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비상이다!
전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비상이다.
중세나 전근대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최첨단 운운하며 달려가고 있는 21세기에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종교가는 "어리석은 교만함으로 겁 없이 과속 페달을 밟아대던 인류와 문명과 과학과 경제에 신이 브레이크를 거시는가 보다”라고 평한다. 중국의 한가운데 위치한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이제 전 세계로 퍼져서, 거대한 충격과 혼란 그리고 이에 따른 급격하고 다양한 사회적 변화들은 전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와중에 비록 한국은 모범적인 대처로 인해 세계의 찬사를 모으고 있지만, 나머지 세계는 여전히 충격과 공포 속에 휩싸여 있다. 바쁘게 돌아가던 세계는 엔진이 일시 정지된 느낌이다.
저명한 공연 잡지인 〈타임 아웃〉이 자가 격리를 독려하기 위해 그들의 로고를 ‘아웃’에서 ‘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
이러한 양상은 경제와 사회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엄청난 충격은 춤을 비롯한 공연 예술계에도 파급되고 있다. 누구나 알듯이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극장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폐쇄되었다.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공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 같은 도시들의 극장도 예외는 아니다. 사태 초반 뉴욕의 몇몇 극장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공연 시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관람객에 한하여 입장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도시 폐쇄와 함께 모든 공연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이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행병의 세계 발발인 ‘팬데믹(pandemic)’의 의미처럼, 코로나19는 전세계의 공연 예술계를 덮치며,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물리적 거리두기’ 혹은 ‘위생적 거리두기’가 더 적절한 표현)”로 사람들이 집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면서, 전세계 공연 예술계는 어디고 예외 없이 코로나19로 인해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엄중한 상황 속에서 공연 예술계가 단순히 망연자실하여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급격한 사회 트렌드 중 하나인 '언택트(untact)’가 공연 예술계에도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이러한 조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전막 온라인 상영이 있다. 또 춤과 관련하여서는 한국 예술 종합학교의 〈코로나19 극복 K-Arts 온라인 희망콘서트〉가 대표적이다.
런던의 새들러스 웰즈(Sadler’s Wells) 극장 |
이러한 사례는 외국의 경우에서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이나 베를린필하모닉과 같은 세계적인 오페라단이나 클래식 연주단체들이 라이브 스트리밍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뉴스는 국내 언론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국내 언론에는 소개가 되지 않고 있지만 무용계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엿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런던의 무용 공연 중 대표적인 장소인 새들러스 웰즈(Sadler’s Wells)에서는 무료로 3월 27일 발레보이즈(BalletBoyz)의 작품 〈디럭스〉(Deluxe)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그들의 플랫폼인 ‘디지털 스테이지’(Digital Stage)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는 이제까지 지지부진하였던 인터넷 등 첨단기술들이 무용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데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무용 형태들이 조만간 출현할 수 있는 조짐이 보이는 대목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격리생활이 강요된 때에 결국 사람들은 문학이나 영화는 물론이려니와 음악이나 춤이 없이는 이러한 생활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그러므로 예술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라이브 스트리밍이나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공연 예술은 아직 그 기술의 사용 기법 등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 진부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언젠가 종식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4~5년 주기로 다시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앞으로 기술과 공연 예술의 접목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실험이 요구된다. 특히 5G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제까지 수동적이었던 관람객의 적극적인 예술 참여가 가능해지며,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 즉 사물 또는 시스템, 특히 기계, 컴퓨터 프로그램 등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접근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리적, 가상적 매개체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용가들과 안무가들과 같은 무용 예술가들은 이런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새로운 예술 형식의 탄생 혹은 기법의 탄생에는 항상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니 이러한 예술 실험의 지원에 앞서 당장 많은 무용가들과 안무가들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예술 활동은 고사하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몇몇 국가들의 예술계 지원에 대한 발빠른 대책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과 독일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바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발표하고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인 〈가디언(Guardian)〉지와 영국의 공영 방송인 BBC의 3월 24일자 기사를 보면,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ACE)가 예술가들을 위해 1.6억 파운드(한국돈 2300억원 정도)를 긴급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보인다. 구체적으로 이 지원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CE 지원 프로그램의 내역은 개인 예술가 지원의 경우 2000만 파운드(300억원 정도)가 배정되었으며, 이는 다시 1인당 최대 2500파운드(375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ACE의 조성 제도에 속한 단체를 위해서는 9000만 파운드(1348억원 정도), 그리고 이 제도에 속하지 않는 독립 단체에도 5000 만파운드(750억원 정도)가 지원된다. 첫 번째 지불은 6주 이내에 신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독일 문화부 장관, 모니카 그뤼터스(Monika Grütters) |
한편 독일의 경우는 영국의 경우보다 더 신속하고 적극적이다. 코로나19가 독일에 막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인 3월 11일, 독일의 문화부 장관인 모니카 그뤼터스(Monika Grütters)는 독일 연방정부의 홈페이지(Presse- und Informationsamt der Bundesregierung)를 통해 예술가 지원책에 대한 특별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는 여기서 "현재의 상황이 문화와 창조에 관련, 특히 소규모 문화 시설과 프리랜서 예술가 분들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것은 이해합니다… 일정 기간 문화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손실일지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및 문화 시설의 분들은 안심하기 바랍니다. 나는 문화, 창작, 그리고, 미디어계 분들의 생활 상황과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고 여러분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불안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문화 산업과 창작 영역에서 재정 지원과 채무 유예에 관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개별적으로 적극 대응해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영국과 독일 문화 예술계가 요구하기도 전에 정부와 관련 기관이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여 예술가들과 문화 예술계를 안심시키고 있다. 이들 정부가 문화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정부의 노력 이외에도 각 춤 관련 예술 단체들의 발빠른 대처도 눈에 띈다.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3월 22일자와 28일자 보도에 의하면 “뉴욕시티발레단(New York City Ballet)의 이번 시즌의 모든 공연 공연은 취소되었지만, 발레단 소속 직원과 단원들은 월급이 지급되어, 소속 직원과 단원들이 안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디어에서도 코로나19 관련 예술계의 충격에 대해 자세히 다루며 사회의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의 3월 29일자 문화면에는 “스트레스 받고, 아프고 무일푼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떻게 예술 노동자를 강타하고 있는가(Stressed, sick and skint': how coronavirus is hitting arts workers)”라는 제목으로 극작가, 무대 조명기사, 코메디언, 배우, 연극 연출가, 라이브 음악 엔지니어, 무용가, 화가, 미술관 직원, 첼로 연주가, 무대 감독, 미술 학원 선생님, 커뮤니티 예술가, 오페라 가수, 극장 프로듀서 등등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어려운 업계 현황과 이 때문에 발생하는 생계의 위협들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민주적인 방식과 투명한 정보 제공, 그러면서도 발빠르고 수준 높은 방역으로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 부분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이 있다. 이러한 몇몇 국가들의 문화 예술계 지원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엄혹한 예술가들의 생계와 환경을 생각하면, 문화예술 강국을 외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대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생업이 끊기고 작업 환경이 사라지면서 실의에 빠져 있을 예술가들에게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면 지원하겠다는 대책 정도만 보인다. 예술에 대한 정부 인식이 어떠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예술위원회에 문화 예술과 예술가들을 위한 ‘드라이브 스루 검사’나 ‘워킹 스루 검사’와 같은 선제적이면서도 기발하고 비상한 대책을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무용계가 적극적으로 요구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