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슬로건은 협업과 융합이다. 공연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장르가 모여 대중들의 감각을 자극하려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풍성하다. ‘페스티벌 봄’이나 ‘러프 컷 나잇’의 과감한 작품 선택과 다원장르를 결합했던 기획이 통했듯이 이제는 작품만으로 살아남기보다 특성화된 기획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
<오픈 스페이스 2014> 역시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문화역서울 284 RTO 공간적 특성을 살려 시즌별로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이미 지난 여름부터 가을, 겨울 3개 시즌으로 나뉘어 구성되었고 시각예술, 음악, 연극, 미디어, 춤분야의 협업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사전공모에 총 68개 팀이 신청한 것을 보더라도 예술로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더구나 모든 공연이 무료로 진행되니 시민들은 부담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된다.
윈터 시즌 첫 날인 11월 18일은 한국의 트러스트 무용단과 독일의 아이피탄츠(Iptanz)의 협력공연이 펼쳐졌다.
문화역사 테라스에서 시작한 〈Time is Time is…〉 작품은 야외무대의 특성에 잘 어우러진다. 해질녘 거리 배경인 우뚝 솟아있는 대형 건물의 불빛, 시멘트벽들과 철로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기차소리와 어우러져 춤꾼들은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먼 곳을 향한 응시, 의자와 바닥을 이용한 접촉. 겨울코드로 무장한 춤꾼들은 코트 한 벌을 테라스에 남겨놓고 실내 무대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저 춤꾼들이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품어나는 문화역사 분위기는 남다르다. 아마도 시간이 누적된 이 공간만의 특유한 흔적이자 역사일 것이다. 무대 기둥에 영상으로만 투사된 두 남자, 무심하게 각자 자리를 잡고 움직이는 춤꾼들의 분위기는 낯설다. 특히 무대 한가운데 놓인 저울에 대한 이선영의 집착은 공연 내내 이어지는데, 시간 같이 물리적으로 잴 수 없는 것들을 수치화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트러스트무용단 안무가 김형희는 시간을 다루는 것이 문화적 차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고 춤꾼과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트러스트무용단이 퇴장하자 이어 아이피탄츠의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움직임의 현재와 과거(몇초전)를 영상으로 확인시키는 시간의 개념에 초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무대에서 춤꾼들이 움직이면 동시에 커다란 프로젝트에서는 조금 전의 실상이 그대로 투사되어 시간차의 미묘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가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 시간의 흔적임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경험을 한다. 아이피탄츠는 관객도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한 대상으로 참여되길 바라는 의도로 한국어 노래를 부르며 공감도를 높이려 하였고 관객들을 일으켜 율동을 따라하게 하였다.
다시 트러스트 무용단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네 명이 끊임없이 초점 없는 시선으로 움직이는데 어떤 연결성과 의도를 이 자체만으로 읽어내기 쉽지 않다. 저울에 흙을 뿌리며 무게를 재는 장면만이 앞선 작품과 연결고리로 읽힐 뿐이다. 다만 아이피탄츠의 몇 초전의 현상적 시간과 트러스트의 심리적인 시간의 차별점은 찾을 수 있다.
관객들은 여러 공간(야외,실내,영상공간)으로 구성된 무대에서 조명되는 이러한 시간개념을 새롭게 인지하는 경험을 할 뿐이다. 잴 수 없는 감각들의 시간성을 조명하려는 의도는 그러나 난해하다.
일반적으로 어떤 결과를 알면 실험할 필요가 없듯 〈Time is Time is…〉은 아직도 실험중이라 생각된다. 2016년에도 이 두 단체는 합작으로 공연한다하니 그때는 조금 명확한 개념이 즉각적으로 잡히길 기대해 본다.
트러스트 무용단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소통’이라는 기치로 1995년 창단이후 꾸준히 커뮤니티 작업관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합작한 아이피탄츠는 일로나 파스찌 안무가를 중심으로 사회에서의 감각상실과 보상에 대한 현상을 사이버세계에서 풀어내는 예술적 표현에 초점을 둔 단체라고 소개하고 있다.
트러스트무용단 안무가 김형희는 아이피탄츠와 2주간 독일 쾰른에서 작업을 하였고, 독일에서는 〈Time is Time is…〉를 동시간 다른 공간에서 춤추며 시공간의 개념을 심도 있게 다뤘다고 했다.
돔에서 같이 시작하여 한 팀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다른 팀은 옛 교회로 흩어져 춤을 춘 것이다. 두 팀은 15분정도 거리를 실시간 택시로 이동하면서 시공간적 특성을 조명해보였으며 마지막엔 영상을 통해 다시 한 팀으로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문화역사의 여건상 다른 두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하는 것이 성사가 되지 않아 20여분씩 반복하며 한 공간에서 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재구성했다”며 아쉬워했다.
<오프스페이스 2014-Winter> 첫 작업인 트러스트와 아이피탄츠의 합작 공연 이외에도 다양한 작업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김세진의 <열망으로의 접근>(12월 3일, 미디어아트), 김현진의 <기괴한 도시>(12월 4-5일, 무용), 신혜진 이재은 장흥석의 <기술이 실패할 때>, 우분투의 <편안한 어둠>(12월 7일, 무용), 하수민/즉각반응의 <굿데이 투데이>(12월 9-11, 설치), 퍼포먼스 그룹153의 <에네르게이아>(12월 13-14일, 사운드)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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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_ <오픈스페이스 2014> 기획자 김서령
공모 통해 표현양식의 제약없는 다양한 작품 선별
김혜라 문화역서울284 시즌 프로그램인 <오픈스페이스 2014>는 어떤 컨셉트로 기획되었나요?
김서령 장르의 경계나 표현양식의 제약없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음악, 무용, 연극, 미디어, 시각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로 구성된 문화역서울 284 시즌프로그램입니다. 지난해에는 <오픈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공연예술에 국한하여 진행되었으나 2014년에는 장르를 확장하여 <오픈 스페이스>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여름, 가을, 겨울 3개 시즌으로 나누어 구성되었고 공모에 신청한 68개 단체 중 심사를 통해 선정된 17개 작품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여름부터 진행되어 오고 있는 기획인데요. 이것을 기획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지난해 문화역서울 284에 예술기획팀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RTO공연장에 대한 대외적인 인지도가 낮은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개성적이고 활용도 높은 공간임에도 그동안 잘 활용되지 못해왔고, 공간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상설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오픈스페이스는 ‘열린 문화역'이라는 컨셉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시민들의 만남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가 모여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특별한 공간적 특성을 살린 기획으로 이해됩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요?
아무래도 문화재이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있어서 제약이 있습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나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작가분들이 주로 함께 참여하였기 때문에 즐겁게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역광장은 노숙자분들의 쉼터이자 종교, 사회단체들의 발언의 장소이기 때문에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집회들이 있습니다. 1만명 정도 모이는 집회를 하게 되면 저희 문화역은 완전히 포위가 되고 엄청난 출력의 음향장비들이 동원되어 공연에 지장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그 상황을 뚫고 공연장까지 찾아와 주시고 작가들은 그 상황을 공연의 일부라 생각하며 수용하시는 편입니다. 그리고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공연자와 관객들의 집중된 분위기로 인해 이곳은 시공간을 초월한 어딘가가 되어 버립니다. 바로 이것이 이 공간의 큰 매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모았고 선발되었나요. 무용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해서요.
공모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였고 외부 심사위원 3인과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팀 3인이 심사를 통해 선정하였습니다. 선정된 단체에게 저희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공간과 홍보, 기획 협조 및 기술인력 지원을 하게 됩니다.
무용기획을 하시면서 어떤 점에서 보람을 느끼게 되나요? 더불어 춤계에 기대하는 것도 있을것 같은데요.
무용은 언어적,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장르이기 때문에 다양한 협업과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무용을 중심장르로 작업하면서 다양한 장르간의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문화역서울 284라는 공간에서 기획,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극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무용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즐겁고 실험적인 협업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무용기획 및 제작 분야는 여전히 전문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후배님들의 열정적인 도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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