목받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에서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장애무용예술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소고’에 대한 발제를 통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의 의의를 중요하게 짚었고 장애예술의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다. 덕분에 장애무용예술의 시작과 앞으로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보이는 시간이 됐다.

발제 내용에 따르면 장애인 복지라는 주제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고 2005년에 이르러서 장애인예술의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장애인예술단체들이 모여서 한국 장애인단체 문화예술 총연합회(이하 장예총)가 설립됐고 정부의 업무도 복지부에서 문화부로 이관됐다. 이때부터 법, 제도, 연구, 지원 등이 제대로 이뤄졌다. 올해 5회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 이어 한국장애인무용협회와 〈라라美 댄스페스티벌〉의 개최는 장애무용예술이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와 그 권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예술의 창조적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이 됐다고 본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의 경우 발제에서도 이 무용제와 라라미댄스페스티벌의 의의를 중요하게 짚으며 장애무용예술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특히, 그동안 명확한 개념 없이 장애무용과 장애인무용, 장애무용수와 장애인무용수 등 용어를 혼용해서 써왔는데 이제는 용어 확립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에이블아트’라는 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외래어라 조금 아쉽지만 이 단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 짓지 않고 가능성을 담은 단어라 좋다고 생각한다.


창작을 위한 교육과 무대가 필요하다

발제 이후 2부에서는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포럼에는 한국장애인무용협회 김용우 회장과 이번 축제에서도 공연을 올린 장애인무용단 파릇 P.A.R.O.T 이미경 대표도 함께 해서 현장의 목소리들을 더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사전에 미리 합의를 한 것도 아닌데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해결점들을 제시해서 모두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지금 장애무용예술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지도 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장애유형별로 적합한 전문교육과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무대였다.

토론자로 나온 서울기독대학교 송정은 교수도 장애유형에 맞는 기초적인 무용동작에 대한 연구와 동작개발이 필요하고 예술적인 소양을 기르는 교육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장애 무용수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페셜아트 김민정 대표의 경우 미술과 음악 교육에 있어서 장애 예술가들의 1:1 멘토링을 비롯한 전문 교육이 진행되고 있고 직업으로도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그에 비해 장애인 무용에서는 전문교육이 아쉽다는 점을 짚었다. 무용에 재능 있는 발달장애 아동 청소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내가 던진 질문은 ‘장애 무용수가 되고 무대에 계속 선다는 것은 공연예술에서 전문영역에 들어선다는 의미인데 장애인 무용수에게 ‘전문성’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였다. 결국 장애예술인들이 나아갈 방향은 전문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으로 계속 무대에 설 수 있게 돼야 한다는 점에서 중지가 모아진 셈이다.

발제와 토론을 통해 나온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장애인 전문교육을 위해 교육시설과 문화매개자, 전문교육인이 필요하다. 그동안 특수아동 교육자들은 예술을 모르고 예술가들은 장애인들의 특성을 몰라서 어려움이 있었다. 두 가지가 맞닿는 전문교육인과 문화매개자의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통해 장애무용인들의 장애유형과 연령에 맞는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되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무용교육의 체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창작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지원으로 연습실과 무대가 주어져야 한다. 한국장애인예술협회 방귀희 대표는 다운증후군 발레무용수 백지윤의 사례를 들었는데 2013년 평창스페셜올림픽 무대에서 지젤을 선보인 이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치료의 일환으로 발레를 접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장애인댄스대회를 나갔다가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국립발레단 아카데미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 합격하면서 꾸준히 발레를 해왔지만 2013년 이후 더 이상 설 무대가 없어서 작품활동이 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장애예술 전용극장과 연습실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을 구심점으로 장애무용 발전이 더 가속화될 것이란 의견도 내놓았다.

셋째,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알리고 전문무용인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경계없이 어울리고 장애예술인이 전문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빈번한 노출로 비장애인에게 이런 문화가 익숙해져야 한다.






라라미댄스페스티벌 포럼 2부 토론 현장 모습 ⓒ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예술의 향유는 인간 모두의 정신적 생존권

이번 포럼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놀라워 한 부분 중 하나는 장애인예술인지원법이 이제 국회 본회를 통과됐다는 점이었다. 모두의 반응은 ‘그게 아직까지 없었다고?’였는데 믿기 어려웠지만 지난 5월에 통과됐다. 어쨌든 이제 제도도 마련됐고, 한국인장애인무용협회도 발족했고, 올해는 장애인예술과 장애인무용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될 해는 분명하다. 이 뜻깊은 포럼의 현장에 토론자로 함께 하게 된 데에 감사했고, 장애예술의 역사와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좋은 공부가 된 자리였다. 끝으로 이번 포럼을 준비하면서 제출한 토론문의 마지막 문단을 여기에 옮긴다.

“앞으로 사회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더욱더 강조되는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예술활동과 예술교육에 대한 지원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생존권의 문제이지만 예술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정신적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 ​​ 

2020. 7.
사진제공_라라미댄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홍혜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