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자만과 정략이 망가뜨린 예술 무대
대한민국 질병관리본부가 한국 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날은 지난 1월 20일이다. 확진자는 그 직전 주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었다. 미국에서는 중국에서 온 미국인 남성이 미국 내 코로나19 첫 확진자로 발표된 날이 1월 21일(미국 시간)이다.
중국 바깥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첫 확진자가 발생한 시기는 엇비슷하다. 이후 4월 하순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한국은 1만 남짓인 반면에, 미국은 1백만에 육박한다. 초기에 미국에 비해 한국의 확진자가 훨씬 많았다. 3월 12일까지만 해도 확진자가 미국 1025명, 한국 7869명이었는데, 3월 중순 이후 미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였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초토화되고 공연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춤계 또한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코로나19에 힘겹게 대처하는 모습들이다. 미국 춤계와 한국 춤계는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미국 춤계가 대처하는 양상은 공연 취소나 연기는 물론이고 대체 공연 수단 개발, 공적 지원금 확보, 구호 기금 모금 등 다각도로 이뤄지는 중이다. 이를 조금 더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여러 매체들에서 우선 몇 가지 일반 사실부터 훑어보자.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 누적된 추세를 주요 수치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참조: 비영리기구 Our World in Data 사이트)
1월 21일 1명(한국: 1명)
2월 04일 11명 (두 자릿수 누적, 한국: 21명)
2월 29일 66명 (50명 이상 누적, 한국: 3526명)
3월 03일 103명 (100명 이상 누적, 한국: 5328명)
3월 09일 554명 (500명 이상 누적, 한국: 7513명)
3월 11일 1025명 (1000명 이상 누적, 한국: 7869명)
3월 15일 2951명 (2000명 이상 누적, 한국 8236명)
3월 18일 6427명 (5000명 이상 누적, 한국; 8565명)
3월 20일 14250명 (1만명 이상 누적, 한국: 8799명)
3월 21일 26724명 (2만명 이상 누적, 한국: 8897명)
3월 28일 104686명 (10만명 이상 누적)
3월 31일 164620명 (15만명 이상 누적)
4월 02일 216721명 (20만명 이상 누적, 한국: 10062명)
4월 11일 501560명 (50만명 이상 누적)
4월 27일 965910명 (100만명 접근, 한국: 10752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3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연방정부의 모든 권한을 발동하여 미국 전역에 재난안정기금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하여 응급운영센터 설치, 진단검사 확충이 대책으로 소개되었다. 이 당시 미국의 확진자는 1300명 선이었다. 한국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수준이 '경계' 단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된 때는 2월 23일이었다. 이 당시 한국의 확진자는 3백명 남짓이었다. 미국의 국토 면적과 한국 6배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면 미국의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그다지 늦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트럼프대통령이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 기자회견 현장에서 기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CNBC |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트럼프는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를 무시하고 참석자들과 악수를 교환하였다. 한국은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 지침으로 하고 개학을 4월로 미루었다. 대조적이다.
그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 훨씬 전부터 트럼프가 자신있게 밝힌 발언들은 외신을 통해서도 잘 전해져서 낯설지 않다. 미국은 중국 폐렴 감염자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1월 22일), 미국은 세계 어디보다도 뛰어난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1. 30.), 신종 코로나 위기는 날씨가 더워지는 4월이면 사라질 것이다(2. 11.), 코로나19가 미국인들에게 미칠 위험은 여전히 매우 낮고 언론이 공포를 조장한다(2. 26.), 코로나19가 확산한다면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 있고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5명이며 코로나19 위험은 매우 낮다(2. 27.), 코로나19 치사율이 훨씬 낮은데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는 의심스럽다(3. 6.), 코로나19 감염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은 일하러 가도 상관없다(3. 5.), 한국의 드라이브스루 검진을 우리도 할 수 있지만 효과적이지 않다(3. 7.)는 등의 공언을 트럼프는 평소의 그답게 연일 쏟아내었다.
3월 7일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확진자 추세는 트럼프의 공언을 점차 무색하게 만들고 연방 정부 차원의 비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도 확산된다. 자신의 끈질긴 공언을 주워 담기를 꺼려 한 그는 빗발치는 여론 속에서 결국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그날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에 소속된 앤서니 파우치 미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트럼프와는 대조적으로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 지금 미국이 겪는 코로나19 대란의 일정 부분에 대해 트럼프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미 그때 방역 권위자가 정면으로 밝힌 것이다. 전문가를 제쳐두고 국민을 지나치게 안심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무엇보다도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을 흩뜨려 미국 팬데믹은 물론 글로벌 팬데믹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은 분명하다. 또한 넓게 보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국가 원수 1인의 자만과 정략이 예술 무대를 망가뜨린 부작용은 실로 엄청나다 하겠다.
취소가 노멀이 되다
미국에서도 춤 분야에서 코로나19 대란은 가장 먼저 춤 공연의 취소나 연기 사태를 불러들였다. 공연장 추가 확보 등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사정으로 공연의 연기보다는 공연 취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공연 취소 사태가 한창 빈발하던 중에 코로나19로 뉴욕 무용인들은 유능한 춤 매스터 한 사람을 잃었다. 윌리 버맨은 뉴욕시티발레단, 쉬투트가르트발레단,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제네바그랑발레단 등에서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84년부터 뉴욕 브로드웨이의 스텝스에서 발레 교육에 전념하며 여러 세대의 유능한 무용수들을 배출했고 현대무용 전공자들에게도 어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코로나19 감염으로 신장부전증이 악화되어 80세를 일기로 3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발레의 현인(賢人)으로 칭송받았다 한다.
미국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 직전부터 미국 춤계는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2월에만 해도 간헐적으로 공연 취소가 공고되었으나, 트럼프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직전인 3월 10일부터 공연 취소가 급증한다. 이는 이때쯤 미국 춤계도 트럼프의 공언과는 상관없이 위기를 직감했던 것을 보여준다. 그날 뉴욕시티발레단은 그 다음 주 공연을 취소하였고, 그 이튿날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은 3월말~4월초의 공연을 취소하였다.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전날인 3월 12일 브로드웨이에서는 모든 극장들이 4월 12일까지 극장 문을 닫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공연을 홍보하기보다 공연을 취소하는 데 더 열중해야 하는 기현상이 전개된다.
3월 중순에만 하더라도 3월분 공연 등 임박한 공연을 취소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뉴욕에서 춤의 메카라 할 조이스씨어터는 3월 13일에 3월분 공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3월 24일에는 5월 3일까지 극장을 폐쇄한다고 하였다. 4월 6일(미국 확진자 337635명)에 가서는 5월 17일까지 극장 폐쇄를 연장한다고 하였다. 이제는 6월 하순까지 공연이 취소된 것으로 나온다. 몇 차례나 취소 기간을 연장해가면서 공연 개최에 최선을 다하다 끝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쉽게 상상된다.
뉴욕시티발레단 디지털 스프링 시즌 프로그램 공지 화면 ⓒ뉴욕시티발레단 |
미국 최대 무용단인 뉴욕시티발레단은 급기야 3월 26일 ~ 5월말까지의 봄 시즌 공연 전체를 취소하였다. 아메리컨발레씨어터는 7월4일까지의 봄 시즌 공연 전체를 취소하고 80주년 기념 갈라 행사를 10월 21일까지 연기하였다. 미국 최대 춤 축제의 하나인 제이콥스필로우페스티벌은 6월 24일 ~ 8월 30일 간의 전체 제전이 취소된 것으로 3월 31일 보도되었다. 4월 8일, 브로드웨이는 6월 7일까지 극장들의 문 닫기를 연장한다고 밝혔다. 4월 9일, 뉴욕의 링컨센터는 8월 초순까지 모든 여름철 프로그램을 취소하였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2020년도 에든버러축제가 전체 취소된다고 4월 1일 보도되었다. 세계 최대 예술 축제가 송두리째 취소된 것이다. 미국에서 4월 이후 예정된 공연들은 공지되지 않아도 으레 취소가 기정사실로 되었고, 예외적으로 공연한다는 보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코로나19 대란으로 텅빈 브로드웨이 ⓒ워싱턴포스트 |
공연 취소 사실은 공지문으로 전달된다. 공지문 내용이 의례적일 테지만, 그 내용을 참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먼저 소개할 것은 흑인무용단으로 유서가 깊은 앨빈에일리어메리컨댄스씨어터가 3월 ~ 5월에 예정된 12곳의 공연과 교습 프로그램, 렌털 사업을 취소하면서 발표한 공지문이다.
“62년간의 역사 동안 에일리 단체는 춤을 통해 사람들을 모아왔습니다. 저희의 후원자, 예술가, 학생 및 고용원들의 건강과 안전은 저희에게 최우선의 관심사이며, 따라서 에일리 단체는 지금의 공중 건강 위기를 고려하여 임박한 활동들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가급적 많은 활동에서 일정을 변경하기를 희망하며, 웹페이지에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일정을 체크하세요. 그동안 저희는 여러분들이 ‘에일리 올 액세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연결하시도록 초대합니다. 새 디지털 콘텐츠 기획인 이 프로그램에서 공연 전체 비디오, 무용수가 창조한 콘텐츠, 온라인 댄스 그리고 건강 교실 등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앨빈 에일리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일익을 맡은 헌신적인 무용수들, 교습자들, 스탭진을 지지하는 동시에 우리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이 기부함으로써 저희들의 이러한 노력에 참여해주실 것을 희망합니다. 이 시기에 여러분의 지속적인 지지와 이해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앨빈에일리댄스씨어터 드림.”
코로나19로 문닫은 조이스씨어터의 홈페이지 공지문 ⓒ조이스씨어터 |
다음은 뉴욕의 춤예술 전문 공연장으로서 권위가 있는 조이스씨어터의 공지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조이스는 40년 가까이 예술인과 관객들이 인류 체험의 에센스인 기쁨과 아픔을 나누는 만남의 장이었고 예술인과 관객을 잇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순간 저희는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런 역할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큰 행운이었음을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공동체의 안녕은 저희들에게 최우선의 사항입니다. 저희 극장에서 공연할 계획이던 무용단들이 직면하는 리허설 및 순회 일정의 중단뿐만 아니라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내린 집회 제한 결정에 부응하여 저희는 다음의 공연들을 취소합니다. 상황이 전개 중이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업데이트되는 이 홈페이지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오랜 세월 춤예술은 움직이는 몸의 힘과 회복력을 찬미해 왔습니다. 이 유례없는 도전의 시기에 당면하여 저희는 그 어느 때보다 춤의 그러한 기상(氣像)을 예찬합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강녕을 기원하며, 이 어려운 시기가 마무리될 때 다시 만나 뵙기를 기원합니다. 따스한 소망과 함께 전임(專任)감독 드림.”
랜선, 대안의 구세주로 떠올라
춤 공연이 취소된다고 해서 공연이 곧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안으로서 온라인 동영상 공연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답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랜선을 경유하는 춤 활동 가운데 공연이 가장 뚜렷하며 교육과 교습 측면에서도 랜선은 활용된다. 온라인 동영상 공연을 활용하는 단체는 드물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뉴욕시티발레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발레단이 밝힌 랜선(LAN線)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다.
뉴욕시티발레단(1948년 창설)은 봄 시즌에 링컨센터에서 예정되었던 4월 21일 ~ 5월 29일 사이에 매주 2편의 발레를 온라인으로 송출한다. 팟캐스트와 무브먼트 클래스는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발레단은 이들 프로그램을 NYCB's Digital (Spring) Season이라 이름붙였다. 공연물들은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72시간 동안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자체 웹사이트에서 송출되고, 매우 월요일에 프로그램 편성이 공지된다.
또한 4월 20일부터는 매주 월요일에 City Ballet The Podcast의 새 프로그램을 송출한다. 디지털 시즌에 편성된 공연작을 소개하는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들을 펼친다. 해당 공연 지휘자, 음악감독, 교향악단이 반주음악을 짚어가며 나누는 이야기나 출연 무용수들의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4월 22일부터 수요일마다 발레를 응용한 여러 무브먼트 클래스를 인스타그램 라이브와 발레단의 자체 채널에서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연다. 4월 23일부터는 정해진 시간대에 전세계 모든 연령층의 발레팬들을 대상으로 소속 단원들이 온라인에서 발레 웜업과 동작들을 결합한 워크숍 Ballet Essentials Online을 신청을 받아 진행하였다. 그리고 4월 25일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낮에는 소속 단원들이 3~8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웜업과 간단한 안무를 섞은 20분짜리 Ballet Break를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동작 결합이나 간략한 안무는 뉴욕시티발레단의 축적된 명작들에서 소재를 발췌 응용하는 강점을 보이고 있다.
무용단뿐 아니라 무용가들이 개별적으로 랜선을 이용하는 경우는 코로나19 대란으로 더 흔해지고 있다. 코로나19 대란으로 랜선 공연 문화가 빠르게 정착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나 이 세대 다음의 알파 세대에게 있어 디지털이 자신들의 언어와 공간이 되는 추세가 이번 대란을 계기로 한결 뚜렷해진다. 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랜선으로 타개해나가면서 각자의 안방, 거실을 일종의 커뮤니티로 탈바꿈시킨다. 4월 중순, 댄스 매거진이 무용인 10명에게 포스트 코로나 자구책을 물은 결과 4사람이 가상 현실과 온라인을 중요한 수단으로 꼽았다.
이처럼 엉뚱한 코로나19가 디지털 유통 방식을 앞당기고 있다. 그런 백화제방 식의 숱한 탐색 중에서도 랜선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단연 뉴욕시티발레단이 손꼽아진다. 연간 입장료와 순회 공연 수입이 500억원에 달하는 자체 경영 규모에 비추어 볼 때 뉴욕시티발레단에 있어 랜선 유통은 일시적 구세주에 그치지 않고 향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규모가 큰 무용단이라면 앞으로 랜선을 필수 경로로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겉은 멀쩡한데 24시간 인적이 드문 거리는 코로나19를 상징한다. 그것은 경제 활동의 정지를 나타내며, 사람이 모여야 생명력이 살아나는 극장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극장과 학교의 폐쇄를 강제한다. 사회의 절대다수가 벼랑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예술과 교육 분야도 예외일 수 없으나 미국에서도 영세한 분야일수록,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개인일수록 그 정도는 심각하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이원화된 미국에서 경제적 지원책이 무수한 경로로 세워지고 있다. 이 일련의 시책들은 1930년대 이래의 새로운 뉴딜정책, 즉 21세기 뉴딜이라 지칭될 만큼 전면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50조원 규모의 재난 기금 지원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래도 예술인들은 시큰둥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 지원에서 예술인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을 뿐더러 기업 좋은 일만 시킨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느 비정부기구 통계에 의하면, 이번 대란 통에 미국 미술인들의 95%가 수입이 줄어들고 62%는 완전 실업 상태이며 연간 수입은 27000달러가 감소할 것이며 80%가 코로나19 이후 당장 대책이 막연하다. 4월에 어느 단체가 5천 달러(6백만원)의 보조금을 미술인 200명에게 지급하는 사업에 무려 6만명이 지원 신청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사정에서 어느 연방 의원은 예술인들을 위해 약 5조원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편다.
3월 23일 뉴욕시의 어느 비영리 문화단체 대표는 뉴욕시장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서신을 공개 전달하였다. “저축도 여윳돈도 없는 예술인들이 비상 상황에서 엄청나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뉴욕시의 Business Stimulus 프로그램에 다음 사항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1. 기존의 공공 기금 수혜 단체가 올해는 더 수혜받도록 조치해주실 것. 2. 시 소유 부동산의 임대료 및 사용료를 전액 면제하실 것. 3. 공연, 교육, 전시 등에서 수입을 상실한 단체에 구호 기금을 50% 이상 올려주실 것. 4. 다음 회계연도에도 (예술) 재원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실 것.”
뉴욕시 일대의 춤 활동을 공공의 관점에서 지원하는 비영리기구 Dance/NYC가 4월 20일 발표한 자료는 비록 뉴욕시 지역에 한정되지만 코로나19 속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4월 18일 기준으로 4200건 이상의 공연이 취소되고 6500건이 넘는 교육 활동이 취소되는 등으로 무용가들이 330만 달러(한화 41억 2500만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추산하였다.
또한 모든 연령층의 무용인 984명(연평균 수입 한화 4150만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통계 조사에서 15%는 수입이 감소할 것이며 54%는 실업 수당을 신청했고 63%는 현금이 부족하며 76%는 융자금과 집세를 갚을 자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연평균 수입은 평소에도 빈곤선에 가까운 수준으로서 통계치는 코로나19로 인해 무용인들이 당장 식료품 구입과 거처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게다가 통계는 무용인들이 처한 위기는 장애인, 백인 이외 유색인종, 북미 원주민(인디언) 출신, 성소수자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보다 1960년 이후 출생 세대에서 수입이 훨씬 더 감소할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대란이 가장 극심한 뉴욕시와 뉴욕주의 상황을 미국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로 보인다. 그래도 미국 전역의 1백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치는 미국 전역에서 무용인들이 크고 작은 어려움에 처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는 나름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민간 재단들도 발벗고 나서는데, 그 사회가 비상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폭넓은 사회적 나눔이 관행으로 힘을 발휘하는 나라다운 면이 엿보인다.
여러 민간 재단들의 협조를 받아 Dance/NYC가 주관한 코로나바이러스 구호 기금은 개인에게는 월 5백달러씩 최대 1500달러, 단체에는 2500~5000달러가 지급될 예정이다. 수혜 대상은 모두 180건으로서, 전체 예산은 42만 달러(한화 5억 2500만원)이다. 4월초에 마감한 이 사업에 653건이 접수되었다. 이 사업에서 또 특이한 것은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 장애인, 이민자, 노령자, HIV감염자 등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추정되는 대상 집단에 선정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무용단들에서도 난국을 헤쳐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다. 미국에서 춤계뿐 아니라 수많은 비영리 기구들은 평소에도 기부금을 모으는 데 적극적이다. 코로나19 대란에 처하여 기부금 모금을 더 강화하는 작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뉴욕시티발레단이 랜선 유통으로 스스로 노력을 쏟으면서 기부금을 추가 모금한다면 분명 호응이 따를 것이다. 코로나 대란 속에서 샌프란시스코발레단도 기부금 모금 사업을 더 늘였는데, 그 취지를 알리는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 긴급 구호 기금 모금: 저희들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 발레단의 레퍼토리 시즌 공연이 충격적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60% 넘게 취소되었습니다. 수백명의 예술가/임직원/스탭/기능직 및 수작업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영리 기구로서 저희들은 급료와 의료보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불확실성의 시기에 연방정부의 구호 기금에 저희 단체가 얼마나 적정한 자격이 있는지 불투명한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저희를 뒷받침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 가족을 위한 긴급 구호 기금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무엇이든 기부를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취지문 아래 발레단은 50 ~ 1000달러 사이, 그리고 5천 달러의 모두 7등급의 기금 액수를 제시한다. 각 등급의 기금에 대해 발레단이 제공하는 것은 특정 단원의 비디오 메시지이며 5천 달러에 대해서는 수석 무용수가 제작한 수공 옷깃 핀이나 브로치가 증정된다. 4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발레단이 추정하는 손실 액수는 무려 950만 달러(한화 120억원 규모)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의 연간 입장료 및 순회 공연 수입이 280억원에 달하므로 손실이 클 것이 분명하다. 지출액은 입장료 및 순회 공연 수입의 3배가 조금 안 된다. 이런 사정을 접하면 대형 무용단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됨 직하다. 이에 비추어 각 모금 액수가 어쩌면 크지 않다는 감이 들지만 자기들대로 계산이 있어 그럴 것이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미국 예술계는 여러 가지 통계치를 동원한다. 현장에 대한 막연한 판단보다 실태 조사를 근거로 지원 당국을 설득하고 사회에 호소하는 방법이 기본으로 동원된다. 지금의 코로나19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통계치가 목표를 관철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 글에 소개된 단체 댄스/NYC는 코로나19가 현장에 끼치는 충격파를 매주 조사하여 업데이트한다. 통계를 맹신할 필요는 없으나 통계 없는 대처는 항해사 없는 운항과 다름 없다. 어쩌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분야일수록 호소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통계와 같은 근거를 더 잘 갖춰야 할 것이다.
〈댄스매거진〉의 설문 조사에서 어느 미국 안무가는 이제 팬데믹이 끝나면 팬데믹을 경유한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고 보았다. 확진자 1백만명의 사회에서 코로나19에 맞서는 것은 한국에서 실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은 분명하나 어떻게 귀착될지 사실은 불투명하다. 그래도 많은 매체들에서 확인되듯이 내일이 선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일을 그려가며 미국 춤계는 오늘도 자구책을 세우고 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