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선태가 LDP에서 독립하여 만든 단체 STL Project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The Tree〉라는 제목의 한 시간짜리 공연을 꾸몄다(M극장, 11월 6-9일, 13-16일).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예술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예술화’를 표방하였고, 그에 대한 구상과 포부는 20분 분량의 신작 <나무>에 담겨 있었다.
지난 8월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에 흰 사슴 역으로 출연했을 때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느꼈던, 절제된 움직임 속에 힘을 분배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번 <나무>에서 보다 발전되어 나타났다.
몸을 최대한 웅크린 상태에서 긴 호흡을 두고 펴서, 가지와 줄기를 뻗어 올리는 나무의 모습을 마치 화가가 어떤 색도 덧대지 않고 연필로만 세밀하게 스케치하듯 묘사하였다. 과장된 동작을 욕심내지 않은 간결한 안무 속에 신체조건의 장점이 녹아, 착실하고 순박한 식물의 감수성을 살려내었다.
소녀 역의 정혜민이 나무에 물을 주는 용도로 사용한 양동이 속에 담겨져 있던 것은 모종삽이 아니라 칼이었는데, 그 칼을 가지고 나무의 등에 여러 가지 위협을 가하는 모습은 현재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날카로움을 거듭 끌어안고 포용하는 나무의 의지는 배경음악으로 쓰인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와 어우러져,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삶 속에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를 부담스럽지 않게 환기시켰다.
이어진 〈interweave part.3〉은 작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2인무 〈interweave〉를 올해 6월 성암아트홀 공연을 통해 3인무로 확장시킨 것을 다시 일부 변형한 작품이다.
성암아트홀 공연부터 합류했던 배우 음문석이 코미디 쇼의 진행자처럼 등장하여 관객에게 재치 있는 질문을 던지며 ‘욕심’이라는 단어로 접근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선태와 정혜민의 개인적인 관계를 소재로 삼아 작품을 만든 터라, 실제로도 두 사람과 친한 음문석이 자연스럽게 마중물 역할로 관객의 접근을 돕고 작품 속 관계의 연결고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끝까지 보고 나니 작품의 주제는 나와 다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까지 억지로 가지려는 욕심에 대한 경고였다. 다만 현실에서는 연인 간 애정도에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집착과 갈등인데, 그것을 초반 물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던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욕심’이라고 묶어 버리기엔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어 보였다.
앞선 <나무>에 비해 치열하고 처절한 남녀의 힘겨루기에 그것을 거들거나 방해하는 음문석의 중간 역할까지 더해져 뒤로 갈수록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었고, 한 시간짜리 공연을 제법 실속 있게 채운 느낌이었다.
길어야 사흘 무대에 올랐다 사라지는 공연들과 달리 2주간의 여유를 두고 기획된 점, 관객과 밀착된 호흡으로 공연을 끌고 갈 수 있는 집중력 있는 소극장 무대를 잘 활용했던 점은 이선태가 꿈꾸는 ‘대중의 예술화’까지는 아니어도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나무’를 통해 예술과 자연이 지닌 가치를 재고하게 하고, 갈등하는 연인의 모습을 통해 관계에 억지 부리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가벼운 터치로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접근법 역시 이 프로젝트의 출발로서 나쁘지 않았다. ‘대중의 예술화’를 위해 그가 제시해야 할 작가로서의 관점과 역량은 앞으로는 더욱 높은 수준에서, 주제를 보다 세밀하고 진지하게 선택하여 가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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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_ 안무가 이선태
일반인들이 현대무용에 관심 갖도록 하는게 목표
방희망 새로운 작품 <나무>를 보고, 그동안 이선태씨가 전개해온 춤스타일과 절제되고 정적인 면에서 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요즘 젊은 안무가들이 흥미를 갖는 소재와도 조금 거리를 둔 것처럼 보였고, 또 몸담았던 LDP 스타일과도 차별된 부분이 보였습니다.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나무>를 택한 이유와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추구하는 방향을 듣고 싶습니다.
이선태 우선 말씀하신대로 아직 저의 춤스타일을 말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저만의 시그니처를 찾는 중인 젊은 현대무용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조금 다르다고 느끼셨다면, 저는 요즘 젊은 현대무용가들의 작품들이 너무 앞서 나가는 데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련된 것도 좋지만 다른 것도 좋은 게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 라는 목적보다는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물론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요. 이번 공연의 타깃은 일반 대중이었는데, 일반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쉽게 말해 나무와 예술을 비유한 것입니다.
나무가 사람들에게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고 산사태를 막아주고 땔감으로도 쓰이며 우리주위에 생활환경에서 뺄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예술도 사람들이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그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이런 방향의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일반인들이 예술계에, 특히 현대무용계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한국에 정말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의 작품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마음 아팠거든요. 그렇게 관심이 많아진다면 우리나라도 창작의 폭이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요.
이번 공연 작품을 그 두 개로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첫 작품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었던 것인데, 현대무용 공연장에 처음 오시는 관객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추상적인 작품들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구요.
일단은 좀 유쾌한 작품이 필요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도 높일 수 있는 작품으로요.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은 작품 안에서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실제 저의 스토리를 모티브로 하여 조금 더 자연스럽게 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하는 연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도움을 받기위해 입담이 좋은 배우를 섭외했던 것이구요.
그리고 또 하나, 아직 안무가로서의 경력이 많지 않다보니 한 작품으로 한 시간을 끌어갔을 때 관객이 지루해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습니다. 공연장에 처음 오셨던 분들이 있다면 이 분들이 현대무용 공연을 계속 찾아오게 해야겠다는 목적을 가졌으니까요.
앞으로 STL 프로젝트의 멤버 구성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나갈 것인지, 현재 같이 작업하려고 접촉 중인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멤버 구성은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제 무용단의 멤버라고 칭할 수 있게 된다면 곧 가족이라는 뜻인데, 그런 가족을 얻을 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가장인 아버지처럼요.
저는 아직 그런 책임을 질 만한 여건이나 환경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건을 모든 현대무용계에 만들고 싶은 게 저의 목표이기도 하지만요. 정혜민씨나 음문석씨 같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고 같이 도와주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저는 일단 아직은 혼자서 더 활동하고 싶습니다. 다른 장르에 있는 여러 분들과 힘을 합쳐 영상을 많이 제작할 생각이고, 이런 영상으로 현대무용을 일반대중들이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내년도에 잡힌 공연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일단 LDP 공연에 자주 참여할 것이고 연말에는 STL Art Project 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공연할 생각입니다. 무대공연보다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는 작품들을 더 많이 기획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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