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
용감한 증언자 고 김군자 할머니를 모심
김기영_연극연출가
 비린내가 훅 코끝을 스친다. 다행히 후각은 빨리 적응을 한다. 자갈치시장 친수광장이 저녁 어스름에 잠긴다. 서쪽 천마산 아래 마을은 하나둘 등불이 켜지면서 뭔가 근사한 그림이 된다. 해수면은 도시의 불빛이 반사되어 물결 따라 반짝인다. 열네 번째의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 행사 전날 무대를 만들고 무대 주위와 행사장에 세울 대나무에 종이로 접은 노란 나비를 달고 있었다.
 부산 최대의 어시장답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혹 친수공간까지 들어온 나이든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바닥에 놓인 대나무를 보고 단박에 ‘어, 굿 하는가베’ 하며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 대나무에 나비를 다는 우리에게 와서 언제 하느냐, 왜 하느냐 묻는다. 내일 하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 특히 나이든 여자들의 공감은 바로 몸으로 표현된다.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 연민이 가득하다.
 노란 나비가 내려앉은 대나무는 바람에 모두 서쪽 방향으로 눕는다. 바람에 꺾이진 않을까, 혹여 밤에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바닷바람에 눅눅해진 나비 날개가 쳐지지는 않을까, 상념에 젖어 남항을 바라본다. 60, 70년전 이 부둣가에서 앞으로 자신 앞에 어떤 생이 펼쳐질 지도 모른 채 어미 아비를 두고 고향을 떠났던 소녀들의 얼굴이 대나무 푸른 이파리 사이 점점이 앉은 노란 나비에 겹쳐진다.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두 발 딛고 서 있을 정도의 이 공간이 그들에게는 회환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꿈에라도 닿고 싶은 곳이었겠지... 내가 서 있는 곳에 새겨진 겹겹의 이야기들이 내게 말을 건다. 

 
 


 2017년 열네 번째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한마당 추진본부는 (사)백산안희제선생독립정신계승사업회, (사)민족미학연구소, (사)부산민예총, 부산여성단체연합,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역사·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1993년 현해탄을 마주보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시작된 이후 격년으로 열렸으나 2015년부터 매년 열린다.
 2017년 7월 23일 김군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 세 분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정부에 등록된 238명 중 남아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37분이다. 그분들이 사라져가는 속도는 가늠할 수 없이 빠르다. 앞으로 그 시간은 더 빨라질 것이다.
 김군자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6세에 납치당해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끌려갔다. 하루에 40여명의 군인을 상대하는 성노리개로 살았고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 동안 7번의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처절한 날들이었다. 해방 뒤 38일을 걸으며 두만강을 건너 조국에 돌아와서 끌려가기 전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결혼을 했으나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평생 혼자 사셨다. 정부 보상금 등을 다 모아서 부모 없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1억 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퇴촌 성당에 장학금을 1억 5천을 기부하는 등 남을 돕는 일에 평생 헌신하셨다.
 ‘그동안 짓밟힌 내 삶이 불쌍하고 억울해서 내가 살아있는 한 사과를 받아야겠다’던 할머니는 결국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2007년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서 위안부의 처절한 삶을 이야기했던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인 고 김군자 할머니의 못 다 이룬 염원을 함께 기원하며 열네 번째의 해원과 상생의 마당을 연다.
 2017년 행사의 중심축은 부산 기장오구굿인데 올해는 세상을 떠나신 김군자 할머니의 해원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 부산민예총 풍물굿 위원회 소속의 풍물꾼들이 자갈치시장 주변으로 길놀이를 나선다. 바닷바람은 선선했으나 아직 여름 한낮의 열기가 남아있는 도심 속으로 날라리 앞세우고 한 판 신명의 바람잡이를 나선다. 정성껏 준비한 행사를 많은 시민들과 함께 열고자하는 염원으로 풍물꾼들의 옷이 땀에 젖어 척척 감긴다. 구경꾼들을 뒤에 졸래졸래 달고 판 안으로 들어선 풍물패의 힘찬 대동판놀음으로 해원상생한마당이 시작된다. 두둥, 대북의 큰 울림이 고요한 바다 깊숙이 퍼져 나가는 듯하다.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최은희 교수님의 ‘맞이 북춤’은 먼 타국의 전쟁터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살았던 모든 위안부들의 한을 불러내어 오늘 이 자리에 풀어 놓으시라 청하는 몸짓과 소리였다. 

 



 기장오구굿 보존회 김동언 무녀의 주관으로 굿판을 닦고 정화하는 판 씻음 마당인 부정굿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굿판이 열린다. 굿판의 사회는 따로 전 가톨릭 관동대학교 교수인 황루시선생님이 맡아주셨는데 굿의 각 과장마다 상세하게 그 의미들을 설명해주어서 관객들이 쉽게 굿에 다가갈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셨다. 부정굿에 이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골맥이 할배, 할매를 모시는 골맥이 굿이 펼쳐진다. 강은교 시인은 매년 이 행사에 헌시를 창작해주신다. 올해는 ‘푸르스름한 치마 – 나눔의 집에서’ 시를 보내주셨다. 필자는 시인의 이전 시 ‘헌화가’와 ‘푸르스름한 치마’를 소리꾼 양일동의 구음과 함께 낭송을 했다. 

 



 다음으로 부산민예총 춤 위원회의 <선-경계>라는 작품이 남 여 무용수와 온 몸을 붉은 천으로 가린 바이올린 연주자의 협연으로 펼쳐진다. 지리산 노고단 아랫마을에 살면서 땅을 갈고 밭을 매며 치유와 따뜻한 기쁨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생태 여성주의 싱어송라이터 안혜경의 노래에 이어 마임이스트 조성진의 마임 ‘훨훨’이 객석과 무대를 가로지르며 위안부들의 한과 염원을 현장으로 소환한다.
 이어서 겨레하나 합창단의 공연이다. 그 중 ‘소녀상을 그대로 두라’는 노래는 ‘악사와 소녀’라는 공연에 들어간 곡인데 7월에 필자가 올린 공연이다. 가사 중에 ‘남은 피해자 38명’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김군자 할머니의 소천으로 37명이 되었으니 가사를 바꿔야하나 잠시 의논을 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 분씩 사라져가는 것을 적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강미리 할 무용단의 <꽃길, 하늘 길>은 한없이 맑고 포근한 이미지의 고요한 몸짓 속에서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이 스며나오는 듯했다. 스무 명의 부산대 무용과 재학생 춤꾼들은 쌓인 원한을 정갈하게 씻어내어 세상 떠나가시는 걸음걸음에 꽃잎 하나씩 놓아드리며 위무를 한다.
 이어서 죽은 이의 넋을 모셔와 살아생전 못 다한 억울한 삶의 사연을 풀어내 떠도는 원혼을 위무하고 해원 상생시키는 오구굿의 핵심적인 절차인 초망자굿이 진행된다. 따로 유족이 없는 김군자 할머니를 위해 부산민예총 조기종 이사장이 대표가 되어 할머니의 혼령을 모신다. 우리 모두가 유족인 셈이다. 바다에서 죽은 넋을 위무하는 용왕굿과 극락세계로 가는 망자의 넋을 기쁘게 해드리는 노래와 춤, 용선 베 가르기 등의 절차로 굿은 마무리가 된다. 늦은 시간까지 행사장을 지킨 관객들과 출연진 모두가 하나가 되어 풍물 난장이 펼쳐진다. 

 



 공적 지원금은 보잘 것 없을 뿐만 아니라 들쑥날쑥이어서 시민들의 십시일반과 재능기부에 가까운 출연진과 준비팀의 수고로움으로 올해도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했다. 위안부 문제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풀려지기를 기대하면서 또한 시민사회와 국민 모두의 마음에 평화에 대한 강한 상징으로 자리잡아가기를 빌어본다. 전 전남대 총장 강정채 대회장의 대회사는 그것을 잘 말하고 있다.
 “국가가 자행하는 제도적 폭력에 늘 경계의 태세를 갖추어야 하며 지배자들이 책동하는 테러, 즉 전쟁에 대해 반대하고 감시하는 연대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제국주의 시대 우리는 일국의 경계를 벗어나 동아시아로, 나아가 세계적인 평화연대의 틀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적인 방법으로 해원상생의 굿판을 여는 것은 이들 양식들이 해방과 창조의 공간을 폭넓게 확장하는 바에 주목하는 것이며 이런 창조성과 인문성을 극대화하여 자칫 우리 내부에 잠재할 수 있는 온갖 비합리적인 적폐와 차별논리를 척결하여 인간화의 기치를 드높이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또 한분의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셨다. 하상숙 할머니의 소천으로 이제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36분이 되었다. 
김기영
극단 일터 상임연출. 부산민예총 미디어기획위원장. 월간 함께 가는 예술인 편집주간을 맡고 있으며 올해 7월 부산 40계단 주변의 동상들과 위안부 소녀상의 이야기를 다룬 <악사와 소녀>를 쓰고 연출했다.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실행위원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의 결에 대한 연구와 현장활동에 흥미가 있다.
2017.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