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계 안팎의 여러 사안들을 제기하고 공론화해온 한국춤비평가협회가 가을 포럼을 개최했다. 2018년 11월 27일 오후 3시부터 약 3시간동안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오늘의 춤 창작 경향과 비평”을 주제로 세계의 춤문화에 대한 관심 속에서 글로벌한 춤 창작 현장과 동향을 살피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현장에는 무용수, 안무가, 기획행정가, 연구자, 비평가 등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은 이종호 춤비평가가 사회를 맡았다. 발제에 앞서 채희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은 “올해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사회적 물결 속에 문제의식을 갖춘 발언을 해왔고 이제는 춤 본연의 것을 들여다보는 비평가의 임무로 다시 돌아왔다. 세계 춤의 현상, 조류, 향방을 창작경향이라는 이름으로 살펴보고 비평적 시각으로 이해하는 자리다. 모처럼 마련한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주시길 바란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춤비평가 김혜라는 “서유럽 춤 축제에서 짚어보는 최근 유럽 컨템퍼러리 춤 경향”을 발제했다. 최근 유럽의 춤 경향이 다양성 혹은 다가치성에 주목하여 특정한 경향으로 가름할 수 없음을 전제하였다. 이러한 “다양성의 배경은 다원적인 가치가 통용되는 개방성과 아방가르드한 현대춤의 속성을 지지하는 유럽의 분위기가 그 동력”이라면서 3년간 유럽에 거주하며 살펴본 춤 작품 가운데 공연에서 표현하고 있는 현상을 중심으로 최근 유럽 춤의 경향을 짚었다.
첫째, 언어 사용의 비중이 확대되어 ‘말, 이야기의 비정상적 출현’이 다수 포착되었고 둘째, 비현실적 공상의 영역을 ‘그로테스크한 표현’으로 조명한 작품이 증가했으며 셋째, 춤 본연의 성격에 천착하여 ‘움직임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덧붙여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두 가지 창작경향으로 스펙터클한 환영이 가득한 융·복합 작품들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유럽 춤축제에서 나타난 춤 역사에 영향을 미친 안무가들의 작품 재현과 아카이빙의 실현을 언급하며 문화적 자긍심과 보존을 향한 노력이 우리 춤계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식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서정록 한예종 무용원 교수는 “아시아의 현대춤과 국가주의”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태국과 타이완에서 나타난 국가정체성을 강조한 춤을 조명했다. 특히 각 나라의 국가정체성을 반영한 주요사례로 태국의 피쳇 클런천과 타이완의 클라우드게이트무용단의 작품이 꼽혔고, 이러한 춤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태국의 경우 왕의 신성을 강조하는 “탐마라차”와 “테와라차”를 통해 강력한 국민통합을 이루려한다고 보고 이는 태국의 궁중무용인 콘(Khon)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태국의 창조신화를 줄거리로 하는 콘은 왕의 신성을 상징하며 태국문화의 정수이자 국가정체성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서, “피쳇 클런천은 오리엔탈리즘 시선으로 콘을 재해석하여 ‘태국전통의 현대화 및 세계화’를 꾀한다”고 밝혔다.
타이완은 대내외적으로 주권과 국가정체성이 심각하게 도전받는 가운데 중국 본토에서의 분리·독립과 자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감지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이완의 최고 안무가라고 할 수 있는 린화이민이 이끄는 클라우드게이트무용단의 최근 작품들은 초기의 중화적인 색채를 벗고 타이완의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녹여낸 것”으로서 상세히 소개되었다.
발제에 이은 지정토론 시간에는 주제를 다각화하는 질의와 포럼 참석자들의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정다슬 재독 현대무용가는 “서유럽 춤 축제에서 짚어보는 최근 유럽 컨템퍼러리 춤 경향”에 관하여 △‘다원예술’로 구분되고 있는 장르의 명확한 정의와 서유럽 ‘퍼포먼스’ 개념과의 차이점, △아카이빙 가치가 있는 국내 컨템포러리 춤 유산의 예시와 플랫폼 형성 방식, △유럽과 다른 카테고리로서 동북아시아의 컨템포러리 춤에 대해 발제자의 의견을 묻는 한편, 참석자들의 공동논의를 이끌었다. 덧붙여 정다슬은 언어 사용이 늘어난 원인으로 발제자가 언급한 ‘제한된 표현의 확장, 담론의 한계 극복’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서유럽 예술의 지원제도나 교육 시스템의 변화도 춤무대 위에 언어를 안착시킨 주요원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비전문 퍼포머가 출현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퍼포머의 다양화 현상이 또 하나의 최근 서유럽 컨템포러리 춤 경향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김용철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아시아의 현대춤과 국가주의” 발제에 대해 아시아 춤에 대해 천착해온 무용가로서 한국 춤 지형도 속에서 방향과 흐름을 고민해볼 수 있었던 유의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태국의 전통을 현대화, 세계화하는 데 있어서 서구적 시각으로 재해석된 작품과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 나타나는 차이점과 원인을 질의하여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들을 제기하는 한편, 민족성을 드러내는 아시아 춤작품들이 비슷한 문화권에서보다 서구에서 보다 더 관심 받는 현상을 지적하며 논의를 폭넓게 했다.
예정되었던 공동토론 “한국 창작춤에서 보이는 새로운 미적 징후들”은 시간 관계상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 채 내년에 있을 차기 포럼을 기약했다. 이번 한국춤비평가협회 가을 포럼의 발제문은 <춤웹진> 2019년 1월호에 게재 예정이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