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영국 로이터 통신의 탐사취재에 의하면, 영국 과학자들은 올해 초 이미 코로나19에 대해 영국 정부에 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억제되지 않고 마냥 방치한다면, 영국인의 80%가 감염되고 100명 중 1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존슨 총리는 “영국은 매우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영국에는 훌륭한 NHS(영국의 국가 보건의료 시스템)가 있고, 훌륭한 검사 체계가 있고, 질병의 확산을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감시 체계가 있다”고 밝히며 이들의 경고를 등한시하였다. 그러나 백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집단 감염 정책을 고수하였으나, 사태가 급하게 돌아가자, 영국 정부는 서둘러 방역 대책을 마련하느라 우왕좌왕하였다. 이러는 동안 그러한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되어, 2020년 4월 말 현재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4만 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1만 9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자신과 찰스 왕세자까지도 감염돼 영국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긴 바 있다. 현재 영국 미디어들은 사태의 초기부터 비상하게 대응한 한국의 사례와 비교하며, 영국 정부의 안일하고 너무 늦은 대처에 영국인의 비난이 급등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3월 23일 총리가 영국 주요 도시에 엄격한 이동 제한(lockdown)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마치 준비나 하였다는 듯이, ‘코로나19 지원(Covid-19 support)’라는 이름의 문화 예술 지원 특별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사태 동안 예술계는 물론 박물관 및 도서관과 같은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조직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 기간 동안 위기에 처해 있는 예술 단체와 개인을 위해 1억 6천만 파운드의 비상지원 자금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절차나 규정 등을 간소화하여 최대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원활한 지원 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
영국 예술위원회 로고와 복권 기금 로고 |
이 지원금은 대부분 2020년과 2021년 동안 국가 복권(National Lottery)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금과 창작 개발 기금(Developing Your Creative Practice) 등으로 조성한 것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영국 예술위원회는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금을 쏟아부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지원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지원 프로그램으로 나뉘는데, (1)국가 지정 단체들(National Portfolio Organizations, NPO)에 9천만 파운드(한국 돈 1390억 원 상당), (2)이들 단체 이외의 예술 단체에 5천만 파운드(한국 돈 760억 상당), (3)개인 예술가와 문화 예술계 종사자에게 2천만 파운드(한국 돈 305억 상당)가 각각 배정된다.
이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국가 지정 단체들(NPO)의 경우를 중심으로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 예술위원회에 따르면, 국가 지정 단체(NPO)는 영국 예술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일정 기간 지원하는 예술 단체들로 총 842개의 단체가 수혜받는다. 현재 국가 지정 단체(NPO)로 선정된 단체들은 그 기간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원을 받는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점은, 기존의 지원이 있다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긴급지원을 추가로 받게 된다. 국가 지정 단체들이 ‘코로나19 지원(Covid-19 support)’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 받는 금액을 대략 계량적으로만 계산하여 보았을 때, 한 단체 당 1억 6천5백만원 가량 돌아가게 된다. 이들 중 무용과 다른 예술 장르가 혼합된 것이 아닌 순수 무용 분야는 모두 65개 단체인데, 그러므로 국가 지정 단체 가운데 순수 무용 분야의 긴급 지원금은 107억 원 정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춤과 타 장르와 혼합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지원금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는 무용계 전체를 위한 지원금이 아니라 영국 예술위원회가 선정한 국가 지정 단체들(NPO)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국가 지정 단체들(NPO)에 속하지 않은 단체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며, 이들 단체들도 영국 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지원금 신청을 할 수 있다. 이들 단체의 경우 각 단체당 최대 지원금은 3만5천 파운드(한국 돈 5천 3백만 원 정도)이다. 또한 단체에 속하지 않은 개인 예술가의 경우는 세 번째 경우로 이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으로 본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이 경우 지원금은 2천 5백 파운드(한화 3백 81만원 상당) 정도이다. 신청서는 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 할 수 있으며, 그 양식은 국가 지정 단체 이외의 단체(non-NPO)의 경우를 살펴보면 3페이지에 지원 단체 소개, 코로나 19 종식 이후 계획, 지원 요구 금액과 같은 총 9가지의 비교적 간단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의 예술계를 위한 긴급 지원금은 예술위원회 집행위원회 판단과 의결을 통해 지원이 결정된다. 먼저 지원 결정은 장애인 예술 단체와 예술가는 지원 대상의 최우선 순위에서 고려된다. 장애인 예술 단체 이외의 경우는 각 단체와 예술가 개인이 재정적으로 얼마나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소재한 지역의 예술 문화 참여도 빈약 정도 등등을 중심으로 총 5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과 국가 지정 단체(NPO), 그리고 국가 지정 단체 이외의 단체(non-NPO), 그리고 지자체의 자문을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호응하여, 영국 정부 산하 영국무용협회인 원댄스 유케이(One Dance UK)는 그들의 홈페이지(www.onedanceuk.org)에 디지털 댄스 이벤트 캘린더(Digital Dance Events Calendar)를 통해 무용가들의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이벤트 달력은 춤웹진의 춤캘린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현재 영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공연들을 취합하여 대중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연결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에 참여하고자 하는 무용가들은 작품 제목, 작품 소개, 장소, 일정 등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입력하면, 24시간 내에 원댄스 유케이 측의 승인 절차를 거쳐, 이 이벤트 달력에 관련 스트리밍이나 영상이 링크가 된다. 이를 통해 코로나 19 사태 가운데 영국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다양한 춤 공연, 교육, 강연 등등을 실시간으로 유료 혹은 무료로 접근할 수 있다. 4월 2째 주부터 4월 말까지 이곳에 링크된 프로그램은 모두 190개로 댄스 교실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공연과 강연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영국 무용계의 중심 협회라 할 수 있는 원댄스 유케이의 프로그램은 이러한 협회가 왜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예술 활동과 춤 생태계를 영국 무용가들 스스로가 유지 보존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One Dance UK Digital Dance Events Calendar |
영국 예술위원회의 이러한 민첩하고 대범한 정책은 예술위원회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 사태를 통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을 지원하여, 가능한 한 영국의 예술 문화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함이다. 영국 정부의 코로나 19에 대한 안일한 대처와 크게 대비되는 예술 문화 보호 프로그램인 ‘코로나19 지원(Covid-19 support)’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역시 원댄스 유케이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으로나마 춤과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협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하다.
서정록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