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14 부산국제무용제(운영위원장 김정순 교수)가 10회를 맞았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잔치를 벌여도 크게 벌일 상황일 것이다. 2년 전 운영위원장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위태하게 9회를 치르고 10회째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축하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나라 전체에 닥친 패닉 상태와 맞물려 바다와 해변무대를 문화회관(대극장과 중극장)으로 옮겨 치르게 되었다.
부산국제무용제하면 해변 특설무대와 저녁 노을속의 해무, 그리고 자유롭게 해변을 오가며 춤을 즐기는 관객 등 3박자가 멋지게 어우러지는, 특색이 분명한 춤축제이다. 매년 다양한 참가국들이 바다의 관객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적당히 예술적이고, 적당히 볼거리를 갖춘 작품을 선보였으며, 부산 소재 무용과 학생과 교수들의 무대와 더불어 시민 동아리까지 직접 참여하는 폭넓은 참여층을 자랑하는 명실상부 부산 시민의 축제로 성장하고 있었다.
10주년인 올해는 예산부족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11개국 26개팀이 34개의 작품을 문화회관 무대로 옮겨 진행하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안타까운 축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5월 30-31일 부산문화화관 중극장 공연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Cape Dance Company의 <Convivencia>와 <When Dawn Comes>, 그리고 상하이 씨어터 발레의 <그랑 파 클래식> 파드되와 <Sacrifice>는 상당한 기량을 갖춘 무용수가 보여주는 깔끔한 테크닉으로 보는 사람의 호흡을 낚아 챌 정도로 무대를 꽉 채웠다.
이스라엘에서 손꼽히게 역량있는 무용단인 마리아 콩 댄서스 컴퍼니의 <Backstage>는 ‘무대 뒤’라는 은유를 통해 앞에서는 볼 수 없는 암울하면서도 약간의 야릇한 괴기스러움을 묘한 음성의 나레이션과 강한 리듬의 동작으로 잘 연출해 냈다.
이탈리아 Oniin Dance company의 <Corruption>은 잘 훈련된 신체를 가지고 기하학적으로 극대화 시킨 움직임을 보여줘 신체적 탄력과 힘의 끝이 어디인지를 새롭게 확인시켜 주었다.
민속적인 춤으로 신체적인 힘을 갖추면서도 원시성을 강하게 보여주었던 뉴칼레도니아 현대무용단의 <The Dawning of new Moon>와 <Figure In>은 분장으로 몸을 강조하고 풍성한 신체적 동작과 리듬을 통합해 평소에 보기 힘든 호주 원주민의 여러 의식과 춤의 근원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올해 해외 초청팀들은 전반적으로 무대적으로 잘 훈련된 언어 보다는 신체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이 많아 해변무대와 바다와 특히 잘 어울렸을 법해 극장에서 공연되는 것이 더욱 아쉬웠다.
그러나 전체적인 작품들의 흐름에 있어서 통일성이 유지되지 않고 불안정한 것이 흠이었다. 스페인 댄스 씨어터의 플라멩코 2인무(Rosa Maria Farruca, Albico Magico Guajiras 출연)는 다른 무대와 달리 민속춤의 색채가 짙어 전체 속에서 결이 튀었으며, 백영태 발레 류보브의 <혼돈>, ‘김화례 & 발레노바’의 <넌센스>는 한국 발레의 대중성을 실험한 의욕적인 작품이었음에도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선보이기 위해서는 좀 더 다른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야마다 세스코가 강미리 할 무용단과 협업한 <흰색으로 쓰여진 책>과 김재덕이 싱가폴의 T.H.E 무용단을 위해 안무한 <Hey Man!>, 그리고 프랑스의 Alleretour Company와 부산국제무용제가 공동 제작한, 5명의 부산 무용수들이 참여한 <Somewhere Else>는 부산국제무용제의 의욕적으로 시도한 프로그램이었다.
외국무용단의 일회적 초청공연 속에서 외국의 안무가와 우리나라의 무용단을 연결시키거나, 우리나라의 안무가가 외국의 무용단과 협업한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Hey Man!>은 신작은 아니지만 우리의 젊은 안무가 김재덕의 재기와 발랄함이 싱가폴 무용수들을 통해 힘있게 터져 나온 작품이었다.
강미리 할 무용단의 작품은 기존의 무용단의 틀이 유지되면서도 일본 안무가의 새로운 감성이 느껴지는 색감과 구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축제와 프랑스의 공동제작에 속하는 <Somewhere Else>는 너무 어린, 학생 수준의 한국 무용수들과 프랑스 안무가의 특성과 역량을 검토하지 못한 잘못된 매칭으로 학생 작품이상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했다. 의미있는 시도였으나 너무 소극적이면서 비전문적인 수준이 드러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축제는 6월 1일 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의 공연과 <문화융성 시대를 준비하는 춤 거버넌스의 방향>이라는 주제의 국제포럼, 6월 2일 매년 시행하는 AK21 젊은 안무가 육성공연, 그리고 6월 3일 폐막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축제가 일회성을 지양하고 축제를 통해 국내의 무용수들을 예술적으로 자극하려는 의도는 발전적이나 결과까지 고려한다면 적극적인 프로덕션의 과정을 면밀하게 밟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러기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과 비중에 대한 전문적인 고려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이번 축제가 아쉬운 것은 공연 장소가 변경되면서 축제 운영위와 참가팀들이 겪어야 했을 혼돈, 그리고 극장 무대로 들어오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질감의 무대를 만들어내야 했던 부담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장소와 관객이라는 중요한 두 측면이 바뀌면서 전혀 다른 공연이 될 수 밖에 없는 공연예술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선정과 계약 단계에서 관객의 특성과 해변무대를 고려한 작품을 다른 장소에서 고정된 객석 의자에 앉아 봐야하는 관객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공연자와 관객 모두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일이다. 게다가 해변에서 공연을 했다면 1, 2천이 넘는 관객이 유동하면서 파도처럼 넘실대며 보았을 공연을 중극장의 몇백석으로 관객을 한정할 수 밖에 없었다면 축제 준비측은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하지만 이런 피치 못할 상황에서 스스로 행사를 자제하기로 결정하고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무사히 치러낸 것에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아쉬움의 박수에 위로를 삼으며 후년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국제무용제가 10회를 맞았고, 내년부터는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무용가들의 축제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도 점점 나아지리라 기대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축제가 운영위만으로 조직되고 진행된다는 것의 문제는 공연무대의 일관성, 예술적 수준의 안정성 등 축제의 기본 성격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전문성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밖에 없는, 많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부산국제무용제가 특성을 갖춘 지역의 축제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한 사후의 많은 논의가 이 축제를 성장 시킬 것이다. 축제의 미래를 위한 심도있는 논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