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17년 여름의 끝자락,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정장 차림의 의사들, 환우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무용수들이 파란 눈을 가진 강사의 안내를 따라서 같은 호흡과 같은 리듬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그들의 몸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몸의 긴장감이 녹아내리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분위기는 금세 훈훈해졌다. 이는 무용계와 의료계 종사자들과 파킨슨병 환우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춤을 출 수 있었던 이례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업의 일환으로 9월 1일 이음센터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는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는 신경과 전문의, “Dance for PD”의 창립강사이자 프로그램 디렉터인 David Lavendal, 전문 무용수, 무용치료 전문가 등이 함께 참석하였고, 강연과 시연 그리고 토론을 통해 다양한 소통을 시도하였다.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운동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질환은 주로 근육의 뻣뻣함, 떨림, 동작의 느려짐, 자세 및 보행의 변화와 같은 운동 기능의 장애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하고, 우울, 불안, 무기력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등 삶에 총체적인 영향을 받는다.
브루클린에서 16년 동안 파킨슨환자들을 위한 무용 수업을 진행해 온 초청 강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움직임: 무용, 파킨슨병, 그리고 풍요로운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시연을 통해 참가자들 모두가 예술로서 무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몸을 통한 심미적 경험은 열 마디의 말보다 강렬했고, 울림이 컸다.
파킨슨병을 위한 무용교육의 특별함을 배우다_ 워크숍
뉴욕에서 온 강사의 무용 수업은 ‘나무’라고 하는 이미지를 사용한 즉흥무로 시작되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우리의 몸이 나무가 되어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잎을 피우는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태양경배’의 춤을 추면서 호흡과 스트레칭을 하였고, 탭댄스 스텝을 통해 발의 감각을 깨웠고, 발레의 쁠리에를 통해 중심과 균형을 찾았다. 플라멩코의 열정을 손과 발로 발산하고, 뉴질랜드 원주민의 춤인 하카댄스를 통해 좀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해소하면서 정서적 에너지는 절정에 다다랐다. 아리랑 선율에 맞춰 둥글게 서서 손을 맞잡고, 눈으로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면서 모두의 존재를 감각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무용의 본질은 “즐거움”이고 무용의 토대는 “리듬”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환자로서가 아니라 무용수로서’ 자신을 감각할 수 있도록 무용을 교육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철학이다. 이 교육의 특별함은 파킨슨병 증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환우들을 안전하게 예술로서 무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에 있다. 강사가 수업에서 구조화된 무용 활동과 즉흥적 표현 활동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단지 기술이 아니라 예술(arts)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환자가 아니라 무용수로서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인생은 폭풍을 견디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빗속에서도 어떻게 춤을 출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파킨슨병의 증상을 관리하면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외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서적 지지와 사회적 연대감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무용은 한 인간의 건강에 대한 전인적인(holistic) 측면을 다룰 수 있다. 무용 경험은 환우들의 균형감, 자세, 보행과 같은 운동기능 증상을 호전시킬 뿐 아니라 그들의 정서적 교감과 함께 사회적 연대감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용은 증상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고, 즐거움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감각을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재활운동 접근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음악과 함께 자신의 신체 리듬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은 내적 리듬이 혼란스럽거나 부재한 상태인 파킨슨병 환자들에게는 외적 리듬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이번 행사는 무용수들에게 예술로서의 무용이 우리의 삶의 질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 즉 “Power of Dance(무용의 힘)”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의료계와 무용계, 그리고 환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건 분명 역사적인 첫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무용이 환우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사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무용계가 협력하여 무용의 치유 효과에 대한 세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파킨슨병 환우들이 무용수로서 함께 일상에서 춤출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명지대학교 예술심리치료학과 객원교수. 학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무용교육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춤’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무용동작치료 전문가가 되었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심리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예술+심리+치유 활동 속에서 무용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