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운수좋은무용단 〈2024 무용여행〉
다른 문화, 다른 깊이의 동일한 존재-춤(몸)의 여정
권옥희_춤비평가

새로운 춤의 세계를 이해하고 익히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낯선 문화와 춤의 경험을 들 수 있겠다. 자신의 경험을 개념화한 뒤 몸의 움직임으로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자신의 밖에 있던 문화와 춤의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 보충하고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과 함께. 그 경험이 반드시 춤으로 개념화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은 자신을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자신 안에 어떤 의미로, 어떤 보편성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매해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대구에서 열리는 춤페스티벌이 있다. 한국과 중국 청년안무가들의 춤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기획된 ‘무용여행’(
舞游韩国) 워크숍. 2019년, 코로나가 시작된 해 첫발을 뗐다고 하니 어려운 조건과 환경을 만난 것이다. 비록 현실은 봉쇄되었으나 자신(강정환)에게 맞는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끌어내려는 이에게 처지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는지도. 그도 아니면 춤추는 이(강정환)가 가진 특수한 감수성이 작동한 것인지 어쨌든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 지방도시 대구 춤현장에 작은 활기를 불어넣는 춤축제가 되었다.


강정환(예술감독)은 2015년 ‘북경국제무용축제’에서 〈운수좋은 날〉을 춘 것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북경국제무용축제’에 매년 참가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 경험과 열정이 자신 안에 갇힌 춤을 다시 끌어내 춤축제 ‘무용여행’으로 해방시켰을 것이라 짐작된다. 올여름 열린 워크숍의 마무리 여정인 ‘청년안무가 공모전’과 ‘공식초청공연’ 두 무대(대구봉산문화회관, 7월 26일~27일)를 본다.

첫날 ‘청년안무가 공모전’은 김태미의 〈나는 논다〉, 이예림의 〈의지박약〉, 서동술의 〈껍데기 外 氕 〉, 유은영의 〈momom(몸마음) 신심〉, Huang Xusin(김정미 안무)의 〈아소〉 권윤형의 〈Englishman in newyork〉, Su Yiyue 〈행〉 총 일곱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청년안무가 공모전’은 마치 춤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 듯한 무대로, 춤이라 일컫는 모든 춤, 춤장르 통합의 확장판이었다.



  

김태미 〈나는 논다〉, 이예림 〈의지박약〉 ⓒ옥상훈/무용여행



서동술 〈껍데기〉 ⓒ옥상훈/무용여행



김태미의 폴댄스 〈나는 논다〉는 춤이라기보다 몸의 훈련이나 체조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잘 발달된 근육과 진지함으로 무장한 채 매달린 봉이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위태로운 경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예림의 〈의지박약〉은 다분히 감상적인 춤동작에 영화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가 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 작품. 서동술의 〈껍데기〉는 망사천 두건에 달린 긴 끈으로 자신의 목을 조이고 풀기를 반복. 갈비뼈에 손바닥을 대고 마치 몸을 열고 닫는 듯한 몸의 호흡을 통해 ‘속’과 ‘껍데기’에 대한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듯한 춤으로, 주목되는 작품이었다.



  

Huang Xusin 〈아소〉(안무 김정미), 권윤형 〈Englishman in newyork〉 ⓒ옥상훈/무용여행



Su Yiyue 〈행〉 ⓒ옥상훈/무용여행



한국창작춤을 춘 Huang Xusin의 〈아소〉(안무 김정미)는 입시작품 구성 정도의, 무용수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춤이었다. 반면 권윤형의 〈Englishman in newyork〉은 소극장이란 공간의 특성을 잘 살린 춤과 얼굴 표정 연기가 돋보이는 개성적인 춤이었다. 춤을 보는 내내 춤에 대한 이해력이 있는 무용수라는 느낌을 주는, 자신만의 춤언어를 찾는 경험과 여정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Su Yiyue의 〈행〉. 단정하게 빗어 하나로 묶은 머리에 슈트케이스, 가벼운 외투. 길. 어디로 가야할지, 왜 가는지 모르고 오고가는 ‘행’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 무거워 들 수 없는 슈트케이스를 밀며 무대를 가로 지르는가 하면, 빈가방을 들 듯 가볍게 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길을 나서면 추는 춤. 지친 듯 슈트케이스에 기대앉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춤. 무용수 Su Yiyue가 가지고 있는 깨끗하고 선명한 춤의 선이 눈에 띄는, 중국과 한국의 춤언어가 섞인 묘한 움직임이 독특한 개성으로 작용한 작품이었다. 외부자극, 말하자면 낯선 춤의 경험으로부터 고양된 춤의 좋은 결과.

이튿날(가온홀) 무대에 오른 작품은 ‘공식초청’작품이란 타이틀을 달고 이고운의 〈풍경〉, 마오 웨이(Mao Wei)의 〈컵 속의 그림자에 관하여〉, 마오웨이와 원촨(When Chuan)이 공동 안무하고 원촨이 춤춘 〈From the deep Inside〉, 그리고 리페이(Li Fei) 안무의 〈花〉, 마지막 이고은 안무의 〈산책〉까지 총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워크숍에 참가한 무용수들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눠 작업한 군무작품이 눈에 띄었다.



이고운 〈풍경〉 ⓒ옥상훈/무용여행



그 가운데 A그룹, 이고운의 〈풍경〉은 춤 에너지의 응집과 확산, 춤의 움직임에서 묘한 미감이 일어나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무음에 열 한명의 남녀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춤에 띵! 가야금 줄 하나를 뜯는 소리가 입혀지자 뭐라 규정할 수 없던 춤에 서정과 이야기가 실린다. 작은 불빛을 들고 무리로 움직이는 춤. 서로의 문화와 움직임을 교환하는 힘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해 보이는 춤이었다. 다하지 못한 이야기처럼, 추다 만듯한 마무리가 아쉬운 작품이었다.



Mao Wei 〈컵 속의 그림자에 관하여〉 ⓒ옥상훈/무용여행



B그룹의 안무를 맡은 마오웨이의 〈컵 속의 그림자에 관하여〉는 A그룹과는 다른 폭발적인 춤 에너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렌즈처럼 우리가 본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현실과 추억의 중첩’의 이미지를 질서 없이 움직이는 것 같으나 무용가들의 순수한 에너지와 음악, 다양한 영상의 조합으로 잘 보여줬다. ‘잔속의 그림자’에서 진실과 허황됨을 묻는 안무자의 ‘춤여행’에서 그의 춤철학과 전망을 읽는다.



Mao Wei, When Chuan 〈From the deep Inside〉 ⓒ옥상훈/무용여행



그리고 원촨의 솔로 〈From the deep Inside〉. 상의를 벗은 남자의 등. 등근육과 팔만 이용하여 추는 춤은, 선(禪)적이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춤의 유형으로, 그냥 다르다. 내면의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 연기로, 춤으로 다시 침잠의 반복을 통해. 마지막 걸으면서 마치 토하듯 입을 벌린다. 상처입은 짐승처럼. 마지막 멈춰 선다. ‘지식의 안개’ ‘도덕의 산 너머로’ ‘영혼의 강 너머로’ ‘어둠의 가장 깊은 곳’...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을 사유하는 춤, 오랜만이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과 춤의 전략은 곧 마련될 것이니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길.



Li Fei 〈花〉 ⓒ옥상훈/무용여행



리페이의 안무 〈화(花)〉는 저우쓰수(Zhou Sishu), 슝장이(Xiong Jiangui), 쉬훙메이쯔(Xu Hongmeizi)가 티벳음악처럼 들리는 선율에 국적이 다른 춤(밸리댄스와 민속춤 등)으로 추다가 마지막에 잠깐 군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벼운 습작처럼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고은 〈산책〉 ⓒ옥상훈/무용여행



마지막 이고은의 〈산책〉. 이승아, 송효영, 이고은 세 무용수가 ‘삶의 공간을 유유히 잠시 산책하는 일’을 가볍고 산뜻하게 그려내고자 한 의도로 보인 춤이었으나, 다소 무거웠다. 무음으로 춤을 시작, 휘파람소리의 반복, 뒷걸음, 몸을 숙이고 팔을 들어 벌리고, 의자위에 올라섰다가 내려서고,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며 끊임없이 느리게 이어지는 춤. 마치 ‘산책’을 나섰다가 발을 어떻게 디딜까 고민하다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춤 동작에 매몰된, 지루한 ‘산책’이었다.

춤 장르를 초월(?)한 자유에 더하여 아직은 춤에 대한 추상적이고 순수긍정일 뿐인 개인의 표현이 무제한 허용된 무대였는가 하면, 춤경험의 보편성과 자신의 전통에 대한 애착 사이에서 자신만의 춤언어를 찾아가는 무용가들이 함께한 이틀간의 ‘무용여행’. 아쉬움과 충만감이 함께 있은 무대였다.

신진무용가들이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위해 새로운 문화와 춤의 경험은 그 디딤돌이 되고 구체성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문화와 춤의 근원을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그 경험은 평면화된다는 것. 참가자들이 자기 검증의 성찰을 거쳐 확대 발전할 수 있도록 ‘무용여행’ 주최 측이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4. 9.
사진제공_옥상훈, 무용여행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