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문화 새 흐름  3. 실버댄스
건강과 행복 지킴이, 은빛 춤 물결
김인아_<춤웹진> 기자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곳곳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댄스열풍이 불고 있다. 성동구에 자리한 사근동노인복지센터에서도 춤의 열기가 뜨겁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센터의 강당은 현란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으로 가득 찬 무도장으로 변신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60대 이상 어르신들이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몸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솜씨를 뽐내며 춤 삼매경에 빠진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둥글게 그룹을 지어 마주보거나 이곳저곳에서 리듬에 몸을 맡긴 채 90분 동안 신명나는 막춤이 이어진다. 무도장은 이내 발 디딜 틈 없이 메워진다. 한 판 흥겹게 춤을 추다 쉼이 필요하면 강당의 가장자리에 길게 배치돼있는 의자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신명나는 실버댄스의 장, ‘9988 청춘클럽’

어르신 건강댄스 프로그램 ‘9988 청춘클럽’의 춤판은 흥과 멋 그 자체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사회관계망 형성을 돕기 위해 일률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참여형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성동구가 기획한 이색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0월 시범운영에서 큰 호응을 받아 11월부터는 매주 2회 정식 프로그램으로 열리고 있다.
 화요일에는 DJ의 음악, 목요일에는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청춘클럽예술단의 밴드 음악이 어르신들의 흥을 돋운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옛 노래의 디스코버전부터 최근 유행하는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이 메들리로 흘러나온다.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건강프로그램에는 없었던 사이키 조명, 전문 음향장비, DJ박스를 설치해 이색공간으로 탈바꿈한 후 사근동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들에게 동네 명소가 되어버렸다. 기획 당시 50명 안팎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참여율이 날로 높아져 현재 100~120명의 어르신들이 청춘클럽을 찾아 마음껏 춤을 즐긴다.
 이도선 사근동노인복지센터장은 “2017년 개관한 센터는 대학가 주변에 위치해 어르신들이 많지 않고 접근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센터의 활성화와 어르신들의 건강 도모에 초점을 두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모색했다. 춤이야말로 노후를 즐겁고 활기차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하여 청춘클럽을 만들게 되었다”면서 “어르신들이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춤이 꼭 필요했다. 사근동노인복지센터에서는 줌바댄스, 차밍댄스, 스포츠댄스, 사교댄스, 라인댄스와 같은 다양한 춤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청춘클럽은 춤의 규칙이나 순서를 배우는 스트레스 없이 누구나 즐겁고 편하게 춤출 수 있어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청춘클럽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노인복지사업의 선례로 인정받고 있다. 강원도 횡성과 홍천, 전라북도 부안 등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청춘클럽을 찾았고, 중국의 한 언론에서도 보도될 만큼 관심이 뜨겁다.
 한편 청춘클럽은 분기별로 테마 이벤트를 개최한다. ‘6월의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6월의 청춘클럽에서는 빨간 의상을 드레스코드로 가면무도회를 열어 어르신들의 활력과 행복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는 9월 28일 오후에는 왕십리역 광장에서 지역 어르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실버댄스의 장이 열릴 예정이다.





춤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다

청춘클럽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노후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 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벌써 5개월째 청춘클럽을 매주 찾고 있는 조효숙(64)씨는 불면증 감소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춤에 대한 편견 때문에 거부감이 없지 않았는데, 막상 나와 보니 노후에 이만한 운동이 없더라. 평소에 불면증이 있었는데 청춘클럽을 다녀오면 잠도 푹 잘 수 있다. 이전에 비해 굉장히 행복해졌다”고 그간의 소감을 털어놓았다.
 “춤은 노후 건강에 무조건 좋다”는 최병완(77)씨는 청춘클럽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곳에서 춤을 추면서 관절에 자극을 주어서인지 걷는 게 한결 편안해졌다.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춤추는 것이 어떤 운동보다 좋은 것 같다. 청춘클럽에서 동네 친구들도 사귈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구춘자(83)씨는 잦은 몸살과 잔병치레로 힘들었지만 청춘클럽을 찾은 후 건강과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아팠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몸살이 날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청춘클럽에서 춤을 추고 나서는 아픈 게 없어졌다.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때와 다르다. 이곳에 와서 다시 건강해진 것 같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청춘클럽은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많은 노인들이 건강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모든 복지관에서 열렸으면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평생 교직생활을 하다 은퇴 후 우울증을 겪었던 민수지(64)씨는 청춘클럽에서 즐거운 인생을 되찾았다. “춤은 전신운동으로 최고다. 게다가 다른 운동과 다르게 즐기면서 할 수 있어서인지 엔도르핀이 나오고 덕분에 스트레스나 잡념이 줄고 우울감이 없어졌다”면서 “우연한 기회로 청춘클럽에 왔다가 이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는 개근우등생이 되었다. 매일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이곳에 오면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한다. 또한 “전국의 지역사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음지에 있는 댄스장과 달리 청춘클럽은 매우 건전한 곳이고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다. 부디 전국 곳곳에 청춘클럽과 같은 춤의 장이 열려서 노년을 맞은 국민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보고서[1]에 따르면, 65세 이상 10,07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의 21.1%는 우울증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자노인(24.0%)이 남자노인(17.2%)에 비해 우울증상이 높은 편이며, 85세 이상 연령군 우울증상 비율은 65~69세 연령군의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우울증상 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인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겪고 있을 우울감에 실제로 춤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국 아크론 대학은 우울증, 고립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 16명이 12주간 춤을 경험하는 연구[2]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서로 비형식적인 표현을 말로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비언어적 표현을 하며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춤을 추면 소속감과 집단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을 도출한 연구팀은 ‘춤이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을 느끼는 성인들을 치유하는데 긍정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운동과 비교하여 춤이 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3]한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 마그데브르크 신경퇴행성질환센터에서는 60~80대 노인 22명이 춤 그룹과 운동 그룹에 각각 배정하여 18개월간의 연구에 참여하도록 했다. 춤 그룹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운동 그룹의 참가자들은 전신과 기억력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반복운동을 하는 근지구력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6개월 후, 춤 그룹의 뇌 속 회백질의 부피가 운동 그룹과 비교해 상당한 증가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고 18개월이 지난 뒤에는 해마의 부피가 커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반복적인 운동보다 장기적인 춤을 추는 것이 노인의 뇌에 효과적이며 노화로 인한 뇌 속 회백질의 감소를 늦춘다는 연구결과다. 이는 춤이 뇌 건강, 인지기능을 보다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특히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어떤 운동보다도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곳곳에 부는 실버댄스 바람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은 ‘위댄스 세계거리춤축제’의 일환으로 40대 이상의 생활예술인들을 위한 춤 경연 프로그램 ‘서울춤자랑’을 개최했다. 장르와 관계없이 40세 이상 80세 이하 최소 7명으로 구성된 춤 모임이라면 누구나 지원가능한 서울춤자랑 무대에 243명의 실버 댄스동아리가 참가하여 열띤 경연을 펼쳤다. 살풀이, 교방춤, 실버 치어리딩, 하와이안 훌라, 스포츠댄스 등 저마다의 개성과 기량을 한껏 뽐내는 어르신들의 춤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선정된 한국춤과 외국춤 각 3팀의 실버댄스동아리는 올해 2회를 맞는 위댄스 세계거리춤축제 메인무대 공연에도 오를 예정이다. 2018 서울춤자랑은 오는 10월 9일(화)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다.
 지난 7월 수원에서는 제4회 전국 실버댄스 경연대회가 개최됐다. 수원시보훈공단 보훈재활체육센터에서 펼쳐진 대회에는 수원과 용인 등 경기지역뿐 아니라 서울, 세종, 강원도 등 전국 각지 32개 팀 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댄스실력을 발산했다. 소셜댄스, 댄스스포츠, 라인댄스, 벨리댄스, 일반댄스 등 은빛 춤꾼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는 경연을 넘어 함께 어울리는 화합의 장으로 성료됐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실버댄스 프로그램도 활기를 띤다. 충북 청양군은 농촌 노인들을 대상으로 건강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리한 농작업으로 인한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고 근력 증진을 위한 맞춤형 댄스를 제공해 건강한 노후생활을 도모하고 단조로운 농촌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인천 남동구는 매주 1회씩 지역 내 경로당을 찾아가는 실버 댄스교실을 마련한다. 주민센터로 찾아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 간단하고 재미있는 동작으로 노후 여가시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이밖에도 인천 남구 숭의보건지소의 ‘뇌건강 댄스교실’, 김제시 교월동 행복학습센터의 ‘실버에어로빅’, 전남 장흥군보건소의 건강증진 댄스프로그램 등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춤 프로그램을 개설해 어르신의 건강과 행복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참고 문헌]
[1]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보건복지부, 2017
http://www.mohw.go.kr/react/jb/sjb030301vw.jsp?PAR_MENU_ID=03&MENU_ID=032901&CONT_SEQ=344953&page=1
[2] 우울증,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춤 경험
Depression, Social Isolation, and the Lived Experience of Dancing in Disadvantaged Adults, School of Nursing-The University of Akron, 2015
[3] 노년층의 신체적 활동에 따른 신경세포의 진화: 춤에 대한 연구
Evolution of Neuroplasticity in Response to Physical Activity in Old Age: The case for Dancing, German Center For Neurodegenerative Diseases(DZNE), 2017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8.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