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비평가협회(회장 이순열)가 매년 주최하는 ‘춤비평아카데미'는 춤비평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춤에 대한 지적 이해를 돕기 위해 춤 전공자와 애호가, 공연예술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지난 5월 2일 부산에 이어 11월 18일 서울 예술가의 집에서 두 번째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번 춤비평아카데미 프로그램은 '예술비평과 춤비평'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춤비평가 이순열(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강의와 '한국의 춤비평과 비평적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춤비평가 김태원(공연과 리뷰 편집인)의 강의, 그리고 ‘한국의 춤비평가와 비평문화’를 주제로 한 라운드 테이블로 짜여졌다.
춤비평가로 살면서 어려웠던 경험담으로 강의를 시작한 이순열은 "다른 비평가의 혹평은 속은 상하지만 얼마 있으면 잊어지는데 이순열이 쓴 혹평은 나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다"고 한 한 무용가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무용평 쓰기를 접었었다고 밝히며, 자연스럽게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수많은 유형의 비평들이 있지만 글쓰기 전에 유형에 얽매이다 보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으니 여러 가지 방법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시인이면서 비평가였던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832~1904)의 이야기를 곁들여 “아무리 춤비평을 하고자 하더라도 비평이라는 학문은 문학에서 시작되었고, 춤비평 또한 글로 하는 것이므로 그들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뮤얼 존슨은 본인도 비평가이면서 "비평가들은 무지와 게으름을 비평가라는 방패 뒤에 숨겨두었다"고 이야기 했던 사람으로, 그의 말처럼 “폄하된 비평가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무용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이순열은 ‘세유백락연후 유천리마’(世有伯樂然後 有千里馬) 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백락(伯樂)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봐줘야 천리마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비평가도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 누가 정말 천리마인지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재능이 없는 자를 천리마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두 번째 강좌를 진행한 김태원 역시 “춤비평가가 되기 위해선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적어도 5년은 오로지 춤비평가가 되기 위한 재능을 쌓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평은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평가라는 양자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고, 이 작품이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지만 보다 많은 작품을 보고 비교 평가하면서 보다 객관적인 판단근거를 가지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비평가는 “지상에 존재하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을 대중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자”라고 말했던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1822~1888)의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이 관심 갖고 있는 영역에 대한 공부와 경험의 확충, 그리고 자신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직관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비평가의 공부 혹은 관련한 지식의 축적은 한 예술작품의 역사 속 탄생이 한 예술가의 노력이 빚은 우연한 결과이지만, 한편 그것이 우연이라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필연적 관계(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속에서 생성되었음을 알게 해주고, 그의 확장된 경험은 한 예술품과 여타 예술품과의 의미 있는 비교를 가능케 하며, 그리고 그의 직관력은 예술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는 예술가의 특별한 의도나 혹은 제대로 투사되지 못하고 사멸된, 그러나 종종 한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예술적 노력의 평가에 있어서 ‘의미 있는 빛’을 던지고 있는 예술적 의지를 간파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이어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중요하지만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라운드 테이블에는 25명의 아카데미 수강자 중 일부와 한국춤비평가협회의 회원인 춤비평가 이순열, 김태원, 장광열, 이만주, 김영희, 김혜라, 그리고 춤 전문지의 기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의 첫 화두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춤비평계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거론되었다. 이즈음 들어 춤비평가들이 공공 재단의 각종 심사, 평가 업무를 자주 맡게 되면서 본래의 업무인 춤비평 자체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춤비평가들과 무용가들의 지나친 친분관계로 인해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비평이 남발되는 문제점 등이 지적되었다.
해외 무용단의 내한 공연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춤비평가들이 외국 무용단의 공연에 대해서는 거의 비평문을 남기지 않는 상황, 국내 공연에만 지나치게 편중된 평문을 쓰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장광열(춤웹진 편집장)은 “해외 무용단의 국내 공연 리뷰가 남겨져야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공연을 할 때 한국 춤비평가가 남긴 비평이 인용되고 이는 곧 한국의 춤 비평가들이 기여할 수 있는 세계 춤 시장에서 한국 춤 문화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비평가들의 원고료 문제도 적지 않게 거론되었다. 비평문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에 비해 원고료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고 있고 그마저 지급이 안되는 전문 매체도 여럿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평가와 무용인들이 함께 협력하고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비평가들이 흥미있는 아이템으로 발간물에 대한 지원을 제안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재단으로부터 공공지원금을 받는 작품 중 초연되는 작품에 한에 성과보고서 작성 시 의무적으로 전문 비평가들의 리뷰를 곁들이도록 의무화하다면 이는 비평의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전통춤 분야에 대한 비평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전통예술도 리뷰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해서 10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춤이론가 김영희는 "너무 유사한 공연이 많기 때문에 리뷰를 써도 그 말이 그 말이 되기도 한다. 기획적인 특징이 있는 남다른 공연일 경우 차별성이 있어 주로 그런 공연에 관심을 갖는다. 이제는 전통춤 공연을 보면서 잘못 된 부분이 보이기도 하고, 전통 춤계 전체의 흐름이나 특징들이 보이기도 한다. 주로 이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다. 비평에 관심이 있어서 이번 아카데미에 참여 했다는 한 참석자는 춤비평가 이순열의 강의 중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해 이순열은 "뭐든지 아무것도 없이 세계를 구축할 수는 없다. 무용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을 담을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담을지도 중요하다. 자신이 본 것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수사학이 필요하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많은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춤비평가 이만주는 “고단자는 수많은 기술 중에 한두 가지만 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를 많이 연습하다보면 자신만의 것이 생긴다. 끊임없이 연습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수사를 채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춤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현재 춤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방희망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2013년 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 주최하는 '춤비평 신인상' 수상을 통해 춤비평가가 된 방희망은 “대학생 때 극회 활동을 했던 것 말고는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을 했었는데 주변에서 춤비평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고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는데 춤비평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없었다. 많은 공연이 오르는데 비해 남겨지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춤비평가 장광열은 “방희망씨의 리뷰에서는 춤 작품에서의 음악과 연출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이 특히 눈에 띄는데 이는 비평가 등단 이전에 극회 활동과 음악 동호회에서의 활동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며 춤비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용예술 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전통예술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예정된 시간 보다 45분이 넘어서야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이날 춤비평아카데미는 춤비평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춤 비평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한 것 외에도 한국의 춤비평문화에 대한 이모저모를 가늠해 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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