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10월 17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주최로 “변화하는 환경, 춤을 전망하다”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재빠르게 변동하는 문명과 사회문화 환경을 배경으로 춤 예술 공연, 커뮤니티 댄스 활동, 춤 전공자의 사회 진출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진단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전망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주제발표에 앞서 나경아 무용원 이론과 과장은 “무용현장과 긴밀한 관련을 놓치지 않는 연구발표들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아갈 무용연구자들에게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세계적인 연구시각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맞는 주체적 연구 성과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발제자로는 제니퍼 로슈(Jennifer Roche) 호주 퀸슬랜드 공과대학(QUT) 교수, 나경아 무용원 이론과 교수, 이선옥 예술경영지원센터 교육사업팀 팀장, 김채현 무용원 이론과 교수가 참여하였고 남정호 무용원 창작과 교수와 김현정 충남대 무용학과 조교수가 질의토론을 맡았다.
첫 번째 발제자 제니퍼 로슈는 근래 몇 해 동안 무용 창작 과정에서 컨템포러리 댄서가 행하는 역할에 대해 연구하면서, 안무가 네 사람이 춤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작업을 1인칭 시점에서 기록한 저서 「다중성, 몸 구현과 컨템포러리 댄서- 움직이는 정체성」(Multiplicity, Embodiment and the Comtemporary Dancer: Moving Identities)을 발간하였다.
발제자는 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춤 현장 변동과 춤 출연진의 복합적 역할”을 발표했다. 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무용수들의 프리랜서 활동이 증가하였으며 그들이 여러 안무가들과 민주적·협력적인 관계에서 창작과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소개하였다. 이때 독립 무용수들은 예술적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개발해 나갈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정체성, 즉 특유의 움직임 방식을 누적해나가며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 다중성(Multiplicity)을 확립하여 오늘날의 다종다양한 컨템포러리 댄스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춤계 전반에서 커뮤니티 기반의 춤과 전문 춤 사이의 구분이 엷어지고 있는 요즘 다원주의적인 춤 관점이 견지되어야 하며, 이미지 및 정보 중심의 오늘날의 문화에서야말로 몸으로 구현하는 실천 활동으로서 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토론자 남정호 무용원 창작과 교수는 한국의 상황이 서구의 변동하는 춤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도제식 교육 속에서 맹목적으로 서구 춤 테크닉을 답습하던 시기를 지나 특히 컨템포러리 댄스에서 자율성과 정체성을 갖춘 몸 구현 방식으로 급진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경아 무용원 교수는 “대학 춤 전공자 졸업 후 진로흐름과 전망”에 대해 발제하였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청년예술일자리 지원센터 주관으로 청년예술가 일자리 관련 연구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후속연구였던 ‘졸업생들의 일자리 현황 비교연구’가 이번 발제에서 집중 소개되었다.
발제자는 국내 대학기관에서의 무용전공 교육현황을 설명하고, 대학 교육이후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의 진로현황을 취업분야, 만족도, 이직관련 요구도로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특히 분석결과 가운데 무용전공자의 이직 요구도가 흥미로운데, 이직을 희망하는지 묻는 질문에 한예종 졸업생의 70%, 이외 종합대학 졸업생의 45%가 이직을 원한다고 응답하였으며 응답자의 과반 이상이 무용수의 짧은 수명, 안정적인 직업 희망을 이유로 들었다.
무용전공생들이 졸업 후 무용가 혹은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발제자는 무용의 복합적 장르 특성을 근거로 한 인접 공연분야로의 진출 사례 및 예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 활동 사례를 소개하였다. 나아가 향후 사회적 요구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무용예술의 전문성을 활용한 일자리의 범주 확대 및 다양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무용전공자들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과정 및 지원제도가 요구됨을 피력하였다.
발제에 이어 남정호 토론자는 올해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심포지엄에서 발제된 무용가 4인의 성공적인 직업전환 사례를 소개하면서 무용가의 직업전환에 필요한 교육과정이 있다면 무엇일지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발제자는 춤추는 자신을 기업가 정신으로 경영한다는 관점을 들어 경영적 기술과 예술을 조화시켜 사회적응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요구된다면서 교육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수용,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세 번째로 이선옥 예술경영지원센터 교육사업팀 팀장은 “자기주도적 연구역량으로 새 예술 커뮤니티를 지향하다”라는 주제로 문화예술 연구, 경영 현장의 자율적 학습모임 사례에 대해 발제하였다.
먼저 공연분야에 종사하는 예술경영 전문인력의 현황이 소개되었다. 공연시장의 성장과 함께 현장 종사자들의 직무가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있고, 이에 상응하는 직무 전문성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현장 종사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예술경영센터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 ‘문화예술 기획경영 전문인력 양성사업’ 내 예술경영아카데미 LINK는 직무, 리더십, 예술, 학습 등의 역량 강화를 주요 교육내용으로 하고 있다. LINK는 일반적인 집합형 강의, 워크숍, 실습 및 체험 등으로 교육 방식을 다각화하여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발제자는 이 중 참여자 스스로 자율적인 학습공동체(연구모임)을 만들어 전문역량 개발을 주도하는 CoP(Community of Practice)와 LC(Learning Community)에 주목하였다. CoP와 LC 커뮤니티 활동은 변화하는 환경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자기주도적 학습경험을 통해 학습자의 내재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에 문화예술 연구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하였다.
토론자 김현정 충남대 무용과 조교수는 프로그램 운영과정 중 2013년에 CoP가 LC로 전환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발제자는 CoP와 LC가 공통의 관심사를 학습할 수 있는 자율적인 모임이지만 상대적으로 LC가 좀 더 열린 형태로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같은 커뮤니티 운영은 자율성을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이를 조율하는 학습리더 혹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역량이 15인 소규모의 LC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LC로 전환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채현 무용원 이론과 교수는 “커뮤니티 댄스의 전문성과 비전문성”에 대해 발제하였다.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조성하는 춤 활동을 지칭하는 커뮤니티 댄스는 흔히 춤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출연진의 전문성과 예술다운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통념이 있으나, 발제자는 커뮤니티 댄스가 고유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고 피력하였다.
전문성이라는 개념을 예술 공연에 적용되는 기준을 근거로 판별하면 커뮤니티 댄스의 전문성은 부정되기 마련이다. 20세기 민주주의가 처음 창건될 시기에 등장한 현대적 예술 형식(모던댄스)에서는 전문가의 전문성이 주도적이었으나,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의 동시대 예술(컨템포러리 댄스)은 전문 예술가들과 일반 대중간의 교류와 관계성을 중시하여 발현되는 경향이 짙다. 즉 20세기 예술 형식이 필요로 했던 전문성을 근거로 오늘날 커뮤니티 댄스의 전문성을 판별할 수 없으므로 그 기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실행가(practitioner)와 참여자(participant)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티 댄스는 누군가 주도하는 일방적 활동이 아니라 쌍방적이며 상호호혜적인 관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실행가에게는 참여 대상자 또는 해당 현장에 대한 면밀한 파악과정과 관련 전문 지식 등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참여자의 전문성이란 개개인의 특정한 사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참여자의 사정이 곧 고유의 전문성이 되어 커뮤니티 댄스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제자는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커뮤니티 댄스의 영역은 확장될 것이며 현대춤이 직면하고 있는 난점을 커뮤니티 댄스가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발제에 이어 김현정 토론자는 2010년 이래 국내에서 나타난 커뮤니티 댄스의 붐 현상이 갖는 사회 문화적 의의와, 국내 커뮤니티 댄스 가운데 모범이 될 만한 사례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발제자는 커뮤니티 댄스는 민주주의 시대에 민주적인 관계를 기초로 한 춤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의 회복이 사회 전반적으로 대중이 참여하는 예술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커뮤니티 댄스가 활발히 이뤄진 또다른 요건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춤 개념의 변동,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희미해진 점을 제기하였다. 두 번째 질문에는 커뮤니티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족한 커뮤니티 댄스를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춤추는 여자들의 <당신은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를 성공사례로 제시하면서 ‘바비레따’를 염원하거나 꿈꾸는 중년여성 혹은 가족 참여자들에게 맞춤형 감성치유를 실행하며 나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진행으로 양적, 질적 내실을 기한 이번 심포지엄은 변동하는 춤 환경의 흐름을 짚고 춤의 다변화 양상을 점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다만 종합토론의 시간이 생산성 있는 토론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단순 질의와 응답으로 나열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논의된 내용을 기반으로 현안을 재인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재설정하여 보다 심도 있는 후속 연구와 실천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