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초여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주말 저녁,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들어섰다. 가족, 커플, 친구 등 구성원도, 연령대도 다양한 그들은 이내 줄을 맞춰 발걸음을 시작하다가 앰프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스텝을 이어간다.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고 박수를 치며 워킹댄스를 선보이는 100여명의 모습은 탁 트인 한강과 어울리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지나가던 차들이 서행하며 그들의 몸짓을 구경하고, 러닝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도 연신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응원한다. 춤을 추는 사람도, 바라보는 사람도 한껏 유쾌해지는 한강 위의 춤 현장. 지난 6월 22일 토요일에 벌어진 서울댄스프로젝트의 게릴라춤판이다.
서울댄스프로젝트의 일환인 게릴라춤판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춤꾼 ‘춤단’이 벌이는 이른바 도시발광(發光)프로젝트다.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무려 6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한 서울댄스프로젝트는 게릴라춤판을 필두로 ‘춤추는 서울’ 만들기에 순항 중이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퇴근길 지하철에서 펼치는 ‘메트로 댄스’를 비롯해 한강의 대교 위, 광화문광장, 신촌 등 특정장소에 그야말로 게릴라처럼 느닷없이 출몰해 한바탕 춤판을 펼친다.
도심 한복판에서 거침없이 춤판을 벌리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반인이다. 특히 이번 마포대교에서의 게릴라춤판은 서울문화재단이 오디션을 통해 공개모집한 이른바 ‘춤단’이라 불리는 시민춤꾼 30여명 이외에 1일 체험단 70여명이 함께했다. 1일 체험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 방식으로 이뤄졌으나 참가신청이 많아 마감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종료됐다. 총 100여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시민춤꾼들은 공연당일 1시간 정도 사전워크숍을 통해 이번 춤판을 준비했다.
시민춤꾼들은 ‘워킹댄스’를 선보이며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를 건너갔다. 왕복 두시간 남짓, 한강과 함께 노을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있는 그대로의 춤이 펼쳐졌다. 열정적으로 신나게 흔드는 춤, 한강을 향해 손을 흔들고 시민들과 웃음을 나누는 것까지 게릴라춤꾼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몸짓은 비전문적이지만 그래서 친근하고 멋지다. 춤으로 하나 된 그들은 한강 위의 모든 이들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냈다.
서울댄스프로젝트-게릴라춤판은 대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으로 활력과 에너지를 심어주고, 공동체성을 발견하도록 한다. 한국에서 일상의 춤운동이 산발적으로 시도된 적은 있지만 규모를 갖추고 진행된 것은 올해 개최된 서울댄스프로젝트가 처음이다.
이같은 춤운동은 세계 곳곳에서도 그 역할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펼쳐지고 있다. 2006년에 시작한 영국의 빅댄스 페스티벌(Big Dance Festival)은 공공성이 강한 댄스 테마 축제로, 공공장소에 모인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빅댄스를 통해 사회 통합의 기회를 갖는다. 각 도시의 퍼포먼스 단체가 연합체를 만들어 펼쳐지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거리춤축제 ‘디에스 데 단사(Dies de dansa)’는 도시재생과 공동체 회복을 이뤄낸다. 또 콜롬비아 ‘몸의 학교(엘 콜레지오 델 쿠에르포 El Colegio Del Cuerpo)’는 빈민 아동들에게 춤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대안학교로, 혁신적인 대안교육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극장 밖을 나온 일상 춤의 다양한 실천 방법들은 춤의 경계를 확대시키며 사회,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긍정적 성과를 얻는 중이다.
세계의 우수 사례와 같이 댄스프로젝트가 서울을 대표할 만한 건강한 문화예술운동으로 자리 잡기 위해 서울문화재단은 일회성 이벤트를 지양하고,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게릴라춤판과 더불어 10월까지 이어질 ‘춤바람커뮤니티’는 직장 또는 지역사회에 춤 문화를 보급하며 생활 속 춤추기를 실현시킨다. 또한 서울댄스프로젝트 기획단은 3분의 ‘오피스 체어댄스’를 자체 개발해 직장사회에 보급하고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배포할 예정이다. 8월 중순 선유도 한강공원에서는 시민, 댄스동호회, 춤바람 커뮤니티가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댄스파티 ‘춤야유회’가 개최된다. 10월 서울광장에서는 6개월간 댄스프로젝트와 함께 해온 게릴라 춤판의 춤꾼들과 춤바람 커뮤니티, 각종 춤 동호회와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는 대규모 댄스페스티벌 ‘서울무도회’가 열린다.
서울댄스페스티벌의 모든 프로그램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가능하며, 게릴라춤판의 공연일정은 매주 수요일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문의: 서울문화재단 02-3290-7134, www.seouldanc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