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생(生)의 고백, 춤의 기억(記憶〉아카이브 전시
근현대를 관통하는 춤 기록의 저장소
김인아_<춤웹진> 기자

 공연과 동시에 사라지는 춤은 작품의 실체를 남길 수 없는 찰나의 무형 예술이다. 작품 자체를 남기지 못하는 춤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기록은 따라서 더욱 귀할 수밖에 없다.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고 있는 <생(生)의 고백, 춤의 기억(記憶)>展은 우리 춤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생생한 기록의 저장소로서 주목할 만한 전시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 사업에서 기틀을 얻었다. 구술채록 사업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생겨난 근현대 예술사의 단절과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2003년부터 진행되었다. 원로예술인들의 기억의 심층에서 삶과 예술적 경험, 역사적 체험을 길어 올려 후대에 전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까지 무용분야 68명을 포함해 총 256명 예술인의 구술기록을 확보하였다.
 유년 시절부터 최근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예인의 삶과 예술 활동을 고스란히 담아낸 구술기록은 당대의 문화예술, 예술사조, 인적교류, 작품 세계 등을 탐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비교적 작은 공간인 예술가의 집 아카이브 전시장에는 다섯 무용가들의 구술기록과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故김천흥(金千興, 1909~2007, 궁중무용가), 故김수악(金壽岳, 1926∼2009, 전통무용가), 김백봉(金白峰, 1927~, 한국무용가) 등 명무들을 비롯해 한국무용계에 독특한 발자취를 남긴 故정무연(鄭舞燕, 1927~2011. 현대무용가)과 미국인 메리 조 프레슬리(Mary Jo Freshley, 1934~, 한국무용가)의 기록물이다.
 구술채록의 동영상 자료, 무용사에 기록될만한 사진자료 및 공연작품 전단지, 선생들이 직접 사용하던 각종 소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육필원고가 우리 춤의 100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다섯 무용가가 전해주는 생생한 증언은 한국 고유의 춤 기억술인 ‘구전심수(口傳心授)’를 되새기게 한다. 스승으로부터 춤의 기술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정신과 이치, 예술가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와 지혜를 두루 전수받는 구전심수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이 도(道)와 예(藝)를 강조한 무용가들의 구술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무용을 허는 사람일수록 무용예술이 어떤 거라는 걸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단 말이야. 그저 뭐 장단에 맞춰 껍주거려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또 맨들어 내고, 또 맨들어 내고 그래야지? 창착은 창착이 있어야지? 새로운 게. 평생 그 무용으로 세상을 살려면 끝까지 고생이다. 또 추고, 또 추고, 그래야 하지 않아? 고생문이 훤헌 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 예술은 평생해도 다 못해요. 그러니까 예술가라는 게 외래 평생, 평생 아주 고생문이 훤해. 남이 좋아하구, 웃고, 모두 때때옷 입고, 화장도 하고 그러니까 좋은 줄 알지만, 그게 저 고생이라고….” ─故김천흥 구술기록 중에서

 





 구술채록 사업과 전시기획을 맡은 최해리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는 “이번 전시는 구전심수의 정신과 예술기록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의의가 있다. 선생님들의 생생한 증언은 근현대 무용사와 우리 춤의 자산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고 전하면서, “2003년부터 지금까지 3천 페이지 넘는 구술기록이 정리되어 있다. 근현대 무용사를 살필 때 반드시 필요한 자료로서, 이를 활용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 춤의 근현대를 생생히 담은 아카이브 전시 <생(生)의 고백, 춤의 기억(記憶)>은 오는 2016년 1월 30일까지 대학로 예술가의 집 아카이브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2015. 12.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