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제30회 계룡산 국제춤축제
수행적 퍼포먼스로 30년 이어온 계룡산 국제춤축제
김혜라_춤비평가

ⓒ김혜식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부산국제무용제와 제주의 돌을 배경으로 한 제주국제즉흥춤 축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연 친화적인 장소 특정형 춤축제다. 이와 더불어 충남 공주 계룡산 국제춤축제도 계룡산을 배경으로(동학사와 신원사) 열리는 자연 친화적인 축제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어느 축제보다 인위적이지 않아 편안하다. 오고 가는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 가는 동학사 초입 길목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춤만이 아니라 드로잉, 캘리그라피, 사진전시 같은 인접 장르를 포괄하며 30년을 이어오고 있다. 엄정자 총감독과 박일규 예술감독을 주축으로 지역 주민, 예술가들과 협력해서 이끌어온 축제는 오늘날의 속도를 역행하듯 느리지만 진지하며, 상당히 수행(修行)적인 면모를 갖춘 점이 인상적이다. 매 해 공연자로 참석하는 예술가나 작품 내용도 크게 변하지 않지만 비교적 참여 예술가들의 인생관이 담긴 작업으로 구성돼 있다. 안무가나 출연진 모두 신작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공연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퍼포머들에게 이미 축적된 창작 경험과 역량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춤이다.



제임스전, 정운식 〈두 길〉 ⓒ신성호



남정호의 〈2025 가을 계룡산〉 ⓒ신성호






10월 18일과 19일 동학사 일주문 앞에서 박수정의 캘리퍼모먼스와 강은주의 〈巫· 舞· 無〉가 오프닝을 열었다. 이어 제임스 전과 정운식의 〈두 길〉, 남정호의 〈2025 가을 계룡산〉, 문진수의 〈벽사〉, 엄정자의 〈순환Ι〉이 선보였다. 해외 초청작으로는 인도 Rakesh, Priya Srinivasan의 전통춤인 〈사마간Smagan〉과 일반 부토를 배경으로 창작한 Okuyama Barabbas의 〈흘러가네Na ga re ta ri〉 순으로 이어졌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곡에 강은주의 솔로춤과 박수정의 캘리퍼포먼스 협업으로 완성된 ‘무이무상無二無常’ 글귀가 적힌 흰 천이 동학사 터줏대감 격인 큰 나무에 안착하며 공연은 시작한다. 백발의 제임스전과 정운식은 여행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마치 인생 여정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싶다. 특히 사랑에 대한 기억들의 잔상을 쓸쓸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했다. 계곡물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자연스럽게 오브제가 되어 계절의 운취까지 더해졌다. 남정호는 특유의 밝은 표정과 공감능력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관객에게 자신의 나이만큼 회전할 것을 알리며 72번의 구호와 함께 턴을 돈다. 72년을 함께한 춤 인생이 축약된 회전으로 그 어떤 화려한 움직임보다 찰나적인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젊었을 때의 분노와 열정을 뒤로하고 현재 이 순간을 즐기자는 ‘Don’t worry, Be happy’ 곡에 관객은 동조했다.





엄정자〈순환 Ι〉 ⓒ김혜식




기본기가 탄탄한 문진수의 탈춤은 놀이적 성격을 강화해 관객과 교류했고, 시바신의 지혜와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인도 전통춤도 선보였다. 장소를 이동해서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은 일본과 한국의 엄정자 춤으로 산사의 정취와 어우러졌다. 돌무더기, 풀뿌리, 연기, 흙과 교감하는 Okuyama는 산자와 죽은자의 기도를 표현하며, 죽음으로 흘러가는 인간의 운명을 수용하며 흙의 일부가 될 거라 말하는 듯했다. 엄정자도 맨발로 흙을 밟으며 무겁게 길목마다 내면의 깊은 갈등을 표현한다. 노란 저고리, 쪽두리, 가면을 내려놓고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 두루마기를 걸치며 홀로 가야 하는 인생무상의 여정을 춤으로 녹여냈다. 세 군데의 장소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꾸려진 작업들은 ‘무속(巫俗), 무상(無常), 무산(舞山)’이란 주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 했다.



  

ⓒ김혜라



매년 축제 전에 부대행사로 드로잉전(사진 김혜식, 남두희, 류창화, 신성호/드로잉 김배히, 소영란, 이재걸, 엄정제이)이 열리는데, 이는 작년의 축제와 연결 짓고 당일 공연 과정을 드로잉과 사진 전시(공주 갤러리쉬갈 초대전, 11월 17~23)로 차후 이어간다. 따라서 2틀간의 공연만이 아니라 덧 없이 사라지는 춤의 무상을 환기하며 지속적으로 춤과 삶과 축제를 기억하려는 방향성이다. 게다가 올 해는 30년간 쌓인 춤축제에 대한 평론 글을 정리해 그 간의 여정을 돌아보게 했다. 1996년 10월의 가을 “가을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들판을 보며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엄 감독은 계룡산에서 불교적 가치관을 투영해 산의 정기를 받아 단풍, 바람, 고목들 그리고 시와 미술과 음악과의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10월은 축제가 넘쳐나는 계절이다. 여러 축제와 비교해 보면 계룡산 국제춤축제가 대단히 화려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우직하게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역 예술인과 함께 소신 있게 이어오는 축제에 대해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다만 국제적 확장을 꾀하려는 의지는 이해하나 적은 예산으로 꾸려지는 축제이고(그나마도 국제 타이틀이 붙어야 공공지원금이 인상되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무엇보다 특별하지 않은 국제팀을 굳이 초청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또 하나 연령이 있는 예술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해외팀 예산으로 젊은 세대 국내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해서 세대 간, 서울과 지역 간 교류를 꾀하는 것도 홍보용 국제행사가 넘쳐나는 현시점에서 오히려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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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기획ㆍ총감독 엄정자 &  예술감독​연출 박일규​



엄정자 총감독과 김혜라 춤비평가 ⓒ김희돈



엄정자 (기획·총감독)
김혜라
: 30년 축제를 이끌어 온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엄정자: 저는 처음부터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범위만큼 하려고 마음먹었다. 초창기에 축제가 5년이 넘어도 사실 자리를 못 잡다 보니 주변에서는 계속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정 기금을 줄 테니 무대에 세워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축제 색깔에 맞지 않으면 공연을 올리지 않았다. 더디더라도 수준을 유지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 해 온 것이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이 축제는 다른 춤축제와 차별화된 부분으로 타분야 지역의 작가들과 협력해서 자연 친화적인 장소 특정형 공연이라는 점이지 싶다. 초창기부터 협업 프로젝트로 의도한 바가 있었나?
제가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갈증이 있었다. 고3 시절에 무용학과와 미술학과를 가라는 선생님들 권유가 있었고, 결국 무용과를 갔지만 언젠가는 미술을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여 부케로 50세부터 미술활동을 시작했다. 춤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 전시는 처음부터 계속 같이 했고, 드로잉은 16년 전부터 함께 하게 되었다. 전체 전시는 축제 한 달 뒤에 단독으로 올린다. 3년 전부터는 〈춤이 있는 드로잉쇼〉를 메인으로 하게 되었다. 춤이 오브제가 되고 드로잉이 중심이 된다. 드로잉을 위해 춤을 추다가 1분씩 멈춰서 있기도 한다. 감사한 건 중부권 유명한 작가들이 모여 이 프로젝트가 성장했다. 16명의 드로잉 작가와 3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한다.

30주년 기념인데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나?
잘 아시다시피 20여년을 5백정도 지원받고 제 사비로 치렀다. 국제춤으로 확장해 예산이 늘기는 했지만 매 해 다르다. 그래서 올 해는 그간 저희 축제에 대해 평론해 주신 글을 다 모아 축제의 의미를 정리 하는 것으로 특별하게 구성해 보았다.

30년 간 주제를 살펴보니 불교적 가치관이 투영돼 있고, 명상, 치유 수행적인 면모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며 레퍼토리를 구성하는가?
박일규 감독님과 제가 이런 수행적인 춤을 지향하는 가치관이 맞아서 7년전부터 같이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규모보다는 밀도 있게 축제를 구성하자고 뜻을 모았다. 양보다 질로, 천천히 가더라도 차별화된 축제로 가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축제를 이어왔다. 앞으로 어떤 축제를 향해 나갈 것인가?
몸이 많이 아파 2년 간 제대로 홍보를 못했다. 31회 째부터는 더욱 밀도 있고 주제에 맞는 작업을 발굴하려 한다. 그간 김매자, 남정호 등 자기 색채가 있고 창작관이 선명한 분들을 모셨는데, 앞으로는 젊은 층 특히 우리 뜻과 맞는 자연과 수행적인 작업을 하는 무용가들을 모시려 한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오랜 기간 자비로 축제를 이끌었다. 국제 축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몇 팀 끼어 넣는 국제 축제로 해야 하는가? 제 생각은 내실 있는 국내팀으로 꾸려 처음 마음먹으신 대로 명상 축제로 가면 어떠실 지 의견을 여쭌다.
작년에도 2천만원을 사비로 채웠다. 매해 사비로 하는 것도 이제는 무리가 있고 공적 지원금을 받으려면 그나마 국제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이마저도 받기 어렵다. 딜레마다. 우리의 명상적인 방향성에 온전히 맞는 단체를 초청하고  싶으나 여러모로 어렵다. 앞으로 방향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고민하며 최선의 방향을 찾으려 한다.



박일규 예술감독



박일규 (예술감독·연출)
김혜라: 계룡산 춤 축제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소감과 함께 예술감독과 연출가로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박일규: 계룡산 국제 춤 축제와 연계된 30년이란 시간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치러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는 말이다. 계룡산 춤 축제가 ‘국제’ 축제로 변신하면서 이 축제의 연출진에 합류한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그게 7년 전이다.

적은 예산으로 국제 무용축제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텐데 해마다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나의 주된 임무는 해마다 축제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울림에 공명할 국내외 예술가들을 선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때론 거친 실수로 점철되기도 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용가들의 순수하고 겸허한 예술혼 때문이었다. 대중예술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초청된 무용가들은 마치 신에게 제물을 올리듯 최고의 예술성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들의 숭고한 헌신이야말로 이 축제가 30년 세월을 멈추지 않고 버텨 온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30주년인데 그 동안의 프로그래밍 중에서 특별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꼽아달라.
2020년 코로나 펜데믹이란 거대한 장벽과 맞닿았을 때 축제의 터전이 동학사에서 신원사로 옮겨졌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주지스님이었던 중하 스님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3년 간 사찰 전체를 숨 쉬는 이머시브 공연장으로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특히 장엄한 중악단을 배경으로 펼쳐진 명성황후의 춤사위와 천수관음전의 정적 속에서 피어난 제주 악가무에 실린 춤과 연주는 마치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관객들의 마음속과 공간에 새겨 넣었다.

예술감독으로서 관객들이 계룡산 국제 춤축제를 통해 어떤 것들을 얻어가길 바라는가?
깊어가는 가을 동학사 경내에서의 춤은 단순히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선 명상의 시간이다. 가을 햇살이 숲속 나무들의 흔들림을 따라 부서지는 순간,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의 노랫소리, 낯선 춤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등산객들의 시선 등등
이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계룡산의 자연 환경과 맞물리는 아티스트들의 독창적인 춤을 음미하는 것이다.


30년 이후의 계룡산 국제 춤 축제는 어떤 새로운 변화기 있을 지도 궁금하다.
관객들이 춤과 만나는 시간을 좀 더 늘리고 싶고, 초청 무용가들이 네트워킹을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 중이다. 오후 시간에 계룡산에서 춤을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night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다양하게 춤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관객들을 위해서는 명상을 곁들인 춤 프로그램과 아티스트와의 대화 등을 가질 기회를 마련하고, 초청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춤 메소드를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5. 11.
사진제공_김혜식, 신성호, 김혜라, 김희돈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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