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코로나19가 몰고 온 비대면 시대, 온라인으로 공연물을 보는 일상이 익숙해지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온라인 무관중 공연으로 기획하여 네이버 TV(6.27.)와 유튜브(6.28.)로 방영된 〈비욘드 블랙〉은 영상기술과 신창호의 안무 컨셉 협업으로 온라인 공연물의 온전한 모델을 제시했다. 비록 공연은 현장성이 관람의 핵심 요소이지만, 낙관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상황이 우리의 의지와는 별개로 비대면 공연을 수용하게 한다. 올해 초 갑자기 찾아온 전 세계적 감염병 상황은 국가별로 그리고 개인마다 이를 대처하는 속도와 태도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몇 달 간 온라인으로 송출된 수많은 작품들은 대부분 녹화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었고 이는 관객과의 매개를 위한 생존전략의 대안이었던 반면에 〈비욘드 블랙〉은 이러한 시대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한 기획이었다.
물론 이전에 시나브로 가슴에의 〈Hit & Run〉이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Fever〉, 〈Breathe〉작품도 무관중 공연으로 녹화용도를 벗어나 카메라 무빙워크나 지미집을 활용하여 영상미가 보완된 실시간 공연을 송출하였다. 이들의 영상에서는 현장감은 떨어져도 작품의 흐름을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였다면, 신창호 안무의 〈비욘드 블랙〉은 영상기술의 역할이 한 몫 하여 오히려 현장에서 볼 수 없는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 점이 고무적이다. 한마디로 온라인용 춤공연물의 소통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작, 신창호 안무 〈비욘드 블랙〉 ⓒAiden Hwang |
우리는 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인간의 바둑 대결, 특히 이세돌의 충격적인 패배를 기억한다. 뿐만 아니라 작년 미술계에서는 AI를 상대한 두민 작가의 데칼코마니 작업이 소개되었고, 일본에서는 AI가 쓴 소설이 문학상 1차를 통과(호시 신이치 SF 문학상)한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이처럼 AI의 딥러닝(deep learning)은 입력된 정보의 모방을 넘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잠재적 능력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AI가 인간 고유의 감정 영역까지 점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반영하듯 AI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불안이 신창호의 〈비욘드 블랙〉 작품 기저에 잠식되어 있어 우리 삶의 문제로 한층 더 가깝게 공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는 작품에서 인간과 인공지능 경계의 불안보다는 현실을 수용하고 나아가 이를 리드하고자 한 의지를 보인다. 바로 작품에 AI ’마디’를 출현시켜 공생하는 방식과 오히려 AI에 입력된 움직임들을 다시 댄서들이 학습하여 활용해보는 시도가 그것이다. 여기에 카메라는 무대의 전방위 면면을 포착하며 실제 극장공간이 다각도로 조명되는 효과가 부각되었다. 여기에 댄서들의 실제 이동보다 빠르게 편집된 속도감이 배가되어 영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로 환원되어 집중력 있게 관람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이 작품에서는 카메라 영상 기술적인 측면이 안무의 한 요소로 진입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립현대무용단 제작, 신창호 안무 〈비욘드 블랙〉 ⓒAiden Hwang |
신창호 안무가는 〈비욘드 블랙〉 공연에서 춤추는 신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동시에 인간만이 구현해 낼 춤의 가치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기술과 예술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뱉어내는 댄서들의 대사(말)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절제된 수려한 움직임과 카메라로 극장 공간 환경과 댄서들의 얼굴과 표정까지 찍어 중첩시키는 다면적인 접근에 충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한 것은 댄서들의 대사 내용과 기술적인 현란함이 연합되기 보다는 단순하고 건조한 느낌을 받았다. 23분여의 짧은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집중력 있는 공연이었고 전체적으로 안무가의 의도는 명쾌하게 파악되었지만, 관객에게 확장되어 전달되는 질문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안무가가 질문하는 춤의 가치는 신체와 정신의 충만함, 다시 말해 기계가 아닌 염색체를 가진 인간만의 인간다움에 관한 내용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질문만 던진 상태로 작품은 마무리 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작, 신창호 안무 〈비욘드 블랙〉 ⓒAiden Hwang |
무관중 비대면의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적극적인 대처가 시의적절한 선택지였으며 앞으로 댄스필름의 시대가 한 발작 다가왔음이 예견된다. 코로나 이전의 시기로 돌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은 더욱 개발 확장될 것이기에 안무의 지형도 뉴미디어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춤이 관객들과 어떻게 생존하여 소통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