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다음세대를 견인할 “차세대”를 키워내는 일은 춤 분야의 숙제이자 희망이다. 그 중 한국 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열전’이 매개체 중 하나이며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기존 아야프(AYAF)를 개편하여 2016년부터 매년 시행된 이 사업은 만35세 이하 즉 신진 안무가들에게만 열려있는 등용문으로 시스템적 지원 장치이다. 이는 단순 재정지원을 넘어 1년 동안 작품 소재 개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멘토링, 워크샵 등을 통한 단계적 인큐베이션 시스템이다. 작년(2018)에 선정된 다섯 발표작은 김요셉의 〈창백한 푸른점〉(19.2.16~17,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과 이주성의 〈전라도〉, 전보람의 〈공간이면-긋고 넘다 그리고 보다〉(19.2.22~23,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와 김봉수의 〈조화: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더블빌로 그리고 김이슬의 〈Cross_eye HD〉 및 〈비하인쥬:Behind You, Babe〉(19.3.22~24,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이다.
먼저 김요셉의 〈창백한 푸른점〉은 어항 속 물고기에 자신의 현존을 투영, 전지적인 신의 시점으로까지 관점을 확장하여 고민한 작품이다. 무대 한쪽에 전시된 어항 속 공간이 치환된 무대에는 DJ가 시연하는 전자음악으로 현장에 활기를 주었고, 한쪽 프레임(야광)을 올렸을 뿐인데도 색다른 공간미가 연출되었다. 댄서들은 연약한 감성으로 심리적 갈등을 은유하기도 하고 한국적인 거친 춤사위로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안무가는 움직임 훈련에 주력한 것으로 보였고 음악, 의상, 무대 사용 등을 전반적으로 꼼꼼하게 신경을 쓴 흔적도 보였다. 반면, 자신의 생각만큼 다각적인 시각과 관계성이 읽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만의 방에 시선이 여전히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도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작품 전달력이 성실함에 비해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김요셉 〈창백한 푸른점〉 ⓒ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두 번째 작품인 이주성의 〈전라도〉는 “지역이름이 아니라 전라(벗은 몸)라고 얘기하며 너무 주의 깊게 작품에 집중하지 마시기”를 당부한다. 안무가는 도시를 순례한 여정(40개의 육교와 80개의 지하도를 오르내리고.....)을 건조한 일상과 막대기, 옷걸이 같은 생활 소품들을 사용해가며 무심하게 무대에 담아낸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려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전라(全裸)라는 표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인데, 여기에서 작품의 애매모호함이 노출되는 점이 아쉬웠는데, 예를 들면 확실하게 코믹하지도 않고 제시된 성(性)적 의미가 순례의 지난한 여정과 연관성을 보여주지도 못한 점이 그것이다. 물론 안무가의 일상적인 실천이 수반된 춤은 잘만 다듬어져 체화된다면 개성으로 각인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허탈한 장면과 맥락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만의 춤 세계관이 다듬어지는 과정으로 앞으로 발전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주성 〈전라도〉 ⓒ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세 번째 작품인 전보람의 〈공간이면(空間裏面)-긋고 넘다 그리고 보다〉은 고무줄을 이용해 선, 면, 형태적 이미지의 확장을 통해 서정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무대에 늘어진 여러 가닥의 고무줄은 순식간에 동양화의 한 정경이 되기도 하고 망망한 바다의 정취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미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 광속의 속도감으로 실연되고 있는 방식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소재와 예상 가능한 이미지들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전보람은 소박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발휘했고 형태적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댄서들의 역할을 좀 더 역동적인 주체로써 보완하기만 한다면 이 작품은 소극장에 적합한 관객과의 정서 교류 면에서 풍성한 해석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전보람 〈공간이면(空間裏面)-긋고 넘다 그리고 보다〉 ⓒ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네 번째로 김봉수의 〈조화〉는 인간의 몸에 축척된 기억에 기인한 내밀한 관계성을 집중력 있게 풀어내었다. 김봉수와 양지연의 농밀한 움직임은 무의식과 상상의 경계를 몸짓으로 표현하였고 설치된 조형물과 함께 유연하게 진행되는 3인무는 사회적 공간이자 현실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상징물로 작동하였다. 움직임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잘 구성되어 무대의 질감이 켜켜이 중층적으로 쌓이는 효과로 인해 안무가의 의도 이상으로 춤적 무드가 잘 발휘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자의식에 충실한 개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지만, 애써 안무가의 사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쉬운 표현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김봉수 〈조화〉 ⓒ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마지막으로 김이슬의 〈Cross_eye HD〉 〈비하인쥬:Behind You, Babe〉는 장소를 이동해가며 공간에 설정된 관계와 시점을 다각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한편으로 프로시니엄 무대의 수동적인 시각이 아닌 입체적인 관점으로 사물과 관계 보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품 구성이라 할 것이다. 관객과 즉흥적으로 프레이즈를 만들어 가며 교감하려 했고, 카메라 앵글로 공간의 이면과 우리가 보지 못했던 면을 댄서들과 함께 보이려 한 부분이 돋보였다. 여기에서 관객은 전체 공간속 일부가 되어 작품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참여하기를 안무자는 의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공간적 역발상을 탐구하려 한 안무가의 애쓴 흔적이 보이긴 했으나 소극장의 특성상 의도만큼 장소 특정형 성격이 잘 부각되지는 않았다. 개선사항으로 다음 무대는 보다 넓은 공간에서 표현 한다면 한결 나을 듯하다.
김이슬 〈Cross_eye HD〉 〈비하인쥬:Behind You, Babe〉 ⓒ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전반적으로 다섯 안무가들은 ‘자아 정체성’에 집중하여 작품을 구상하고 표현하였다. 과대한 무대 장치나 오브제 그리고 개념에 매몰되지 않아 안무가의 춤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평가 할 만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는 칭찬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안무가들이 협소한 시각에 머물러 있는 점은 아쉬웠다. 조금더 자신의 틀에서 나와 사회와 다른 분야의 변화와 교류에도 민감해지길 바란다.
이 사업이 지향해야할 방향성이라고 보는 ‘젊은이다운 작품’을 기대한 평자로서는 “차세대열전은 35세 이전 젊은 안무가들이 한 번 거쳐 가는 통과의례인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다섯 안무가들의 작품은 수고가 느껴지긴 했으나 모범생다운 발표회이지 “차세대”다운 열기와 방향성이 충분히 전달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지난 3년여 동안 이 행사에서 제기돼 온 “상상력 충전과 전달력 함양이 과제”(김채현, 2017. 3. 춤웹진), “발상의 전환, 소극적인 실험성”(장광열, 2018. 2. 춤웹진)이라는 지적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차세대 열전”에 기대하는 바는 기성세대와는 차별되는 신진 안무가들만의 완숙하진 않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와 시선을 가지고 실험성이 충만한 도전과 열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작품을 감상하러 다니면서 퍽퍽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예술계, 특히 춤 분야의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는 빈 객석이 눈에 띄어 한숨짓게 하였다. 이런 현실과 아울러 심지어 동료의 작품에서도 자극과 도전을 받지 못해 극장에서 발길이 멀어지는 현 춤계의 열악한 상황에서 공공지원 시스템이 인재를 찾아내어 육성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한국예술아카데미도 조금 더 책임감과 방향성을 갖고 차세대다운 성과와 기대를 고민하며 이 사업을 진행·발전시키는 데 매진하기를 바란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