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이름 없는 춤〉이 8월 9일 개봉했다. 일본의 배우이자 춤꾼인 다나카 민의 춤 행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장 예술가의 춤 세계를 밀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로 알려진 이누도 잇신은 다나카 민 인생사의 주요 사건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생생한 춤 현장(장소)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이름’이 갖는 특별한 존재 의미가 아닌, ‘이름 없는 춤’이라니 제목부터 흥미롭다. 게다가 포스터에 담긴 다나카 민의 포즈와 눈빛, 주름지고 노화된 몸도 예사롭지 않다.
실제 영화는 다나카 민의 나이 72세에서 74세까지 47곳의 장소에서 공연한 현장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 2017년 8월부터 약 2년간 포르투갈, 파리, 히로시마, 후쿠시마를 오가며 해변, 골목길, 극장, 책방, 거리에서 매 번 다른 춤의 기록이다.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나카 민의 육체의 궤적을 따라간 기록에 가까우며, ‘이름 없는 춤’이라는 영상 공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인 〈메종 드 히미코〉에 배우로 출현했던 다나카 민에게 매료되어 공연마다 동행하여 카메라에 담아낸다. 세계를 누비며 발을 딛는 모든 장소가 무대가 되는 일명 ‘장소의 춤’을 추는 다나카 민은 현재 78세로 3000회를 넘게 춤을 추고 있다고 한다.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감독은 춤꾼의 삶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순간과 기억을 추적하며 이와 연결된 주요 작품 세계와 연결시킨다. 야마무라 코지의 애니메이션에 다나카 민이 쓴 글을 직접 내레이션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대상(사물)을 주의 깊게 살피고 사고하며 시공간을 인식하는 토대가 유년 시절부터 쌓아진다. 이를테면 벌레나 물고기의 움직임부터 이끼, 바람, 구름 등의 흐름을 관찰하며 생명체의 운동성, 다시 말해 제각기 다른 삶(생)의 속도가 있음을 깨닫는 사려 깊은 시선이다. 또한 왕따를 당한 어느 날 동네 춤 축제 현장으로 도망간 순간을 기억한다. 힘든 현실을 잊게 한 묘한 장소에서의 경험이 아마도 그가 춤을 추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10대에 발레와 모던댄스를, 20대에 부토를 배우며 클래식과 전위적인 춤 세계를 흡수한다. 30대인 1966년 솔로로 데뷔 후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발표한다. 최고의 의상이 자신의 피부임을 자각하여 나체로 퍼포먼스를 강행하며 그는 체포되기도 한다. 1978년 주 무대를 파리로 옮긴다. 파리 데뷔 후 비로소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모리스 베자르와 수전 손택이 자신을 보러 왔다고 회고한다. 뉴욕을 비롯해 전 세계를 누비며 인기가 올라가자 주변에서 파리에 학교를 세우고, 유파를 만들어, 작품을 팔자고 그에게 권유한다. 이 범상하지 않은 예술가는 자신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극도의 혐오감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영화는 다나카 민이 생활하는 모습도 무심하게 따라간다. 존경하는 시인 ‘요시다 잇스이’를 따라 자신의 집도 ‘도화촌(桃花村)이란 명패를 달고, 춤을 추지 않는 날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의 나이 40이 되자 춤추기 위한 힘을 키우고자 농사를 시작한다. 노동으로 다져진 굴곡진 근육과 태양에 그을린 피부로 움직이는 몸짓에서 일상과 예술의 구획은 와해된다. 구태여 인위적인 테크닉 수련을 마다하고 생활에서 체화된 가장 자연스러운 몸 쓰임으로 신체를 단련한다. 땅을 일구고 채소를 키우며, 수확한 열매를 팔고 나누며, 고양이 가족을 보살피는 따뜻한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 친근하다.
다나카 민은 자신의 작업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준 〈놀이와 인간〉 저자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를 좋아한다. 놀이가 무엇을 남기지 않듯이 작품도 아무것도 낳지 않아야 하는 춤 철학을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로제 카유아의 무덤에 찾아가 춤을 추고, 생전에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당신의 춤을 멈추지 말라”는 그의 당부를 잊지 않는다. 또한 스승인 히지카타 다츠미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제자를 지도할 때도 절대로 시범을 보이지 않는다. 춤꾼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형태의 춤 길을 찾도록 안내할 뿐이다. 이렇듯 영화는 다나카 민의 춤 세계에 자양분이 되었던 예술가와의 접점까지도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카메라는 극장공연에서 볼 수 없는 다면적인 모습을 클로즈업이나 느린 장면으로 조작하고 편집한다. 행위 배후에 은폐된 무의식과 기억 무한한 상상력을 가시화하기에 영화만한 것도 없지 않는가. 포르투갈 어느 골목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움직이는 첫 장면부터 산타크루즈 바닷가에서 대지와 자연의 기운을 수렴하는 마지막 모습까지 매 장면이 아름답다. 경험으로 축적된 의식을 유려하게 펼쳐 보이며 장소(공간)에 서린 이미지와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몸과 춤으로 대화를 청하는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피폐해진 유령마을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거미와 물아일체(物我一體)되려는 춤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는 단순히 ’장소춤‘이라 말할 수 없으며,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교감의 퍼포먼스이지 싶다. 다나카 민의 삶의 태도와 춤 철학이 잘 묘사된 부분이다.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영화는 자연과 개인이 순수하게 조응하는 춤 이외에도 현실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사건도 외면하지 않는 다나카 민을 보게 한다. 히로시마현이나 후쿠시마에 닥친 재해의 현장을 찾아가 그는 춤을 춘다. 쓰나미로 폐허가 된 장소에서 나신에 가까운 몸으로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는 행위를 한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사건의 심각성을 표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상에 몰입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서 그는 뇌가 파도에 잠기는 상상을 느리고 깊게 수행한다. 느림의 미학으로 영화적인 기술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멘트로 “행복하다”라고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생성되는 순간 사라지는 춤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온 몸을 맡겨 자신만의 춤 세계를 일궈온 예술가는 진정 자유로워 보였다. 이 몰입의 행위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그만의 춤이다.
이누도 잇신 〈이름 없는 춤〉 제공_디오시네마 |
영화 〈이름 없는 춤〉은 다나카 민이라는 춤꾼이 살아가는 방식과 춤 세계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고자 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숨을 쉬고 움직인다. 각자의 방식과 속도와 리듬을 갖고 움직일 때 이 모든 행위는 춤이 태동하는 터전이 됨을 그를 통해 다시 되뇌게 한다. “제 춤을 보며 당신이 내면으로 느끼는 것도 춤이다. 그곳이 바로 춤이 태어나는 곳이다. 단지 우리는 움직임의 씨앗을 받아 키우고 상상하며 보이지 않는 세상과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몸으로 소통하고 공감했던 근원적인 춤을 지향하는 다나카 민의 유목적인 춤 여정이 귀하다. 그는 시대를 역행하듯 자본주의 속도와 결별하고,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명명되길 거부하며, 아카데미즘과 관습에 저항하는(의식하지 않는) 유랑하는 예인이자 구도자 같다. 통제 바깥에 있는 무수한 시공간이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춤 공간이 된다. 다나카 민에게 춤은 “내가 그 장소에 존재하는 방식”이라며 그가 살아가는 유일무일한 세계이다. 정의와 본질을 묻는 것이 무용(無用)해 보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춤이란 무엇인지’ 춤의 존재성과 원형적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