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호텔사회〉展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화려한 휴가〉
이상적인 협업의 춤현장
김혜라_춤비평가

최근 춤과 장르 간 협업은 일상화되어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특정한 공간에서 빈번하게 시도 되고 있다. 특히 역사의 흔적이 깃든 장소에서의 공연은 고유의 공간적 의미가 부여된다. 독일 에센(Essen)의 탄광소를 개조한 졸페라인(Zollverein)이나 영국의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모던(Tate Modern) 갤러리,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 비축기지나 문화역 서울 284의 공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와 같은 특정 장소 공간을 잘 활용한다면 작품의 의미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무대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 난 곳에서 다른 장르와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낸다면 잠재적 춤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상적인 협업의 사례로 〈호텔사회 Hotel Express 284〉(1.8~3.1. 문화역 서울 284) 전시와 앰비규어스 댄스의 〈화려한 휴가〉(2.2.)를 꼽을 수 있다.




〈호텔사회 Hotel Express 284〉 전시 중인 '문화역 서울 284' 외관 ⓒ김혜라




 〈호텔사회〉 전시가 열렸던 문화역 서울 284에는 많은 관람객을 볼 수 있었고, SNS를 통해 예약한 사람들과 이동 중에 잠시 들른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성의 중앙역이자 옛 서울역이었던 맥락 안에서 과거 철도역과 연계된 ‘여행 관광 안내소’ 설치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상기시켜, 1876년 개항 이후 여행의 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호텔숙박 문화가 유입한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은 9개의 테마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객실부터 이국적인 커피문화를 즐길 수 있었던 ‘익스프레스 284 라운지’, 워커힐 호텔에 생긴 최초의 수영장과 바, 호텔이 선도했던 미용문화가 재현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1920년대 이후 유흥문화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관, 극장식 식문화 공연장인 ‘그릴 홀’과 ‘살롱 도뗄’에서 실연했던 수많은 역사적 흔적이 깃든 공연물의 팜플렛도 볼 수 있었다. 각 방마다 설치작가, 영상작가와의 협업으로 재해석 한 공간들은 근대 신문화 다시 말해 여가 문화 플랫폼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호텔 입구(왼쪽), 내부 라운지(오른쪽) 재현 ⓒ김혜라




 이 전시와 협업한 앰비규어스의 〈화려한 휴가〉는 〈호텔 사회〉 전시 기획 테마와 문화역사에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그들의 춤은 여행의 설렘, 달콤한 휴가라는 내용으로 전시관 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진행되었다. 호텔 객실 복도에서 시작해서 화려한 의상, 썬글라스, 캐리어를 장착한 뒤 댄서들은 신나게 기차역으로 출발한다. 관객들과 뒤섞인 기차역 라운지에서 신나게 추는 춤에서 휴가의 설렘과 기대가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화려한 휴가〉 ⓒ김혜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호텔 수영장으로 이동한 댄서들은 컬러풀한 비키니를 입고 수영장과 바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퍼포먼스를 하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관객들은 댄서들이 방문하는 각각의 테마 공간을 따라 다니며 이들의 화려한 휴가 기분에 어느새 동참하게 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화려한 휴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화려한 휴가〉 ⓒ김혜라




 그러나 그들의 휴가는 길지 않았고 댄서들은 말끔하게 슈트로 갈아입고 일상으로 돌아온 듯 관객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비즈니스를 한다. 복도 한 쪽에 전시된 조형물과 같은 느낌이랄까? 댄서들의 움직임에서 이전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화려한 휴가의 끝을 예상하게 된다.
 마지막 장소인 그릴홀에서 앰비규어스만의 위트 있는 개성이 발휘되는데 라벨의 ‘볼레로’를 해석한 춤이 그것이다. 절도 있는 동작과 쉬운 리듬감으로 현란하게 구성된 춤은 간이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조명 받게 된다. 과거의 공연문화를 주름 잡았던 옛 무대에서 자신들의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해 숨이 차올라 쓰러질 때가지 그들은 움직인다. 춤추는 것이 일상인 댄서들과 이를 즐기는 관객이 공존하는 일상과 휴가(여행)의 현재적 공간을 우리 모두는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화려한 휴가〉 ⓒ김혜라




 앰비규어스의 춤 스타일은 〈화려한 휴가〉에서 이전의 작업들에서 흔히 봐 왔던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간의 테마별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한 상황을 춤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시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시와 춤의 독립된 개성은 물론이거니와 두 장르가 만나 협업의 장점을 배가시켜주는 공연이었다. 춤을 기대하지 않고 온 듯한 관객들은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로 전시를 두 배로 즐긴 듯하다. 옆에서 함께 관람한 젊은 친구들은 “이게 현대무용이야?”하며 호기심 섞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영상을 찍고 자신들의 SNS에 올리는데 열심이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잠재적이자 가능성 있는 춤 관객을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앰비규어스의 협업은 자칫 박제될 수 있었던 근대적인 테마 전시를 춤으로 현장을 매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시 말해, 1920년대 초창기 호텔을 통해 소통했던 사회문화적 교류의 생동감과 여행의 설렘을 역사적인 공간에서 환기시킨 점이 기억할만하다. 다른 장르에 보조를 맞추는 춤 협업이 아니라 장르 간 균형감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작업에 안무가들이 참여하길 바란다. ‘협업’ - 지각 있는 선택과 활용이 요구되는 때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0. 3.
사진제공_김혜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