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문화역서울 284 기획 〈여가의 기술- 언젠가 느긋하게〉
일상에 문화 쉼표 더하기
김인아_<춤웹진>기자

 ‘바쁨’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숨 가쁘다. 복잡한 도시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잠시 쉴 때조차 손에 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여유도, 휴식도 잊고 살게 되었을까.
 하루 평균 유동인구 10만여 명,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서울역 한 켠에서 느긋한 쉼표를 제안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화역서울 284가 기획한 <여가의 기술- 언젠가 느긋하게>는 ‘여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예술 작업과 프로그램으로 일상에 지친 고단한 현대인에게 위로와 치유를 건넨다. 여행, 산책, 휴식, 독서와 같은 여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진, 영상미디어, 사운드아트, 퍼포먼스, 조각, 디자인, 공간설치 등의 복합장르 예술과 워크숍, 강연의 참여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나지막한 구 서울역사에서 한가로이 즐기는 문화 쉼표는 주변의 높다란 빌딩,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꽤나 대조적이다.

 지난 4월 5일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영상․사운드아트 작품에 춤과 국악 연주를 더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서측복도 공간을 가득 메운 63m 길이의 대형 스크린에 영적 분위기의 사막과 강물, 바람부는 초원, 굽이굽이 펼쳐진 깊은 협곡을 14개의 빔 프로젝트로 쏟아낸다. 광대한 자연의 풍광을 담은 파노라마 영상과 고요한 질감의 음향 사운드가 결합된 이 작품은 작곡가이자 사운드아티스트인 카입(Kayip 이우준)의 <Returning>. 여기에 정영두의 춤, 이아람의 대금, 신현식의 아쟁 연주가 더해져 한층 깊고 잔잔한 공간을 연출한다.
 정영두가 안무한 여덟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자연의 웅장함이 담긴 영상을 배경으로 여덟 가지 고유의 몸짓이 펼쳐진다. 복도라는 공간적 특성에 따라 무용수들의 위치가 번갈아 바뀌는데 이마저도 느릿한 걸음걸이다. 어느 것 하나 역동적이지 않은 잔잔한 움직임에서 어느덧 분주한 일상과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마주한다. 관객은 둔중하게 이완된 시공간을 한가하게 소요(逍遙)한다.
 퍼포먼스을 관람한 한 회화 전공생은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가 혼합되니 생각도 더 깊어진 듯하다”면서 “적막하고 고요한 영상이 내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보게끔 했는데, 퍼포먼스를 통해 타인의 내면과 감정 변화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적인 퍼포먼스였다”고 전했다.

 

  



 문화역서울 284의 전시장에는 여가가 갖고 있는 편안함과 느긋함의 의미를 담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600여개의 스피커에서 부드럽고 잔잔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끔 하는 김승영 미디어 설치 작가와 오윤석 사운드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로 타자기를 설치한 작업도 있다. 전보경 작가가 꾸린 공간에서 관람객은 뻑뻑하고 느린 타자기를 치며 생각할 여유를 갖고 스스로에 대해 사유해본다. 12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곳곳을 여행하고 탐사한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도 눈길을 끈다. 작품 속 미지의 세상과 극한의 자연을 함께 여행하며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책 제목을 엮어 창작 시(詩)로 재구성한 오재우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 우리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책 제목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시는 삭막한 우리들의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진다. 널찍한 공간의 또다른 전시장에서는 빈백(bean bag)의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며 노승관 작가의 몽환적인 미디어아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천장에 아름답게 수놓인 한글을 감상하거나 읽으며 관람객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여가의 기술>에서는 다양한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하였다. 여행, 독서를 테마로 다양한 강연과 콘서트가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원 만들기나 가족참여 워크숍 프로그램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
 4월 한달간 총 세 차례 진행된 ‘몸챙김, 마음챙김’은 휄든크라이스 학습방식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해해보는 워크숍이었다. 휄든크라이스 코리아 도소은 대표, 무용가 국은미와 박소정의 지도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행동패턴을 올바로 인지하고 가장 적합한 움직임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숨쉬기, 앉기, 천천히 걷기, 눕기와 같은 차분하고 느릿한 동작들, 미세하고 작은 몸짓에서 몸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움직임의 흐름은 어떤지, 불필요하게 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나와 내 몸의 상태를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몸챙김, 마음챙김’을 체험한 어느 참여자는 “내 몸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몸챙김을 하다 보니 평화와 안식이 느껴졌다. 몸을 챙기는 동안 마음챙김도 동시에 이루어진 듯하다. 앞으로 내 몸과 마음에 좀더 집중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있어도 되는 빈틈과 여유는 어쩌면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지 모른다. <여가의 기술>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회를 준 건 아닐까. 미처 챙기지 못한 자신을 지긋이 들여다보고, 주변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2014. 05.
사진제공_문화역서울284(photo by 김기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