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인불명의 감염증을 COVID-19로 이름 붙였다. 이를 일본 자국 내에서 코로나19를 부르는 명칭으로서 최초에는 ‘신형 폐렴’으로 다루어지다가, 전문가 회의를 통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新型コロナウイルス)로 굳어지게 되었다. 2월 20일, 후생노동성(厚生勞動省)이 발표한 ‘행사 개최에 관한 국민에의 메시지’에서는 각종 문화 행사 주최자 등에게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이벤트 개최를 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자숙’을 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2월 26일 시점에서 일본 문부과학성(文部科学省)이 발표한 ‘각종 문화 행사 개최에 관한 지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1, 2주내로 급속한 확대로 발전할지, 혹은 수습이 가능할지에 대한 갈림길로 판단되므로”, “대규모의 감염 리스크가 있는 것을 감안하여 이후 2주 내에 예정되어 있던 문화 이벤트 등에 대하여”, “정지, 연기 또는 규모축소 등의 대응”을 요구하는 정부의 정책 방침이 긴급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대책 요청에 의해 2월 27일부터 일본예술문화진흥회가 주관하는 국립극장, 신국립극장과 도쿄예술극장, 도쿄문화회관 등 국공립 단체들의 주최 공연 중지 및 휴관이 이어지며 동시에 티켓 환불에 대한 대응방침 등을 각 홈페이지에 게시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각종 문화 행사 개최에 관한 지침’ |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3월 24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7월부터 예정되었던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부터,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비롯하여 오사카, 나고야, 교토 등 주요도시들이 빠르게 자숙 분위기에 돌입하였으며,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학교, 레스토랑, 백화점, 대형 쇼핑몰 등은 문을 걸어잠갔다. 다시 말해, 일본 내 사회·경제·문화 활동의 축소란 도쿄 도내에 존재하는 약 1,300여개에 달하는 극장과 홀에서 (2019년 3월 기준) 거의 매일 막을 올리던 전통예술, 연극, 무용, 콘서트 등 공연예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과 크고 작은 단체, 그리고 개인들이 막중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예술 분야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정보 수집과 연구, 발신하는 피아 리서치(ぴあ総研, PIA Research Institute)의 보고통계에 따르면, 일본 국내 공연예술 시장 규모가 2019년 총 9,000억엔에 달한 한편,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라이브·엔터테인먼트 업계에의 영향’으로 3월 23일 기준, ①중지연기 등에 의해 매출이 0 혹은 감소한 공연·시합의 수가 5월말까지 추산치 153,000편 ②입장이 불가능하게 된 관객 수가 1억 900만명 ③중지 연기 등에 의해 매출이 0 혹은 감소한 공연·시합의 입장금액이 3,300억엔으로, 즉 2020년 5월 말까지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연간시장규모 9,000억엔에 대한 감소율이 약 37%인 것으로 발표되었다(https://corporate.pia.jp/news/detail_covid-19_damage200323.html).
취소, 연기, 혹은 중지
수도인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가부키, 분라쿠, 전통인형극 등의 전통공연과 연구발표회 등 6월 30일까지 모든 주최공연의 취소를 결정했다.
국립단체인 신국립극장 발레단의 경우, 2019/2020 시즌 레퍼토리 〈마농〉은 3회 상연 도중 발표된 문화청의 요청에 의해 이후 일정이 중지 되었으며, 5월 예정인 〈돈키호테〉, 2018/2019 시즌 오프닝이었던 재상연작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전공연 중지가 결정되었다. 산하의 발레연구소 기수생 공연 〈에드왈드의 도정 2020〉는 의상 리허설 사진 공개로 대체되었다. 신국립극장의 2020/2021 발레&댄스 라인업 중 오노데라 슈지(小野寺修二) 컴퍼니 델라시네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공연중지된 상태이다.
민간단체인 도쿄발레단의 〈라 실피드〉 공개리허설은 강행되었지만, 도쿄문화회관, 도쿄도립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등 문화예술의 집결지인 우에노를 중심으로 〈우에노의 숲, 발레 홀리데이 2020〉이 개최될 예정에 있다가 결국 온라인 상영인 〈발레 홀리데이 at home〉으로 변경되고, 그중에서도 스페셜 앵콜공연이었던 벌마이스터 버전의 〈백조의 호수〉 역시 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일본현대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전국신인무용공연(통산 제130회) 〈DANCE PLAN 2020〉 또한 즉각 취소되었다.
해외 팀들의 경우 각 나라에서 입국제한을 대대적으로 차단시킴에 따라 차례로 중지를 알렸다. 도쿄문화회관에서 5월 중순에 예정된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 A프로 〈Ballet for Life〉, B프로 〈볼레로〉, 〈브렐과 바르바라〉, 상해가무단의 무극 〈따오기(朱鷺)〉가 중지되었고, 일본무대예술진흥회(NBS) 주최로 콜라보레이션이 예정된 도쿄발레단과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의 〈제9교향곡〉 공연은 1년 연기 되었다. 3년 만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의 〈Venezuela〉과 로시오 모리나 무용단 〈Caída del Cielo – 하늘에서 떨어진〉 등이 긴급 취소되었다.
자국내 아티스트와 수도를 벗어난 지역사회 예술커뮤니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부토’(舞踏)의 시조인 오노 카즈오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뒤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카사이 아키라(笠井叡)가 카사이-오노 듀오 세 작품 리메이크와 신작을 합친 〈DUO의 모임〉을 카나가와예술극장(神奈川芸術劇場, KAAT)에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취소를 공지했다. 2020년 4월부터 요코하마 바샤마치에 거점을 두고 개관 예정이었던 〈댄스 베이스 요코하마〉는 시설 오픈을 연기하고 오프닝 기념 이벤트 개최는 취소함을 알렸다.
마찬가지로 연간 3000회 이상, 총관객수 3만명을 동원하는 대형 뮤지컬 컴퍼니인 극단 사계(劇団四季) 역시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에 이르는 전국 각지의 전용극장에서 예정된 공연을 중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발생한 홋카이도에서는 2월 29일부터 3월 19일 3주 동안의 ‘비상사태선언’이 내려진 이후 삿포로 전용 사계극장의 파이널 공연인 〈리틀 머메이드〉를 중단시켜야만 했으며, 극단사계 대표이사인 요시다 치요키(吉田智誉樹)는 ‘북의 거점’의 마지막을 이런 식의 ‘의도치 않은 결말’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양해의 말을 전했다.
앞서 언급한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연기 결정은, 스포츠 분야 뿐만 아니라 문화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안겨 주었는데, 이와 병행하여 진행될 예정에 있던 〈Tokyo Tokyo 페스티벌〉이 취소됨에 따라 연관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사업들이 한순간에 백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축제의 주관이 될 아트 카운실 도쿄(Arts Council Tokyo)는 홈페이지에서 5월부터 8월까지 중지 또는 연기된 프로그램을 리스트로 공개하고 있다.
https://www.nntt.jac.go.jp/ballet/manon/ |
스크린 너머의 몸짓들
국립극장은 전통예능 홈씨어터 ‘집에서 관람!!’ 페이지를 개설하여, 선별된 과거 공연들을 무료 디지털 콘텐츠로 감상할 수 있다(https://www.ntj.jac.go.jp/topics/top/2020/299.html). 특히 국립극장의 무용공연을 중심으로 하여 출연자, 연구자, 평론가 등의 전문가들의 좌담회 기록인 ‘무용을 말하다’를 무료 공개하고 있다(https://www.ntj.jac.go.jp/kokuritsu/dancedialogue.html).
올해 6월과 7월에 걸쳐 공연을 앞두고 있는 노이즘 컴퍼니 니가타(Noism Company Niigata)는 오픈 클래스 워크숍 등이 중지된 상황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5월 말까지 〈PLAY 2 PLAY – 간섭하는 차원〉(2013년 초연), 〈ASU〉(2014년 초연) 두 작품을 온라인 영상 공개 중이다 (https://noism.jp/npe/p2p_asu_koukai/). 유튜브 채널 ‘踊 – ODORE Just Dance’ 채널을 관리하는 음악·영상 제작 컴퍼니인 IO-factory inc.는 부토(舞踏) 무용단인 산카이 주쿠(山海塾)의 〈MEGURI ―TEEMING SEA, TRANQUIL LAND〉를 5월 1일부터 기간한정으로 온라인 상영 하고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1Wx401trpOA).
컨템퍼러리 댄스 상연을 주 목적으로 하는 소극장 세션 하우스(Session House)에서는 온라인 댄스레슨과 기간한정 스트리밍 상연을 활발하게 개시하고 있어, 국내 현대 무용가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도를 지속할 예정이라 밝히고 있다(https://session-house.net).
일본 공연계에서는 티켓 단가 뿐만 아니라 팸플릿이나 DVD, 굿즈 등의 공연 관련 상품을 상당한 액수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소나 지연된 공연, 특히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원작으로 한 2.5차원의 뮤지컬이나 무대의 관련 상품이 온라인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긴급 지원에 관하여
공익사단법인 일본예능실연가단체협의회(예단협)가 4월 19일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확대방지에 의한 프리랜서에 대한 공적 지원에 관한 실태조사’ 앙케이트를 긴급 실시하여 5일간 2905명의 응답을 얻었다는 보도가 4월 20일 발표되었다. 조사결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예술가인 응답자 중 76%가 4월 수입이 50% 이하이며, 무수입은 42%로 밝혀졌다. 4월중 “아예 일을 구하지 못함”이 72%로, 공적지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수입과 취소 등의 증명이 ‘곤란’하거나 ‘자신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으며, 이는 현재도 업데이트 중이다(https://www.geidankyo.or.jp/news/detail20200424.html).
5월 14일에 개설된 연극과 음악계 등 대극장을 포함한 극단과 중소단체에 의해 긴급적으로 조직된 ‘긴급사태무대예술네트워크’(http://jpasn.net)가 실시한 ‘공연 중지/연기에 의한 손해액에 관한 긴급 조사’ 통계에 따르면, 4월 10일 사이에서 5월말까지 중지/연기를 결정한 공연에 한하여, 16개의 주최 단체와 6개의 스태프 회사의 응답을 토대로 작성한 결과 최대 30억엔 이상의 손실액이 2개 단체이며, 여기에 수주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중소 규모의 회사나 프리랜서 개인의 손실은 막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1년 4월쯤, 사업지속은 불가능”, “수입이 제로이므로, 지원책 이용에도 하나의 스테이지를 준비하는 데에만 수천만엔 이상의 부담이므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호소하고 있다.
(왼쪽) https://www.bunka.go.jp, (오른쪽) http://jpasn.net/index.html |
코로나 사태의 지속으로 예술활동에 크게 피해를 입은 개인 또는 단체를 위하여 일본 문화청은 ‘문화예술관계자에 대한 지원정보창구’를 개설하여, 2020년 보정예산안을 기반으로 긴급생활자금을 포함한 활용 가능한 자금에 대한 지원과 해설 자료를 공개해두고 있다. 도쿄도는 예술문화활동지원사업 △‘아트에 응원을! 도쿄 프로젝트’(https://cheerforart.jp/)를 통해 예술가, 크리에이터, 스태프의 영상 작품을 모집하여, 특설사이트에서 발신한다는 건을 발표했다. 대상은 4000명 정도로, 구성원 한 명당 10만엔(한화 100만원) 가량을 지불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보정예산안의 콘텐츠글로벌수요창출촉진보조금을 기반으로 비영리법인 영상산업진흥기구(VIPO)가 주최하여 △‘무관객 공연 등 기록영상을 활용한 영상 제작&해외 발신 지원’ 프로그램이 5월 말부터 시작될 예정에 있다.
각지의 지자체 또한 문화지원사업에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요코하마시의 경우, △‘시내 예술가 등의 문화예술활동긴급지원사업’에 2억 1,500만엔을, △‘버츄얼 버전 예술페스티벌 사업’에 9000만엔 상당을, △‘예술가, 크리에이터 등에의 원스톱 상담대응사업창구마련’에 1000만엔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치현은 지방 자치체 중 최대규모인 6억원으로 △‘아이치현 문화예술활동지원금 창설’을 실시하고 개인에게 10만엔, 법인에게 20만엔을 교부한다. 또한 현내 문화시설의 소장작품 등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제작을 아티스트에게 위탁하여, 온라인 발신을 실시하여 그 평가를 지불할 방침을 구축하고 있다. 교토부(京都府)는 △‘문화활동지속지원보조금’을 내년 1월까지 1~3기에 걸쳐 모집하고, 최대 20만엔을 보조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교토시에 한정해 활동하는 예술가에 한해 ‘교토시문화예술활동긴급장려금’을 신청한 개인당 30만엔을 교부할 것을 약속했다. 그외 후쿠오카시, 톳토리현, 나가노현, 카나자와현 등에서 보조금액의 상한을 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사업을 실시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무대예술계는 멈춰버렸고, 많은 관계자들은 ‘문화의 등이 꺼지고 있다’(文化の灯が消える)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3월 27일에 문화청 장관이 발표한 메시지에는 ‘구체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심지어 도쿄도의 지원사업 모집개시와 동시에 접속자 수의 초과로 인터넷 서버가 다운되기도 하는 등 전례없는 자숙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묘연한 방책은 떠오르지 않고, 예술가들의 고뇌는 깊어지고 있다. 일시적으로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세컨드 웨이브·써드 웨이브에 대비하여 정부와 개인에게 남겨진 현실이 오늘날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