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삶의 두께가 더해질수록 사람과 물건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쉬이 피로를 느끼곤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따지면 모든 것이 흔하게 넘쳐나는 세상이라 매순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문제지만, 비정상적으로 고공행진 하는 집값 때문에 내 몸 하나 누일 자리 하나 마련하는 데도 평생을 두고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도시 생활에서 잦은 이사를 하다보면 그런 압박감을 견디고 선택해 온 것들이라도 효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에 한탄을 하게 된다. 적지 않은 노력과 대가를 치르고 내 삶의 범주에 들여놓은 것들이 실제 머무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예민한 감각을 애써 죽이며 의도치 않게 관계를 기계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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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프로젝트 〈사물들〉 ⓒ길 프로젝트 |
하지만 1층으로 옮겨 진행된 본 공연은 다소간 부정적일 수밖에 없던 탐닉에 대한 시선을 보다 따뜻하게 돌리고자 한다. 아빠양복을 빌려 입은 듯 과장된 무용수들의 실루엣은 안무가의 전작 〈Deformation(2014)〉(평자의 리뷰 춤웹진 2014년 6월호 참조, http://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145&board_name=review)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전작에서 헐렁하게 큰 옷과 몸 사이의 허전한 간극이 온기에 대한 갈망을 낳았다면, 이번에는 구제 옷을 겹쳐 입음으로써 허기에 대한 포만감을 채우는 행위를 보여준다. 오랜 손때가 묻어 보이는 낡은 옷 속에 깃든 세월과 추억의 무게까지 더해져, 인간의 소비행동은 결국 사물 그 자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인간의 체온을 찾아 나선 것임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지하 좁은 구획 은밀한 공간 속 사물들에 포섭‘당해’ 작아보였던 인간은 이제 각자 소우주의 중심이 되어 자기에게 필요한 사물들을 끌어당기고 적당한 거리와 질서를 부여한다. 여행용 수트케이스와 각종 운동복과 소품들은 번듯하게 차려진 사무실 속에 기거하는 직장인이 아닌, 나름의 역마살이 있는 무용수들의 은하계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일상 속에 수없이 치러지나 그 자체로는 어떤 예술적 의미를 담을 수 없는 반복적 행동들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 묵묵히 땀과 손때, 체취의 흔적을 거두며 위성처럼 곁에 있던 것들. 하지만 그것들은 이 무대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개인의 생활과 관계 속에 얼마나 크게 개입하고 있는지 정체를 드러냈다. 사소한 사물들이 더해지거나 빠짐으로 인해 우리 삶의 이야기, 재미와 의미는 얼마나 달라지는가.
예를 들어 무용수가 스스로 몸을 구부려 탁자를 대신했을 때, 그저 그 자리에 두고 쓰는 것인 줄만 알았던 무생물이 실은 나의 몸과 생각을 적지 않은 시간 떠받치는 또 하나의 분신임을 알게 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현대인을 설명하는 명제가 될 만큼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적당히 쓰다가 또 버리는 행위에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다. 소로우라던가 니어링 부부, 혹은 TV에 나오는 ‘자연인’들 마냥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지 않는 이상 그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쯤 사물을 의인화시켜 바라본다면, 또 작품 안에 그럴 듯한 오브제로 꾸민 것만 들여놓지 않고 우리 삶 속 날 것 그대로의 물건을 들여놓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와 이미 한 몸으로 엉겨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사물들을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 같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