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대전시립무용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한국 공립 무용단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효율적인 운영방향을 모색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예술감독 선임과 임기, 단원들의 오디션과 정년, 복지 문제 등 우리나라 공공무용단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감 없이 도출되어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고, 예정시간 보다 한 시간을 훌쩍 넘어 끝났다. 뜨거운 담론의 현장을 스케치했다. (편집자 주)
□ 현장 스케치
예술감독 임기, 단원 오디션과 정년 문제가 이슈
대전시립무용단은 지난 11월 18일 오후 2시 창단 30주년을 맞아 대전예술의전당 컨벤션홀에서 한국 공립 무용단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1,2부로 나눠 1부에서는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발제, 그리고 장승헌(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 윤민숙(한국무용협회 대전광역시지회장), 홍승엽(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지정토론을 맡았고, 2부에서는 장지영(국민일보 차장)의 발제, 그리고 정은혜(충남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이찬주(이찬주춤자료관 대표), 김지원(대전시립무용단 수석단원)의 지정토론과 참석했던 기획자, 단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열띤 토론이 예정시간 보다 1시간을 넘긴 저녁 7시까지 이어졌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 공립 무용단의 현 단계’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김채현 교수는 “공립 무용단 단원 및 일반 무용인 168명을 상대로 공립 무용단의 현안을 묻는 여론 조사를 토대로 공립 무용단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도를 살펴보고, 공공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공립무용단은 국가나 시, 도의 공공법률을 근거로 설치된다. 따라서 그 안에서 운영되고 보장을 받는 기관이다. 공공성의 실현은 공립무용단의 최종 목적이지만 실제현장에서는 국내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이 높지 않다는 여론이 무성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대외적으로 공립 무용단의 작품 및 레퍼토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작품의 적절한 수준을 갖춰야 하며, 새 양식의 안무 정립, 레퍼토리의 다양화, 모호한 정체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내부 현안으로는 전반적 운영 시스템에서 임의적 운영소지를 해소해야하고, 예술감독의 역량 및 식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하며, 작품 및 레퍼토리 개발 과정을 손질, 예술감독 독임제 폐단 해소, 중장기 창작 기획 체제 구축, 이사회나 운영자문위원회의 실질적 운영, 단원 신분의 안정을 꼽았다.
이런 문제점들의 해결 방안으로 동전의 양면 같은 대외, 내부 현안이지만 대외현안이 공공성 실현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하며, 공립 무용단의 현안에 대한 해결책은 대외 현안을 단서로 내부 현안에서 찾아야 한다며 계획적이고 면밀한 운영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장승헌 이사는 발제자가 주장하는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며 특히 레퍼토리, 예술감독의 역량, 예산의 효율적 운영과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은 물론, 무용단의 대 사회적 인식변화에 대한 응답결과가 상당히 좋지 않음을 주목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과거 전국 공립무용단들이 서울 나들이 공연으로 각자의 작품을 서울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참가 단체들의 선의의 경쟁을 통한 공연 완성도 또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나타냈던 것으로 평가되는 ‘전국 시도립무용단 무용제’의 부활을 제안했다.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는 무용단은 질 높은 공연을 대중이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야 하며, 공립무용단의 공공성 확보와 예술감독의 예술성 취향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과제이며, 지역 무용단들의 설립 목적과 정체성, 아울러 작품개발과정을 명문화하는 과정 또한 반드시 선결되어져야한다고 의견을 냈다.
홍승엽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예술감독의 역할이 조직의 체계로 인해 법인형태의 단체장과 지방자치의 산하단체와는 그 역할에서 확연히 다름을 강조하고 재단법인의 경우 예술감독은 곧 단장으로 그 조직의 최고책임자이지만 대부분의 공공단체는 예술작업에 대한 감독과 지휘, 책임을 갖고 있을 뿐, 행정적인 권한은 없음을 설명했다. 그는 십 수년 전부터 공공단체가 제자리걸음 하거나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판단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며, 개선방안도 현실로 옮기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예술감독이 단체 발전의 최소의 주체이긴 하지만 짧은 임기나 행정라인과 단원들의 협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며 단체의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예술감독의 짧은 임기, 자질이 부족한 일부 무용수, 기획과 홍보 인력의 인원수와 전문성의 부족, 행정의 경직성 등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문제의 중심에는 무용수가 있고 그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무용수를 근로자와 동일한 법으로 적용하지 말고 프로 운동선수나 연예인과 유사한 조건의 계약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제시했다.
윤민숙 한국무용협회 대전광역시지회장은 공립예술단체로서 도시 문화창조 가치관 형성의 역할을 기대했다. 공립예술단체의 공공성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방안보다는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시립단체에서 시민관객들과의 소통으로 원칙으로 이루어지는 기획력, 창의적 문화창출을 통한 질 높은 작품생산 능력개발, 사회적 교육활동 등은 예술감독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경영시스템이 아닌 단원들의 능력 개발이 동반되어야한다고 말했다. 단체만의 소명과 가치관이 있어야하며 인문학적 사고력 향상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운영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극단 ‘사계’를 보면 예술의 창조력과 전문경영의 앙상블이라는 모토로 적재적소의 기획력과 역발상, 미래 관객을 공략하여 많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여 큰 발전을 가졌고 이는 곧 많은 예술인들 고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구조적인 문제로 시립예술단원의 고령화와 은퇴 이후의 진로 걱정으로 정년연장을 주장하기보단 진정한 예술인으로 소명과 가치관을 확립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 지역 무용단의 미래찾기’란 제목으로 제2주제 발제에 나선 국민일보 장지영 차장은 한국 지역 무용단의 미래찾기는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이 관건이라고 했다. 공공무용단은 국내 어떤 무용단보다 가장 안정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지만 그에 걸 맞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는 공공무용단 단원이란 자리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안정적 월급이 보장되는 자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공공무용단이 왜 예술성과 공공성을 갖추기 못했을까?에 대해 발제자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술단체를 처음 만들 때 장르의 특수성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공무원 시스템에 맞춘 것 그리고 퇴직 후 직업전환이 어려운 단원들이 퇴직을 꺼리며 실력 있는 젊은 무용수들은 더 기회가 없게 된 것 이라고 진단했다.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강력한 단원 평가제로 연간 작품출연 편수 및 역할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받아야한다고 제안했다.
참고로 서울시향의 경우 2005년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해촉하는 제도를 시행했고, 이것이 가혹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이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또 부실한 조직 운영 및 레퍼토리 부족. 정년이 보장된 무용수에 비해 평균 3년 임기의 예술감독은 무용단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술감독의 교유권한을 보장하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해외에서는 후임 예술감독 선정을 2년~ 1년 반전에 발표, 1년 전부터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10년 이상씩 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장기 근속하는 단원제로 운영되는 만큼 좋은 레퍼토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국내 한국 창작 춤 가운데 좋은 작품들을 무용단의 레퍼토리로 구축하여 자주 공연하는 방법, 대전시립무용단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창작 춤으로 젊은 관객을 끌어 모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충남대학교 무용과 정은혜 교수는 오케스트라의 철저한 오디션 사례 등은 한국 전체 무용단의 수준제고와 단원의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해촉 된 단원의 처우문제도 지자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저 합의한다면 선순환의 구도가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감독 임기 보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경험을 돌아보면 예술감독에게 더 많은 권한과 고유한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감독의 색깔에 맞는 단원들로 교체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은 현실과 정서상 성숙한 미래의 과제이지만 그런 제도적 시스템이 지원된다면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덧붙였다.
현재의 제도에서 예술감독은 열세일 수밖에 없지만 더 큰 문제는 역량있는 감독을 선임하는 제도. 철저한 검증,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진정으로 역량있는 예술감독을 선임해야한다고 말했다. 예술감독은 좋은 작품에만 전념하고 단원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행사공연을 줄여주고 예술가로서 자기계발 및 복지와 보수의 개선을 제언했다.
이찬주춤자료관 이찬주 대표는 단원의 고령화에 대한 대책, 레퍼토리 개선 및 예술감독 선정문제 등을 보면 단원의 근속기간이 너무 길어 고령화되었고 무용단 퇴직 후 직업전환도 잘 이뤄지지 않는 등 불투명한 장래 때문에 단원들은 은퇴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근로자 정년 60세 연장법은 다른 분야에서는 충분히 수용될 만한 변경이지만 춤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절감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일률적은 정년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연간 작품출연편수 및 역할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받고 호봉제 대신 역할 수행에 따른 새로운 보수 체계가 도입되어야한다고 제시했다. 레퍼토리 유지와 개선이 요구되며 좋은 작품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수정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한번 공연했다고 방치하기보다는 당연히 레퍼토리 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계속되는 공연을 기록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창단초기문서 기록이라든지 공연 프로그램 등의 디지털화 작업, 공연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은 역사가 되고 미래를 향안 발걸음의 초석을 닦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시립무용단 김지원 수석단원은 한국의 공공무용단체의 역사에 걸맞는 예술성과 공공성을 갖춘 시스템의 문제제기는 중요한 안건으로 생각하며 공공 무용단 입단 전 많은 경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오랜 기간 갈고 닦아야만 춤사위와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과연 젊은 무용수들이 가능한지, 젊은 객원 무용수는 작품과 무용단의 필요에 의한 수요이지 고령화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이야기했다. 무용수 뿐 아니라 무용계의 인사들 역시 세대교체가 동반되어야하는 것이 아닌지, 지역무용단의 특성을 살린 레퍼토리를 많이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늘 고민해왔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대전시립무용단은 특화된 주제로 정기공연을, 다양한 연령별, 계층별로 기획공연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현실적으로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작품이 일회성이 아닌, 여러 번 자주 공연되어지길 원하며 행적적인부분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타 장르와 달리 한국 무용이 갖는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시점에 명예퇴직, 임금피크제, 직업전환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며 인적자원에 대한 복지차원의 지원이 지속되어질 때 공공무용단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자 장광열은 “이번 포럼은 대전에서 개최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공립무용단 모두에 해당되는 주제인 만큼 춤계의 관심이 모아져 있었다며 이 자리에서 고령화나 레퍼토리, 예술감독의 임기제가 당장에 해결되어질 수는 없지만 중요한 현안들을 직접 관련 있는 분들이 모여 공론화했다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또 장승헌 상임이사에게 전문 무용수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대전시립무용단 단원을 포함한 전국의 공립무용단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봤던 대전예술의전당 오병권 관장은 단원기량, 예술감독의 문제 못지않게 사무국의 인력, 기획력을 보강했을 때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참석한 청중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대전시립무용단 이강용 훈련장은 “심각해지는 고령화에 대비해 교육청과 연계하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제작하고 그곳에서 지원을 받아 일부 예산을 젊은 단원 보충에 이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김채현 교수는 “무용단은 작품을 만드는 곳이고 단원들은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실 상 공립무용단이 그 이후까지 책임을 져야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라고 답변했다.
대전시립무용단 김효분 예술감독은 “임기 계약 조건에 창작작품 횟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현실적․시간적으로 레퍼토리 개발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또 이미 <춤으로 그리는 동화> 같은 경우 지역에서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고 있어 성공적인 공연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은 우리나라 공공 무용단들의 현안에 대해 이를 연구해 온 비평가와 시립무용단의 현 전 예술감독 및 단원 등 전문가들이 골고루 발제자와 토론자, 사화자로 참여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진단하고 논의했다는 점에서 그 효율성 면에서나 생산성 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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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문 1
한국 공립 무용단의 현단계
김채현_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 교수
공공성 높여 세계로 나서야
국내 공립 무용단은 민간 무용단에 비해 인프라 면에서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작품 활동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춤계 중론이다. 80년대 중반 춤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후 지난 한 세대 동안 공립 무용단과 민간 무용단(혹은 민간 무용인)의 작품 활동을 비교하는 것은 흔하다. 춤 르네상스 이전 정기적인 공연 활동이 공립 무용단에 의해 주도되었고 민간 무용단은 활동도 적었다. 춤 르네상스 이후 민간 무용단이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면서 공립 무용단을 앞지르는 추세가 강화되었다. 특히 지난 15년 동안 공립 무용단의 작품 활동에 대해 춤계 여론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본 발제문은 공립 무용단의 작품 활동에 대한 춤계의 일반 무용인과 전‧현직 단원들의 여론을 토대로 공립 무용단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도를 살펴보고, 공립 무용단의 미래를 위해 현안의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공립 무용단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도가 낮다는 것이 춤계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현 단계 공립 무용단은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낮은 공공성을 높여야 하는 공립 무용단에서는 해외 교류와 진출은 그다지 고려되지도 않을 사업 방안이 아닌가 한다. 갈수록 심화하는 글로벌 시대에 대처하는 전략 면에서도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 높이기는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1. 공립 무용단의 근거 또는 지위
어느 무용단이 공립 무용단이라 지칭되는 근거는 해당 무용단의 설치를 가능하게 하는 공공 법률이다. 국립무용단은 대통령령(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의 제2조에 따라 설치된다. 대전시립무용단은 조례(대전광역시립예술단설치조례)에 따라 설치된다. 다른 시도립 무용단들도 모두 해당 시와 도의 조례에 따라 설치된다.(관련 법령 자료 참조)
공립 무용단은 근거 법령을 기준으로 국립(대통령령)과 시 도립(조례)으로 대별된다. 국립과 시 도립을 통틀어 국공립 또는 국 시립 무용단 등등으로 통칭하고, 민간 무용단과 구분하기 위해 공공 무용단 또는 공립 무용단으로 부른다. 2015년 들어 공립 무용단을 공공 무용단으로 부르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흐름은 공립 무용단에서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을 강조하려는 시대 추세를 반영한다고 판단된다.
2. 현 단계 공립 무용단의 최우선 과제: 공공성 높이기
공공 법령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을 보장받는 기관(그리고 기구)은 그 설치 목적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령이 정한 설치 목적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공공성의 실현을 의미한다. 공공성은 여러 갈래로 설명될 수 있다. 공립 무용단에 적용되는 공공성은 공립 무용단의 설치와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해당 법령들의 수혜자, 즉 국민 또는 시민, 도민에게 문화적 혜택을 조성함으로써 존재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런 존재 상태가 활발하면 공공성이 높아질 것이다. 단적으로, 공립 무용단은 해당 무용단이 동원할 수 있는 활동(춤 예술적 활동) 자원을 통해 문화적 혜택을 공적으로 조성해서 공공성을 실현해야 한다.
공공성의 실현은 공립 무용단의 존재 이유이자 최종 목적이다.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도가 낮을수록 해당 공립 무용단은 존재 이유가 낮아지며, 존재 이유가 없는 공립 무용단은 물론 해체될 것이다. 낮은 공공성을 이유로 공립 무용단이 해체된 선례가 국내에서는 없다. 이를 빌미로 국내 공립 무용단이 실현해내는 공공성이 낮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국내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이 높지 않다는 여론이 무성하다. 다시 말해, 현 단계 공립 무용단은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 과제(그리고 핵심 과제)로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립 무용단들을 향해 쏟아지는 개선 과제는 복잡다단하지만, 개선 방향은 한 마디로 말하면 공공성 높이기로 요약된다.
3. 공공성 대두의 역사적 배경
공립 무용단이 공공성에 충실할 것 또는 공공성을 높여야 할 것을 언어로 명료하게 표명한 시기는 올해부터라 생각된다. 굳이 그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여론들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공립 무용단에 대해 작품성을 높여야 한다, 레퍼토리를 갖춰야 한다, 시대적 안목을 함양해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 거점(據點) 무용단으로서 역할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등등의 내용으로 꾸준히 제기된 지적들은 그러한 요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공립 무용단 논의에서 공공성은 전혀 새롭거나 이질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성은 그간에 누누이 제기된 여론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폐단에 주목하여 그러한 요청을 보다 선명하고도 간결하게 집약하는 용어로 제시되고 있는 편이다.(이런 점은 복지 등의 측면에서 사회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빈도가 증가하는 사회 전반의 추세와도 연관된다.)
공립 무용단의 운영을 중심으로 개선 여론이 표면화한 것은 대체로 2000년 이후의 일로 생각된다. 80년대 중반 춤 르네상스 시기부터 약 10년간 국내 춤계는 공립 무용단과 민간 무용단을 양축으로 해서 발전해왔다.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내 춤계는 민간 무용단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공립 무용단은 정체기에 접어든다. 그 몇 해 후, 즉 IMF를 거치며 2000년대에 민간 무용단 역시 국내에 전반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고급)예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도, 이 사이에 공립 무용단은 수적으로 늘어나며 일부 공립 무용단들은 책임운영기관화 등 새로운 운영(경영) 체제를 도입하게 되고 대부분의 공립 무용단은 인프라(극장과 조직 및 급여 복지 등)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된다.
이후 공립 무용단의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90년대에 비해 훨씬 높아져온 요인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2000년대 들어 공립 무용단이 민간 무용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나은 여건을 갖추게 되는 현실.
2 그럼에도, 예술의 위기 상황에서 공립 무용단이 위기 극복을 선도하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3) IMF 직후부터 예술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간 무용단들에서 프리랜서, 인디 등을 비롯하여 창작자가 늘어나고
다변화하며 세대교체를 이뤄가면서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애쓰는 데 비해 공립 무용단은 작품과 창작자 면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판단.
4. 공립 무용단의 현안 1: 2015년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지난 3월 이후 3주간 공립 무용단 단원 및 일반 무용인 168명을 상대로 공립 무용단의 현안을 묻는 여론 조사를 무기명 전화 면담 방식으로 실시하였다. 이 여론 조사 작업은 공립 무용단에 대한 개선 여론이 누누이 표명되지마는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주목하여, 그러한 부정적 여론이 과연 근거가 있는지 재확인해서 실질적인 개선책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여론 조사 결과, 공립 무용단에 대한 그간의 개선 여론이 근거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춤계 최초로 이뤄진 여론 조사가 비공개 익명으로 진행되어 공립 무용단을 둘러싼 여론을 일단 객관적 수치로 뒷받침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현직 공립 무용단 단원과 일반 무용인을 구분해서 차이를 둔 문항들에 대해 응답을 수집하였다. 전체 문항은 인사관리·공연작 및 단원 평가·운영 체제의 3부문에 걸쳐 구성되었다.(관련 자료 참조)
이 가운데 주요 문항의 조사 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용단의 예술 작품 및 레퍼토리를 만족스럽게 생각하십니까?” 문항: 전·현직 단원의 75.5%, 일반 무용인의 92%가 탐탁지 않게 여김.
2) “단체장(= 예술감독)은 무용예술의 역량(안무와 예술적 식견 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항: 전·현직 단원 51%, 일반 무용인 64%가 탐탁지 않게 여김.
3) “무용단의 작품 및 레퍼토리 개발 과정은 적절합니까?” 문항: 전·현직 단원의 71.2%가 탐탁지 않게 여김.
4) “무용단의 예산이 효율적으로 운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항: 전·현직 단원의 76.9%가 탐탁지 않게 여김.
5) “무용단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에 만족하십니까?” 문항: 전·현직 단원의 78.2%가 탐탁지 않게 여김.
6) “공공 무용단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항: 일반 무용인의 83.5%가 탐탁지 않게 여김.
7) “공공 무용단이 국내 무용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항: 일반 무용인의 65.7%가 탐탁지 않게 여김.
공립 무용단은 작품과 공연 활동으로써 설립 목적을 실현한다. 이번 조사에서 그에 관한 문항에 대한 응답 결과는, 비록 여론 조사이긴 해도, 현 단계 공립 무용단이 설립 목적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 나타낼 것이다. 이러한 응답 결과가 어느 정도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설립 목적의 실현에 관한 여러 응답 결과가 부정적인 쪽으로 매우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이번 조사 대상자가 전·현직 단원이 94명, 일반 무용인 74명이고 전·현직 단원 수가 훨씬 많다는 점에 비추어 실제 춤계 여론은 더 부정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공립 무용단의 현안으로 예술감독 업무의 예술적 집중화, 단원 처우, 정년 연령, 전직 훈련 등 검토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이들 과제는, 그러나, 앞서와 같은 작품 및 공연 활동에 비해 공공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안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처지기 마련이다. 이들 과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공립 무용단은 작품 및 공연 활동에서 공공성을 더 높게 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5. 공립 무용단의 현안 2: 2015년 이전
2015년 이전에 공립 무용단의 현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보면 공립 무용단의 예술 활동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여론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흔치 않은 토론회 가운데 아래 소개되는 2003년과 2006년의 두 사례에서 그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2003년의 경우 공립 무용단이 책임운영기관 등 새로 도입되던 운영 체제에 적응하는 시기여서 인사관리·공연작 및 단원 평가·운영 체제 전반에 걸쳐 여론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를 지나 무용단 조직이 안정되면서 작품과 레퍼토리 등의 활동으로 여론의 초점이 이동하였다.
□ 2006년의 사례
2006년 1월 국립무용단이 열은 포럼(주제: ‘국립무용단 단장의 역할과 기대’)에서 평론가와 국립무용단원들의 토론이 있었다. 비록 국립무용단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였어도 공립 무용단 전반에 대한 토론으로 수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토론에서는 예술감독보다는 국립무용단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훨씬 많이 제시되었는데, 이 제안들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2) 국립무용단에 적합한 작품 스케일과 수준을 갖춰야 한다.
3) 국립무용단은 안무 등의 측면에서 새 양식을 정립할 의무가 있다.
4) 예술감독에 따라 작품 양식이나 경향이 좌우되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
5) 레퍼토리를 다양화해야 한다.
6) 국립무용단을 개방해서 국내외의 유능한 안무자를 초빙하고 외부의 우수작을 구입해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7)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창작 기획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8) 운영자문위원회는 실질적 운영을 기해야 한다.
9) 예술감독 독임제(獨任制: 1인 관리 집행 제도)를 벗어나 국립무용단 내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집단의 예술진
같은 진용이 필요하다.
10) 레퍼토리 선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11) 노조는 단원을 보호하고 기량을 검증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 2003년의 사례
2003년 9월 한국춤평론가회(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전신)가 열은 춤정책 세미나에서 필자는 공공무용단의 현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1) 공공무용단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2) 단체의 목표-지향점이 불명확하다.
3) 레퍼토리가 희소하다.
4) 레퍼토리의 예술성이 미약하다.
5) 실현되는 공공성이 낮다.
6) 단원 처우가 열악하다.
7) 단원 신분이 불안정하다.
8) 단장과 예술감독의 동일인 체제가 비효율적이다.
9) 단장과 예술감독이 분리되어도 단장을 행정직이 맡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10) 공공무용단의 자문위원회나 이사회가 요식행위로 운영된다.
11) 공공무용단의 임의적 운영을 방지하고 운영을 검증하며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12) 지원 부서에서 연구, 기획 등 전문인의 비중이 낮다.
6. 공립 무용단의 현안 구분: 대외 현안과 내부 현안
무릇 공립 무용단의 현안은 크게 무용단 내부 현안(내부 조직 및 그 운영과 연관된 현안)과 작품 및 공연 활동 관련 현안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현안은 대외(對外) 현안이라 지칭된다.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은 작품 및 공연 활동으로 실현되며 공공성을 가늠하는 기준 역시 작품 및 공연 활동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공공성실현을 논할 경우에는 공립 무용단의 현안 가운데 대외 현안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공립 무용단의 내부 조직과 운영은 작품 및 공연 활동, 즉 공공성 실현을 뒷받침하는 장치로서 공공성의 이면에 놓이고 공공성과는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렇더라도, 내부 조직 및 운영 실태와 공공성 실현의 정도는 상호 비례 관계에 있다. 그런 때문에, 공립 무용단의 작품 및 공연 활동에 관한 여론을 토대로 그 공공성 실현을 논하려면 내부 조직 및 운영 실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립 무용단의 공공성 실현 단계에서 노출되는 문제점이나 현안(대외 현안)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결국 내부 조직과 운영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산발적이긴 하나 2003년, 2006년, 2015년에 공론으로 제기된 공립 무용단의 현안(과제)들을 대외 현안과 내부 현안으로 나눠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대외 현안
1) 공립 무용단의 작품 및 레퍼토리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야 함.
2) 공립 무용단의 작품에 적절한 수준을 갖춰야 함.
3) 공립 무용단의 새 양식의 안무를 정립해야 함.
4) 공립 무용단의 레퍼토리를 다양화해야 함.
4) 공립 무용단의 국내 무용 발전에 대한 춤계의 기대치가 낮음.
5) 공립 무용단의 정체성이 모호함.
☐ 내부 현안
1) 전반적 운영 시스템에서 임의적 운영 소지를 해소해야 함.
2) 예술감독의 역량 및 식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함.
3) 작품 및 레퍼토리 개발 과정을 손질해야 함.
4) 예술감독 독임제의 폐단을 해소해야 함.
5) 중장기 창작 기획 체제를 구축해야 함.
6) 이사회나 운영자문위원회가 실질적 운영을 기해야 함.
7) 단원 신분의 안정을 기해야 함.
8) 노조는 단원을 보호하고 기량을 검증할 기준을 마련해야 함.
9) 지원 부서 가운데 연구, 기획 등 전문인 비중을 높여야 함.
7. 공립 무용단의 현안과 해결 방안
공립 무용단의 대외 현안과 내부 현안은, 앞서 언급했듯이,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에 있다. 둘 가운데 대외 현안이 공공성 실현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론은 대외 현안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공공성 면에서 대외 현안이 결과라면 내부 조직 및 운영은 원인이다. 이런 이유에서, 공립 무용단의 현안에 대한 해결책은 대외 현안을 단서로 내부 현안에서 찾아져야 한다.
1)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운영 체계의 구축
위에서 정리된 대외 현안은 모두 공립 무용단의 작품 및 공연 활동과 연계된 것으로서, 한 마디로 공립 무용단의 작품 활동에 대해 춤계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위에서 지적된 내부 현안들이 제각각 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부 현안들의 해결을 촉구하는 여론이 그간 지속적으로 있어 왔었다. 공립 무용단 내부에서도 그러한 여론을 고려하여 내부 현안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해결 방안을 시도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에 대해 춤계의 반응이 미온적이었거나 부정적이었던 것은 해결 방안의 모색이나 시도가 근원적이지도 영속적이지도 않은 데에다 때로는 고식적이었던 때문이라 생각된다.
예컨대, 지난 몇 해 공립 무용단의 작품 및 레퍼토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객원 안무자에게 작품을 의뢰한 경우를 보자. 객원 안무를 통한 효과를 덮어놓고 무시할 일은 아니지만, 공립 무용단에서는 대부분 객원 안무 초빙 작업에 대한 명시적 장치를 갖추지 않은 채 추진했을 것이다. 객원 안무를 정례화한다든가 객원 안무자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할 규정이 없다면 객원 안무 초빙 사업은 일과성의 단편적 사업으로 흐르기 쉽고, 실제 그러하다.
객원 안무 초빙 작업은 공립 무용단의 정체성 및 중장기 창작 기획 계획을 바탕으로 이사회나 운영위가 내부의 전문 기획진(일테면 큐레이터)과 외부의 조언을 반영해서 심지어는 시장성까지 따져 추진해야 할 사업이라 생각된다. 국내 공립 무용단에서 이런 사업 방식은 아직 관행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 하나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국내 공립 무용단이 공공성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욱 계획적이며 면밀한 운영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미 예술감독 1인의 역량으로 공립 무용단이 운영되던 시대는 끝난 것으로 판명되지만, 예술감독 독임제에 의존하는 사고는 무용단 내에서나 지원 감독 기관에서나 여전해 보인다. 공공성 제고를 목표로 공립 무용단의 운영 체계를 현상태에서 보강한다면 먼저 작품 개발 기능, 홍보 마케팅 기능, 작품 보존 기능 등을 들 수 있고, 일부 공립 무용단에서나마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이사회나 운영자문위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를 중심으로 공립 무용단의 운영 체계를 재편해야 할 것이다.
2) 명문 규정의 구축: 예술감독 독임제 폐단 방지
지금 국내 공립 무용단의 운영 수준은 앞서 거론된 대외 현안들이 말해주고 있다. 국내 공립 무용단들의 운영 수준을 좌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은 거의 모든 공립 무용단이 채택하는 예술감독 독임제라 생각된다. 비유하자면, 예술감독은 무용단에서 핵심 두뇌이며, 예술감독의 역할은 무용단 운영에서 결정적이다. 예술감독 독임제는 예술감독의 역량에 따라 공립 무용단의 정체성과 수준이 널뛰기할 소지를 크게 조장하는 단점이 있다. 장단점이 있는 예술감독 독임제에서 그 단점을 배제해나가는 방향으로 조직 운영 체제를 개선하는 것을 근원적인 해결 방안으로 제안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창작 및 레퍼토리 선정 작업을 공립 무용단 내에서 일정 선까지 공론화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장치가 우선 명문 규정으로, 그다음에는 내부 위원회 차원의 조직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감독의 창작 및 레퍼토리 선정 작업에 기준이 될 명문 규정이 없는 상황이 유발할 부작용은 여러 갈래로 상정될 수 있다. 먼저, 공립 무용단의 예술 작업이 예술감독이나 단체장 또는 일부 소수의 편의 때문에 임의로 추진될 가능성, 그리고 공립 무용단이 예술감독 개인의 무용단이 될 위험성이 그것이다. 국내 공립 무용단의 제반 운영 규정 등을 보아도 작품 창작 및 레퍼토리 선정 과정, 무용단의 지향점 등에 관해 명문화된 조항이 없다. 국내외에서 그런 명문 조항을 접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 반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조항이 없었던 결과를 대외 현안들이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립 무용단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중장기 계획의 구축
공립 무용단에 정체성과 작품 활동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공립 무용단의 임의적인 운영, 즉 무계획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설령 임의적 운영을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이 점차 임의적인 운영을 조장하는 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지어 예술감독과 단원 간의 어떤 묵계 때문에 중장기 계획을 애써 구축할 필요도 없는 무사안일주의가 득세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기업 사업체로 치면 중기업(中企業) 규모에 해당하는 공립 무용단에서 중장기 계획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명문 규정이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이다.
국내 공립 무용단은 연간 계획에 따라 운영될 뿐 중장기 계획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명문 규정의 부재만이 아니라 근시안적인 공공 회계 규정, 불안정한 예산, 감독기관의 비예술적 무지(無知) 그리고 무용단 내의 요인들에 의해 중장기 계획이 없어도 무방한 풍토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공립 무용단뿐만 아니라 감독기관의 누구도 중장기 계획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임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중장기 계획이 집중적으로 토론되는 경우 역시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새로 선임된 예술감독이 개인 성향에 안주하는 방향으로 예술 작업을 추진해도 제어할 방도가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중장기 계획 부재의 상태에서 경영 전략이 얼마나 추진될 것인지 의문스럽다. 중장기 계획이 갖는 이점을 굳이 소개하자면 공공성의 제고와 직결될 것이다.
4) 예술감독 선임 절차와 임기제의 개선
국내 공립 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의 임기는 통상 2, 3년이다. 보기에 따라 짧지가 않은 이 임기는, 그러나, 늑장 선임, 졸속 선임, 부실 선임에 의해 임기의 의의가 훼손되기 일쑤이다. 졸속과 부실 선임으로 취임한 신임 예술감독의 얼굴이 기존 단원들에게 얼마나 설지 의문이고 영(令)이 제대로 설지 모르겠다. 국립무용단의 경우 예술감독의 임기가 3년이며, 임기 만료 3개월 이내에 신임 감독 선임 절차를 개시해서 마무리해야 한다. 여기서 신임 감독은 전임 감독이 마련한 연간 계획, 예산 계획, 단원을 적어도 1년간은 그대로 수용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신임 감독을 선임한 본뜻이 신임 감독을 선임한 그 순간부터 퇴색하는 셈이다. 또 그다음 기간 동안 나머지 반년은 퇴임 레임덕 기간에 해당한다. 재임하지 않는 이상 신임 감독의 임기 절반은 이미 소진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예술감독의 임기 만료 6개월 이전에 신임 감독을 예비 선임해서 업무의 연속성은 물론 신임 감독의 예술적 방침이 임기 내내 달성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심지어는 예술감독의 임기가 1년인 경우도 있다. 세계가 웃을 일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감독권자 입장에선 나름 현명한 점이 없지 않다. 모르니까 1년만 맡겨보고 1년 후에 다시 결정하려는 취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도 하차시킬 사람이라면 2년보다는 1년이 효율적이긴 하다. 하지만 모르니까,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제대로 맡겨 신임 감독을 엄중히 선발하도록 해서 모르니까라는 염려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모르니까라고 고집한다면 감독권자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르니까 1년을 임기로 선임한 신임 감독을 연임시키려 한다면 그다음 첫 연임 시에는 2년, 두 번째 연임 시에는 3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그래도 순리가 아닐까 한다. 1년을 임기로 처음 선임한 사람을 1년이 지나도 잘 파악하지 못해(즉 모르니까) 중도 하차시키지 못하고 또 1년의 임기로 연임시키는 것은 아주 불합리해 보이는 것은 물론 품격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예술감독의 교체는 필요하다. 신임 감독을 제대로 선임해서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방안이 관건이다. 현실에서는 신임 감독을 선발하는 형식적 절차에 비해 실질적 절차는 허술하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일례로 신임 감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예술적 면접 혹은 토의는 거의 배제되므로 신임 감독 지원자의 춤계 내부 활동을 제외하면 예술적 소양을 판별할 근거도 사실상 충분치 않다. 이런 터에 선발 과정에서 해당 공립 무용단의 중장기 계획이나 정체성에 대해 문답이 오갈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술감독의 허술한 선임은, 부정한 청탁(請託)의 위세마저 키울 것이고 유능한 안무자의 지원을 가로막을 것이며 결국 공립 무용단에 부메랑이 되어 공공성의 실현마저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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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문 2
한국 지역 공공무용단의 미래 찾기
- ‘합리적인 시스템’구축이 관건-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대전 시립무용단을 비롯해 한국의 지역 공공무용단은 대부분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만 보자면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지역 공공무용단이 한국 무용사에서 역사에 걸 맞는 존재감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무용계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춤 열풍이 일면서 문일지, 배정혜 단장이 활약했던 서울시무용단이 존재감을 발휘한 이후 1990년대말 박경숙이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시기의 광주시립무용단, 2000년대 초반 안은미가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시기의 대구시립무용단이 지역 무용단임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고 생각한다. 대전시립무용단의 경우 한국 창작춤의 대모로 불리는 김매자가 예술감독이었던 2000년대말부터 2010년대 초반 가장 주목을 받지 않았나 싶다.
필자가 서울에 기반을 둔 신문사 소속 기자이다 보니 지역의 공공무용단 가운데 무용계에서 무게감 있는 인물들이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그들의 작품이 서울에서도 공연됐을 때 아무래도 관심을 더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무용계 언저리에서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필자가 지역 공공무용단에 대한 가지고 있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는 무용계에서 오래전부터 지역 공공무용단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봄에도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로 ‘한국의 공공무용단 운영,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심포지움이 열렸다. 당시 지역 공공무용단 운영실태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국내 무용단체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역 공공무용단 단원이란 자리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안정적 월급이 보장되는 공무원과 큰 차이가 없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역 공공무용단은 왜 예술성과 공공성을 갖추지 못했을까. 그것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역 공공무용단의 문제는 대학을 기반으로 한 한국 무용계의 구조 및 예술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자체 등 여러 요소가 실타래처럼 빽빽하게 얽혀 있다. 솔직히 어떤 부분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어려운데다 과연 문제를 해결하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공공무용단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문제의 범위를 좀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특히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개선해야할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1. 지역 공공무용단 단원의 고령화 문제
-강력한 단원 평가제와 오디션 통한 단원 교체 필요-
지난 봄 ‘한국의 공공무용단 운영, 무엇이 문제인가’ 심포지움에서 발표됐던 공공무용단 운영실태 조사에서도 단원 부문에선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신체 구조상 무용수는 40세가 넘으면 제대로 된 공연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통설이다. 지역 공공무용단이 대부분 한국무용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단원들의 나이가 들어도 괜찮다는 변명을 하지만 최근 현대무용만이 아니라 한국무용 안무가들조차 격렬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40대 중반의 무용수는 춤추기 어렵다고 한다.
지역 무용단에서 기존 단원들만으로도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다면 어째서 신작을 올릴 때마다 젊은 객원 무용수들을 뽑는 것일까. 또 이런 신작에서 왜 젊은 객원 무용수들이 주역을 맡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사실 지역 무용단에서 거의 춤을 추지 않는 단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은 무용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봉이 높기 때문에 주역을 늘 맡는 젊은 단원보다 더 많은 급여를 가져가게 된다.
국내 지역 공공무용단이 고령화 된 데에는 예술단체를 처음 만들 때 장르의 특수성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공무원 시스템에 맞춘 것 그리고 퇴직 후 직업전환이 어려운 단원들이 퇴직을 꺼리는 데 있다. 이로 인해 젊은 무용수들은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어도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상황이 내년부터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근로자 정년 60세 연장법’이 통과되면서 권고조항으로 되어 있던 정년이 의무조항으로 바뀌어 60세로 연장되는데 ▷2016년 1월 1일부터 공기업,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며 ▷2017년 1월 1일부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게 됐다. 이에 따라 지역 문예회관 소속의 공공 무용단 역시 정년을 60세로 상향 조정하게 된 것이다.
대전 시립예술단 역시 현행 55세에서 60세로 정년 연장을 위해 조례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시립예술단 장르간 특성을 반영하여 예술적 원숙도를 향상시키고, 단원들의 사기증진을 위해서다. 좀 더 구체적인 추진방향을 보면 ▷예술단원의 특성과 예술인의 경험적 연륜이 작품 및 공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현행 55세에서 60세로 변경 운영하여 주시기를 요청함 ▷고령화 사회와 더불어 경륜이 작품 및 공연에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요청하며 타 시립예술단 및 공무원 등과 형평성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정년이 요구됨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맞추어진 현실적 제도 개선이 요구됨 등 3가지다.
지난 10월 26일자 국민일보에 ‘내년 정년 60세로… 도·시립 무용단도 고령화 비상’ 기사를 게재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일반 독자들 사이에선 “과연 춤을 출 수 있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당시 네이버에 게재된 이 기사의 댓글을 보면 무용단의 정년 연장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실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지역 공공무용단 고령화를 단원들만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렵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파리오페라발레 단원 정년이 42세이고, 현대무용이 중심인 지역 공공무용단 CCN(국립안무센터)은 정년 없는 시즌 계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 단원들의 경우 은퇴 후 연금을 받을 수 있고, 프리랜서가 많은 현대무용 분야에선 10개월 반 동안 507시간 이상의 예술활동(본공연+연습)을 충족시키면 최대 8개월간 실업 급여를 받는 ‘앙떼르미땅’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공공 무용단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예술성을 담보해야 하는 공공무용단의 책임과 무용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고려한 단원들의 고용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강력한 단원 평가제와 오디션을 통한 단원 로테이션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원들은 연간 작품 출연 편수 및 역할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호봉제 대신 역할에 따른 보수체계 등도 도입해야 한다.
참고로 서울시향의 경우 2005년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매년 오디션을 통해 하위 5%로 선정된 단원을 해촉하는 오디션을 치르고 있다. 너무 가혹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지만 서울시향이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이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오케스트라로 성장하는데 기여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10년이 지난 현재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오른 만큼 해촉 비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또 올해 KBS 교향악단은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2년 연속 오디션에서 하위 2% 평가를 받은 단원을 해촉하도록 내부 조례를 정했다.
한편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해 무대에 설 수 없는 무용수들의 퇴직을 용이하도록 하는 한편 무용단 퇴직 이후의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2년 정도 무대에 서지 않는 대신 급여를 50% 정도로 줄이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예 정년이 없는 국립발레단이나 53세인 국립무용단에 이 제도가 있는데, 무대에 서는 것이 힘들어진 단원들은 제2의 인생을 찾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고 무용단으로선 단원 로테이션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 부실한 조직 운영 및 레퍼토리 부족
-역량있는 예술감독(단장) 임명 및 확실한 권한과 임기 보장 필요-
지난 봄 공공무용단 운영실태 조사에서 무용단의 인사와 운영, 작품 문제는 사실상 예술감독(단장)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술감독으로 역량이 부족한 인물이 오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워낙 한국 무용계의 인재 풀(pool)이 적은 것과 함께 한국 지자체 단체장들이나 실무 담당자들이 코드인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역량 있는 인물을 뽑지 못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지역 예술단체에서 ‘예술감독은 파리목숨’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정년이 보장된 무용수에 비해 평균 3년 임기의 예술감독은 웬만한 카리스마로는 무용단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새로 무용단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단원과의 불화 소식이 들려오거나 지역 언론에서 약속이나 한 듯 터져나오는 예술감독 비판은 단순히 예술감독만의 능력 부족으로 보기 어렵다. 예술감독의 고유권한을 보장하고 소신있게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여 한다. 그런데, 3년이란 임기가 너무 짧다 보니 예술감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용단의 발전을 추구할 수 없다. 대신 자신의 개인무용단처럼 여기며 실적을 쌓는데 집중하기도 한다.
참고로 해외 공공무용단에서는 새로 예술감독을 뽑을 때 이변이 없는 한 후임 예술감독을 취임 2년∼1년 반 전에 발표하고 1년 전부터 업무를 익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새로 오는 예술감독이 사전에 속속들이 파악해 취임 직후 장기계획까지 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들 예술감독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한 10년 이상씩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문화에 대한 정치와 행정의 개입이 많고 예술단체를 가볍게 여기는 한국의 실정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런데, 파리오페라발레를 비롯해 발레단의 경우엔 예술감독이 바뀐다고 해서 단원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무용단의 경우에는 예술감독이 바뀌면 단원들까지 바뀐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성남아트센터에서 <비극> 공연한 올리비에 뒤부아는 2013년부터 카를린 칼송의 뒤를 이어 루베 국립안무센터의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단원은 물론 스태프까지 대대적으로 교체됐다. 발레단의 특성상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의 트레이닝 방법이 있고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운영되는데 비해 창작을 주로 하는 현대무용단은 감독의 색깔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년제가 있는 한국의 공공무용단에서 철저하게 유명 안무가가 예술감독인 프랑스 CCN 같은 방식을 참고하긴 어렵다. 개인적으로 지역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을 반드시 안무가를 뽑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무용 전문 프로듀서(기획자)가 예술감독이 되어 작품마다 좋은 안무가를 찾아 의뢰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대전 시립무용단을 비롯해 지역 공공무용단이 장기 근속하는 단원제로 운영되는 만큼 좋은 레퍼토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내 한국 창작춤 가운데 좋은 작품들을 무용단 레퍼토리로 구축해 자주 공연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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