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웹진〉은 다액의 공공지원금으로 열리는 주요 춤제전 행사에 대해 일반 관객의 객관적이며 다양한 시선과 의견을 수렴하여 여론화함으로써 춤제전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공공지원금이 효율성을 진작하도록 자극을 가하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관객평가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3 관객평가단은 올해 연말까지 운영된다. 〈춤웹진〉은 해당 행사에 관한 관객평가단의 소견을 원고로 모아 원고 작성인의 개별 이름은 밝히지 않으며 해당 행사 평가단의 공동 작성 명의로 게재 공개한다. 춤제전들의 진지한 기획과 춤창작자들의 열성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소견Ⅰ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예년에 비해 흥미로운 방식의 작품이 많았다. 순수한 움직임, 새로운 시도 그리고 재미있는 작품까지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것 자체도 즐거웠다. 자원활동가 ‘시끌이’의 안내가 더해져 더욱 풍성한 서울세계무용축제였다.
바디토크 〈코리얼리티〉 9월 1일(금)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서울세계무용축제 첫 공연인 바디토크 〈코리얼리티〉는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진행되었다. 〈코리얼리티〉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나라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한 공연이었다. 전래동화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우리 대중음악이 나오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두가 알 법한 노래가 나왔기에 공감하며 작품 도입부를 즐길 수 있었다. 작품 관람 포인트는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를 해석하는 바디토크의 방식이었다. 특히 K-pop을 흔히 알고 있는 뜻이 아닌 Knife pop으로 해석한 것이 재미있었다. 칼처럼 생긴 소품을 들고 춤을 추는데, 예로부터 춰온 검무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서의 칼이라고도 느껴졌는데, 이렇게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보도록 길을 열어주는 대목이 많았다. 바디토크가 풀어나가는 우리 문화를 통해 관객은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디토크 〈코리얼리티〉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
흥겹게 관람 가능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마냥 즐거운 메시지만이 담긴 작품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무언가 탐욕과 중독에 얽힌 듯한 사람들도 보였다. 무용수와 음악감독은 춤으로 표현하며 그를 위로하는 듯했다.
소품 사용도 눈에 띄었다. 긴 천을 사용하여 춤을 추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빨간 천이 먼저 바닥에 내려오고 장면이 전개되는데, 마치 레드카펫처럼 느껴져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천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 다시 그와 멀어진 후 3개의 천이 엇갈리고 감싸며 무용수에게 파도를 만드는 듯 움직였는데, 이야기의 흐름을 감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각적으로도 작품 전개 면에서도 짜임새 있는 소품 사용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쓰러졌을 때 한 줄기 빛이 비치고, 방금까지도 격렬히 움직인 무용수가 관악기를 숨 가삐 연주하는 부분도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가라앉히는 방식도 좋은 지점이었다. 중간에도 조명을 활용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의미 있는 연출이었겠지만 관객석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너무 많았고, 깜빡이는 강한 빛을 관객석으로 쏘아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예술, 무용 안에서도 다양한 분야를 볼 수 있었다. 하나 되어 〈코리얼리티〉를 공연하지만, 각자의 특색이 묻어났다. 21세기 존재하는 다양한 우리나라의 특징이 여러 장르로도 드러났다고 보았다. 무용수뿐만 아니라 음악감독이 함께 무대를 구성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관객과의 융화는 다소 아쉬웠다. 〈코리얼리티〉는 활발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이었다. 우리 문화가 다방면으로 포함되어 있어 공감하기도 좋았다. 하지만 관객이 몸을 들썩이며 재미있게 몰입하면서 보는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물론 관객도 즐겁게 관람했을 수 있고, 무대 위 예술가들이 즐기는 모습도 잘 느껴졌다. 함께 움직이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았겠다. 그 자리에서 관객에게 힘이 전달되고, 관객이 에너지를 쏟아내는 경험이 가능했다면 더욱 인상 깊은 관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최수진 〈Alone〉 9월 10일(일) 대학로극장 쿼드
최수진 〈Alone〉은 무용과 감정 그리고 예술의 융합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alone’이라는 제목으로부터 외로움, 슬픔, 고독 등의 어두운 감정이 연상되었다. 홀로 있을 때 마주하는 감정들이 여러 감각으로 표현되는 것이 중점적으로 보였다. 작품도 외로움을 나타내는 한 문장이 선택되며 시작했다. 문장 선택과 동시에 기술도 작동했다. 발생하는 감정과 부딪히며 추는 춤이 공간을 채워나갔다. 중반부 정도 되었을 때는 또 다른 무용수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등장은 마치 감정을 끌어내는 도우미의 등장과 같이 느껴졌다. 무용수 혼자 춤을 출 때는 무용과 기술이 어우러짐을 보여주었다면 무용수의 등장으로 춤과 춤이 어우러지는 순간도 보여주었다. 계속해서 무수한 감정을 인식하는 과정이 드러났다. 인식은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단계로 이어져 작품 초입에 떠올렸던 쓸쓸함, 고독과 같은 감정이 개운치 못한 잔여물로 남진 않았다.
최수진 〈Alone〉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
공연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진행되었는데, 가변형 극장이라는 특징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형태로 관람하게 될지 기대가 됐다. 자유로운 공간 구성이 가능하기에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중앙에 무대가 길게 있고, 무대를 중심으로 양옆에 좌석이 길게 배치된 형태였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무대였기에 포착하는 장면이 다양하게 전달되어 좋았다. 춤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그림 같기도 하고, 스포츠 경기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작품이 끝난 후 기술 감독과 만나고 작품에 사용된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사용된 기술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 관객이 직접 경험해봄으로써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기획이 좋았다. 처음 무용수가 선택한 문장에 맞추어 기술도 음악과 그래픽을 비롯하여 표현을 생성하게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Alone〉에 사용된 도구는 공연에 맞추어 추가학습이 진행된, 작품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술이라고 하였다. 4회차 공연 동안 매번 다른 문장, 음악, 안무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진이 예술과 기술의 조화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의 가능성 측면도 고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지닌 감정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기술, 인공지능은 감정과 조화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lone〉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기술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예술과 기술, 인간의 상호작용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감을 체감했다. 기술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기에 모든 면에서 인간이 능동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이번 공연에선 충분히 인간이 기술을 통해 예술 작품을 이끌 가능성이 드러났다. 창작진이 만들어 낼 다른 이야기도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소견Ⅱ
이번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는 색다른 시도들이 많이 모였다. 일반적인 무용 공연에 대한 주제들도 이번 축제에서 볼 수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죽음과 노화’라는 평범하지 않은 주제의 표현이었다. 이 주제를 통해서 평소 죽음과 노화에 대해서 안무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서 특히 설치 미술과의 협업이 작품에 어떠한 영감과 영향을 주었는지 또한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그 중 가장 색다른 시도가 크게 보일 것 같은 세 작품에 대해서 볼 수 있었다. 이 작품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홍신자, 커뮤니티아트랩코지 〈이불 위에서〉 9월 6일(수) 대학로극장 쿼드
이 작품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진행이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귀여운 무드의 다양한 디자인의 의자가 있었고 워낙 독특한 디자인이라 쉬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새로 지어진 공연장이라서 그런지 환경이 매우 쾌적했고 극장으로 내려가는 중간중간 쿼드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에 대한 미디어 영상과 자료들이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다른 작품과는 달랐다. 무용 전공생들이 주된 관객인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관객들의 연령대가 중년 이상의 연령대가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안무가님께서 명상가로도, 작가로고 활동을 하시기에 이에 영향을 받은 듯 보였다. 심지어 한 구석에서는 안무가님께서 내신 책에 대한 부스도 운영이 되어 있었다. 많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데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홍신자, 커뮤니티아트랩코지 〈이불 위에서〉 ⓒ더 휴리, 스튜디오 나/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감명이 깊었던 부분은 무대세트, 즉 오브제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샹들리에 같이 무작위로 천이 흐트러져있는 오브제는 작품의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닥에는 천으로 둘둘 쌓여진 안무가님께서 보였다. 그 모습이 단번에 시신을 염을 하는 것을 표현 한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주제를 직관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느껴졌다. 두 번째에는 큰 이불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서 안무가님께서 춤을 추셨다. 거대한 이불을 통해서 작품의 이름이 왜 이불 위에서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품 구성에 있어서 설치미술과의 협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작품의 의미를 매우 직관적으로 잘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줬다.
두 번째로 큰 역할을 한 것이 조명이었다.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뤄지는 연출은 작품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음악의 포인트에 맞춰서 조명이 깜빡깜빡하기도 했고 음악의 음량에 따라서 조명의 조도가 밝아지고 낮아지기도 했다. 단순한 연출일 수 있지만 음악의 타이밍에 완전히 맞춰서 연출을 했다는 것에서 작품의 엄청난 몰입감을 주기도 했다. 음악은 다소 아쉬웠다. 사실 이러한 주제와 안무가님의 움직임과 작품의 분위기에 더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자음이 많이 들려서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더러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연을 본 직후에 너무 생소하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안무가님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무용을 생각하면 쭉쭉 뻗는 큰 동작, 아름다운 선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안무가님의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작았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 몸이 노쇠해져가는 과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시고 있다는 것은 느껴지기는 했었다. 중간에 영상도 있었지만 기대했던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 컸고, 또한 이러한 흐름으로 한 시간 가까이 이어가다보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저히 작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인사를 나누는 안무가님을 30분 동안 보면서 작품을 혼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안무가님은 어떤 분이신지 관객들은 어떻게 안무가님을 보고 있는지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이해를 해야만 했다. 비로소 공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이 무사히 마친 안무가님을 열심히 환대를 하는 관객을 보며 많은 존경을 받으시는 것 같았고, 거의 30분 이상을 서서 공연을 하신 후의 안무가님의 걸음을 불편해 보였다. 그 걸음을 보고 나서야 안무가님의 세월이 작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작품 중간에 나왔던 영상의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영상 속에서는 전통적인 상여의 모습들이 나왔고 분위기는 매우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에는 안무가님께서 잠에 들 듯 평안하게 눈을 감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죽음과 노화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닌, 안무가님께서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 계셨구나, 단순히 죽음을 두렵고 슬픈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저 받아들이시는 중이시구나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작품을 오해하지 않고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어려운 작품이었다. 아직 안무가님에 비해서 세상의 바람을 맞지 않은 탓에 안무가님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죽음을 피하려는 것이 아닌 그저 받아들이는 과정을 작품으로 승화 시킨 안무가님의 모습에 멋진 연륜과 존경심이 들었다.
김혜연 〈예술래잡기술〉 9월 9일(토) 연희예술극장
창작 과정에서 챗지피티(Chat GPT)를 활용해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연희예술극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처음 가보는 극장이었고 공연장으로서의 느낌도 있지만 패션쇼장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분위기의 공간이라서 더욱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수용가능한 관객의 수가 적다는 것과 관객석 설치로 인해 화장실을 가는 길이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 있다. 그렇지만 극장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가 작품과 너무나 잘 어울려 분위기 형성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작품은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품의 주제 또한도 죽음과 연관이 있는 영생과 환생이었다. 1막 영생의 경우 민화에 나오는 십장생의 동물들을 움직임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무용수들의 화려하고 단아한 움직임과 중간 중간 나오는 재치가 있는 움직임이 더해져 신선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이 지속되었다. 또 의상이 한복이 아닌 정장이라서 현대적인 느낌도 나서 신선했던 것 같다. 2막의 경우는 곰 인형을 이용해서 표현했다. 4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곰 인형을 진짜 움직이는 것 같이 세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인형을 사용해서 움직인다는 그 발상이 정말 재치 있어서 감탄하며 봤다. 정말 잘 만들어진 인형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크게 감명 깊었던 것은 안무였다. 안무가의 성격 또한도 매우 재치가 있는 성격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공연에 대한 정보를 공연 처음과 중간에 나왔던 곰 탈을 쓴 사회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설명이 없었다면 십장생이라는 것을 눈치를 챌 수 있었는지, 또 인형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설명을 통해서 더 이해를 잘하게 됐던 것이 아니라 그 때 ‘아, 그래서 그런 안무가 있었구나’라며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김혜연 〈예술래잡기술〉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
챗지피티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많다. 또 최근에는 챗지피티를 활용한 미술 작품도 많이 나와서 많은 예술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을 더욱 관심이 있게 지켜봤던 것도 있다. 그러나 아직 연출가들과 안무가들을 대체할 정도까지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창작 과정에 있어서 레퍼런스를 모으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 대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챗지피티가 전달해주는 텍스트에 영감을 받아 결국에 사람이, 안무가가 다시금 영감을 받아 창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완전히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안심이 되는 상황인 것 같다. 작품 안에서는 제목과 같이 지속적인 꼬리물기의 과정이 보이지 않아 다소 아쉽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 작품에서 드러낸 것은 알지만 미디어 북을 읽지 않고 작품을 보면 이러한 과정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스펠바운드 현대 발레단 〈트리플 빌-화성, 신뢰, 리얼 유〉 9월 16일(토)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화성〉의 경우, 광선 막대와 우주복 같은 의상은 스타워즈를 연상시켜 우주 공간이 배경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또 조명도 푸른빛을 많이 사용해서 황량하고 외롭고 단절이 된 우주 배경임을 알 수 있었다. 또 무용수들이 만드는 장면, 장면 마다 천지창조 등의 명화를 연상시켜 어떤 명화일지 속으로 맞추는 재미가 있었다. 오브제를 이용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러나 이 넘버에서는 광선 막대를 활용 한 안무에서도 매우 멋있었고 단체의 군무적인 부분도 매우 잘 맞았다. 특히 광선 막대를 이용해서 다음에는 어떠한 구조를 만들지도 기대를 하면서 볼 수 있었다. 또한 조명을 밝기를 낮게 설정해서 막대의 움직임에 집중 할 수 있게 해서 관객이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서 편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용수들의 움직임, 특히 컨택을 하는 부분들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연결되었을 때 부드럽고 독창적으로 움직였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한 마리의 짐승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또 서로의 몸이 닿지 않았음에도 일관되게 힘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져 무용수들의 실력이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스펠바운드 현대 발레단 〈화성〉 ⓒsarameliti/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
〈신뢰〉의 경우 소품과 의상 조명에 힘을 많이 줬던 〈화성〉과는 달리 완전히 힘을 빼서 두 무용수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좌충우돌 시트콤을 보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열정적인 안무와 두 사람의 표정 연기가 더해져 설명을 보지 않아도 저 사람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눈에 확연히 보였다.
〈리얼 유〉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의상과 조명에 힘을 뺐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독창적이고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다가왔던 것은 많은 상황과 움직임으로만 보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조명이다. 밝기가 너무 낮았고 다른 조명 연출을 쓰지 않았다. 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의도인 것은 알지만 너무 어두워서 오히려 무대가 보이지 않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출중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다 담기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음악의 공백이 길었던 점인데, 조명도 어두운 데 음악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매우 청각이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 무용수들의 합을 위한 사인과 호흡이 너무 잘 느껴져서 오히려 작품을 보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밝기만 조금 높였어도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올해 벌써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스물여섯 해를 맞이했다. 오랜 시간을 이어온 만큼 공연과 주제 선정에서부터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이기까지의 노고가 이번 축제 때에 많이 드러난 것 같아 감사함이 느껴졌다. 이번 축제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돋보였던 만큼 다양한 극장들을 가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극장 상황에 억지로 작품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닌 작품에 맞는, 어울리는 환경에서 공연을 관람 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극장의 어떠한 점 때문에 이 작품에 사용이 되었는지 나름의 추측을 하며 보게 되는 재미도 한 몫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으로 인해서 작품의 획기적인 시도들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더 긴 역사를 이어가며 좋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알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소망해본다.