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윤미라 〈舞樂之友〉
신전통춤의 진가, 그 축제
권옥희_춤비평가

어떤 충격이 없이도 춤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감각을 왜곡하거나, 특별한 미학적 이유를 댈 필요가 없었다. 감각이 (도시적)경계심을 풀고 유연성을 되찾았기 때문이다.(이 말을 하면서도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분별심이, 본래적인 말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초청으로 올린 윤미라의 〈무악지우舞樂之友〉(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4월 10일) 공연. ‘춤속에 사용되는 무구로서의 쓰임새와 춤과의 조화’라는 강력한 주제아래, ‘신전통·전통의 미래’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달구벌 입춤’으로 무대를 연 뒤, ‘태평무’ ‘진쇠춤’, ‘향발무’, ‘무악지선’, ‘월하무현금’, ‘소고춤’, ‘장고춤’으로 이어진 순서는 “전통의 재구성에서 전통 재창작”의 흐름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무대를 본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먼저 무대를 연 16명이 춘 ‘달구벌 입춤’. 홀춤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춤태와 멋은 다소 덜하나, 무용수 개인마다의 다른 춤(몸)이 깊은 무대에 잘 어우러진, 화사하고 그윽한 서정이 있는 춤이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중견인 경희대 출신(이준민,엄선민,문주신)이 합류, 무대에 섰다.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이들 역시 춤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이 또렸한, 춤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 춤에 대한 모든 기억 속에 있는 이들이다. 객석에 제자들을 두고, 모교(경희대) 스승의 무대에 후배들과 함께 춤을 춘다는 데 남다른 시정이 있었을 터. 군무에서 시작, 여섯 명에서 다시 세 명, 홀춤(이준민의 무거운 듯, 무게감 있는 춤)으로, 다시 군무로 이어지는 춤은 더없이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이동안 류의 ‘태평무’는 익히 알고 보아오던 태평무가 아닌, 독특하게 아름다운 격조와 춤의 결을 가지고 있는 춤이었다. 네 명의 무용수(방위를 가리키는)가 박을 들고 중앙에서 사방으로 걸으며 일정한 박자에 박을 친다. ‘청각적 효과’가 있다. 고려시대(추정과 고증에 의한) 관복, 흰색의 긴 한삼에 머리에 높은 관을 얹고, (굿)장단에 맞춰 한 다리를 들고 들썩이는 동작으로 제자리에서 도는 춤사위, 한삼을 한쪽 어깨에 턱 걸고 제자리에서 도는 등 당악가락에 얹은 느린 동작에 무게가 실리는, 이채로운 춤이었다. 춤이 끝났음을 알리는 징소리.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앞춤이 사라지고, 징소리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시작되는 진쇠춤. 무구(징)를 사용한 춤의 등퇴장, 주의를 모으는 세련된 연출이었다. 홀춤으로 시작된 춤이 네 명과 엇비스듬히 마주하며 춤을 추다가, 이내 두 명과 셋으로 나뉘어 마주보는 구도로 변화. 화려한 오색 술이 달린 꽹과리, 철릭 자락을 뒤로 걷어 묶은 풍성한 의상과 화려한 머리장식. 쾡과리를 두드리며 사뿐히 뛰는가하면, 고요하고 깊게 내려앉는다. 화려한 의상과 장식과 날렵하고 간결한 춤의 대비가 세련미를 자아내는가 하면 날카로운 쇠 소리와 가볍고 부드러운 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고아한 맵시를 뿜는 춤이었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향발무’. 놋쇠로 만든 작은 타악기 ‘향발’을 양손에 들고 추는 춤. 푸른색과 흰색과 녹색, 보라색 당의를 입었다. 세 명의 춤으로 시작, 군무가 합세. 두 그룹으로 나뉘어 중앙에서 반원의 형태로 모였다가 흩어진 뒤, 다시 반원 형태로 추는 17명의 춤. 흐르다 엎고, 흐르다가 맺어주는 춤 선. 팔로 그려내는 춤선에 각이 보인다. 정재무로 재창작한 신전통 춤이고 하나 춤 인상이 지리적으로 북쪽 문화와 가까워보인다. 중앙에 모여앉아 절을 한다. 인상적인 춤의 마무리였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하수에서 비파를 부는 무용수, 그에게 조명이 내리꽂히며 시작되는 ‘무악지선舞樂之仙’. 무용수들을 실루엣으로 그려내는 조명, 넓고 긴 소맷자락, 얇고 투명한 의상. 신라시대 범종, 석탑에 새겨진 주악비천 상의 세계를 무대에 춤으로 펼쳐놓는다. 범종에 돋을새김 된 조각.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세계, 대지도 하늘도 없고 이름도 시간도 없는 환상의 공간을 춤으로 그려낸, 다른 한국 춤의 아름다운 세계에서 한참 노닐다 온 듯한, 작품이었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월하무현금月下無絃琴’, 거문소 소리. 흰색셔츠에 검정바지를 입은 남자가 흰색부채를 펼쳤다가 접으며 춤을 춘다. 거문고를 든 여자 무용수가 마치 거문고인양, 그림자처럼 서 있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작한 ‘한량무’다. 풍류를 걷어낸. 남자가 잠시 사라졌다가 뒷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여 춤을 시작한다. 음악과 춤의 공간이 다르다. 음악(거문고)으로 은유한 여자, 여자로 은유한 (거문고)음악. 가야금을 향한 그리움은 그저 평범하다. 이리저리 거문고(여인)를 찾지만 사라진 뒤. 남자의 그림자에 잠시 음악이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온갖 슬픔과 상처로 가득한 춤 공간. ‘월하무현금’은 제목만이라도 아름다우나, 젊은 남자의 잦은 곤두박질은 청춘의 슬픈 성격에 있다고 말하는 듯한, 춤이었다.





윤미라 〈舞樂之友〉 ⓒ윤미라무용단/옥상훈



‘소고춤’과 ‘장고춤’. 무구로 손잡이가 없는, 크고 얇게 제작된 소고와 비대칭으로 제작된 장구의 현대적인 형태와 흰색 민소매의 간결한 의상이 그려내는 춤은 군무의 배열과 춤의 구조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서로의 허리를 안은 채, 뒷모습을 보이며 시작되는 춤과 길게 뻗어내는 춤의 선이 아름다운 소고춤. 장구를 옆구리에 얹고, 들었다가 엎고, 몸을 접는 등 다양한 춤동작은 마치 구름이 달의 경계를 지웠다가 다시 그려내며 흐르는, 달의 변화를 춤으로 묘사한 듯 아름다웠다.

‘전통춤’은 모범이 되고 규범적인 형식을 말한다. 나머지 춤형식의 경험이 그것에 견주어 판단되는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전통 춤’이라는 춤의 형식이 한국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믿지만 아직 확고하게 그 형식을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전통의 재구성, 재창작에 있어서는 대부분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는 쪽의 춤을 선호한다. 무용가의 개인적인 선택의 체계를 믿는 수밖에. 불구하고, 현재 소비되는 전통춤. 그 춤의 평범함을 배경에 두고 보면 윤미라의 ‘신전통춤’의 진가가 드러난다. 서울에(2022년 국립극장) 이어 대구에 올린 공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말함이다.

윤미라의 〈무악지우〉(舞樂之友)는 극장에 가득한 관객들의 환호에 춤으로 답하는 다른 형태의 축제였으며, 또한 지역에서 춤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교육적 가치가 있는 무대였다. 시간의 공격에도(퇴임을 앞둔) 춤을 향한 분절되지 않는 정열과 노력과 그 끝없음보다 더 깊은 것이 있을까 싶다. 윤미라에게 있어. 그동안 추어왔던 신전통 계열의 작품을 거슬러 무대에 올린 그에게 있어, 지나온 시간의 모든 춤은 아마도 작품 하나하나가 바로 그 존재되기로 자신을 초월하는 작업이었지 않을까. 한 작품의 초월, 윤미라 개인의 초월, 춤작가로서의 초월이 곧 한 장르의, 자신만의 춤역사를 만들었지 싶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4. 5.
사진제공_윤미라무용단,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