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라는 이 묘한 말의 수수께끼부터 풀어야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길을 나섰다. 고생 끝에 한 마을에 닿았다. 그곳에는 탁월하고 앞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높은 경지를 알아차린 그는 이곳이 그가 꿈꾼 '미래'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닿은 곳은 첨단 미래가 아니었다. 옛날과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오래된 마을이었다. 거기에서 오래된 방식과 곰삭은 손길만으로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빚고 의좋게 살았다. 마침내 찾은 미래가 알고 보니 예부터 우리 곁에 있던 과거였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다.
부산시립무용단이 5월 28-29일 제72회 정기공연으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린 <오래된 미래>(예술감독 홍경희, 연출 유희성)는 '부산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대범한 기획이었다.
한국춤의 거장을 대거 초청해 명무의 춤사위와 그 춤에 깃든 정신을 보여주었고, 시립무용단이 제대로 결합해 조화로운 무대를 펼쳤다. 이런 대범함은 흥겹고도 수준 높은 공연을 낳았다.
첫 순서인 김진홍의 <승무>부터 매우 인상 깊었다. 젊은 춤꾼이 추면 힘겨워 보이기만 하는 승무의 숱한 동작들이 김진홍의 몸에서는 간결한 상승미로 나타났다. 승무에 담긴 정신성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승무가 끝난 뒤 김진홍이 무대 한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장구를 치고, 그 앞에서 부산시립무용단이 <오고무>를 대형 군무로 춘 장면은 지극히 창의적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승무를 마친 원로가 장단을 치고, 팽팽한 오고무가 어우러지자 오고무는 승무의 연장이 되었다.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10명과 함께 춘 김명자의 <살풀이춤>은 우리춤이 가진 결의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멋들어지게 그렸다. 김온경의 <부채산조>는 잡념이나 욕심 같은 것을 비워낸 가녀린 우아함을 원로의 격과 함께 보여줬다. 춤꾼의 주위 공간과 무대 주위를 흐르는 공기를 휘어버리게 할 만한 장악의 힘과 깊은 호흡은 엄옥자의 <원향지무>였다.
김매자의 '삶'이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답습하지 않고 삶과 세상에 끝없이 말을 거는 '현대적' 전통춤의 미와 고집을 선사했다면, 남성 단원 6명과 함께 춘 국수호의 <남무>는 철저히 다듬은 세심한 춤사위를 바탕으로 산뜻하고 뚜렷한 에너지를 구현한 명무였다.
배정혜의 <풍류장고>는 가장 인기가 높았다. 시 문학에서는 연륜이 쌓여 거장의 반열에 갈수록 서정이 천진해진다고 한다. 천진함, 동심 등은 실상 예술이 닿는 가장 높은 경지인데 배정혜의 <풍류장고>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홍경희의 <천지화>는 화려하고 힘있게 공연을 매듭지었다.
김진홍 김명자 김온경 엄옥자 김매자 국수호 배정혜 선생은 모두 한국춤에서 가장 높은 반열에 있는 레전드급 예술인이다. 이들이 뭉치는 공연은 자주 있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기획이 돋보인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날 공연의 마지막 작품 <천지화>는 전체 작품 흐름과 맞지 않게 평지돌출한 느낌이 강하다. 군무의 숙련도와 표현력은 훌륭했지만, 좌우대칭 중심의 단순·선명한 구성과 숨 가쁘게 몰아치는 호흡이 앞의 여러 작품과 부딪쳤다. 그리고 전체 공연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모자랐다. 이번 공연의 명인명무들이 시립 단원들과 연습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남겼다면, 귀한 작품이 됐을 것이다. 예술영화제 출품작 감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예술영화제에 출품한다면 수상작 감이다.
공연기획자 진옥섭 씨는 자신의 책 ⌜노름마치⌟에 대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모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잘 쓴 보도자료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데 그도 미흡했다. 시민과 언론에 이 좋은 공연을 간절하게 알리겠다는 마음이나 체계도 느끼기 어려웠다. 그 점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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