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부산시립무용단 〈업경대〉 & 안무가 김용철 인터뷰
모든 춤의 안팎을 넘나들다
권옥희_춤비평가

 춤으로, 극장의 공기를 흔들어놓았다. 죽음의 혼돈과 서늘한 이미지(경구)들을 조각조각 무대에 토로해 낸 부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용철)의 〈업경대〉(7월 14-1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처음의 귀기(鬼氣)는 옅어지고, 마치 허공과 정적으로 살아남아 있는 유적처럼 서늘한 아름다움이 돋아 오른 무대였다.
 불교에서는 죽음 뒤, 환생하기까지의 잠깐 동안 거쳐 가는 그 사이, 49일 동안 머무는 그 중간세계를 바르도라고 한다. 그 곳에서의 생을 춤으로 그린 〈업경대〉. 부산시립무용단과 예술감독 김용철의 첫 번째 작업이다.

 

 



 무대에 직사각형의 거울(업경대) 일곱, 거울 앞에 놓인 굿집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종이 꽃무더기. 이승이 아닌, 다른 공간이다. 사자(使者)를 따르는 망자(亡者), 그 뒤 (부토이미지)흰색분장의 영혼(강모세)이 호위하듯 망자를 데리고 들어선 곳, 중간계 바르도다. 거울 뒤에 붙어선 저승사자들. 거울을 들여다보는 망자(이광석). 자신의 업보를 본 듯, 몸을 떤다.
 1장, 바르도 공간이 아래로 내리면서(오케스트라 박스) 2장, ‘영혼의 습지’편을 안무자는 음울한 무채색과 흰색이 뿜어내는 빛의 색조로 오버랩하듯 바꿔놓는다. 감각적인 색의 연출이다. 흰색 분장, 민소매원피스를 입은 10명의 여자무용수가 그려내는 세계, 정적. 그림처럼 앉아 (정신을)종이를 빚는다. 스스스…, 습지에 비 내리는 소리. 접은 종이를 잡아들고 천천히 한쪽에다 놓고 다시 되돌아오는 일련의 동작. 팔의 선이 그려내는 궤적. 춤을 빚었다. 물속 같은 고요함, 가라앉은 시간을 본다. 다시 스스스, 댓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같기도. 빚은 종이, 머리에 얹으니, 꽃. 세계를 빚었다.
 ‘영혼의 습지’편, 탁월했다. 고요함과 섬광 같은 명증으로 점철된 이 장은 소음에 빠진 현세계에 대한 한편의 현대적 우화이기도. 춤 속에서 느껴지는 정적과 진동, 그리고 건축적인 움직임의 리듬은 모노톤의 모자이크나 프레스코화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선적이면서 선율있게 짜인 춤의 언어들이 죽음에 대한 지혜로운 시선을 만들어내고 죽음 뒤의 삶에 대한 비밀스런 주술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엎드려 손으로 얼굴을 괴어 꽃받침을 만들고, 조는가 하면, 빤히 객석을 쳐다보다가 치마를 뒤집어 앞으로 싸안고는 무대 위를 구르고, 다리를 허공에다 둔 채 정지. 다시 구르기를 반복하며 이동한 무대 중앙. (만다라가 그려진?)천이 펄럭, 날리는 흰색종이 꽃가루. 가벼이 날리는 ‘욕망’의 무게, 부질없다. 좋은 장.
 반면 반야심경, 후회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망자의 춤. 검정의상의 남자무용수 7명이 서로 얽힌 채 바닥을 기는 용의 설정, 영혼과의 힘겨루기 등은 상식적 해석의 안이한 연출이었다. 가운데 객석을 덮는 크기의 천이 객석에서 무대로 이동. 무대 위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천 아래 있던 모든 혼들. 사자가 천정에서 내려온 두 줄을 걷어 살풀이수건처럼 흔들며 춤을 추니, 환생하는 나신의 남녀들. 망자(이광석), 하늘을 비상하는 듯한 몸짓. 허물을 벗듯, 의상을 벗고 손을 들어 흔든다. (이승에서의 모든 인연에)안녕을 고하듯.
 안무자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하게 된 삶의 이치를 알아챈 듯. 무(無), 헛됨을. 죽음 뒤의 생을 보여주면서, 죽는 법을, 그러면 사는 법 또한 배우게 될 것이니. 부처의 가르침은 누구든 깨달음을 얻어 바르도에서 환생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49일이 지나고 해탈하지 못했을 때, 하여 어쩔 수 없이 윤회, 또 환생하게 되었을 때. 그때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를 바라야한다. 천을 끌고 지하로 내려가는 영혼(강모세)의 고통스러워하는가 하면 해탈한 듯(?)한, 확정할 수 없는 표정 연기, 훌륭했다.

 

 



 안무자는 30여명의 역동적인 남자군무로 그의 춤이 한 곳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하면, 자루가 긴 흰색 우산의 쌍을 이룬 남녀무용수의 군무로 천신들의 세계(니르바나)를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업경대〉에서 김용철은 생명이거나 춤으로 생명이 될 모든 것을, 이곳의 시간과 저쪽의 시간을 연결하며 나뉘는 듯 나뉘지 않는 어떤 것에서 어떤 것으로 일어나 모든 춤의 안팎을 넘나들었다.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장과 장 사이의 크고 작은 여백이 춤을 중심을 향해 있는 (탈)구성의 감각적인 작품이었다.

사진제공_부산시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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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김용철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부산시립무용단만의 정체성 찾겠다

 


 


무용단의 무용수들은 저마다 고유한 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다른 나이와 춤, 그리고 살아온 흔적을 가지고 예술감독의 춤의 요구에도 결코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변화무쌍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변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업경대〉에서 보여준 부산시립무용단 얘기다. 그 비밀은 바로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이기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완성한다는데 있다고. 올 3월에 부임하여 〈업경대〉로 첫 공연을 마친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용철을 만났다.

권옥희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뒤, 첫 작업 〈업경대〉.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축하한다.
김용철 감사하다. 무용단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경북,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시아가 좁다고 다닌 감독한테는 서울에서 부산으로의 공간 이동은 문제도 아니었겠으나 허나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오곤 했던 것과 몇 년간 한솥밥을 먹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더구나 ‘부산시립무용단’이란 곳이 1973년에 창단한, 올해 43주년인 단체로 역사가 있는 곳이다. 단원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올 3월 1일부터 14일까지 ‘섶’무용단을 이끌고 해외투어 하는 기간에 발표가 났다. 14일 입국, 16일 위촉받았다. 그리고 4월과 5월, 좀 힘들었다. 정형화된 무용단의 춤틀을 깨는 것이 힘들었다. 내 생각을 바로 전달했다. 나는 퍼포머다. 춤에 집중하겠다. 춤은 현대성을 띄어야 하고, 또한 미래적이어야 한다. 지금껏 추던 (전통춤)류파별 춤을 좀 놓았으면 좋겠다.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기 위해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통을 시작했다. 소통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이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을 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쉽지 않았다. 공연 뒤, 훨씬 나아졌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감독의 춤철학과 춤언어(동작)는 좀 독특하다. 무용단원들이 낯설어하지 않던가?
워밍업하는 단계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이제껏 움직이지 않던 동작과 음악이 생소했을 것이다. 테크니컬한 동작도. 단원들이 현대춤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반문했다. 현대춤이 아니라 현대적인 움직임이라고 했다.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한국 것인가, 서양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것이고, 현재 이 시대의 것이다. 류파춤에 관심을 두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내 춤을 우리의 것으로 순수하게 받아주지 않으면 부산국립국악원과 뭐가 다른가. 그들보다 잘 출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그들과 차별화된 춤을 춰야한다. 우리 단원들 평균 연령이 40대다. 평균연령 이십대, 창단 8년인 국립국악원의 젊은 피와 싸워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관록으로 이시대의 춤을 춰야한다. 삶의 질곡을 표현하는 데는 그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이런 이유가 〈업경대〉에 잘 용해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 함께한 젊은 객원들은 하늘을 날고, 우리 단원들이 땅을 지키면서 질곡과 기쁨을 잘 표현해낸 공연이라고 자평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단원들과 소통하고자 한 감독의 노력과 과감하게 젊은 객원을 쓴 것이 주효한 공연이었다. 공연평은 어땠나?
부산의 국제신문 등, 여러 매체에 호평이 많았다. 극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해온 작업은 김용철 예술감독의 역사다. 지금껏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간략히 말해달라.
3분기로 나눌 수 있다. 1992년 첫 작품을 시작, 음악, 주제, 의상 등 모든 것을 한국적인 것으로만 만들었다. 한국무용가이니 당연히 한국적인 것만을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평단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분기였다. 고민했다.
이후 ‘서울미래춤비엔날레’에서 〈붉디붉은〉으로 특별상을 받은 이후19 98년도에 ‘창무국제예술제 인 베이징’과 1999년도 ‘독일국제무용제’에 초청받으면서 자신을 얻었다. 2분기가 시작된 지점이다. 이후 한국창작춤의 활성화와 해외아트마켓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 작품으로 해외진출을 하고 싶었다. 안성수 박재홍과 함께 베이징에 갔다. 내 작품으로 처음 해외에 진출한 무대였다. 같은 해에 독일 기획자와 독일 세 도시를 돌았다.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댄서보다 안무자, 리더로서 기쁨을 느꼈다.
3분기의 시작은 〈업경대〉로 시작된다. 2005년도에 이 작품으로 도쿄에서 공연을 했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부토 페스티벌을 가서 만난 부토무용가에게 공연을 위해 비디오를 보냈다. 선정되어 ‘지워진 자를 위한 난장’이란 제목으로 100석 되는 극장에서 했다. 2010년도에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에서 공연했다. 살아있었으나 죽은 목숨처럼 힘들었다. 이후 2010년에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면서 70분 버전으로 발전시켰다.

작품에서 보이는 부토춤의 연유가 궁금하다.
2003년도 ‘오사카 아시아댄스 페스티벌’에 〈붉디붉은〉을 공연하러 갔었다. 극장 앞에 붙어 있던 부토 공연사진이 마음을 흔들었다. 부토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그들의 표현력, 응집력 춤의 집중하는 정신을 높이 산다. 일본의 부토뿐만이 아니라 세계, 특히 아시아 무용가들과 교류하면서 세계의 문화전반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전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로서의 경험은 자신의 춤 이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9년간 재직했다. 전통춤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전통춤을 배웠고, 행정 전반의 실무 등 많은 것을 배우고 현실감각을 익힌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시아 무용가들과 협력을 할 기회가 많았다. ‘창무국제페스티벌 인 베이징’에서 진싱을 만났고, 북경무도학원 조선족 한형걸을 만났다. 경상도는 중국, 전라도는 일본이라 나름대로 정서와 춤을 이론적으로 정립해놓고 일본 말레이시아 중국 학생들이 공부하러 들어오면서 아시아문화 기점을 우리나라에 두고 그들과 친해지면서 동작의 다양성이 더 생겼다. 2003부터 2010년까지 인도 방콕 필리핀, 도쿄, 오사카, 상해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아시아 여러 곳을 다니며 공연하면서 감독만의 춤철학이 있다면?
중국의 지형적이면서도 공간적이고 동물적인 동작형태, 일본의 닫히고 정제된 춤의 미학, 우리나라의 전라도 경상도의 중성적이면서 중용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내 춤을 발전시켰다. 남자의 기방춤으로부터 야류춤들은 발전되지 않았다. 춤이 중성화되는 것에 반기(反旗)는 아니지만 혼용을 하니까 사람들이 반응을 했다. 우리춤의 인기는 프랑스, 일본뿐이다. 그들은 남의 얘기를 듣는 민족이라는 데 그 이유를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내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춤이 인기가 없는 이유다. 이 시대, 아시아 컨템포러리 춤을 추어야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다른 무용단과의(한국창작춤) 차별성을 어디에 두고 작업할 예정인가?
부산시립무용단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가고 싶다. ‘한국창작춤’에서 ‘한국’을 빼고 싶다.(웃음). ‘한국’이라는 단어가 좋지만 나를(단체를) 규정하고 가두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다. 크게 두 가지로 보면 전문인과 예술인들을 위한 〈업경대〉, 하나는 대중적으로 가볍게 시민들과 공감하고 즐기는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번 7월 21일에서 22일, 이틀 동안 〈드라마 음악과 함께하는 춤여행〉 공연처럼.

무대에 선 단원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있는가?
관객이 느끼게 하라는 것,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손을 들었는데. 관객이 따라 손을 들게 만들어야한다. 관객을 일으켜라. 보러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라. 이것은 사고의 릴랙스에서 온다.

춤 말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있는가?
자유. 떠나는 것, 여행, 길속에 책이 있고, 삶이 있고 모두 있더라. 떠남과 만남 속에 모든 것이. 여행을 많이 한다. 

2016.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