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마음으로 읽는 역사-유관순 편〉(1월 25~27일, 알과핵 소극장)은 요즘 한창 인기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형식을 공연장에 도입하려는 시도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가에서는 여행에 수다를 곁들여 강의 아닌 강의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낸 포맷까지도 진작 등장했지만, 방송처럼 물량공세와 편집기술이 동원되기 어려운 공연 현장에서는 렉처 콘서트 정도가 그나마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다. 이번 〈마음으로 읽는 역사-유관순 편〉이 조금은 독특한 결을 가진 것은, 무용수들 스스로가 나서 춤 자체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는 렉처가 아니라 역사교육 강사를 무대에 세워 강의를 진행케 하고 춤을 교차시켰다는 점이다.
다만 기존의 렉처 공연들이 춤(특히 창작춤)의 난해함을 이유로 관객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고자 스스로 말하는 형식을 취해온 목적이 분명했다면, 〈마음으로 읽는 역사-유관순 편〉은 그 포장의 대상이 춤인지 역사인지 아리송하다. 당의정(糖衣錠)은 단맛을 입혀서라도 꼭 먹어야 할 효용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인데, 부채춤, 살풀이만이 한국무용의 전부가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만 놓고 보면 당의는 역사교육임이 분명하나, 딱딱한 교과서적 지식 이상의 것을 전달하기 위해 춤을 결합시켰다는 지점을 보면 춤이 당의가 되고만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읽는 역사 –유관순 편- ⓒ옥상훈 |
일단 춤의 수준은 합격점을 상회하였다. 〈심연〉 〈숨그네〉 등으로 한국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활동의 기대주로 꼽히는 안무가 장혜림은 기획의도를 십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놓은 듯 보였다. 역사의 순간(특히 비극적인)을 잡아내 한(恨)풀이의 단골 소재로 삼는 무용제 참가작, 지역무용단 레퍼토리의 빤한 흐름에서 벗어나 이지적이고 단단한 호흡으로 한국여성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젊은 춤꾼들이 하늘거리고 여리여리한, 감상적인 춤만을 선호하면 제 아무리 한국춤의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들 소용없는 일이 될 터인데, 장혜림은 깊은 데서부터 호흡을 끌어오면서 현대적인 경쾌한 스텝과 직선적인 힘을 담은 움직임까지 고루 잘 챙겼다. 네 명의 무용수(손가빈, 이고운, 이승아, 이정민)는 15분씩 주어진 짧은 무대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표정으로 유관순과 함께한 동료들, 그리고 현재 우리 안에 남아있고 이어져야 할 유관순‘들’의 모습을 의미 있게 담아내었다.
ⓒ김채현 |
춤이 이렇게, 비록 작품의 소재는 ‘유관순의 삶’이라 하더라도 실제 주인공은 우리가 되어야 함까지 읽어내며 메시지를 전달한 데 비해 그것을 감싼 강의는 상당히 허술한 모양새를 띠었다. 무대매너와 발성이 안정된 배우를 기용할 것인지 현직 강사를 통해 강의의 현장감을 중시할 것인지는 제작진의 선택이겠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단순히 네임 밸류만 놓고 강사를 섭외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강사의 정돈되지 않은 무대 위 행동은 전문연기자가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공연의 절반 축을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성도에 마이너스가 될 만했고, 그가 담아낸 콘텐츠 또한 위인으로서의 유관순 읽기에서 더 진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역사와 춤을 연결하려는 제작진이 주문했을 마지막 멘트는 리플렛에 쓰인 이상의 고민을 담아냈어야 마땅했다.
4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은 자칫 공연이 ‘쉽다’는 인상을 줄지 모르지만, 각종 에듀테인먼트의 범람으로 높아진 관객의 취향을 맞추기엔 한계가 있다. 중학생 정도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내용은 아무리 쉽게 푼다 해도 용어자체가 초등학생 이하엔 전달의 어려움이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성인관객의 욕구에는 못 미친다.
ⓒ옥상훈 |
열심히 만들어도 롱런하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해 사장되어 아까운 춤 작품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모처럼 활로를 개척해볼 만한 아이템이 등장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역사교육과 춤 감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은 두 가지를 물리적으로 한 데 결합한다고 바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번 〈마음으로 읽는 역사-유관순 편〉의 경우 보다 품격 있는 역사 강의가 수반되지 않으면, 대상에 따라 차별화된 콘텐츠로 명확성을 기하지 않으면 역사교육과 춤 감상 어느 쪽이든 당의정으로서의 명분을 세우기 어렵다는 과제를 남겼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