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댄스랩 서울 2013>이 지난 8월 12일부터 30일까지 총 3주에 걸쳐 예술가의 집과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열렸다. <댄스랩 서울>은 이론과 실습을 통합한 현장 중심의 리서치 과정을 통해 무용 창작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하는 창작 리서치 워크숍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디아츠앤코의 공동 주최로 작년에 이어 올해 8월, 다시 한 번 국내 무용인과 함께했다.
올해 <댄스랩 서울>은 프랑스 몽펠리에 국립안무센터의 예술감독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 호주 Chunky Move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였던 기드온 오바자넥(Gideon Obarzanek), 네덜란드 Fontys Hogeschool voor de Kunsten의 교수이자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파트너인 가이 쿨스(Guy Cools) 등 세계적으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 3인을 초청,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동시대 무용 창작의 이슈를 다원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다.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첫 번째 리서치랩에서 기드온 오바자넥은 ‘Making Sense of Things’라는 주제로 무용이 어떻게 다른 매체와 교류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지난 15년 동안 무대 공연·필름·인스톨레이션·미디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했던 사례들을 제시하고, 그가 발전시켜 온 ‘창작 시스템’에 관해 토론과 실습을 병행하여 분석했다. 다른 장르와 혁신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었던 여러 사례들을 통해 무용 언어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다각도로 확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기회였다.
또한 기드온 오바자넥은 현재 구상 중인 신작의 아이디어를 참가자들과 공유했다. 참가한 국내 무용인들은 오바자넥과 함께 퍼포머이자 협력 창작자의 관계로 신작의 토대를 구축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안무 전략 및 창작 매커니즘에 대한 체험적인 탐구가 심도 깊게 이뤄진 리서치랩이었다.
두 번째 리서치랩은 마틸드 모니에의 코칭으로 8월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Copié’를 주제로 한 모니에의 리서치랩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것들을 재료로 다양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법에 대해 탐구했다.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현, 재해석, 인용, 콜라주, 공정한 모방, 아이디어의 절도, 인용’이라는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뤄보고 재해석 시리즈(a series of retranslation)로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무용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될만한 7가지 무용기록 필름들이 이번 리서치랩의 창작 재료가 됐다. 독일 표현주의 안무가 Mary Wigman의 1923년작 <Witch Dance>
20여명의 참가자들은 선택한 영상물을 바탕으로 9개의 그룹을 만들었다. 각각의 그룹은 영상물에 담겨진 여러 요소들 가운데 무용수의 움직임(movement), 작품의 구성, 배경으로 사용된 음악, 시대·역사적 정황(context) 등 흥미롭게 생각되는 안무적 부분 몇 가지를 추출했다. 발췌된 부분은 그룹별 토론과 실습 연구를 통해 카피, 재해석, 인용, 콜라쥬(조합) 등의 방법으로 재구성되어 나갔다. 5일이라는 압축적인 워크숍 기간 동안 매일의 창작 과정을 마틸드 모니에, 참가자 전원과 공유하며 자유로운 토론과 피드백을 통해 의미 있는 창작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리서치랩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워크 인 프로그레스(Work-in-Progress)’ 를 열어 창작의 재료가 되는 원본 영상물과 함께 다양한 버전으로 재해석한 9개 작품을 공개했다. 이날 선보여진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에 있는 창작물로서 지난 워크숍에서 수행한 창작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틸드 모니에는 무용의 역사적인 순간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과거의 재료를 통해 동시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는 “무용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 그것을 창작 작업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강조하면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현재의 것에 머무르지 말고 과거에 일어났던 것들을 참고(reference)하라고 말한다. 그 방법으로 단순한 흉내내기(imitation)가 아닌 미메시스(mimesis)적 관점에서 ‘모방(Copy)’을 무용 창작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모방이라는 창작 방식에 도덕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 대신 보다 적극적으로 그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끔 자유를 부여하고 열린 사고를 갖게 했다.
마틸드 모니에는 “어떤 측면에서 한국 무용가들은 보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들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듯하다”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이를 작품에 충실히 투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러 개의 아이디어, 여러 장면을 나열해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관객을 자극하는 것 대신 하나의 아이디어를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용의 본질은 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젊은 세대 무용가들이 안무 과정에서 머리속 생각이나 말에 머물러 있기보다 몸을 움직여 실행(practice)하는 것으로 창작에 임하기를 당부했다.
8월 마지막주에 진행된 세번째 리서치랩은 가이 쿨스의 '댄스 & 드라마투르기'다. 세계적인 안무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덕션에서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해 온 가이 쿨스는 Akram Khan, Les Ballets C de la B, Sidi Larbi Cherkaoui와의 공동 작업에서 도출된 여러 사례들을 바탕으로 댄스 드라마투르기의 기능과 역할을 제시했다. 기존의 드라마투르그가 텍스트에 국한되는 극작가 정도로 그 역할이 협소했다면, 가이 쿨스가 제안하는 ‘오픈 드라마투르기’에서는 작품 창작에 직접적으로 참여, 공동 작업으로 안무 과정을 공유한다. 안무가가 아이디어를 활성화시키고 무용 언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거나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이 댄스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인 것.
<인식 : 무엇을 탐색할 것인가>, <명료화 :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최선의 표현방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원적인 실습 : 어떻게 타 장르의 작업 방식을 자신의 분야에 창의적으로 변형, 적용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에 대해 탐색해 봄으로써 창작 과정의 본질인 인식, 명료화, 직관, 경험 등의 개념이 실제 안무에 활용될 수 있도록 실습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가이 쿨스의 개별 코칭 시간을 마련, 참가자들은 자신의 작품 영상이나 창작 과정에서 있었던 이슈, 아이디어 등을 공유하며 보다 새롭고 차별화된 관점의 안무 과정, 방법론을 발견하는 기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