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누군가 내게 해외 진출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국제안무경연대회 참가를 권한다. 국제안무경연대회는 무용 경력이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인맥(선생님), 출신 학교 등 국내보다는 편견 없이 작품만을 보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제안무대회로는 일본의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Yokohama Dance Collection〉, 스페인의 〈마스단자(Masdanza)〉, 프랑스의 〈당스 엘라지(Danse Elarge)〉 등이 있다.
나는 2014년 12월부터 파리에 정착해 살고 있다. 파리와의 인연은 2007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프랑스 대사관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벌써 13년 전 일이니 그때의 기억과 정보가 지금도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생활을 해온 나의 행로를 정리할 겸해서 내가 접한 행사들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정보를 나누고 싶다.
1. 국제안무경연대회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은 국제 교류 네트워크가 굉장히 훌륭하다. 본 경연대회의 수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장점이며, 이후에도 요코하마 레드브릭 웨어하우스(Yokohama Red Brick Warehouse)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본선이 열리기까지 대회를 주관하는 관계자들의 (예술가를 위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경연 대회 기간 중 쇼케이스 참여 여부를 정할 수 있었는데, 나의 경우 이 쇼케이스를 통해 그 해 영국 런던의 더 플레이스(The Place)에서 공연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대회 기간 중 부대 행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는것이 좋다. 요코하마 경연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안무가로는 정영두, 김명신, 이선아, 밝넝쿨, 김보람, 김보라, 권령은 등이 있다.
ⓒ2020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홈페이지 |
스페인의 마스단자(Masdanza)는 경연 대회 라는 말 보다 축제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예술감독 나탈리(Natalia is Natalia Medina)와 데이빗(David Barahona-Herrera) 등 많은 스태프들이 오랫동안 한 가족처럼 일하고 있다. 참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마스단자는 카나리아 섬을 중심으로 주변 섬들과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다. 각 섬의 극장장들이 그 해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디오로 미리 체크하고 자신의 극장에 초대하고 싶은 작품을 선정한다. 이 초대 여부는 본선 대회의 결과와는 무관하며, 대회를 마친 이후 바로 섬 투어까지 돌 수 있다. 마스단자 축제 극장과 숙소 가까이에는 마스팔로마스 (Maspalomas Gran Canaria) 해변과 사막이 있는데, 마스단자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해변과 사막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축제부터 주변 환경까지 참 아름답고 완벽한 곳이다. 마스단자 참가 이후 유명해진 대표적인 안무가로는 스페인 단체 라 베로날(La Veronal)의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Marcos Morau)를 예로 들 수 있다. 2011년 마스단자 수상 이후 급성장하며 유명해졌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9년에는 국립현대무용단 초청 안무가로 초대되어 한국 무용수들과 함께 신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외에 마스단자에 참가한 한국의 안무가로는 밝넝쿨, 최영현, 김보람·장경민, 전혁진, 정현진, 이재영, 지경민·임진호·이경구, 임샛별, 이선아 등이 있다.
올해 25회 생일을 맞은 마스단자는 경연에 참가했던 안무가들에게 25초 생일 축하 영상과 메세지 영상을 요청했다. 많은 안무가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 영상은 인스타그램 @masdanza를 통해 볼 수 있고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 안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꽤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10월에 열릴 25회 행사가 무사히 치뤄질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2020년 마스단자 홈페이지 |
2. 해외 진출,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면 누군가와 함께!
2007년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해외에 나가 본 경험도 없었던 터라 요코하마 극장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 막막했다. 그때 미국에 거주 중인 언니가 요코하마까지 매니저 역할을 위해 동행해 주었다.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리허설, 본선 그리고 대회 이후의 무용 전문가들과의 모든 소통을 언니가 맡았다. 경연 후 극장 로비에서 영국의 더플레이스(The Place), 네덜란드의 줄리당스(Julidans), 스페인의 마스단자(Masdanza) 그리고 독일의 탄츠메세(Tanzmesse)의 예술감독으로부터 공연 초청 제안을 받았다. 언니는 관계자들과 주고 받은 내용들을 메모하고, 각 명함에 인상착의를 그려 놓았다. 그 후 감독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 해 초청받은 모든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나는,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들을 놓쳤을 수도 그리고 받은 명함들을 방 한켠에 쌓아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대사관 상을 받은 것이 프랑스에 갈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 기간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언니의 매니저 역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국제안무경연대회 또는 해외 투어를 나가야 하는데 본인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영어로 소통 가능한 사람과 꼭 동행할 것을 권하겠다.
3. 예술가의 아이덴티티(identity), 오리지널!
유럽은 예술가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예전에 유럽 투어를 다니면서 관객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오리지널(Original)!”이었다. 그 당시 그 말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프랑스에 살면서 다양한 공연들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나도 이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오리지널”이란, 그 사람의 것이 확실할 때 또는 공연을 보고 있는데 다른 누구의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사용하며, 독창적이고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표현이다. 가끔 한국에서는 관객 반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 해외에서 극찬을 받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테크닉적으로 매우 훌륭한 (한국)작품이 유럽에서는 안 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작품이 해외에서 어떤 반응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무대를 해외로 넓히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면, 국제안무경연대회에 참여해 보는 것이 그 첫 걸음으로 괜찮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대회를 나가기 전 궁금한 것도 모르는 것도 많은데 어디에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쇼케이스 신청 여부 결정을 두고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기억 등등. 2007년 요코하마경연대회를 나가기 전, 이전에 참가 경험이 있는 정영두님께 전화를 걸어 쇼케이스 등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본 기억이 있다.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래도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경험을 듣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것 같다.
*국제무용경연대회 공식 웹사이트 및 정보
프랑스 〈당스 엘라지 (Danse Élargie)〉
웹사이트: www.danse-elargie.com
신청 기간: 늦어도 12월 15일까지 (위 웹사이트) 온라인으로 등록
경연 기간: 6월 중순
프랑스의 당스 엘라지(Danse Élargie)는 2016년 LG 아트센터에서 경연이 개최된 적이 있어 국내에도 꽤 잘 알려진 대회다. 2016년 한국에서는 안무가 정세영이 1위를 수상했고, 같은 해 프랑스에서는 권령은이 3위와 관객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2018년 안무가 이주성(고블린파티)이 관객상을 받는 등 한국 안무가들의 수상 소식이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올해 6회를 맞이한 당스 엘라지는 파리의 권위 있는 극장 떼아트르 드 라 빌 (Theatre de la Ville)에서 열리는 경연대회다.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은 프랑스 무용가들도 한번 쯤은 무대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전통과 명성은 물론 무용을 관람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극장이다. 지금 몇년 째 떼아트르 드 라빌 극장이 내부 공사 중이라 지금은 에스파스 까르뎅(Espace Cardin) 극장이 대신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다시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서 경연을 치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스 엘라지는, 꼭 춤이 아니어도 된다. 어떤 예술이든 독창적인 콘셉트면 응모할 수 있으며 춤, 연극, 영화 그리고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이 작품을 심사한다. 올해 당스 엘라지는 모두 54개국에서 400명의 후보자가 응모했고, 그중 20명이 본선에 선출됐다. 나이, 국적, 장르 구분 없이 최소 3명 이상의 출연자가 무대에 서야 하며, 작품 길이는 10분 이내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 참고해보자.
2020년 당스 엘라지 홍보 영상 |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Yokohama Dance Collection)〉
웹사이트 : http://yokohama-dance-collection.jp/en/
신청 기간 : 매년 6월초 - 7월 말 사이
경연 기간 : 매년 2월
스페인 〈마스단자 (Masdanza)〉
Website : https://www.masdanza.com/english/
신청 기간 : 매년 4월 중순 - 6월 말
경연 기간 : 매년 10월 말
코펜하겐 국제안무경연대회
(The Copenhagen International Choreography Competition, CICC)
웹사이트 : https://www.cph-icc.dk
신청 기간 : 5월 5일 온라인
본선 기간 : 7월 중순경
*40세 미만, 3년 이내에 안무한 작품 (5-15분 길이)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연이 취소되었다. ⓒ 2020년 코펜하겐 국제안무경연대회 홈페이지 |
독일 〈솔로댄스 시어터 페스티벌 (solo dance theatre festival stuttgart)〉
웹사이트 : http://www.solo-tanz-theater.de/
신청 기간 : 2020년 11월 11일 자정 마감
본선 기간 : 3월 중순
독일 〈하노버 국제 안무 경연 대회 (Choreography 34)〉
웹사이트 : http://ballettgesellschaft.squarespace.com
신청 기간 : 3월 중순까지
본선 기간 : 6월 5일, 6일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Compagnie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