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춤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부산춤공간Shin 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학산춤보존회, 신우리춤연구회, 「공연과 리뷰」가 주관한 이번 토론회는 “부산 춤 예술의 맥과 향방진단”이라는 주제로 지난 2월 9일 부산 범천동 소재 부산춤공간Shin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뿐만 아니라 비평가, 기획자, 수도권과 영남지역의 무용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이종호 회장(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이라는 위상에 맞게 문화예술 분야가 더욱 발전할 필요가 있다. 제2국립극장, 오페라극장 등 새로운 예술 공간이 부산에 설립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 나은 공연환경으로 나아가려는 이때, 많은 분들이 지혜와 의견을 모아 무용을 포함한 부산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오늘 토론회에서 부산 춤의 활성화를 위해 의미 있는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첫 발제로 김태원 「공연과 리뷰」 편집인이 “부산춤의 오늘의 모습과 그 활로 모색”에 대해 발표하였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부산 춤의 흐름과 환경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부산 춤의 침체는 ①부산 춤의 정체성과 구심점을 잡아줄 구심체 또는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②전문화를 이끌어줄 전문 인력이 부족하며 ③변동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동인제적 춤 단체나 준 전문단체로 정체되어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10여년 이상 침체되어 있는 부산 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소극장ㆍ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춤공연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위해 제도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하며, 무용교수들이 춤활동을 절제하고 새로운 젊은 세대를 육성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한편으로 부산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우리춤의 전통과 창작적 새로움을 교합하여 부산 춤의 정체성을 회복할 것, 부산 춤문화의 진작에 촉매가 되어줄 생산적 춤평론과 춤기획을 바로잡을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두 번째 발제는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부산 춤의 활로를 전망한다”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첫 번째와 비슷한 주제가 두 번째 발제에서도 이어졌는데 그만큼 부산 춤계 풍토와 환경에 변화가 필요함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래 부산 춤계에서 나타난 부정적 현상의 원인을 ‘부산 주체성의 결여’와 ‘소통의 미흡’이라 보았다. ‘부산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강고한 의지가 촉구되는 가운데, 부산 고유의 지역색을 찾고 사적(史的)으로 풍부한 춤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또한 부산 춤이 국내 춤계 흐름과 동떨어진 대학권 무용의 주도가 폐단을 불러왔다고 지적하면서 대학 본연의 과제와 책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신진ㆍ독립 무용가와 젊은 세대 기획자를 발굴, 양성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세 번째 발제로 이병옥 용인대 명예교수가 “부산ㆍ영남지역춤의 생태 문화적 특성”을 발표했다. 생태 문화적 요인을 바탕으로 지역마다 다양한 춤의 문화권이 형성되었음을 밝히고 기후와 지리환경, 역사와 세시풍속, 음악적 배경에 따른 부산 춤의 특성을 호남 춤과 비교하여 설명했다. 또한 민속춤의 지역성이 뚜렷한 허튼춤, 농악춤, 탈춤, 소리춤을 중심으로 부산ㆍ영남 춤의 유형별 특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발제의 끝에 중세문화와 불교문화의 명맥을 잇는 사찰계춤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부산ㆍ영남지역에 전승되고 있다는 점을 가치 있게 조명하였다. “부산ㆍ영남지역 전통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김덕명 선생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양산통도사의 사찰계춤”이라면서 그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날 현장에는 학산(鶴山) 김덕명(91세) 선생이 고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직접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1924년 동면 내송리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통 춤과 가락에 이끌려 양산사찰학춤, 연등바라춤, 지성승무, 한량무, 장검무, 양반춤, 교방타령무 등을 여러 스승으로부터 사사했다. 평생을 전통춤과 민속예술의 전승 및 보급에 앞장섰고, 국내ㆍ외에서 다양한 공연활동을 하면서 명무 반열에 올라섰다. 1979년 한량무(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예능보유자로 단독 지정받았으며 웅상농청장원놀이를 발굴ㆍ전수해 경남도 무형문화재(제23호) 지정에 힘쓴 바 있다.
발제에 이어 이상열(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 수영야류 보존회 회장), 김옥련(김옥련발레단 예술감독), 이태상(신라대학교 교수), 함수경(잉스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 신은주(신은주무용단 예술감독, 부산춤공간Shin 대표)의 종합 질의 및 토론이 있었다.
논의는 부산 춤계 발전을 위한 방법론 모색에 집중되어 크게 세 가지 의견으로 개진되었다. 부산 춤 정체성의 확립 또는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 부산 정서의 지역색과 맞닿은 창작 개발이 요구된다는 점, 소극장의 활성화와 15-20분 길이의 소품 기획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 기획과 비평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장기적이고 소극적인 방안 보다는 주로 미시적이고 실천적인 담론이 형성되었다. 또한 문화교류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도 개진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서울을 경쟁과 협력의 대상으로 삼고, 국제적으로는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오사카, 후쿠오카, 상하이, 싱가폴 등 아시아의 항구도시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한다는 의견이다.
한편 청중석의 이숙재 M극장 대표는 부산-서울의 소극장 춤 교류전을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 인상적인 작품 3-4편을 선택, 서울과 부산의 공연을 기획하여 젊은 작가들의 무용교류와 소극장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내용이다. 이번 제안이 향후 지역 네트워킹의 성과로 이어질지 기대를 모았다.
정체되어 있는 부산 춤에 대한 공론화는 시의적절하면서도 긴요한 것이었다. 이번 토론회는 부산의 민속학적 관점으로 부산 춤의 맥과 뿌리를 살펴보고 부산 춤계의 현황을 진단하는 한편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한 뜻 깊은 자리였다. 부산 춤의 위기를 극복할 의미 있는 담론이 형성된 만큼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구체적인 실천이 수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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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부산춤공간Shin 기획 토론회 발제문(1)
부산춤의 오늘의 모습과 그 활로(活路) 모색
김태원_춤비평가. 『공연과 리뷰』편집인
나는 2004년에 동아대 무용교수 재직 시 「부산춤의 사회적 환경과 변모」라는 글을 『예술부산』지에 2회(3-4월호, 5-6월호)에 걸쳐 발표했다. 내 개인의 체험을 곁들여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부산춤의 간략한 사적(史的) 흐름과 함께 그 환경적 특성을 네 부분으로 나눠 지적해봤다. 그 글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이렇다.
(1) 1980년대 중반 이후 부산에서 대학 동인제 춤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부산춤이 다채로워지고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부산여대(현 신라대)의 하야로비, 부산대의 부산현대무용단, 부산산업대(현 경성대)의 춤패 배김새와 현대무용단 줌, 동아대의 짓과 로고무용단 등이 그 예로서 서울과 해외에서 새로운 젊은 무용교육진들(하정애 · 정귀인 · 최은희 · 남정호 · 김은이 · 장정윤 등)이 이때 많이 보강되었고, 이들은 부산은 물론 서울에서 소극장을 중심으로 매우 개성 있는 춤활동을 이때 보였다.
(2) 1988년 서울올림픽을 즈음하여 경성대 주최의 ‘부산여름무용제’는 특히 서울과 교류하는 중요한 채널이 되면서 아카데믹한 공연활동과 함께 춤이론·비평교육도 함께 강조되기 시작했다. 강이문 · 채희완 · 남정호 · 김태원 · 김채현 그리고 한국무용평론가회와 『춤』지 등이 그런 분위기 형성에 힘을 보태었다.
(3) 그런 가운데 젊은 춤세대층의 형성(김형희 · 임연희 · 허윤정 · 홍순미 · 임현미 · 김현숙 · 윤보경 · 신은주 · 하연화 · 정진욱 · 이명미 · 노수연 · 김옥련 · 장래훈 등)과 함께 특히 1990년대 들어 ‘전통춤 5인전’(1991)과 같은 춤기획전을 통해 부산이 뿌리 깊은 우리춤 전통의 한 보유지임을 확인시켰다. 김덕명·김진홍과 같은 부산 전통춤의 정신적 지주 외에 김온경 · 엄옥자 · 이윤자 · 김은이 · 최은희 등이 그 풍성한 그늘을 만들었다. 이 시기 부산에서 이러한 흐름은 서울·대구와 같은 곳의 전통춤 활동과 공명하면서도 어떤 측면 한 발 앞서가기도 했다.
(4) 그러나 1997년 IMF 이후 부산춤은 그 열기를 서서히 잃어가면서, 2000년대 들어 서울을 비롯한 기타 지역 간의 단절 속에 부산춤의 모습은 폐쇄적이 되어갔다. 대학동인제 춤단체의 활동이 한계를 드러냄과 함께 필요한 인적 자원의 유입이 멈췄다. 대신, 부산에서 활동 중이었던 무용인들(김현자 · 남정호 · 김형희 · 김현숙 등)이 일부 서울로 그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 이후 나는 2010년 창작무용가 신은주가 광안리 해변가에 부산 S스튜디오(현 ‘부산춤공간 Shin’의 전신)를 오픈, 스튜디오 춤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을 때 그곳을 방문, 부산춤의 중견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이들 및 기획자(김옥련 · 임현미 · 신은주 · 유준호 · 정은주)와 함께 내가 편집하고 있는 『공연과 리뷰』를 위한 좌담(제목은 「침체된 부산 무용, 그 구심점과 네트워크화는 가능한가」, 『공연과 리뷰』 68호, 2010년 봄)을 하면서 부산춤 침체의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 첫째는 부산춤의 정체성과 구심점을 잡아줄 어떤 구심체 내지 네트워크의 부족, 그 둘째는 부산춤의 전문화를 이끌어줄 전문 인력의 부족, 더불어 셋째는 부산춤이 2000년대 들어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동인제적 춤단체나 준(準) 전문단체에 정체되어 머물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스튜디오 춤운동 내지 소극장춤운동의 재전개(再展開)에 나로서는 얼마쯤 기대를 걸었는데, 현재로서는 부산춤공간 Shin의 활동 이외에도 별 특별한 활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후 나는 몇 번 부산을 방문해서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몇 춤꾼들의 춤을 보거나, 또 간헐적으로 서울에서 공연하게 되는 몇 부산춤꾼들의 공연을 본 일이 있다. 그중 몇 개를 짧은 비평적 관점을 곁들여 들어보면 이렇다.
⦁ 두세 차례 해운대 해변가에서 부산국제무용제를 보았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기획자(장광열 등)를 매개로 해외의 여러 춤단체를 불러들이고 국내 여러 춤단체들(부산 포함)이 참가했던 이 무용제는 예술춤의 대중화를 위해 퍽 의욕적이었지만, 기획의 일관성이나 행사의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매해 불안정하게 보였다.
⦁ 새 공연장으로 등장한 부산국립국악원 공연장에서 두 차례 창작무용가 강미리의 공연을 보았다. 『활』(1999), 『류―생명의 나무』(1996) 이후 이어지는 그녀의 춤에너지는 여전히 힘 있어 보였고 부산대 한국무용 전공생들 중심의 동인제적 앙상블로 크게 다져지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끄는 할무용단은 안무자의 경력에 걸맞게 보다 성숙한 춤집단으로는 아직 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2010년에 『롱(弄)―효명세자를 위한 샤콘느』, 대전시립무용단 객원안무작으로 『을(乙)』을 올리면서 그 존재성을 과시했다.
⦁ 역시 새로운 공연장이었던 해운대 문화회관이나 LIG아트홀에서 창작무용가 신은주의 춤공연을 두 차례 정도 보았다. 타 장르의 춤예술인(현대무용가들과 연극인)과 콜레보레이션을 통한 한국창작춤의 컨템포러리화를 추구한 이 집단의 춤작업은 여타 대학동인제의 모습과 다른, 진지한 모습을 인상 깊게 구축해 보여주었다. 공연자의 실존의식과 존재의 타자성(他者性)이 장면 속에서 혼합된 『지(止)―서다』(2010), 『시(時)·무(撫)―시간을 만지다』(2014)와 같은 작품이 특히 그랬다.
⦁ 동아대 무용과의 폐과 속에서 독자적으로 전통춤이나 신전통춤으로의 회귀를 시도하려는 한국무용가 김은이의 산조를 그녀가 기획한 ‘배꽃춤판’에서 보았다. 현대무용적 자유로운 공간성을 신전통춤의 움직임에 도입하려는 그녀의 춤은 활달하고 이채로웠지만, 그 춤의 횡보가 어떻게 진행되고 지속될지는 나는 정확히 모르겠다.
⦁ 동아대 출신으로 신라대에 자리 잡은 정신혜는 서울-부산을 오가며 현재 독자적으로 활동 중인 것 같다. 우리의 굿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근작 『굿·Good』(2011), 황순원의 단편소설을 무용화한 『소나기』(2013/2014)는 정갈한 한국춤의 춤짓을 유지하면서 춤에 다매체성이나 투명한 서정성을 도입하려 했다. 현대적 퍼포먼스성이 가미되고 있고 이채로웠으나, 작품의 깊은 맛은 아직 덜한 듯싶다.
⦁ 1995년 임현미·김남진과 함께 부산에서 독립적 춤단체 트러스트를 결성한 김형희는 부산대 출신의 현대무용가 김윤규와 함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울을 주 무대로 강한 신체성을 가진 퍼포먼스성이 짙은 실험적 무용을 다수 내놓으면서, 자신의 춤스튜디오와 지역사회가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춤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서구의 다른 아시아적 문화권의 삶의 가치의 문제를 다룬 『해당화―네 부모를 공경하라』(2006), 현대문명의 막다른 모습을 소극장 공간에서 그린 『서드 턴』(2008)과 같은 인상적인 춤작업들이 그것이다.
나로서는 이 이외에도 김옥련·임현미·왕정희·정은주·손영일·신상현 등의 공연을 틈틈이 보긴 했다.
그런 중에 이 기간 동안 부산춤의 모습을 한층 불안하게, 또 어둡게 만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춤전공생들의 지원율 하락으로 빚어진 대학 무용과의 폐과(동아대) 내지 그 기능의 축소이다. 이것은 대학 이미지의 전체적 제고만 노린 대학의 일방적인 행정과 교육 철학의 부재가 그 큰 원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변화해가는 지역 사회·문화의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지역 무용교육인들의 대응력도 그 못지않은 원인을 제공했다 보겠다.
하지만 대신 부산국립국악원의 개원과 그에 따른 새로운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의 개설, 그리고 민간기업인 LIG화재보험이 훌륭한 시설이 갖춰진 자체 공연장(부산 LIG아트홀)을 통한 무용가 지원프로그램(지난해에 현대무용가 박은화, 창작춤꾼 신은주가 그 수혜자였다) 같은 것은 어떤 희망을 주는 요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부산춤의 모습은 분명 어떤 주된 흐름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산발적인 부산춤의 모습들이다. 달리 말해 강한 개성과 예술성을 지닌 안무자들이 부산을 터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활동은 어떤 고립성 속에 이뤄지고 있는 듯싶고, 일부는 부산을 벗어나 작업하며 그 이름을 오히려 외지(外地)에서 더 높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딱히 부산춤다운 새로운 분위기랄까, 춤운동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다. 물론 그간 그런 산발된 모습을 얼마쯤 메울 수 있을 여러 춤예술적·교육적 노력은 또한 없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내가 직접 보지 못하고, 또 발견하지 못한 것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부산춤이 2000년대 이후, 적어도 10년 이상의 침체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새롭게 더 기울여져야만 할까? 더불어 불연속적이거나 단기적이 아닌 연속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책 내지 해결책은 무엇인가? 특별히 이것이다 라고 제시할 것은 없지만, 부산춤을 포함, 현재 그 유사한 상황들이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평소 나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밝혀보면 이렇다.
(1) 소극장춤/스튜디오춤의 활성화와 제도적 지원
이 부분은 우리가 지난 춤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우리 예술춤이 이른바 춤의 르네상스를 외치며 급속히 팽창되어지기 시작한 지난 1980년대에 그 활동의 ‘숨은 도화선’이 된 것은 소극장 춤공연이었다. 이것은 연극에서 소극장 활동과 동일한 궤도를 탔다. 이 춤운동은 당시 서울의 공간사랑, 창무춤터, 바탕골소극장, 문예회관 소극장 등을 중심으로 번지면서 급속한 춤공연장의 증가와 함께 춤세대층의 증폭, 그리고 여러 전문 인력의 육성(기획·조영·음향 및 편곡·무대미술 등)을 가져왔다. 더불어 춤평론의 활동도 함께 그때 정례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창무포스트, M극장, 두리춤터, 성균소극장, 자유소극장, 아르코소극장 등이 정책상 일부 문화공간 지원책에 의해 지원되면서 그런대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M극장이나 두리춤터는 연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 큰 틀에서 우리 춤공연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하겠다. 지난 80년대 후반, 부산의 춤이 부쩍 활성화되며 존재감을 나타냈을 때 가마골소극장을 비롯한 광안리 인근의 몇 춤/연극공간이 그런 활동의 터가 되었다. 부산의 경우, 이 점은 현재 부산춤공간 Shin을 포함해 문화정책상 두어 곳(좌석 수 100~250석) 정도를 정해 시급히 시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그 지원에 있어서 큰 경비가 들어가지 않으면서, 예술춤의 지원에 있어서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무용교수들의 활동 절제와 신세대층의 육성
서울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이른바 독립 춤세대층의 증가에 따라 대학 교수진(안무가)/독립 춤세대 간의 비율이 어느 정도 맞춰졌지만, 부산·대구·대전과 같은 지역에서는 아직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 속에서 대부분의 지원금이 무용전공교수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상당 부분 쓰여지고 있다. 지역이라 서울에 비해 지원 총액이 턱없이 부족한 실상에서 무용 교수들과 지역에서 나름대로 존재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 혹은 춤집단이 지원금을 거의 다 가져가기 때문에 젊은 무용가들의 활동은 점점 어렵게 되어가고, 그들의 육성과 성장은 힘들게 된다. 그 결과, 젊은 춤꾼들은 지역에서 춤활동에서 점점 이탈해가거나 독립성을 잃고 직업무용단에 들어가 쉽게 안주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무용교수들은 자신들의 춤활동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교육성이 곁들어진 경제적인 춤공연 활동(워크숍이나 스튜디오 춤공연 등)을 통해, 지역춤 발전에 이바지할 새로운 젊은 세대층을 육성해내어야 한다. 1970~80년대 이화여대 무용과를 비롯, 여러 무용과 등에서 정례적인 월례 발표회와 함께 무용전공생들의 사회적 진출을 돕기 위해 무척 열성이었던 여러 선배 춤교육자들의 헌신적 모습을 떠올려야만 한다.
(3) 다면적(多面的) 춤교육의 강화
오늘의 춤은 비단 무대 위에 올려지는 공연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물론 여타 여러 방송물에도 춤이 직·간접으로 사용되고 있고, 청소년기 혹은 대학에서 춤을 익히고 경험한 이들 중 일부는 유명 방송 연기자(탤런트)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것은 선(禪)체조나 여러 스포츠와 관련되어 다양한 건강 증진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거나 신체의 기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용되거나 연구되고도 있다.
또한 그것은 예술적 민속학이나 인류학, 그리고 현대의 공연예술과 연관되어 진지한 학문이나 예술적 비평(저널리즘)의 대상이 되고, 또 그 주제가 되기도 한다. 곧 춤예술과 문화는 많은 가치를 내포, 그것을 다방면으로 발산할 수 있는 극장예술의 한 분야로서, 생활과 밀접한 실천프로그램으로서, 그리고 학문과 비평의 대상으로 두루두루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대학에서 춤교육은 전문적 실기교육 못지않게 여러 방면의 교육들(여러 극장예술과 기술 관련·연기·민속·스포츠·예술인문학적 글쓰기 등)을 실시, 피교육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전문 실기의 영역 이외에도 나름의 다른 흥미를 갖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좁고 폭넓은 무용교육은 연극(연기)을 포함한 종합적인 극장예술학, 민속인문학, 그리고 저널리즘을 포함한 사회 매체학 등에 특별히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재능 있고 규율성 있는 무용예술인은 교육에 따라 ‘다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4) 부산춤의 정체성과 전통은 역사성과 새로움의 교합에 있다
부산춤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말할 수 있다. 고대 신라와 가야와 연계된 역사적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고, 또 개화 이후 실용주의적·현실주의적 가치관의 측면에서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주 가깝게는 6·25동란 이후 문화사회적 혼란·혼잡의 상황과 연관해서 얘기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일종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대륙문화와 해양문화의 충돌과 조화에서 그 해답을 찾고 싶다. 그렇게 보자면 대륙문화의 유산과 기운이 온전히 남아있는 곳이 부산이요, 반면에 해양문화의 낯섦과 새로움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이 또한 부산이라고 보고 싶다. 따라서 가장 오래된 것과 새로움이 만나 공존하고 있는 것이 부산이고, 그 연장에서 우리 춤예술의 가장 오래된 모습과 가장 새로운 모습이 공존하며 함께 있어야 할 곳도 부산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부산 수영야류, 동래학춤, 양산사찰학춤, 또 멀리 동해안 별신굿이나 처용무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김덕명·김진홍·김온경·엄옥자(작고한 황무봉이나 최현도 어느 정도) 등 만만찮은 우리 전통춤의 굵은 한 뿌리가 부산에 있다 할 수 있고, 반면 새로움을 좇는 창작정신도 지난 1980년대 이후 김현자 · 남정호 · 정귀인 · 최은희 · 김은이 · 김형희 · 신은주 등을 통해 꾸준히 발산되어 왔다 하겠다.
그러므로 가장 속 깊은 우리춤의 전통과 창작적 새로움을 어떻게 교합(交合)할 것인가 하는 데 부산춤의 현재와 미래가 있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 ‘교합(절충·혼용·공존)의 미학’을 부산춤문화는 귀중한 가치의 잣대로 지켜가야만 한다고 본다.
(5) 부산시립무용단의 존재성
앞서 언급한 (4)의 가치관에 의하면, 부산의 대표적 직업무용단인 부산시립무용단은 우리춤 전통의 가장 깊숙한 것과 동시에 가장 새로운 것을 함께 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부산 지역에 산재해 있는 가장 역사성 있는 춤유산을 끊임없이 개발·(재)구성해서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가장 앞선 것들을 거리낌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즉 가장 전통적인 춤작업과 컨템포러리적 작업을 혼성·병행해 가거나, 필요하다면 이원화(二元化)된 구조를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전통의 가장 깊숙한 것을 찾고 (재)구성하는 일은 학구적 노력에 가까울 수 있다. 반면 예술적 새로움을 수용하는 노력은 개방적이어야 하고 과감해야 한다. 그런 새로움을 위해 외부 안무자를 기획프로그램에 따라 초빙하는 등, 직업무용단의 문을 ‘개방’하여야 한다. 예술감독의 책무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향후 그렇게 크게 탈바꿈된 부산시립무용단의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6) 생산적 춤평론과 춤기획의 촉매적 역할
현재 부산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부산예술이 펴내는 『예술부산』과 『부산일보』, 『국제신문』의 문화면들이 주로 싣고 있다. 1990년대 초 작고한 강이문 이후 김태원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4년까지 부산춤 활동에 대한 기록을 공식적인 지면을 통해 남긴 것 이외에는 일관성 있는 뚜렷한 기록활동이 매우 부족하다. 일간지 기자를 포함한 부산의 몇 지식인과 무용인들이 기록을 더러 남겼으나, 비평의 전문성과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수준이다.
작고한 강이문의 평론활동에서 볼 수 있듯 지역에서 한 사람의 평론가는 단순한 춤의 기록자나 평가자 그 이상의 기능을 행사한다. 1960년대 이후 부산 지역 춤활동의 충실한 기록, 그리고 민족무용론의 제기와 함께 1970년대 부산시립무용단의 결성을 강이문 선생이 한국무용가 황무봉 등과 함께 주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더불어 크고 작은 지역의 행사에는 그는 늘 있었고, 여러 지역/중앙 저널리즘을 통한 부산춤의 존재성 알리기에도 그는 늘 적극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 사람의 춤교육자·춤평가자이면서 어느 정도 부산 춤문화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설계자(기획자)이기도 했다. 현재 그와 같은 존재가 현 부산춤계에 부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산춤문화의 빈곤함이나 어떤 결핍을 뜻하고 있다고 보겠다.
그와 관련하여 1990년대 후반 들어 서울 중심으로 특히 전통춤의 활성화―나아가 신전통춤의 확산―에는 박동국·장승헌·진옥섭과 같은 생산적 기획자들의 기여가 컸다. 이들은 프로그램의 기획은 물론 전문가 수준의 해설을 공연에 덧붙이면서 한 공연에 대한 관객의 이해력 증가와 함께 공연과 관객과의 친밀감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장승헌의 푸근한 우리 전통춤에 대한 애정과 시선, 그런가 하면 우리 전통춤에 관한 누구 못지않은 글솜씨를 자랑하는 진옥섭의 끼 넘치는 해설은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전통춤공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 뜻에서 평론가와 기획자는 한 지역의 춤문화의 진작을 위한 다소 기능을 달리하는 ‘매개체요 촉매자(mediator, 혹은 animator)’라 하겠다. 전자는 공연의 심미적 가치적 측면에, 후자는 공연의 효율적 진행에 좀 더 관심 쏟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부산춤에서 어떤 구심체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어쩌면 그 같은 존재의 결여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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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부산춤공간Shin 기획 토론회 발제문(2)
부산 춤의 활로를 전망한다
김채현_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무용이론과 교수. 춤비평가
발제의 전제
본 발제의 주제는 ‘부산 춤의 활로를 전망한다.’이다. 활로를 전망하려면 현장에서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함이 원칙이다. 부산의 춤을 부산 현지에서 관람한 경우가 근래에는 웬일인지 거의 전무한 발제자의 입장에서 그 활로를 상상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줄로 안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 주최 측의 발제 의뢰가 시의적절하면서도 긴요하다는 판단에서 발제를 수락하였다. 이 점에 대해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한편으로, 본 발제가 부산 춤의 활로를 상상하고 논하는 데 있어 다소 의미 있는 화두가 되기를 기대한다.
부산 춤 현장 여론
본 발제를 준비하기 위해 부산의 무용인을 면담하고 언론을 살펴본 결과, 부산 춤계의 현안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부산 주체성의 결여’와 ‘소통의 미흡’으로 집약되었으며, 이는 발제자가 이전부터 관측해온 바와 유사하다. 이 점에서 부산 춤계는 2000년대에 들어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오히려 이런 저런 사안들로 미루어 보자면 ‘정체(停滯)와 위축’을 거듭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개인적 경험으로 90년대에는(고속철 시대인 지금보다 교통이 불편한 그 시기에) 부산에 춤 관람하러 올 일이 적지 않았고 부산 춤계도 나름 활기를 띠었으며 부산 활동 무용인의 이른바 서울 공연도 그런 대로 있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서 그런 일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감지되며, 이런 현장적 느낌은 다시 부산 춤계의 ‘정체(停滯)와 위축’을 반증한다. 이와 같은 진단은 비단 부산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유사하게 내려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부산 춤계의 변화상: 2000년대
2000년대 들어 부산에서는 국제무용제가 2005년에 시작했고 영화의 전당 내의 공연장, 국립국악원 극장, LIG 아트홀을 비롯 공연장도 몇 군데 들어섰다. 연간 공연 건수는 50건 정도로 집계된다. 그간 부산의 춤계 주축을 이루던 대학권에서 폐과나 학과 전환의 사실들은 부산 춤계 위축의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와중에 독립 무용가도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공연 형태의 변화를 모색하는 활동도 더러 있는 듯하다. 극장을 벗어나 시민의 공간을 춤판으로 삼는 시도가 더러 있었다. 이상의 사실 혹은 현상을 제외하고 부산 춤계의 변화상으로 거론할 만한 것이 있다면, 보완되어야 하겠다.
부정적 현상의 원인과 결과
‘부산 주체성의 결여’와 ‘소통의 미흡’은 이미 지적된 대로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2000년 이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다. ‘정체(停滯)와 위축’으로 인해 그러한 현상의 해소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는다. 거꾸로 ‘부산 주체성의 결여’와 ‘소통의 미흡’이 장기적으로는 부산 춤계의 ‘정체(停滯)와 위축’을 초래한 근본 요인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산 춤계의 활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부산 주체성의 결여’ ‘소통의 미흡’ ‘정체(停滯)와 위축’을 동시에 유기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앞의 두 가지는 창작 역량과 미학적 인식의 축적이 있어야 해소가 가능하므로 개인의 자각에 좌우되는 정도가 매우 높다. 이에 비해 ‘정체(停滯)와 위축’은 지역 춤계의 관행을 개선함으로써 해소될 만한 정도가 높기 때문에, 그러한 관행을 주도하는 세력권부터 주목해볼 만하다.
대학권 무용의 위상: 부산의 경우
1990년대부터 예측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 국내 춤계(사실상은 서울의 춤계)에서 대학권 무용(예: 대학 동문 단체 중심의 공연이나 네트워크 활동)은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지금도 서울에서 대학권 무용의 활동은 있으나 비평이나 현장의 영향력 면에서 갈수록 퇴조하고 있다. 특정 대학 동문 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공연은 낙후된 것으로 인식되고 비평에서 거론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대학권 무용의 역할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는 국내 춤계의 흐름과 동떨어졌고, 지역에서도 대학권 무용이 주도하는 현상이 언젠가는 퇴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권 무용이 주도하는 지역은 비평에서 경시되면서 궁극에는 열외(列外)로 처지기 마련이다.
부산의 경우에는, 대학권 무용이 주축을 이루는 것으로 관측된다. 연간 공연이 50건 정도인 부산에서 대학권 무용이 세력(관객 동원, 출연진 섭외)을 발휘하기는 매우 용이해 보인다. 대학권 무용의 역할은 90년대까지라는 국내 춤계의 공식적 흐름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대학권 무용이 부르는 폐단
무용사적으로 보아, 대학권 무용의 현장적 역할은 2000년대 이전에 끝났을 뿐, 특히 80년대에 한국 춤계에 기여했던 바는 막중하였다. 아무튼 대학 학과가 준공연단체 비슷한 역할을 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으며, 대학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다른 또는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어 왔다.
국내에서 대학권 무용이 현장에서 대학 나름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보호막을 조장하면서 춤계 현장에서 야기했던 폐단은, 모든 대학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동문 구성원의 예술적 투지와 긴장감을 늦추고 매너리즘을 유포하였다.
2. 동문 구성원의 창작에서 자율성을 훼손하였다.
3. 창작의 다양성과 상상력을 저하시켰다.
4. 작품의 유통 범위를 동문 구성원 주변으로 축소시켰다.
5. 시대와 사회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할 의지를 희석시켰다.
서울에서 탈 대학권의 흐름(그리고 다른 요인들) 이후 공연작들은 그런 대로 다양한 양식을 내보이고 있다. 이 점에서 부산은 서울과 차이가 크다.
또 다른 폐단들: 창작 발표자의 경우
대학권 무용의 비중이 크고 또 그것이 주축을 이루는 상황에서는 대학권 무용에 먼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학권 무용과 연계해서 공공 기구들의 책임도 물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현장 무용인 개개인들의 책임도 짚어져야 한다. 비단 부산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겠지만, 부산 무용인들이 지적하는 부산 춤계의 폐단은 창작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관객 및 사회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미흡하다.
2. 서울이나 해외 작품을 모방하는 경향이 짙다.
3. 오래 전의 신무용 류를 지방색으로 오인한다.
4. 기존 작품을 장소와 제목을 바꾸는 선에서 재연한다.
이러한 폐단을 초래한 요인들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해결책 역시 즉각 제시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해결책을 구하려는 의지가 관건이겠지만, 그러한 의지는 어떻게 함양될 수 있을까?
극복 과제: 부산 주체성 결여 ∙ 소통의 미흡
앞서 거론된 병폐들을 해소하자면 창작자나 춤꾼 개인보다는 부산 춤계라는 특정한 사회의 공동 노력을 통해야 한다. 말하자면 예술이 성장할 풍토를 먼저 무용인들이 나서서 조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며, 그런 과정에서 지원 기구나 사회에 대해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부산 주체성의 결여’와 ‘소통의 미흡’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개인이 얼마간의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춤계 내의 행위로 맴돌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대학권과 창작 발표자들의 관행적 병폐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역량도 한계에 부닥치기 일쑤이겠다. 일부 무용인들의 탈부산(脫釜山) 활동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간 ‘정체(停滯)와 위축’ 면에서 책임이 비교적 명확한 기성세대는 혹시 가졌을 아집과 편협을 벗고 돌파구를 과감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시각각 가중되는 ‘정체(停滯)와 위축’을 생각하자면, 한시가 급하다. 역발상으로 제안하자면, 덜 여물었어도 열정은 가장 왕성하면서 아직은 의식이 열려 있는 30대 집단에게 대형 행사의 기획을 맡겨보자.
부산 주체성의 회복은 가능한가 1: 모방
춤 측면에서 부산 주체성은, 부산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체질을 의미하는데, 두어 갈래로 부연 설명된다. 먼저 부산의 풍부한 춤 자산을 춤에 반영하는 일, 그리고 부산의 고유한 정서를 춤에 구현하는 일이다.
부산의 춤 자산은 경남 혹은 영남에서 전래(傳來)해온 춤 자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부산 자체에서 생성 전래한 춤 자산이 있다면 신무용 이후 시기의 것이다.(1910년 부산은 일제에 의해 동래부(東萊府)가 부산부(釜山府)로 개칭되었고, 1914년에는 부산부가 부산부(지금의 부산시)와 동래군으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부산은 경남 및 영남의 거점 도시로서 이 지역의 전래 춤들이 합류하는 집결처 같은 구실을 해왔다.
부산의 일부 창작자들에게서 지적되는 병폐로서, 서울이나 해외 작품을 모방하는 경향이 짙다. 의도적 모방인 경우 모방 이후 발전된 다른 창작으로 연장될 수 있고, 전래의 춤도 의도적 모방이라면 그대로 수용될 수 있다. 반면에 은폐적 모방은 소모적이고도 퇴행적이어서 백해무익하다.
부산 주체성의 회복은 가능한가 2: 지역색
부산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 지방색과 지역색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방색은 향토색의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제는 대체로 중앙의 대척(對蹠) 개념으로서 폐쇄성과 후진성의 의미를 동반한다. 지역색은 지역감정처럼 폐쇄성을 동반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지역은 중앙을 설정하지 않으므로 지역들 간의 수평 관계를 전제로 하며, 이는 다시 지역들 간의 열린 관계로 진화할 수 있다. 부산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 춤에서 요청되는 것은 부산 지역색이다.
부산에 전래한 춤 자산은 춤사위와 구성 면에서 활달 ∙ 개방 ∙ 유동 ∙ 질박 ∙ 화통한 정서의 지역색이 특성이다. 그런 정서들은 공감대가 높고 명분도 있다. 지금도 부산에서 창작되는 춤들에서 그러한 특성이 뚜렷이 감지된다.
현대춤에서 테크닉은 범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자기 고유의, 지역 고유의 테크닉이 부각되는 시대에 세계 춤 지형도에서 지역색은 엄청난 자산으로 인식되므로 춤 구상 단계에서부터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부산 주체성의 회복은 가능한가 3: 강이문 선생의 진단
강이문(姜理文, 1919~1992): 함경남도 단천 출생, 일본대학 척식과 수료,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난해서 정착, 이후 부산 토박이처럼 부산에서 현장 춤비평가와 이론교수 및 문화예술계 인사로 활동을 지속함.
1. 부산 지역 춤계의 문제점 (무용, 1974)
- 중앙집권적 지방 소외 풍토
- 몰정취(沒情趣)한 고질적 생리 (비유: 메마른 근대 산업 도시 부산)
- 예술인 자신들의 자학적 무기력
2. 부산 춤의 주체성 세우기 방안
(1974, 1979, 1982; 무용저널, 제7호, 1992. 12. 한국무용평론가회)
- 서울의 모방, 부산적 개성이 없음
- 현대무용 분야는 완전한 황무지, 현대를 논할 춤이 부산에 부재
- 지역 개성적 예술로써 부산적 개성 정립 필요
- 부산권 무용전통(부산적 한국무용 ∙ 현대무용 ∙ 발레) 필요
- 향토무용의 전통성 계승, 주체적 전통의식의 확립
- 개성적 민족무용의 조성을 위해 부산 무용권 형성 필요
부산 춤 주체성의 회복의 실천: 춤 현장의 공식 기획 1
춤에서 부산 주체성의 회복을 위하여 창작자 개개인의 모색이 소중한 훨씬 이상으로 부산 춤계의 매우 의도적이며 치밀한 기획이 시급해 보인다. 이를 달성하려면 우선 ‘춤의 부산 주체성’이 부산 춤계의 긴요하고도 즐거운 화두(話頭)로 회자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론을 일으키고 정리하며 다듬는 비평과 언론의 역할이 중시된다.
실제 현장의 활동을 돕는 차원에서, 기성세대는 화엄(華嚴)의 뜻으로 심기일전해서 이 화두를 성원하고, 젊은 세대는 이 화두를 현장에서 성실히 실현해내는 기획을 제안한다. 향토의 지역 사회는 서울 지역에 비해 친근친숙도가 높아 현안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쉽게 발휘할 만한 이점이 있다.
예술은 집단의 일사불란한 게임이 아니다. 개개인의 예술적 의지가 모여 예술계를 이루고 또 부산 춤계를 이룬다. 다만, 예술적 의지를 자극하며 뒷받침하는 풍토 조성 측면에서 ‘춤의 부산 주체성’이 기존의 큰 행사나 혹시 새로 구상될 만한 기획에서부터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부산 춤 주체성의 회복의 실천: 춤 현장의 공식 기획 2
‘춤의 부산 주체성’ 회복을 겨냥한 기획의 줄기
1. 명칭(가칭): 부산(시민)과 함께 가는 춤제전(시민 곁으로!)
2. 참여 실행 범위: 부산의 무용인 + 일반인
3. 형식: 옥내 작품 + 거리춤 + 커뮤니티 댄스
4. 내용: 시민과 공유할 부산 지역 정서 + 부산 지역 사연
5. 움직임: 현대춤 모든 장르 + 부산 지역 전래 춤 응용
6. 행사 추진 주체: 기성 세대 + 젊은 세대
7. 행사 주관 주체: 젊은 세대 집단(특히 30대 + 40대)
8. 행사 초점 관객: 문화 참여도 ∙ 관심도 높은 계층
追伸: 향후에 활달한 기획이 자리잡음으로써, 부산 춤계 풍토나 환경에 관한 토론에서 더 나아가 부산 춤 작품들의 예술적 경향과 철학적 ∙ 미학적 측면을 조명하고 비평하는 토론이 언젠가는 중심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 2015 부산춤공간Shin 기획 토론회 발제문(3) "부산·영남지역춤의 생태문화적 특성" 을 아래에 잇는다. http://koreadance.kr/index/bbs/board.php?bo_table=re_webjin_05&wr_id=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