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24년 마당굿운동 50주년을 맞아 대학탈꾼들의 은빛탈춤 열두 마당이 2023년 12월 16일낮과 밤 한국문화의 집(코우스)에서 열렸다. 주최는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연대 서강대 탈춤동문회 연합이었고, 사)민족미학연구소, 대학탈춤동문회, 한국민족극협회 등이 후원하였다. 이 공연의 예술감독과 총연출은 채희완(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맡고., 최종덕(서강대 74 민속문화연구회), 공유상(연세대 76 탈반), 천기호(민족미학연구소 기획실장), 민경서(민중문화연구 수주탈춤패 총무), 조현모(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부대표) 등으로 특별 기획단을 구성하여 실무를 진행하였다. 앞날을 위하여 기록으로 전하며 공유한다.
본 행사의 의의를 우선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1. 1970년대, 80년대 대학탈춤의 열기를 일으킨 은빛 세대의 탈춤 재부흥운동의 일환으로 탈춤, 풍물, 춤, 소리, 굿, 마당극 등 여러 민중연희양식의 성취들을 엮어 마당굿운동 50주년 기념축전(2024년) 행사를 이끌어낸다. 이는 민중전통연희의 창조적 계승과 현시대 민중언로로서의 몫을 수행해낸다는 것이다.
2. 반문명적 기후위기, 코로나19 등 역병 창궐, 빈부격차 등 사회불평등 심화, 민주세력 패퇴 등 역경을 물리치는 이 시대의 벽사진경과 해원 상생의 씻김 탈춤마당을 통해 민족적 생명력의 원천을 회복하는 오늘 이땅의 새로운 세시풍속의 축전판을 기획한다.
3. 이 마당탈판의 중심 흐름은, 이땅 민초들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오게 한 한겨레 여성 수난의 역사를 파헤치고 이를 씻어내는, ‘살풀이와 신명’의 생성, 유통, 확충, 나눔이다.
4. 만고 우주만물 생명의 원천인 마고할미와 삼신의 주재 아래 이땅 역사운행의 음덕이 되신 여성 독립군들을 민중신장으로 모시는 판열음으로 시작된다. 이를 배후의 힘으로 예인 무당을 통해 인간, 신, 자연 역사가 혼융된 집단신명의 열광 속에서 관중과 더불어 역사적, 예술적 미적 체험 마당이 되게 한다. 1970, 80년대 민주해방열사를 모셔 들이고선, 삶의 고난과 억압 속에서도 공격적 화해의 사회적 살풀이를 통해 민중적 해학과 정에 겨운 흥취는 만발한다. 이땅에 어렵게 사는 이들마다 거룩한 삶이고 이땅에 그늘진 구석구석마다 새 세상 민족개벽의 풍류정임을 확인하는 개벽난장 생명평화의 뭇동춤으로 뒤풀이하면서 새 세상 맘판을 예비한다.
5. 이 판의 중심 출연진은 3, 40년 구력을 지닌 대학탈반 출신 탈춤예능인들과 창작탈춤을 시도하고 있는 각 지역 극단과 놀이패 등 은빛 세대들의 신생 탈꾼연합체이다.
그러면 〈은빛탈춤〉 열두 마당 틀거리를 보자.
제1부
첫째마당: 21세기를 여는 북울림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있으니 하늘문을 열어 인간 세상을 펼쳐내신 한울님 맞이 북춤을 연세대탈박 동문의 최고참인 이우원이 춤춘다.
둘째마당: 새 천년 학춤
연춤패(연대대 탈박 동문 연합)와 마구찹이춤패(서강대 민속문화연구회 동문 연합) 20여명이 갓쓰고 소매넓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짚신 신고 출연한다
풍류와 신명의 덧배기춤인 동래학춤을 본 떠 2천년대를 이땅에 새롭게 맞이하는 고결한 흰 그늘의 무리 학춤이다
안무 지도: 서강대 민속연구회 출신이자 한두레 회원인 정일수.
셋째마당: 마고할미
천지만물 태고 생명의 어머니 마고 할미의 포태, 출산의 몸부림을 동해안 별신굿의 김석출 선생의 태평소 산조와 in-a-go-da-davida의 장단을 타고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이연정이 춤춘다. 남성의 처용탈이 있다면 여성의 마고탈이있다고 할 만큼 자애롭고 신비로운 마고할미탈을 동래야류 탈 제작 보유자인 이석금이 형상화해냈다. 수리매 형상의 감붉은 종이옷 복색은 전남대 탈반 출신의 예인 김정희가 고안하였다.
넷째마당: 여성 독립군 초망자굿 1
일제에 항거하여 몸을 던진 여성 독립투사들의 환생을 춤꾼의 몸을 빌어, 소리와 춤으로 재현한다. 펜을 놓고 20살에 망명하여 15년간을 항일전선에서 싸운 여자의열단 박차정의 피묻은 적삼, 여성 노동자로서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투쟁을 한 강주룡의 몸부림, 부녀자인 몸으로 투쟁의 일선행을 결행하는 이화림의 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시베리아 대륙의 조선인 인민대표 김 알렉산드라의 포효,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어머니라 불리면서 세 차례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써 조선독립을 호소한 남지현의 혈서 등으로 우리 앞에 현신한다.
첫째거리/ 강주룡굿: 정기정(창탈 지기금지)
둘째거리/ 이화림굿: 왕정희(창탈 지기금지)
셋째거리/ 김알렉산드라굿: 김옥희(창원시립무용단 수석)
넷째거리/ 남자현굿: 김현숙(부산국립국악원 수석)
다섯째거리/ 박차정굿: 서지연(통영오광대 이수자) 등 출연.
무화인 여성 독립군 초상화 깃대를 길잡이 목중 역으로 민경서(수주탈춤패), 김선태(수주탈춤패), 김이대(창탈 지기금지), 성재호(창탈 지기금지) 등이 인도한다.
초상화를 그리고 고증을 맡아서는 윤석남(화가), 김이경(작가)가 나서 주었고, 윤백남-김이경 공저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를 쓰다〉(한겨레출판, 2021)가 저본이 되었다. 극중 서사시로는 원양희(시인), 낭송엔 이은희(창탈 지기금지), 여성독립군 탈제작에 이현정(화가), 영상에 장주원(영상 작가), 소리와 화자에 양일동(소리꾼), 음악 연주에 김현일(대금, 우소락청 대표), 천기호(장고, 민족미학연구소), 조현모(북, 캉탈 지기금지), 박준식(깽쇠, 젊은 소리쟁이패 대표) 등이 맡았다.
다섯째마당: 대나무신칼뭇동춤
정기정 왕정희 김옥희 김현숙 서지연, 이은희, 김이대, 성재호(이상 창탈 지기금지).
생명의 신기를 받는 대나무 신칼은 때로 몸을 지키는 은장도로서, 동학혁명의 죽창으로서, 일제에 맞선 여성독립군의 무기로서, 사회개혁, 우주운행의 질서를 바로잡는 검결로서 이 시대를 가름짓는 개벽의 칼임을 스스로 되새기는 떼춤이다.
5명의 신받이꾼이 대나무를 들고 나와 신을 받는다. 청신맞이 의례가 진행되면서 점차 격렬한 집단 빙의가 일어난다. 접신의 집단신명의 기운이 또다른 여성독립투사들을 청혼한다. 무리진 신명 신장춤이 가무오신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윽고 집단 고무진신이 빚어내는 미적 평화의 세계가 이 땅 위에 실현된다.
음악: 최태현의 작곡들 편집, 안무: 제각각 공동 안무.
여섯째마당: 영남 말뚝이 춤마당
낙동강 서부 지역의 오광대 말뚝이들이 마당판을 드잡아 위정자와 재벌, 기득권자를 풍자하고 꾸짖는 호쾌한 말뚝이 배김새가락을 유감없이 펼쳐낸다.
출연: 형남수(밤마리오광대), 오현수(마산오광대), 김경철(가락오광대), 문학종(진주오광대) 등.
제2부
일곱째마당: 민주해방열사 5방신장무
1970, 80년대 이땅의 민주화와 노동 해방에 몸을 사른 전태일, 김상진. 김경숙, 박종철, 이한열님을 민주해방열사의 민중신장으로 모셔드는 의례.
출연: 박종관, 민경서, 신재걸, 서정심, 김선태(이상 수주탈춤패).
작곡 및 편곡: 최태현, 박용범, 탈제작: 이석금, 황병권(진주오광대 탈제작) 등.
여덟째마당: 강쟁이 다리쟁이
1984년 전국을 휩쓴 물난리 중 줄당기기로 유명한 경남 영산지역의 수해 참사를 놓고 천재지변이라 강변하는 나리들에 맞서서 수해재난민이 피해보상운동을 벌이며 겪는 갈등 현장을 탈판으로 옮겨내어 당대 피해보상운동에 동참한 창작탈춤이다.
첫째거리/ 영감 할미마당
김헌근(대구, 함세상), 안문규(밤마리오광대), 이강용(통영오광대 대표), 조정림(진주오광대) 등이 출연.
둘째거리/ 가분다리마당
군수, 공사장, 큰손, 국회의원 비서, 이장 등이 각기 독특한 탈을 쓰고 나와 인재지변이 아니라 천재지변이라고 강변하면서 수해복구사엽을 전재장군송덕비 청소로부터 시작하자고 을러댄다. 소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 같은 존재를 ‘가분다리’라 한다. 사회적 개성(페르소나)이 독특한 나리탈들은 고 오윤의 유작이고, 김봉준(홍익대 탈반 출신, 화가)이 거들었다. 재담과 안무는 1984년 한국무용연구회(대표: 김매자)와 한두레(대표: 채희완)가 한 것을 번안해냈다.
출연: 정승천(창탈 지기금지), 김경철(가락오광대), 오현수(마산오광대), 심성보(마산오광대) 등.
아홉째마당: 통영오광대 영노마당
양반 99명을 잡아먹고 한 명만 마저 채우면 득천한다는 영험한 민증의 상징 영 노의 활약상을 펼쳐내는 전승탈춤이다.
출연: 노영수, 나신영(이상 통영오광대보존회).
열째마당: 진주지사 한량춤
진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신분제 철폐를 위해 형평사운동을 이끌어낸강상호지사의 삶을 만인평등의 덧배기 한량춤으로 그려낸다.
안무와 춤: 진주오광대 보유자인 강동옥.
열한째마당: 복동할매 마당
열네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삶 끝에 생환하여 일본 군국주의 재등장에 투쟁하면서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선 김복동 할매의 투혼을 펼쳐 노래패〈노래를 찾는 여전가들〉을 결성한다.
탈제작: 이석금, 출연: 박은주(극단 자갈치).
열두째마당: 8도강산 개벽난장 풍류정
황해도 탈춤의 파계승, 한량들과 함께 전태일, 이한열, 백남기농꾼, 박형규목사, 복동할매 등이 판에 함께 나와 8도 강산 면면촌촌 가가호호를 개벽풍류정 마당으로 뒤바꾼다.
첫째거리/ 5방 망석말이춤: 서지연, 장철기(꼭두광대 대표), 심성보(마산오광대)
음악 작곡: 최태현.
둘째거리/ 봉산 2목 정연도(한두레).
셋째거리/ 전태일춤: 김선종(극단 갯돌).
넷째거리/ 백남기농꾼춤:정승천(창탈 지기금지).
다섯째거리/ 박형규목사춤: 형남수(밤마리오광대).
여섯째거리/ 8도강산 뭇동춤.
첫목: 이상훈(연대 탈박 동문).
8목: 정혁조(서울사대 민속가면극연구회 동문).
뭇동춤: 이상훈, 서경배, 김상범, 공유상(이상 연대 탈박 동문)
전병복(창탈 지기금지), 장철기, 심성보, 서지연.
인물탈제작: 이석금, 안무: 공동안무.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