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없는 질문들’(Borderless Questions)을 슬로건으로 동시대 사회 정치, 역사와 다양한 관점, 예술과 기술,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과 기후위기 시대에 대한 탐구와 질문들을 던진 2023 스파프(23. 10. 6-29. 예술감독 최석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문영호, 공연예술본부장 홍사용, 공연회외진흥팀장 강예나)가 19개의 공연과 12개의 워크숍 페스티벌 프로그램 등을 주최하며 대표 공연예술축제로서의 대장정을 마쳤다.

일종의 축제 후 축제가 되는 ‘합평회’는 예년에는 연극분야만 진행을 했는데 올해는 무용, 다원까지 확장하여 축제팀, 출품한 예술가들, 각계의 평론가들이 모여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역시 간단치 않게 진행되었다.

축제팀은 합평회에 대한 준비도 축제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미리 준비하여 작품비평뿐 아니라 기획비평, 관객리뷰(설문조사와 분석)로 분야를 세분화하여 진행하였으며, 사전에 출품 예술가에게도 리뷰를 받고 싶은지, 합평회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등을 사전 조사하는 등 축제와 관련된 주체들의 의향을 살피고 비평가와도 긴밀하게 연락하며 합평회 준비를 하였다. 합평회 당일(23. 11. 10. 예경 12층 영상회의실)에는 해외 출품작과 해외 올해 활동예술가가 많았기 때문에 참석한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8명의 분야 비평가와 7명의 출품자, 축제팀 등 열띤 분위기를 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동시에 깊이를 가진 논점을 던지기에도 좋은 여건이 마련되었다.

축제팀이 합평회의 목표를 “작품 평론을 통한 동시대 방향성을 토론하고, 축제 주제와 기획 프로그램 비평을 통해 공연예술축제의 방향성을 찾아보려”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그 초점에 맞추어 작품을 비평하고, 기획 방향에 대한 비평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무용분야는 7개의 작품이 공연되었고 김예림 평론가와 내가 나누어 리뷰를 했는데, 최강 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김성훈 댄스프로젝트 <조동>, 이태리팀 무오비 <마치, 내가 나를...>, 안은미 컴퍼니 <웰컴투유어코리아> (이상 김예림 평론가), 개막작 샤요 국립무용극장의 <익스트림 바디>, 강요찬 <구조와 의식>, 허프로젝트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 등 3작품은 본인이 리뷰하였다. 이후 축제 홈페이지와 백서에 게재할 예정으로 있다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오래되어 친근한 ‘합평회’라는 단어

합평회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써왔는데 지금도 대신할 단어를 못 찾았는지 이 단어를 만나니 참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의 슬로건이 웅장하고, 동시대의 작품들이 최첨단이었던 것과 대비되어 “축제가 끝나고 난 후” 우리가 할 수 있는 멋진 마무리가 함께 모여 앉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합평회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꽤 괜찮은 아날로그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합평회에 참석하면서 긍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출품한 예술가들과 만난다는 것이었다. 통상의 경우 개별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쓸 경우, 리뷰 완성 후 해당 예술가로부터 간단한 피드백을 받거나, 우연히 사석이 마련되어 만나게 되거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무언의 소통과 눈빛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자리에서 직접 예술가들을 만난다는 것은 ‘예술가와의 대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개인적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출품한 예술가들 역시 호기심과 많은 관심을 갖고 참석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최초 공개되는 작품에 대한 리뷰를 그 자리에서 요약하는 비평가 앞에 해당 예술가가 앉아 있다는 건 비평가에게도 예술가에게도 불편할 수 있겠으나, 모두의 뛰어난 교양과 주최측의 능숙한 진행으로 합평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유익했던 걸 보면, 합평회 진행의 기술은 더 개발될 필요는 있지만 이 자리의 긍정성은 확인된 듯하다. 내가 리뷰한 작품의 예술가는 한 명도 오지 않아서 나는 목소리를 줄일 필요없이 리뷰를 읽을 수 있어서 다행 중 다행이었지만..

공연예술의 3요소 중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신경쓰이고, 가장 무섭고, 가장 미지의 인물인 관객의 피드백, 축제가 조사한 설문과 그에 대한 분석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지만, 같은 공연예술 영역의 한 축이자 인접 분야인 연극과 다원의 비평가들과 예술가들을 만난 것은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만큼 새로운 통찰을 자극하였다. 국제적인 무용축제에서 서구와 아시아의 비평가들을 만나고 포럼을 하는 일은 그다지 쉽지도 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면, 연극 비평가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리뷰를 대면으로 공유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공연예술축제이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축제 정체성에 대한 지속되는 고민

이번 축제의 주제인 “동시대 사회 정치 역사, 예술과 기술,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과 기후위기”는 합평회 자리에서도 축제 정체성과 관련되어 계속 되새김질되는 주제였다. 말하자면 이런 주제들은 당분간은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핫한 담론이 될 것이니 올해 한 해로 끝날 주제도 아닌 것으로, 최석규 예술감독이 적어도 26년까지 큐레이션의 방향으로 정한 젠더, 장애,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서사’와 서울, 한국 그리고 여러 지역의 지역성과 예술의 초지역성과 관련된 ‘장소성’ 주제와 더불어 “관점을 보여주는 축제”이고자 하는 예술감독의 의지를 따라 일정 정도 주제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거의 동시대 주제를 망라한 종합선물세트 격인 주제들은 관객들과 공연 현장이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창작하고 감상할 장을 연 것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적어도 대개의 작품들이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으로 평가되었다.

무용작품에서 올해 스파프 공연이 ‘초연’인 작품은 3작품으로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와 <웰컴투유어코리아> 그리고 허프로젝트의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가 과정공유작(WIP)으로 70%정도 완성된 상태와 관객과의 오픈톡과 함께 진행되었다. 축제가 제작 예산은 상대적으로 매우 빈곤한 상태에서 7작품 중 3작품 정도를 초연할 수 있겠끔 견인을 했다는 것은 그 작품들의 완성도 측면을 논하는 것(리뷰 참조)과 별개로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다. 허프로젝트의 작품이 이제는 세대가 바뀌어 버린 젊은 관객들과 생동감있는 오픈톡을 진행하였다는 것 역시 내년 스파프에서 이 작품의 완성작을 보고 싶게 만드는 색다른 기획의 지점이다.

공연작에서 기술융합작품은 2작품에 불과했고 무용은 기술융합 작품은 없었고, 오히려 아날로그로 더 가고자 하는 그런 흐름이 눈에 띄었지만, 워크숍 페스티벌 전체에서는 이 주제로 진행된 워크숍이 2/3를 차지할 정도로 워크숍 페스티벌이라고 붙일만큼 풍성했다. 그 중 무용은 국립현대무용단 <무용*기술 창작랩> 프로토타입 프로젝트 발표공유회가 있었다. 국현의 24년 신작 김보라*기어이의 <동시감각>(가제)의 경계없는 질문과 실험:무용*기술 리서치 공유와 창작랩 참여자 박수영의 <포스트 휴먼 바디-디지털, 로봇>과 포스트 휴먼을 주제로 한 정세영*서재은의 <내일의 이웃_밤과 꿈을 넘어서> 가 피칭 세션을 가졌다. 라운드 테이불에선 무용과 기술에 대해 대만의 수 웬치(Su Wenchi), 정세영, 몬트리올의 카롤린 로랑-보카쥬 (Caroline Laurin Beaucage)가 프로듀서 박지선의 사회로 기술과 실험의 경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기술*예술 융합에 대해서 전반적인 리뷰(김일송 평론가)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 경도되어 있는 점, 대부분 1차적인 시도에 불과한 점, 예술과 기술의 점목에 대한 비전을 갖기 어렵다거나, 접목에는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융합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한 점 등이 거론되었다. 무용분야에서는 국립단체 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과 훌륭한 해외 패널이 왔음에도 라운드 테이블도 1회 밖에 없었던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술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없진 않은데 잘 포착되지 못하여 프로그램으로 되지 못한 것은 무용현장이 축제와 더 밀접하게 관계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성과 더불어 현장 피디와 기획자들의 축제에 대한 관심으로 메워질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무용가에게 (스파프)축제는 무엇?

나는 합평회 자리에서 초연작을 축제가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 위험성 즉 현재 상태의 축제 사무국의 역량으로 대극장 작품을 제작 관리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의 책임성에 대해 글을 썼었다. 합평회에서 확인된 것은 축제는 그럴 예산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우연히 알게 된 예산이 너무 적어 놀랐지만). 오히려 무용의 경우 초연작들은 안무가들에게는 작품의 초연무대를 띠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으로 우려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 축제에 초연작을 보러왔을 때 기대 수준은 낮은 편이 아니다. 네임 밸류가 어느 정도 있는 안무가일 경우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올해 스파프 초연작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과로 본다면 제작 투자를 했든 아니든, 초연작을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축제가 고스란히 갖는다고 볼 수 있기에 각별한 예지력과 과정에 대한 조율 능력을 기대하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재연작으로 축제에 초청 받을 경우도 안무가들에겐 영광이기도 하면서 무용의 특성상 재연의 까다로움(무용수들의 일정, 컨디션, 의상 장치 보관, 조건이 달라진 상태에서 재연 퀄리티에 대한 압박 등)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비용으로 환산되며 그에 대한 걱정은 안무가의 외로운 몫이다. 축제가 이 부분을 많이 배려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극쪽 창작자들이 합평회 자리에서 공연 날짜를 더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는데 무용분야는 초청무대를 만들어 놓고서 축제는 2회 공연도 객석 채울 걱정이 한가득이다. 표가 잘 안팔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 대극장 공연은 더욱 불리해진다. 큰 무대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많은 사람이 함께 보는 일을 우리가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럴 때 이 문제를 놓고 우리가 모여 머리를 모으는 모습을 떠올린다. 거기에는 축제팀, 예술가, 프로듀서, 비평가, 현장 활동가 등등등 모두가 합석한 뜨거운 이름을 가진 ‘합평회’가 아닐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