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제11회 부산국제무용제
휴양지 축제, 차별성 살리는 프로그래밍이 과제
김인아·이보휘_<춤웹진> 기자

 제11회 부산국제무용제가 지난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해운대 해변특설무대에서 “세계인의 몸짓, 부산이 춤춘다”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축제의 가장 큰 특색인 해변무대 대신 실내공연으로 만족해야 했던 축제는 올해 또다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축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부산국제무용제는 총 11개국 46개 단체, 56개 작품이 참여하여 3일간의 해변무대 공연과 비공개로 치러진 ‘AK21국제안무가육성공연’으로 진행되었다. 6월 16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폐막공연을 비롯하여 극장 공연·워크숍·강연 등 실내 프로그램은 전면 취소되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개막식이 있었던 6월 12일 부산 해운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해무였다. 파도가 해운대를 덮치는 듯한 형상으로 해무가 짙게 깔려있었고, 그 가운데 마련되어 있는 해변 특설무대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해무로 인한 무대 바닥의 습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오후 6시부터 개막식전 공연이 펼쳐졌다. 부산국악오케스트라의 연주, 민선영댄스아카데미의 <북소리...몸짓울림>, 부산예술단의 <타천무>, 동아대학교 태권도 시범단의 <태권도 시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신나고 흥겨운 음악과 다양한 장르로 꾸며진 볼거리 가득한 공연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800석 규모의 객석이 어느덧 채워지자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개막식이 이어졌다.
 이날 개막식에는 서병수 부산광역시장, 김규옥 부산경제부시장, 배덕광 국회의원, Alexandre LABRUFFE 부산 프랑스 문화원장, 조남영 필리핀 부산지원장, 서인화 국립부산국악원장, 박성택 부산문화회관장, 조영수 부산시민회관장, 임동락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김동석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하였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거의 매년 부산국제무용제에 참석하고 있다”면서 “원래 수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이는 축제인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부산관리당국에서도 메르스가 확산되지 못하게 노력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축제를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올해 공식 초청공연에는 스페인, 싱가포르,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인도, 중국, 체코, 핀란드, 프랑스 등 해외무용단 10개팀, 국내무용단 8개 팀이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 Etre en Scene Association의 〈Flag〉는 설치된 파이프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행위예술과 자전거 묘기(BMX), 힙합 움직임을 따로 또 같이 실행한 무대였다. 분리된 세 개 장르가 교묘히 어우러지는 장면들이 경계를 넘어 조화로움을 구축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중국 Suzhou Ballet Theatre는 고대중국의 절세미녀 시쉬를 소재로 한 작품 〈Legend of Beauty〉과 클래식발레 <백조의 호수>의 파드되를 선보였다. 발레리나의 가녀린 선이 돋보이는 가운데 두 무용수의 깔끔한 테크닉과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핀란드 Compania Kaari & Roni Martin의 〈La Femme Rouge(붉은 색의 여인)〉은 플라멩코 고유의 리듬과 절제된 카리스마를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하여 민속적 색채를 걷어낸 기묘한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였다.

 



 일본 Yoko Koike Project의 〈Reflected image〉와 인도 Shankarananda Kalakshetra의 〈Panchatantra〉에서는 상반된 성격과 형식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Reflected image〉은 ‘빛’을 소재로 우리가 인식하는 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살색 타이즈를 입은 무용수들이 감정이나 스토리를 배제하고 오로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춰 작품을 이어나갔다. 반면 인도의 ‘거북이와 학’ 우화를 모티브로 한 〈Panchatantra〉는 거북이와 학의 움직임을 묘사하며 스토리 전개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였다.
 음악이 없거나 혹은 무음에 가깝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무용수의 섬세한 동작에 집중해야 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스페인의 entomo EA&AE는 곤충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의미인 〈entomo〉에서 곤충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했고, 이스라엘 Yossi Berf & Oded Graf Dance Theatre는 〈Most of the Day I'm Out〉을 통해 2명의 남성무용수가 서로의 에너지와 호흡을 조절해가며 접촉 무브먼트를 이어나갔다. 소리에 포인트를 맞춘 이탈리아 Oniin Dance Company의 〈Phoné〉은 무음으로 시작해 점차 증폭되는 기계음에 맞춰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러나 집중을 요하며 조용히 전개되는 이 같은 공연들은 야외 공연의 특성상 관객들의 주목을 끌기 어려워보였다. 극장 공연과 달리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통화하는 소리가 다른 이의 관람을 헤치기도 하였고, 해가 지고 쌀쌀해진 날씨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빈 자리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해 축제에서 협업무대를 선보인 바 있는 싱가포르 T.H.E Dance Company의 Kuik Swee Boon과 한국의 김재덕은 올해에도 〈Organised Chaos〉으로 부산 관객을 찾았다. 움직임과 소리를 긴밀히 연결시킨 김재덕의 재기발랄함과 T.H.E Dance Company의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군무가 합세해 예술적 완성도와 시각적 볼거리를 충족시킨 작품이었다.
 체코 Prague Chamber Ballet는 지난 5월 국제현대무용제에서 소개한 〈Guess How many Stars Art There>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소극장 무대 바닥에 뿌려졌었던 반짝이는 비늘 조각들은 바람이 많은 야외무대 특성상 사용되지 못했다. 삶의 이상향을 반짝이는 별에 빗대어 서정적인 2인무로 표현하는 이 작품에서 무용수의 손끝, 발끝 움직임에 따라 별빛이 흩뿌려지는 듯한 장면이 제외되자 작품은 이내 생기를 잃고 말았다. 프라하체임버발레단이 선보인 또다른 작품 〈Black Mirror>는 블라드미르 호덱의 그림 ‘검은 거울’에서 영감을 받아 춤과 그림의 콜라주를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보여주었다.

 



 신은주무용단의 <길 위에서>에서는 아리랑의 선율이 아련하게 울려 퍼지면서 무용수가 커다란 꽃 모양의 오브제를 들고 등장했다. 무대 뒤로 보이는 파도의 일렁임과 올곧게 솟아있는 오브제, 그리고 그 모습을 에워싸고 있는 해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현대무용단 자유의 <극적이고 변덕스러운>은 일정한 박자의 기합소리와 몸의 반응을 잘 정돈된 테크닉으로 구현해냈으며, 조윤라발레단은 세상을 깨우는 생명과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 <우리들의 별을 위하여>에서 바람따라 흩날리고 춤추는 꽃잎을 아름다운 동작으로 형상화했다.
 지난해 호평을 받은 작품들도 부산국제무용제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된 댄스시어터 창의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한국적인 제의 형식을 결합한 작품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원작의 무대장치가 제외된 채 일부 장면으로 재구성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2014 국제현대무용제에서 소개됐던 블루댄스씨어터의 〈The Song〉은 15분 내외로 재구성, 에디트 피아프의 굴곡진 삶과 그 속에 투영된 심리적 갈등을 관객에게 친숙한 피아프의 노래와 호소력 짙은 표현으로 연출해냈다.

 



 야외공연의 특성을 한껏 살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들도 있었다. 김용철 섶-무용단의 <웃게 하소서>는 <춘앵전>의 정갈하고 우아한 춤사위와 각설이, 아리랑, 대중문화를 대비시키며 한국적 요소가 가미된 유쾌한 춤 무대를 선보였다. 가요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흘러나오자 객석의 사람들을 무대로 불러올리는 추임새와 더불어 모두 함께 막춤 추기에 돌입하였다. 마치 축제의 흥겨운 뒤풀이처럼 관객과 무용수가 한데 어우러져 신나게 난장 춤판을 벌이는 장면은 춤이 고답적인 색깔을 떨구고 대중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순간이었다.
 스텝아트컴퍼니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의 비극과 상처, 이를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을 에너지 가득한 스트리트 댄스로 선보이는 한편, 하휘동이 이끄는 Visual Shock Crew의 〈old and new〉는 클래식 음악과 덥스텝 비트에 맞춘 화려한 비보잉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현란한 움직임에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고 관객들의 환호가 연신 터져 나왔다. 공연 내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이다현(16세)씨는 “하휘동의 무대를 직접 보고 싶었다”면서 “다른 작품도 재미있게 보았다. 중간에 난해하고 어려운 춤도 있었지만 해변에서 펼쳐진 것 자체가 매력적이었다”며 흡족해 했다.

 



 공식 초청공연에 앞서 부산 춤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13일 공연된 ’춤아카데미‘는 부산 소재 대학단체의 작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경성대 신정희발레단의 <라인댄스 인 부산>, 계명대 장유경무용단의 <문(門)>, 부산대 정귀인무용단의 <달빛소나타>, 신라대 신라댄스컴퍼니 <메모리>, 영남대 뮤발레컴퍼니의 <꽃들의 축제>로 구성된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대중춤, 한국창작춤, 현대무용, 댄스스포츠, 발레 등 다양한 장르와 볼거리는 물론 각 대학의 춤 특성이 묻어난 무대로 마련됐다.
 14일 ‘열린춤무대’에서는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여러 단체의 작품이 선보여졌다. 일본과 한국의 콜라보 팀인 MetuaVahine Ego의 <타이티안 댄스>, 한국의 현대무용단 주-ㅁ <현실>, 청화무용단 <학춤>, 로고현대무용단 <미끼>, 장래훈무용단 <화살이 빗나간 백조 Ⅱ>, Arte June 〈Amadeus〉, 하루무용단 <흑>이 공연되어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젊은 안무가 육성을 위한 경연 ‘AK21국제안무가육성공연’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 역시 메르스의 영향으로 실내공연이 취소되면서 심사위원만 참석한 가운데 경연이 치러졌다. 아지드 모던댄스 컴퍼니의 이동원이 <분리된 인식>으로 대상을 수상, 상금 일천 만원을 받았다. 우수상으로 박연정무용단의 <바람길>, 댄스시어터 줄라이의 <금홍아, 금홍아>, 현대무용단 자유의 <누구나 참석 가능합니다>가 수상의 영애를 안았다.
 김정순 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원장은 “메르스 때문에 실내공연, 워크숍 등이 취소 돼서 안타깝지만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가능하다면 내년에는 객석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여 관객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올해는 다른 해보다 순수예술 작품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일반 관객들이 호기심을 자아낼만한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부산국제무용제는 저녁노을 속의 해운대 백사장을 춤의 향연으로 물들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더욱이 국내외 전문무용단부터 부산시민 댄스동아리까지 폭넓은 단체가 참여하고 장르를 불문한 다채로운 춤이 펼쳐지는 것은 이 축제가 가진 특색으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자유롭게 해변을 오가며 춤을 즐기는 관객이 많은 만큼, 무려 네 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여러 장르를 뒤섞어 프로그래밍해 놓은 것도 이 축제의 특이점일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춤비평가 장광열은 “대구 대전 서울 등 전국의 지역 무용가들이 해운대에 모여 함께 축제를 꾸미는 것만으로도 부산은 춤을 통한 교류의 중심이 되었다. 3일 간에 걸쳐 야외무대에서만도 30여 개의 작품이 선보이는 양적인 풍성함을 제공했으나 공식 초청 공연 단체를 포함 적지 않은 작품이 야외공연에 적합한 것이었나? 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았다. 공연예술 축제의 프로그래밍 시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을 배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적인 수준과 축제의 성격에 맞는 공연 작품을 제대로 조합해내는 일이다”라며 “부산국제무용제는 휴양지 댄스 페스티벌이란 차별화된 특성을 갖고 있다. 그동안 부산국제무용제에 참가했던 외국의 축제 예술감독이나 무용전용극장의 감독들은 하나같이 부산 해운대가 갖고 있는 입지적인 여건이나 관객들의 열기,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야외공연이란 요소를 꼽으며 부산국제무용제의 축제로서의 경쟁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예술감독제를 도입해 휴양지 축제로서의 프로그래밍을 특화시키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라고 촌평했다.
 극장에서의 공연이라면 작품 편성의 불안정성을 지적할 테지만 야외공연의 특성상 통일된 흐름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관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킬만한 볼거리에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을 선정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기획력을 갖추는 일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015. 07.
사진제공_부산국제무용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