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15 홍은예술창작센터 하루 축제 ‘영원한 몸’
관객과 하나 된 입주 작가들의 뜨거운 창작 열기
방희망_춤비평가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는 2월의 마지막 날인 28일 하루 동안 〈영원한 몸〉이라는 제목의 축제를 열었다.
 김제민이 연출을 맡고 고블린파티, 금민정,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모아트, 몸짓느루, 손우경, 안수영컴퍼니, 양길호, 정세영·송주호, 홍댄스컴퍼니 등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관객의 끈끈한 연대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이었다.
 전 프로그램이 무료여서 ‘0원의 예술’이라는 모토를 단 셈이지만, ‘0원’은 그 연대가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무궁한 가능성을 가졌음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홍은예술창작센터 건물 전체는 이날 넉넉한 축제의 장으로서, 입주 작가들의 든든한 창작 거점이 되고 있음을 자랑하면서도 관객을 향한 문턱을 한껏 낮추어 그 연대가 ‘영원(永遠)’하길 바라는 의지를 내보였다.
 오후 1시 30분에 2층 까페에서 가진 오프닝 행사를 필두로 여섯 개의 전시, 네 개의 퍼포먼스, 시민참여형 프로그램과 아트프리마켓, HONGTAGON(마무리 클럽파티) 등의 부대 행사가 진행되었다.

 



 전시내용을 살펴보면, 작년 12월에 서대문형무소 건물에 대한 퍼포먼스 〈숨쉬는 벽-서대문형무소〉를 선보였던 작가 금민정의 〈투명한 기억〉이 2층 까페 공간에 펼쳐졌다. 테라스로 나가는 유리문에 반투명 재질을 입힌 뒤 좌우로 열리고 닫히며 움직이는 문의 이미지들을 투사했는데, 문 위에 얹힌 문의 영상은 어떤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
 한편 이달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에 같은 내용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작가 인 적 극과 무용가 밝넝쿨의 협업 프로젝트인 〈하늘과 땅과 아프니까 사람이다 밝넝쿨춤〉의 설치 작업을 오픈 스튜디오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작년 12월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발표했던 〈춤매뉴얼〉 당시 관객 개인에게 최적화된 ‘춤메뉴’ 개념을 만들었던 것에서 탄력을 받아, 거기에 음양오행을 결합시켜 개개인의 몸의 회복을 추구하는 재미있는 작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손우경은 〈신체와 영상의 현상- Image Phenomenon of Dance〉라는 제목의 전시를 내놓았는데, 무속에서 쓰이는 지전다발과 사람 모양 종이 형상 등을 천정에서부터 걸어두고 춤을 담은 이미지들을 단편적으로 쪼개어 영상화 한 것을 벽면에 틀어두고 있었다.
 정세영의 〈명지 2길 14〉는 여러 대의 재봉틀을 전시해 두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쉴 새 없이 창작 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홍은예술창작센터의 생산성을 비유한 것이었다. 몸짓느루의 〈영원한 예술〉은 여자 탈의실과 수유실 공간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팟캐스트 인터뷰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배치하고 설문과 인터뷰도 진행하였다. 그리고 모아트의 〈무: 용〉은 2층 스튜디오 복도에서 건물 외벽을 향해 이미지를 투사하여 전시되었는데, 무용수들에게 듀엣을 붙이면서 발생하는 안무와 선택의 소모성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읽히는 작업이었다.

 



 오후 2시부터 펼쳐진 공연의 첫 주자는 고블린파티였다. 〈맛있는 몸〉이란 제목으로 지경민, 이경구, 임진호가 차례로 등장하여 물고 뜯고 핥는 각자의 움직임을 구현했다. 고블린파티의 그동안의 작업은 그들의 이름 그대로 한바탕 거한 난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쾌하고 떠들썩한 춤판이었다. 엄청난 유연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소화해낼 수 없는 동작들인데도, 정작 신체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쾌’를 흡족하게 느끼기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꽉꽉 채운 동작들이 편안한 감상을 방해하곤 했던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맛있는 몸〉은 격렬하게 관절을 접고 펴는 그들 특유의 동작소에 여유가 붙어 그야말로 이제는 동작을 ‘음미’하면서 구사하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간의 작업에서 홍일점으로 톡톡한 역할을 해왔던 이경구가 이제는 어엿한 독립적인 무용수로 성장하여 고블린파티의 색깔에 제대로 여성성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양길호의 〈까레이스키〉는 6·25 전쟁을 분기점으로 잡았던 전작 〈혀의 기억〉에서부터 연해주 이주 시절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에 작가가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추는 작품이었다.
 무용연습실2 공간의 양 벽과 바닥에 긴 비닐을 설치하여 그것을 자박자박 밟아나가는 소리가 황량한 벌판을 연상시키도록 하였다. 양길호는 고통스런 역사가 개인의 아픔과 한으로 응어리진 모습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어 작업하는 편인데, 아마도 어머니와 두 남매였을 세 무용수의 공허한 표정과 거친 몸짓으로써 피폐해진 사람들의 내면을 그렸다.
 불교적인 색채를 느끼게 했던 구음과 반주, 스크린에 투사한 광야와 바다의 이미지들은 적절하게 어울렸다. 중간 과정에 놓인 작품이니만큼 겉돌았던 의상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앞으로 거대한 서사를 짧은 시간에 압축할 때 필요한 극적 장치가 보완되고, 내지르기만 하는 감정 표현의 상투성이 다듬어진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안수영의 <마피아>는 올해 1월 17일에 홍은예술창작센터 전체 공간을 사용하여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무용연습실용으로 압축시킨 버전이었다. 고블린파티의 작품에서 신체 자체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놀잇감이 된다거나, 양길호의 작품에서 ‘혈통을 타고 흐르는 기억’이 이번 축제에서 내세운 ‘영원한 몸’이란 테마와 연결된다면 〈마피아〉는 ‘운명공동체로서 연결된 몸’으로 읽을 수 있다.
 처음 발표했던 퍼포먼스에서 관객이 추리 과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압축된 버전에서는 다섯 무용수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 인간성이 연속적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이다. 다만 한정된 공간 안에 가두어 펼치는 만큼, 살해당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움직임을 차별화하면서 동작을 구성하려 애쓰기보다는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에서처럼 인간들이 서로 다치게 하면서 스스로도 죽음에 이르는 비극 자체를 조망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더 좋았겠지 않나 싶다.
 의외로 흥미로웠던 마지막 퍼포먼스는 송주호의 〈계속해서 팽창하는 우주를 따라 커지는 지루함〉이었다. 테이핑으로 구획을 나누어놓고는 조명과 거울을 이용하여 글씨를 반사시키고 포그 머신을 틀어 빅뱅 이후 우주의 팽창을 표현한다던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처럼 음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깔고 음악과 타이밍을 맞추어 무용연습실의 커튼을 자동으로 올라가게 하여 건물 외부를 우주처럼 바라보게 만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자신이 만든 미완성 스파이 무비를 틀면서 반사판으로 빛의 프리즘을 만들면서 내용을 뭉뚱그린다던지, 로봇 청소기나 프린터 등 갖가지 집기류를 동원하여 영장류의 발달을 은유하면서도 춤을 배우지 않은 작가가 서툰 몸짓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바나나를 밟아 미끄러지는 등 블랙 유머를 연출하였다. 말하자면 미래의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는 과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성숙한 모습이냐는 질문인 셈인데, 후반부에 튼 민해경의 ‘서기 2000년에는’이라는 노래는 그런 주제 의식에 방점을 찍는 역할로 충분했다.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홍댄스컴퍼니의 〈막춤, 멋춤(멋진 춤, 멋대로 추는 춤)- 너의 막춤을 진화시켜라!〉는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을 받아 참가자를 초대한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세미나실 공간을 클럽 파티장처럼 꾸미고 원형 테이블 위에 촛불을 두어 은근한 분위기를 내었다. 막춤 잘 추는 방법을 5단계로 나누어 두 명의 무용수가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시연하였다. 20여명의 시민 관객들, 특히 가족 단위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있어 흥이 한껏 살아났는데, 이 프로그램은 축제의 마지막으로 배정되어있는 HONGTAGON(클럽 댄스파티)으로 관객을 안내하기 위한 전 단계의 역할로 제 몫을 하였다.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조용히 치른 홍은예술창작센터의 하루 축제는 소박했지만, 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창작자들의 열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홍은에 입주해 있는 작가들이 다양하게 갖고 있는 재능과 주제의식의 스펙트럼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와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고루 준비한 내실이 돋보였고, 2층 까페를 중심으로 스튜디오 곳곳에서 작은 먹거리를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워 관객이든 예술가든 ‘한 식구’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정겨운 풍경이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으로 갈수록 관객의 숫자도 늘어 외진 곳에 위치한 홍은예술창작센터이지만 그간의 작업들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홍은예술창작센터 외 다른 극장에서 연극이나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등 다른 포맷으로 꾸준히 진화하고 있음이 확인된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업들이나 고대부터 외계인이 얽힌 현대사회까지 일관된 색깔로 발전시키고 있는 고블린파티의 작품들, 그리고 장소특정 공연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 등은 이 곳 레지던시가 작가 세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모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찬 결실을 모아낸 홍은 작가들의 축제에 박수를 보내며 2015년 올 한해에도 반짝이는 젊음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2015. 03.
사진제공_홍은예술창작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