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부산시립무용단 특별기획공연 안무가 프로젝트 ‘몸으로 쓰는 시’
쉽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춤
송성아_춤 이론, 부산대 강사
 원시종족의 춤은 살아있는 과거로 춤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서 춤은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우주적 삶과 관련된 일상적 몸짓의 리듬화로 정의된다. 누구나 생존을 위해 육체를 움직였고,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몸짓언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초기 인류의 춤은 삶의 반영태로 누구나 쉬이 출 수 있는 만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춤은 변화하였고, 오늘날 무대화된 춤의 대부분은 누구나 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인에 의해 연행되고, 형식과 내용은 복잡해졌으며, 관객의 향유(享遊)나 독해는 어려워졌다.
 1월 17일 부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용철)의 특별기획공연 ‘몸으로 쓰는 시’는 개인과 사회에 주목하는 동시에 관객의 쉬운 춤 읽기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진행된 이 날 공연은 부산시립무용단 단원이 안무한 다섯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김시현 안무의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거야!〉는 허름한 횟집을 운영하는 여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그녀는 수족관에서 낙지를 꺼내 손질을 하고,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신다. 특정한 액션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던 손님은 술에 취한 여자를 위해 하모니카를 분다. 이어 친숙한 팝송 ‘Knockin' On Heaven's Door'가 흘러나오고, 여자는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며 기쁨의 춤을 춘다.
 작품 전반부는 낙지 손질하기, 손님상에 가기, 술병 흔들어 따기, 술 먹고 취하기, 머리 쓰다듬고 하모니카 불기, 흥얼거리기 등과 같은 일상적 몸짓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이를 통해 삶에 찌든 인물을 소개하며 극적 상황을 제시한다. 반면, 팝송이 나오는 후반부는 몸짓이 없다. 대신 음악의 정서곡선을 따라 흘러가는 움직임을 통해 삶의 생기를 되찾는 여자의 모습을 작위적으로 그려낸다.
 김시현은 사실적인 소품을 무대에 배치하고 있으며, 다소간 거북할 수도 있는 일상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재현한다. 이 같은 시도는 관객의 춤 읽기를 쉽게 한다. 그러나 횟집을 하는 모두가 손님상에 앉아 만취하지 않는다. 특수한 상황이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심리적인 정황이 춤의 진행과 함께 세밀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작가는 몸짓에 편중함으로써 이것을 놓치고 있으며,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무대를 만들고 있다. 

 


 이용진 안무의 〈사자who〉는 북청사자놀음을 원용하여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를 풍자한다. 세습풍속과 관련된 마을굿의 하나인 북청사자놀음은 크게 길놀이와 마당놀이로 구성된다. 마당놀이는 다시 애원성마당과 사자놀이마당으로 구분되는데, 작가가 차용하는 것은 후자이다.
 사자놀이마당의 주요배역은 사자 두 마리와 승무란 인물이다. 사자는 큰 탈을 쓰는데, 안에 있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탈을 놀리고 춤을 춘다. 승무는 마부(馬夫)라 할 수 있고, 기다란 말채를 들고 사자를 인도(引導)하며 춤을 춘다.
 춤과 놀이가 주를 이루고, 극적 내용이 전개되는 것은 탈놀음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이다. 그 요지는 두 마리 중 하나가 토끼를 먹고 배탈이 나 넘어진다. 쓰러진 사자를 소생시키기 위해 양반은 축문을 외고, 스님은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외우고, 의원은 침을 놓는다. 각고의 노력으로 사자는 일어나고, 두 마리의 사자는 승무와 함께 춤을 추며 악귀를 쫓고 복을 빈다는 것이다.
 이용진은 승무와 사자를 현대로 옮겨 놓는다. 여기서 승무는 이리저리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갑(甲)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갑이 조정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데 이들이 탈을 쓰지 않는 사자이고, 을(乙)이 된다.
 갑은 기다란 말채와 함께 빠르고 교활하게 움직이고, 사이사이에 천박한 자본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한다. 반면, 두 명의 을은 퉁소의 애원성가락에 맞추어 기존 사자춤을 춘다. 느린 굿거리장단에 해당하는 가락에 맞춰 ‘사자채기’를 하고, 전후좌우로 힘차게 이동하는 것이다.
 작품 전반부는 빠르고 민첩한 갑과 느리고 힘찬 을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제스처를 삽입시켜 갑과 을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후반부는 쓰러진 사자를 소생시키는 대목을 변용한 것으로, 두 명의 을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갑은 이들을 위하듯 염불을 외우고 절을 하지만, 이내 뒤돌아서서 말채를 휘두르며 골프 치는 시늉을 한다. 이후 위선적인 갑은 을에 의해 무너지고, 둘의 관계는 뒤집어진다.
 시니컬한 웃음을 유발시키는 풍자는 작가의 비판적 사고를 전제한다. 〈사자who〉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사자춤의 얼개를 빌려와 부조리한 현실을 쉽고 재미있게 풍자한다. 다만, 을이 갑을 쓰러뜨리는 부분이 강렬하게 부각되지 못한 채 춤이 종결됨으로써 전도된 관계가 갖는 의미가 모호하다. 즉, 을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가 승리하여 갑을관계 자체가 타파된 것인지, 아니면 모순은 유지되고 위치만 전환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호성이 제거될 때, 풍자는 보다 강화될 수 있을 터이다. 

 


 장영진과 박미나 안무의 〈냉정과 열정사이〉는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그린다. 특히, 판소리 ‘춘향가’의 대표적 소리(唱)를 중심으로 세 개의 장면을 설정한다. 만남, 사랑, 이별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모두 남녀 이인무로 진행되고, 장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의 방식과 톤(tone)은 일정하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움직임이란 한국적 발레 또는 신무용계열이라고 칭해지는 것이고, 표면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여성적이고 시각적인 우미(優美)이다. 현대를 반영하는 개성적 표현을 찾기 어려운 무대였고,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현주 안무의 〈칠구년 시월생〉은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하수에 빨간색 양말을 신은 여자가 있고, 알 수 없는 움직임을 이어간다. 어느 순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두 발이 보인다. 작품이 종결될 때까지 어둠 속에 상반신을 감춘 두 발은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상수와 하수에 나란히 분리 배치된 이들은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으며, 여자의 자폐적인 움직임만이 두드러진다. 작품은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과 같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렵다.




 남도욱 안무의 〈Re-ssance〉는 촛불혁명에 관한 것으로,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첫 장면은 탐욕스러운 여성 솔로 춤으로 시작된다. 탐욕의 강도를 더해갈 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몇몇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들은 작은 등(燈)을 들고 일어서고, 쥐불놀이를 하듯 빙글빙글 돌린다.
 초를 든 소녀가 등장하면서 두 번째 장면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무대 뒤 벽면을 두드린다. 장벽을 부수듯 움직임은 격렬해지고, 〈승무〉의 힘찬 북 가락으로 이어진다. 소리가 잦아들면, 서정적인 팝 음악에 맞춘 촛불 소녀의 춤이 시작되고, 말미에 구토를 한다. 마지막 장면은 새 옷을 말끔히 차려 입은 사람들이 희망의 춤을 추는 것으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뮤지컬의 한 대목을 보는듯하다.
 2016년 시민들이 일궈 낸 촛불혁명의 기저에는 죄책감, 분노, 슬픔, 황당함 따위로는 요약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깔려있었고, 새로운 희망에 대한 요구 또한 다양한 형태로 쏟아졌다. 작품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없다. 작가정신에 기초하여 선택하고, 해석을 더해 하나의 작품으로 창조한다. 그렇다면, 〈Re-ssance〉에서 드러나는 작가정신이란 무엇인가?
 작품의 핵심적 이미지는 권력자의 탐욕과 시민의 침묵(장면1), 시민의 분노와 투쟁(장면2),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장면3)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매우 일반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개라는 점에서 춤 읽기가 쉽다. 그러나 새로울 것이 없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서 시대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나 발언을 찾아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오늘에 대한 속 깊은 성찰과 연민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부산시립무용단공연에 주목한 까닭은 오늘을 사는 개인과 사회를 쉬운 춤 언어로 형상화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다는 것은 빤한 것이 아니다. 다수의 관객이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는 춤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두 가지를 짚어 볼 수 있다.
 횟집을 운영하는 여자, 주종관계인 갑과 을, 연인관계인 남과 여, 빨간 양말을 신은 여자, 촛불혁명의 시민 등은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대인 혹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을 뿐,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민중 내부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고, 각기 다른 환경과 요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중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인물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춤 표현력과 관련된 것이다. 쉬운 춤을 위해 일상적인 몸짓, 사실적인 의상과 소품, 대중적인 탈놀음과 판소리, 정서를 자극하는 팝 음악 등을 동원하였다. 북청사자놀음을 창조적으로 변용한 이용진의 〈사자who〉는 대중성은 물론이고 작품의 표현력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앞서 제시된 방법론에 지나치게 매몰됨으로써 춤 읽기는 쉬웠지만, 정서적 교류나 울림을 만들지 못하였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8. 02.
사진제공_부산시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