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대한민국 중심에서 할머니들의 억울한 한을~ 청계천 흐르는 물에 다 흘려보냅니다~" 신복을 입은 무녀(巫女)들이 신명나는 타악기 소리와 함께 흥을 돋운다. 지방, 변두리 마을의 굿판 모습이 아니다. 서울 광화문 앞 청계광장의 특설무대에서 벌어진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 공연 장면이다.
다. 특히 다른 해와 달리 광복절 당일로 앞당긴 굿판은 다른 행사들과 맞물려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 일본대사관에서 시작해 광화문을 지나 청계광장에 이르기까지, 폭우도 막지 못했던 이날의 해원의 여정과 상생의 굿판을 함께했다.
대동굿의 터벌임 된 일본대사관 집회
광복절 당일 일본대사관 앞은 세찬 폭우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비옷을 입은 채 일본대사관 앞으로 모였다. 오전 11시 독도 관련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정오에는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세계연대행동의 날 맞이 정기 수요집회가 개최됐다. 이 집회는 지난 1992년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이날까지 1035차째를 맞았다.
'마침내 해방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이라는 구호와 함께 열린 이날 행사는 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해 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한 목소리를 냈다. 김복동 할머니는 발언자로 나서 "농민의 딸들을 일본군 노예로 삼아 무참히 짓밟은 것도 모자라 섬 하나를 또 빼앗으려 한다"고 일본 정부를 비난했다. 정대협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은 수많은 여성들을 전쟁터의 성노예로 몰아넣은 반인도적 범죄 앞에서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식민지 범죄와 침략전쟁에 대해 정식 사죄와 함께 법적으로 배상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시민들의 손에 들린 나비 모양의 노란 피켓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 '진상규명'이라는 글자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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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 등 정치인들을 비롯해 영화 '낮은 목소리'를 연출했던 변영주 감독 등 문화계 인사들도 힘을 보탰다. 대학생 동아리와 노래패도 참여해 다양한 문화공연으로 흥을 돋웠다. 인근 광화문광장과 탑골공원 등에서도 한국대학생연합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촉구 행사를 여는 등 광복절을 맞아 다양한 집회와 행사들이 이어졌다. 집회를 마친 군중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굿판을 위해 청계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던 비가 잦아든 것도 이즈음이었다.
도심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굿판
정신대해원상생대동굿은 원래 사흘에 걸쳐 치러지던 축제였다. 하지만 11월에 개최된 지난해는 기온을 고려해 하루에 모든 일정을 마쳤다. 대신 민중가요나 마임, 연극 등 행사의 구성을 다채롭게 해 시민들이 편안하게 동참할 수 있는 민중축전의 성격을 강조했다. 올해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도 이 같은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풍물패의 터벌임과 열림 고사로 이뤄진 '열림굿', 시 낭송과 마당극, 마임 등으로 구성된 '평화콘서트',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해원상생굿'의 총3부로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궂은 날씨에 이날 일정은 저녁 무렵 가까스로 열릴 수 있었다. 상당 부분 생략된 열림굿 대신 평화콘서트에 배치됐던 노래 공연과 마당극 '일본군 진주'가 먼저 한산한 객석 분위기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가수 손병휘, 강허달림, 사토 유키에, 안치환은 차례로 무대에 올라 한산한 청계광장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후 시작된 굿의 중간에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마임 '신칼'과 강미리 부산대 교수의 춤패 '할'의 '꽃, 별', 그리고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춤 '아미 곶(아씨꽃)' 등이 축제를 더 다채롭게 했다.
먹구름이 걷히고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자 해원상생굿을 위한 준비는 완료됐다. 오구굿은 도시에선 연극이나 영화의 소재로만 몇 차례 활용돼왔다. 전통공연장이나 명절이라는 시공간의 제한을 배제하면 그 옛날처럼 열린 공간에서 연행되는 동해안 오구굿은 도시인들에겐 낯선 경험이 분명했다. 잠시 후 굿을 위해 무인(巫人)들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난 동해안 별신굿의 인간문화재 김석출 옹의 무업을 이은 일가다. 김영희, 김동연, 김동언의 세 딸들과 사위, 아들, 조카 등 예능보유자와 전수조교, 이수자들로 구성된 김씨 일가는 그 자체로 굿의 역사이자 현재라고 할 만하다.
"정신대 불쌍한 할머니들~ 해원상생대동한마당에 오십시오~ 우리 무녀들이 십 분의 일이라도~ 그 한을 풀어드리려고~" 이윽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위무하는 동해안 오구굿이 터벌임을 시작으로 문굿과 오는 뱃노래굿으로 이어졌다. 동해안 오구굿은 총 스물네 거리가 있지만 이날 순서는 시간 관계상 주요 거리만 짚어 진행됐다. 하지만 굿 자체가 보기 힘들어진 요즘, 시골 마을에서도 보기 어려운 오구굿의 도심 속 연행은 굿이 낯설 게 분명한 시민 관객의 눈에도 흥미롭게 비쳤다. 무악 사물 연주와 무녀의 구성진 소리가 어우러지기 시작하자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봤고 서서 구경하던 이들은 빈 자리를 찾아 앉으며 본격적인 관람에 몰입했다.
무녀들이 무명천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용선을 움직이는 동안 망자의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용선에 노자 돈을 넣어줬다. 망자가 용선을 타고 이쪽으로 올 수 있게 하는 의식이다. 이 뒤에 이어진 것이 동해안 오구굿의 정점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초망자굿. 말 그대로 망자를 불러(招) 이야기를 듣고 그 맺힌 원한을 풀어주며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굿이다. 악사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빠른 장단을 연주하고 무녀는 이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이윽고 무녀가 망자와 접신해 굿판에 동참한 가족친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은 신비스럽기도, 서글프기도 하다. 굿을 실제로 처음 보는 젊은 세대나 우리말이나 굿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관람객들도 숙연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의례의 절차보다 원(怨)과 한(恨)의 풀이에 무게를 둔 동해안 오구굿의 감성적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이날 자정까지 이어진 굿판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 자연스레 공연자와 관람객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청계광장은 어느새 시골 마을의 별신굿 같은 정겨운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불과 반나절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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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공연미학, 도심 굿판
이번 굿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치러진 배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이 행사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간 정치 외교 현안에 대한 주의환기의 의미가 컸다. 반드시 청산해야 할 역사임에도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었던 데는 낮은 사회적 관심도가 한몫을 했다. 젊은 세대들의 관심은 특히 낮다. 머리로는 수용하지만 가슴으로는 과거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굿은 축제의 형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마을잔치에 모인 사람들은 굿판에서 '여전히 현재'인 과거와 만난다. 굿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자 전통연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시민들은 과거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골치 아픈 시사가 아닌 가슴 아픈 드라마로 다가온다.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우듯 굿을 통해 할머니와 만난다. 관념적 이해가 아닌 실제적 체험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번 굿판이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문화 전통임에도 밤늦게까지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굿'이라는 전통연희 공연이 축제의 중심에 배치돼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통연희 공연들이 문화전승이라는 명목으로 게토화된 공연장에서 보여지거나 명절 때 마련되는 '민속놀이'의 차원에서 공연된다. 공연예술축제에서도 다른 장르의 공연들과 동등하게 보여지기보다 부대행사처럼 공연되기 일쑤다. 이번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은 광복절이라는 뜻깊은 날에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의 중심으로 굿판을 연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시도는 굿이 신비체험 같은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지금 여기'의 문화적 전통임을 깨닫게 한다. 아울러 현대적 공연미학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함을 보여준다.
주최 측은 앞으로 이 행사를 매년 열며 한 해는 부산, 다음 해는 부산 외 지역에서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을 중심으로 굿을 통한 위안부 문제의 주의 환기를 전국으로 모색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의 성공적인 행사는 이런 계획의 궤도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굿판이라는 전통연희의 재발견과 정신대 문제의 주의 환기라는 두 가지 대의에 있어서 서울은 가장 효과적인 공연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사람들에게 광복절 연례행사 이상의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 이번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의 가장 큰 성과는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낯설지만 원래 우리 것이던 문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이 사안을 '그들'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야말로 굿판이 지닌 동참과 연대의 의식에 다름없다. 이번 행사를 토대로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서울 굿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