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한영숙 선생 학술대회 / 즉흥춤 진단 라운드테이블
한영숙 탄생 100주년 · 즉흥춤축제 20주년 기념
학술 토론 현장
김혜라_춤비평가

두 달여 코로나19로 침체되었던 춤계가 조심스럽게 축제의 문을 열었다. 우리춤 유산인 한영숙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춤축제와 올해 20회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로 모처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의미 있는 해를 맞이하였지만 예기치 못했던 전염병 상황으로 두 축제의 규모는 축소되었고, 온·오프라인으로 참관할 수 있게 조정되었다. 여러 프로그램 중 한영숙 선생이 남긴 시대적 가치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학술대회(4. 23. 공공그라운드001 라운지)와 국내 즉흥춤의 변모 과정과 향방을 조망하는 라운드테이블(4. 24.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세미나실)의 토론 현장을 살펴보았다.




□ 한영숙춤, 역사 그리고 창조 


한영숙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공연기획MCT




 한영숙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채희완, 이애주, 정승희 세 분의 발제와 김영희, 김숙자, 박재희의 토론 그리고 이영희, 김영재 선생의 회고담을 중심으로 한영숙 춤의 역사와 철학, 미적특성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
 첫 발표자인 채희완(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선생은 우리춤의 근대 시기 활동들이 어떤 미적 체계의 위상을 차지하였는지 물으며 이른바 신무용과 전통춤이란 용어로 춤의 명칭을 국한하면 근현대시기 한성준의 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를 제기하였다. 또한 한영숙 춤의 언어와 표현매체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양식의 문제로 그녀의 창작세계를 밝혀야 근대시기 한영숙의 춤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40여 가지의 전통춤과 100여 가지 창작춤의 명칭에서 주제와 소재를 살펴봐야 한영숙의 창작적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살필 수 있으며 나아가 한국춤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연주자이자 연행자로서 그녀가 취했던 모든 것에서 근대적 의미로서 예술세계를 규명할 수 있기에 우리춤 근대시기 이행과정의 중요한 점검임을 강조하였다. 한영숙은 우리춤의 근대성을 얘기하는데 핵심적인 연구대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발표로 이애주(한영숙춤보존회장) 선생은 승무가 일반적으로 불교춤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철학적 춤으로써 승무 과장인 염불과 법고 당악을 해석하였다. 4세기경 고구려벽화에 불교적 내용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때, 불교는 우리 민족사상임을 문화적 증거로 짐작할 수 있다. 이와 연관 지어 한성준이 7세때 승무를 잘 춰 신동으로 불렸는데, 승무가 1600년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춤이라며, ‘승(僧)’이 승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불교를 뛰어넘는 모든 인간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승무는 사람의 춤으로 종교에서 자유로우며 종교차원을 뛰어 넘는 춤이라는 것이다. 삼재사상과 천지인 사상이 녹아든 승무는 직관적 사유를 통한 깨달음의 춤임을 재차 강조하였다.
 마지막 발표자인 정승희(대한민국예술원회원) 선생은 한영숙은 승무, 태평무, 학춤을 프로시니엄 무대예술형식으로 최적화시킨 분으로서 그녀의 춤에는 절제와 신명, 정중동의 미적 특성이 담겨있다고 했다. 태평무는 다양한 장단이지만 춤사위는 세분화되어 발짓과 멋의 극치를 보이고, 승무는 동작과 동작 간 연결 곡선을 통해 무한한 우주적 운동성과 자유성을 창조했으며, 절제미와 단아한 춤인 경기류파 살풀이는 한국춤의 정신과 기교가 집약된 춤이라고 발표 했다.




한영숙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공연기획MCT




 한영숙선생의 지인이신 이영희(가야금산조 보유자) 선생과 김영재(거문고 문화재 보유자) 선생의 증언을 통해 한영숙 선생의 소소한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국악예술학교 재직시절 추억들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박재희 토론자는 한영숙의 류파를 경기지역으로만 국한하지 말고 중부지역류파까지 아우르자는 논의를 했다. 김영희 토론자는 승무에서 일제강점기 김보남, 김천흥때는 당악이 없었는데 문화재 지정 당시 한영숙 춤에는 당악이 들어가 있었다며 승무에 당악이 문화재지정당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김숙자 토론자는 승무춤사위 중 학채 연구가 안 된 것과 승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를 질의하였다.
 시간 제약으로 발표자나 질의자의 문답이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부분이었고, 기존의 한성준과 한영숙 연구에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간소하게 정리 발표한 학술대회였다. 그러나 한영숙 선생과 세월을 같이 보낸 지인과 제자들의 선생을 향한 애정과 그리움만은 작다고 할 수 없는 인상을 얻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학술대회를 가질 기회에 신진 연구자나 새롭게 해석된 논문으로 의견을 나누고 한성준과 한영숙 춤의 역사적 의미가 현재진행형으로 재조명되길 기대한다.


□ 2020 오늘, 대한민국의 즉흥춤 진단과 향방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에서는 〈2020년 오늘, 대한민국의 즉흥춤〉을 주제로 국내외 즉흥춤을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한국 춤교육과 창작현장에서의 즉흥, 커뮤니티와 치유의 차원으로 확장되어가는 즉흥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조망하는 의견을 나누었다. 장광열(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과 김화숙(한국무용교육원 이사장), 최상철(중앙대교수), 국은미(안무가), 장은정(안무가)이 참여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한국의 즉흥: 창작교육의 밑거름

먼저 토론자들은 자신들이 처음 즉흥을 접했던 계기를 소회하며 무용교육현장에서 즉흥이 필요함을 나누었다. 김화숙 이사장은 1976년 석사논문(〈무용즉흥법에 대한 실험연구:중학교 일학년을 중심으로〉) 연구와 당시 금란여고에서 7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며 즉흥수업의 유용함을 알았다. 이어 1989년 논문(〈무용창작 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빛 적용에 관한 연구〉)을 쓰고 B.M.I.I. 프로그램(신체디자인:Body Design, 움직임의 활용:Movement, 즉흥표현법:Improvisation, 상상표현법:Imagination)을 개발하며 이를 토대로 45년간 교육현장에서 즉흥이 창작교육현장에 밑거름이 되는 접근법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주입식 기술교육이 아닌 시각, 청각, 촉각,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즉흥법은 학생들의 표현력을 극대화 시키는 열린 교육법이라는 것이다.
 최상철 교수는 미국 NYU 학생 시절 즉흥이 예술교육과 창작에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90년대 미국에서는 치료, 공연, 워크숍, 교육 등 다양한 부분에서 즉흥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누구든 참여했던 즉흥잼(뉴욕이스트빌리지)을 보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국은미 안무가는 89년 미국 ADF(American Dance Festival)에서 즉흥수업을 본 신선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금란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즉흥의 필요성을 느꼈고 자신의 안무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장은정 안무가는 즉흥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으나 즉흥춤축제에 참여하며 알아갔다고 했다. 또한 지금 시점에서 무용계에 즉흥이 교육과 작품 창작에 잘 연계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장광열 감독은 1999년 뉴욕의 세인트마크처치(St.Marks Church) 즉흥댄스 페스티벌을 취재하며 즉흥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일반인들과 어우러져 진행되는 기존의 축제방식과는 다름을 목격하며 후일 한국에서 즉흥춤축제를 기획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토론자들은 즉흥춤이 그동안 대학교육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피며 창작의 필수적인 접근법임을 논의했다. 김화숙은 2001년 기준으로 53개 대학 무용학과에 즉흥수업이 겨우 7곳에서만 개설되었으며 즉흥 과목명으로 개설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창작무용법이나 안무법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에 넣었으나 강사가 부족해 유지는 못했으나 지금은 ‘예술강사제’ 덕분에 초-중-고등학교에 즉흥수업이 있게 되었고 또 유아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존 무용교육현장에서 움직임의 즐거움을 알기 전에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며 오히려 중고등학생(예원예고) 친구들에게 더욱 즉흥수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최상철은 즉흥의 중요성을 알기에 중앙대학교에는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만, 어떻게 학생들을 자극시키고 내면의 창의성을 잘 끌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토론자들 모두 대학교육에서 즉흥의 중요성을 인지 못하는 현실이나 학과간의 권위적인 이유로 즉흥수업이 미개설되는 이유를 꼽으며, 대상에게 자극을 주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리더가 필요함에 공감했다.
 대학교육 현장 이외의 장에서 비전공자들과 즉흥춤이 활용되는 사례도 나누었다. 국은미는 자신이 운영하는 ‘스페이스소마’에서 몸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과 즉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무용수들에게 즉흥이 안무법이라면 비전문인들에게 즉흥은 표현의 수단이고 치유의 목적이다. 그래서 즉흥을 소매틱적으로 접근하면서 좋은 교육의 툴로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장은정은 2005년 움직임에 관심 있는 비전공무용인들과 함께 프로젝트그룹 ‘추자’를 결성하여 훈련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커뮤니티 댄스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는데, 훈련에 참여한 분들이 즉흥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장광열은 현재 축제 공모를 통해 비전문인들의 참여가 높으며 대학 교양수업에서도 즉흥수업이 개설되어 일반인들이 춤과 몸에 대한 흥미가 고무되고 있는 상황들을 소개했다.


해외의 즉흥-커뮤니티: 치유의 모습으로 만나는 즉흥

최근 커뮤니티 즉흥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50-70대 전문직종 즉흥춤 비전문무용인들인 소미 휴 댄서스, 성남 신흥동 골목에는 다문화 가정, 노인, 지역주민의 모임, 무력발전소 그룹이나 제주도 상가리마을 토박이 주민들과의 춤수업 사례가 소개되었다. 장은정은 즉흥 메소드의 순기능 사례를 소개하였다. 자신이 참여했던 생명제한환우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치유 만남, 가정폭력여성들과의 몸치료 과정, 장애아를 둔 부모들을 위한 치료 사례를 통해 리더이자 헬퍼는 참여자들에게서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봐주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도록 이끌어 내야 하는 점을 강조했다. 장광열은 부산에서 성매매여성들과의 즉흥작업이 단순한 커뮤니티적 접근이 아니라 치유의 단계로 발전하여 당당하게 부산즉흥춤축제에서 공연을 한 실천적인 사례도 나누었다.
 토론자들은 해외의 즉흥 사례도 나누었다. 장광열은 프랑스 몽펠리에페스티벌의 경우를 소개하며 춤전문가들을 위한 맞춤형의 형태나 전문 직업군들의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뉴욕시의 경우는 동성애자, 에이즈, 홈리스 같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자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으로 즉흥춤이 실행되고 있으며, 마크모리스무용단의 경우도 파킨슨병이나 치매환자에게 무용치유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즉흥춤이 전파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타이완에서 즉흥춤축제가 개최되기 시작했고, 홍콩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컨텍즉흥 포루투갈 축제나 안나핼프린명상축제, 유럽피안댄스하우스에의 프로그램에도 즉흥춤이 공식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국내 전국 260개가 넘는 문예회관에서도 즉흥프로그램이 활용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화숙은 미국(National Dance Education Organization)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을 소개하며 교육자와 전문가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도 무용 인구가 팽창하였기에 즉흥 지도자가 나와야 하고 서울국제즉흥춤 축제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길 당부하였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 20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기교가 아니라 마음을 이끄는 즉흥이어야

토론자들은 즉흥춤의 문제와 해결방안도 짚었다. 장광열은 여러 진행 중인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문무용가들이 단순히 수입을 올리려고 투입되는 경우를 꼬집었다. 장은정도 현재 즉흥춤이 과도기라 보며 즉흥춤은 절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주는 것인데 이를 경제적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 점에 동의했다. 예를 들면 즉흥춤 및 커뮤니티댄스가 사업이 되었을 경우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어려움과 경제적 이유로 즉흥에 전문성이 없는 무용인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김화숙도 즉흥이 결과물을 보여주는 공연처럼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성과보다는 마지막 과정(수업) 정도만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몸과 춤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도구로서 즉흥춤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기에 시야를 넓혀 사회교육으로 확산하여 사회에서 춤의 역할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은미는 공연으로 올리는 즉흥이 보여지는 것과 보이는 것에서 방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열린 구조의 시각으로 볼 때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최상철은 이제는 즉흥춤 축제에서 관객과 참여자 구분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며 워크샵 중심의 축제, 다시 말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로 방향을 설정해 보는 것도 20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즉흥춤이 단순한 형식적 접근이 아니라 참여자 내면의 자신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발견하고 공동체에 발을 내딛는 몸의 매개체로서의 역할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춤환경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춤이 삶의 현장에서 상대의 몸과 마음을 읽어주고 자존적인 몸과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로 확장할 수 있는 입체적인 방법론 연구와 실천이 필요해 보인다. 20회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노고와 앞으로 지속될 축제가 대승적인 차원의 패러다임이 실현되는 통로로 지속ㆍ전환되길 기대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2020. 5.
사진제공_공연기획MCT,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