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각양각색 전통춤 기획공연 수요춤전‧예전무용단‧무탐(舞貪)
전톰춤 기획공연, 변화만큼 공감도 커진다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이즈음들어 춤 공연의 양식이 다양해지고, 공연이 마련되는 채널 역시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무용가들이나 춤 단체 스스로가 모든 경비를 들여 공연장을 대관하고, 홍보하고, 팸플릿 등을 만들던 때와 비교해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전통춤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춤 공연 장르에 비해 공연 횟수도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무용가들의 개인 발표회나 단체의 정기공연 형태로 춤판이 마련되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수년전부터 전통춤 공연장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형태의 기획공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내용 역시 주제별, 내용별, 류파별 프로그램 편성 등등 더욱 세밀해지기 시작했다.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전진희 ‘하루’
 국립국악원의 ‘수요춤전’도 그중 하나이다. 공공 기관에서 개인에게 성설기획공연의 판을 내어 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수요춤전’은 무엇보다 풍류사랑방이란 독특한 공간이 우선 매력적이다. 신발을 벗고 사랑방 같은 느낌의 객석에서 별다른 조명기기의 지원 없이 나무 결 그대로의 판 위에서 추어지는 춤을 보는 것, 음향기기의 도움 없이 전통악기 연주를 원음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악가무 합일의 공연은 별미이다.
 주인공과 찬조 출연자까지, 전통춤의 여러 레퍼토리들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어서도 좋지만, 자주 접할 수 없던 작품이라도 만나게 되면 평자들에게는 흥미가 배가된다. 전진희(서울시무용단 수석단원)의 공연(5월 17일)에서 작고한 이매방류의 〈검무〉와 임이조가 만든 〈화선무〉을 본 것도 평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매방류의 〈검무〉에서 무용수들이 칼을 드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몸태와 두 팔이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지는 선, 그리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운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진주검무〉에서도 이와 비슷한 맛깔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매방류의 〈검무〉는 〈진주검무〉와는 다르게 호남춤의 정서가 배어있었다. 
 서울시무용단 상임안무가 재임 시절 임이조는 창작춤 작업을 주조로 하는 서울시무용단과는 잘 맞지 않은 인사의 대상자였고, 실제로 창작춤 작업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전통춤을 레퍼토리로 삼은 공연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었다. 이날 공연에서 보여준 임이조의 〈화선무〉는 거문고 선율과 소품으로 사용한 부채가 만들어내는 여인들의 은근한 흥취, 그 배합이 일품이었다. 
 여기에 더해 〈검무〉와 〈화선무〉에 출연한 정지현 이성희 김하나 김민정 4명 무용수들의 앙상블을 조율해내는 지도 감각과 수련의 깊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이매방류의 〈승무〉와 임이조류의 〈교방살풀이춤〉, 배정혜의 〈풍류장고〉 등 세 스승의 서로 다른 춤을 수학하고 있는 주인공의 춤 숨결은 신뢰할 만했다. 





 
 손경순예전무용단 ‘우리 춤’

 전통춤 공연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춤 단체는 적지 않지만 공연 때마다 레퍼토리 구성에서나 무용수들의 기량 그리고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평균점 이상을 보여주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전무용단(예술감독 손경순)은 탑(top) 클래스에 속한다. 6월 13-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있었던 2017 정기공연에서 예전무용단은 민속무용 뿐 아니라 정재도 소화할 수 있는 단체의 강점과 복식이나 무구, 소품, 장신구 등 전통춤 공연에서 중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단체의 강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갈한 레퍼토리 구성과 생음악 연주 그리고 작품과 작품 사이의 전환도 깔끔했다. 한 작품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암전하고 무대 스태프들이 나와 돗자리와 소품들을 치우고 하는 번거로움 없이 무용수들에 의한 자연스럽고 세련된, 다음 작품을 위한 전환시도는 전통춤 공연이 극장 무대로 들어왔을 때의 무대 운용 면에서 보면,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악사를 오른편이나 왼편에 배치하는 대부분의 구도와는 다르게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무희에게 시선이 가도록 하는 무대 연출과 조명의 조합도 눈에 들어왔다.
 손경순의 〈살풀이춤〉은 특별했다. 작고한 한영숙이 보여주었던, 내밀한 호흡에 의한 춤의 결 사이로 드러났던 도도함을 손경순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막을 연 〈포구락〉에서의 놀이적인 요소와 품격의 조화, 막을 닫은 7명 무용수들의 〈설장구〉의 타악과 역동적인 움직임의 배합, 복미경의 소고를 곁들인 입춤은 4인이 추는 〈승무〉와 3인이 추는 〈태평무〉에서 홀춤의 매력을 앗아 버린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큼 그 맛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문화의집 ‘무탐’(舞貪)

 
한국문화의집 KOUS의 다양한 기획공연은 전통춤 고정 관객을 형성할 정도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 ‘수요춤전’과 같이 고정적인 타이틀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단발성의 기획 공연도 기발한 착상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엽서 한 장 크기의 단촐한 팸플릿에 적힌 ‘舞貪: 춤추는 평론가’에서도 유추되듯 말 그대로 이 기획공연은, 춤 공연장의 무대가 아닌, 객석을 지키는 무용평론가들이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부 언론사에서는 독자들의 가독율이 높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던지 전통춤 공연 기사로는 드물게 꽤 큰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기도 했다.
 초청된 다섯 명의 현역 비평가들 중 두 명은 실제로 무용을 전공한 무용수 출신이고, 다른 두 명의 남성 비평가들은 수십년 동안 탈춤을 연구하고 추어왔다. 다른 한 명의 남성 비평가도 탈춤을 공부하다 공모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한 이후로는 묻혀있던 예인의 전통춤을 발굴하고 관련 저서를 쓰면서 전통예술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5명의 출연자들은 춤을 공부한 그리고 오래 동안 전통춤 공연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춤 전문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공통점이 예술감독(진옥섭)의 출연자 선정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장인주의 이동안류 〈승무〉를 본 것은 그동안 이 춤을 자주 접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별미였다. 이매방 류의 〈승무〉와는 춤사위에서도 확연히 다른 부분이 엿보였다. 김영희의 〈고깔소고춤〉은 독특한 춤 구성이 그 자체로 강점을 갖고 있어 눈여겨 볼만했다. 그의 춤 매무새는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
 이병옥의 〈산대무〉에서는 우리나라 탈춤 속에 담겨져 있는 다양한 움직임과 놀이적인 속성들을, 봉산탈춤의 〈목중춤〉을 보여준 채희완은 불림과 외사위, 겹사위 동작 등에서 언듯언듯 느껴지는 연륜이 주는 감흥이 오롯이 전해졌다. 〈허튼춤〉에서 진옥섭은 이 춤의 묘미가 그렇듯 맺고 풀고 어르는, 움직임의 반복과 정지 그 순간에서 만나는 미묘한 떨림을 찾으려 애썼다.
 이 춤판은 전체적으로 소담스럽고 훈훈했다. 출연자들이 자신이 앞으로 추게 될 춤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어 공연하는, 일종의 토크(Talk) 춤판 형태를 택한 것도 적절해 보였다. 춤추는 예인들의 무대가 아닌, 어떤 면에서 보면 무용예술 그 주변인들의 공연이란 점에서 보면, 이 같은 관객과 춤추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그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나 그 춤을 보는 관객들에게나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날 춤판은 객석도 가득 찼고 열기도 뜨거웠다. 객석과 무대 사이로 추임새가 오갔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었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획자는 “춤추는 두려움이 지침이 되어 문장을 강화할 터이다”란 말로 “비평가들이 왜 무용가들이 서는 무대를 빼앗는가“란 일부의 시각에 대해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기획 자체는 세간의 눈길을 끌만했다.
 그 옛날 작고한 춤비평가 김영태를 자신의 춤 파트너로 깜짝 등장시켰던 현대무용가 이정희의 기발한 발상에 놀라며 그 공연을 즐겼던 것처럼 다른 면면의 출연자들이 추는 춤을 관객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향유했다.
 이 춤판을 기획하고 출연자까지 선정한 예술감독이 직접 춤까지 추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이날 공연의 진행자는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출연자들이 춤추기를 업으로 하는 예인들이 아니란 점에서 유료 공연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07.
사진제공_전진희, 손경순예전무용단, 한국문화재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